위기의 순간 해결사가 등장해야 팀도 웃는다. 특히 배구는 매세트 20점 이후(5세트 10점 이후) 결정력이 중요하다. 강팀일수록 20점 이후 버티는 힘이 강하다. 2023-24시즌 V-리그 정규리그 1라운드부터 4라운드까지 20점 이후 가장 빛난 진정한 해결사는 외국인 선수가 아닌 흥국생명 김연경, 대한항공 임동혁이었다.
‘외인급 활약’ 김연경
유일하게 20점 이후 공격 효율 50% 넘겼다
올 시즌 정규리그 1라운드부터 4라운드까지 20점 이후 결정력을 분석해봤다. 최소 공격 점유율 20%를 넘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외국인 선수급 활약을 펼친 김연경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20점 이후 김연경의 공격 효율은 51.33%로 가장 높았다. 김연경은 226회 공격을 시도해 124회 득점으로 연결했다. 범실은 5개, 상대 블로킹에 걸린 것은 3회에 불과했다. 공격 성공률도 54.87%로 가장 높았다.
김연경은 4라운드까지 24경기 96세트 출전해 520점을 기록했다. 김연경은 4라운드까지 득점 순위 6위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공격 성공률 45.23%로 공격종합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김연경은 20점 이후 보다 높은 공격 성공률과 효율을 보이며 해결사 본능을 드러낸 셈이다.
4라운드까지 득점 TOP10 중 국내 선수로는 김연경이 1위였고, 현대건설 미들블로커 양효진이 24경기 92세트 361점으로 10위에 오르면서 베테랑의 힘을 드러냈다. 그만큼 팀 공헌도가 높았다.
팀 내 유일하게 전 경기를 소화하고 있는 김연경이다. 앞서 김연경은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다. 나이도 있고, 공도 많이 때리고 있다. 부담감도 있지만 선수들이 같이 도와주고 있다. 중요한 시기인 만큼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기 때문에 노력하고 있다”며 힘줘 말했다.
강소휘의 42.86%
부키리치의 36.59%
김연경 다음으로 이름을 올린 선수는 GS칼텍스 강소휘다. 정규리그 4라운드까지 강소휘의 20점 이후 공격 효율은 42.86%였다. 강소휘는 20점 이후 161회 공격 시도해 80점을 기록했고, 범실은 9개였다. 상대 블로킹에 걸린 공격은 2회 있었다.
강소휘 역시 V-리그 정상급 아웃사이드 히터이자, 한국 여자배구를 대표하는 선수다. 김연경에 이어 에이스 역할을 해냈다. 덕분에 GS칼텍스가 시즌 전 ‘약팀’의 평가 속에서도 올 시즌 선전할 수 있었다.
강소휘와 함께 에이스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V-리그 새내기’ GS칼텍스 지젤 실바(등록명 실바)도 20점 이후 공격 효율 36.33%로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실바는 267회 공격을 시도해 143점을 얻었다. 점프나 타점이 높은 아포짓은 아니지만 뛰어난 공격 스킬과 파워로 맹공을 퍼붓고 있다.
김연경-강소휘 다음으로는 한국도로공사 반야 부키리치(등록명 부키리치)가 공격 효율 36.59%로 3위에 랭크됐다. 부키리치 역시 한국 배구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4라운드까지 24경기 94세트 612점으로 득점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공격을 책임졌다.
이 외 페퍼저축은행 야스민 베다르트(등록명 야스민), 정관장 메가왓티 퍼티위(등록명 메가), 현대건설 레티치아 모마 바소코(등록명 모마), IBK기업은행 브리트니 아베크롬비(등록명 아베크롬비)가 나란히 30% 이상의 공격 효율을 기록했다.
‘커리어하이’ 토종 아포짓 자존심 지킨 임동혁
201cm 아포짓 임동혁은 어느덧 프로 7년차다. 올 시즌 커리어하이를 달성했다. 2017-18시즌 프로 데뷔한 임동혁은 2020-21시즌 33경기 123세트 506점을 기록하며 자신의 한 시즌 최다 득점을 기록한 바 있다. 현재 33경기 117세트 출전, 521점을 터뜨리며 한 시즌 최고 득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12월 10일 KB손해보험전에서는 프로 데뷔 후 개인 최다 득점인 42점을 터뜨렸다. 공격으로만 무려 39점을 올렸고, 당시 공격 점유율은 48.76%를 찍었다.
