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은 다양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표승주의 은퇴 선언이 비시즌 배구계를 흔들고 있다. 2024-25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취득한 표승주는 협상 기간 내에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며 FA 미계약자로 남게 됐다. 현행 규정상 미계약자는 차기 시즌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표승주의 은퇴 가능성이 대두됐고, 결국 표승주는 개인 SNS를 통해 은퇴 사실을 알렸다.
국가대표팀 출신에 당장 직전 시즌에도 정관장의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던 표승주가 이대로 은퇴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배구계에서도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언론을 통해 나온 내용에 따르면 정관장은 “표승주가 사인 앤 트레이드 성사만을 재계약 조건으로 걸었다”고 주장했고, 표승주는 개인 SNS를 통해 “원 소속 구단과의 협의가 원만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김연경이 개인 SNS를 통해 “안타까운 상황이다, 선수들을 위한 제도가 더 생겼으면 좋겠다”는 목소리까지 낸 상황이다. 과연 이 상황에 대해 배구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더스파이크>는 배구인들의 목소리를 익명으로 들어보기로 했다.
먼저 배구인 A씨는 “생각의 차이를 조금만 좁혔다면 더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사인 앤 트레이드를 강하게 요구했다는 내용이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는, 지금 상황에 대한 책임은 선수 측의 과실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사인 앤 트레이드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면 당연히 팀을 구해왔어야 한다. 구단은 자선 단체가 아니다. 애초에 선수의 요구 사항 자체가 그 정도 수위였다면 팀이 그 요구사항을 들어주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줄 이유까지는 당연히 없는 것이다. 적어도 이 상황에 대해 구단을 탓할 명분은 없다는 얘기”라며 정관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구단을 탓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반면 B씨는 조금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는 “굳이 잘잘못을 가리자면 구단이 조금 심했다는 생각은 든다. 사인 앤 트레이드로 이적할 대상을 선수가 직접 구해온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구단이 선수를 도와주는 것이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두 사람에게 조금 더 앞선 상황에 대한 질문도 던졌다. 과연 정관장이 주장하는 “표승주가 내세운 유일한 조건이 사인 앤 트레이드 성사였다”는 내용이 사실일 것인지에 대해서였다. 이에 B씨는 “극히 개인적인 예상을 해보자면, 아마 팀에서 표승주와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챔피언결정전에서의 경기 내용 같은 것들, 예를 들면 5차전 5세트에서의 치명적인 범실이나 위축된 플레이들 같은 걸 근거로 압박을 강하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과정에서 표승주가 감정이 크게 상했다면 무조건 사인 앤 트레이드만을 원했다는 이야기에 어느 정도의 신빙성이 실린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그 플레이들로 인해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린 건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도 아마 구단은 큰돈을 쓰지 않는 선에서는 표승주와 동행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있었을 텐데, 결국 원만한 협상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A씨는 이 추측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로 인한 표승주의 미계약이 구단의 과실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 그는 “구단이 그런 식으로 표승주를 저평가했다고 치더라도, 그게 비판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선수가 원 소속 구단의 가치 평가를 인정할 수 없다면 재계약하지 않고 다른 팀을 찾으면 되는 거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가 시장 상황에 빗대어봤을 때 불충분하다는 의미인 것이고, 이게 당연한 시장의 논리다. 연봉 협상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그렇다. 팀 쪽으로도, 선수 쪽으로도 너무 휘둘리는 건 좋지 않다. 정관장이 사인 앤 트레이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표승주의 FA 이적으로 인한 이득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것이 사실이고, 그렇다면 선수의 뜻대로 움직여줄 이유는 없다”며 앞선 주장을 재차 강조했다.
끝으로 두 사람에게 선수들을 위한 제도 개선이 추가로 필요할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서는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다. 먼저 A씨는 “구단이 과연 선수를 어디까지 책임져줘야 되는 걸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미성년자도 아닌데, 케어의 범위를 어디까지 넓혀야 하는 것인가. 지금 기존 선수들의 권리 보호보다 시급한 건 새로운 선수들을 양성하고 리그로 끌어올리는 거다. 표승주 본인에게는 억울하고 안타까운 상황일 수 있다는 걸 분명히 인정한다. 이런 문제가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잘 세워야 한다”며 회의적인 목소리를 냈다.
표승주에 대한 안타까움을 A씨에 비해 더 크게 표했던 B씨 역시 제도 문제에 대해서는 냉철한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선수들은 상당히 좋은 처우를 받고 있다고 본다. 특히 금전적으로는 상당한 보상을 받고 있다. 여기서 선수들을 위해 더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FA 보상선수-보상금 제도가 선수들의 움직임에 제약을 만든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진짜로 필요한 선수는 구단이 그 모든 걸 감수하고 데려간다. 표승주의 나이가 많은 게 문제라고 하기에는 이미 남녀부에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를 여러 방식으로 인정받는 선수들이 많다. 선수들이 현행 제도 속에서 금전적으로 얻어가는 게 크다면, 이 정도의 리스크는 선수들도 감수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걸 모두가 만족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힘든 과제일 것”이라며 보상 제도의 본질적인 문제가 선수들에게 보편적으로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두 사람은 물론, 배구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표승주의 은퇴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다. 그러나 그 책임 소재와 앞으로의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쉽사리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 당분간도 갑론을박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비시즌의 메인 이벤트나 다름없는 FA 협상 기간이 끝난 뒤에야 오히려 비시즌의 열기가 뜨거워지는 것은 그리 반가운 상황은 아닌 듯하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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