대한항공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이 “우리 팀의 가장 큰 강점은 아포짓 2명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로 임동혁의 팀 기여도는 크다.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올 시즌 정규리그 4라운드까지 20점 이후 공격 효율이 무려 56.9%다. OK금융그룹 레오나르도 레이바(등록명 레오)의 52.33%보다 높다. 물론 임동혁의 공격 횟수는 116회, 레오는 172회로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임동혁이 진정한 해결사로서 맹활약 중이다.
그만큼 임동혁도 자신감이 올랐다. 베테랑 세터 한선수에게 자신있게 공을 올려달라고 말할 정도다. 옆에서 임동혁을 지켜본 한선수는 “동혁이가 많이 늘었다. 자신감도 생겼다. 경험도 쌓고, 보는 눈도 생기면서 좋은 공격수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본인한테 공을 달라는 말을 못했다. 세터 부담을 덜어주고, 세터가 더 믿을 수 있게 해주는 공격수다. 물론 아직 발전할 것이 많다. 완전한 에이스가 되려면 안 풀리는 상황에서 풀어가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범실을 하면서 발전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임동혁도 “처음에는 높이로만 배구를 하려고 했다. 스마트하지 못했다. 시즌을 치르면서 공을 많이 때리다보니 이 상황에서는 어떤 공격을 해야할지 알게 됐다. 예를 들면 힘이 아닌 연타 공격 혹은 블로킹을 이용한 공격을 하려고 한다”면서 “자신있게 하겠다”며 패기 넘치는 각오를 전했다. 토종 아포짓의 자존심을 지키며 한 뼘 더 성장한 모습을 드러낸 임동혁이다.
팀 에이스 레오와 허수봉
대한항공에 임동혁이 있다면, OK금융그룹과 현대캐피탈에는 각각 레오와 허수봉이 있다. 20점 이후 공격 효율 56.9%로 1위를 차지한 임동혁 다음으로 레오와 허수봉이 각각 52.33%, 46.59%의 공격 효율을 기록했다.
특히 레오는 4라운드 들어 아웃사이드 히터 자리에서 오히려 공격 비중을 더 늘렸다. 대신 힘으로만 하는 공격이 아닌 기술이 가미된 공격을 구사하며 득점력과 성공률까지 끌어 올렸다. 성장하는 레오를 향해 오기노 마사지 감독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허수봉은 시즌 초반 미들블로커, 아웃사이드 히터를 오가며 주춤했지만 아웃사이드 히터로서 제 몫을 해내고 있다. 아포짓 아흐메드 이크바이리(등록명 아흐메드)와 쌍포를 이루고 있다.
아흐메드의 20점 이후 공격 효율은 36.63%로, 역시 결정적인 순간 득점력에서 아쉬움을 남긴 모습이었다.
우리카드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한국 V-리그 무대에 오른 마테이 콕(등록명 마테이)은 5라운드 발목 부상으로 사실상 시즌 아웃된 상황이지만, 4라운드까지 20점 이후 공격 효율은 41.42%로 5위를 차지했다.
임동혁과 나란히 ‘99즈’로 주목받고 있는 임성진, 김지한은 각각 40.34%, 39.05%의 공격 효율을 기록했다. 역시 V-리그 경험을 쌓으면서 득점력을 끌어 올리고 있다.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요스바니 에르난데스(등록명 요스바니)는 4라운드까지 20점 이후 가장 많은 공격 횟수인 290회를 기록했지만, 공격 효율은 38.28%로 8위에 그쳤다. 그만큼 요스바니 공격 의존도가 높으면서 상대 블로킹을 따돌리기 쉽지 않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KB손해보험 안드레스 비예나(등록명 비예나)와 한국전력 타이스 덜 호스트(등록명 타이스)도 각각 37.57%, 37.32%에 불과했다. 범실이 나오거나 상대 블로킹에 걸리는 공격이 많았다. 각 팀 감독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다.
글. 이보미 기자
사진. KOVO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