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원이 끝과 시작 사이의 중간에 섰다.
이강원이 선수 생활을 마치고 코치로서의 도전에 나선다. 우리카드는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강원의 코치 선임 소식을 알렸다.
이강원의 코치 선임 소식은 곧 현역 은퇴 소식이기도 했다. 투지와 에너지로 팬들을 열광시켰던 선수 이강원의 끝과,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코치 이강원의 시작에 대한 생각들을 듣기 위해 <더스파이크>가 이강원과 유선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안 해본 일이라서 걱정 반, 설렘 반이다. 그래도 새로운 시작인만큼 설렘이 조금 더 큰 것 같기도 하다”고 코치 부임 소감을 먼저 밝힌 이강원은 “원래는 작년에도 코치 제안을 받았었다. 하지만 구단에서 최종적으로는 선수로서의 가치를 인정해주셔서 한 시즌을 더 뛰었다. 그리고 2024-25시즌이 끝난 뒤 감독님께서 먼저 코치 제안을 해주셨다. 지금이 아주 적절한 시기인 것 같다고도 말씀해주셨다. 이번 시즌에는 FA 자격을 얻었기 때문에 고민할 시간이 지난 시즌보다도 많지 않았는데, 결국 코치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고 코치가 된 과정을 간략히 소개했다.
이강원이 긴 고민을 하지 않고 코치의 길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몸 상태였다. 그는 “고민을 너무 길게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수술이었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세 군데 정도 수술을 받았는데, 선수 생활을 더 하다가는 몸이 더 심하게 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가족들도 내 선택을 지지해줬다”고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그렇게 2012-2013 V-리그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선발되며 시작된 선수 이강원의 V-리그 커리어는 지난 2024-25시즌을 끝으로 11시즌 만에 막을 내렸다. 모든 시즌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시즌은 아니었지만, V-리그를 대표하는 토종 거포로 한 시대를 풍미하기도 했던 이강원이었다.
그럼에도 이강원은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은 너무 많이 남는다. 마지막 시즌이라고 생각하고 2024-25시즌에 임했는데, 기대했던 결과를 만들지는 못했다. 선수로서 이루지 못한 게 너무 많기도 하다. 우승도 못 해봤고, 개인 업적도 원하는 만큼 이루지 못했다”고 자신을 조금은 냉정하게 돌아봤다. 그러면서 “그렇게 남겨두고 온 선수로서의 아쉬움은 지도자의 자리에서 풀어봐야 할 것 같다”고 힘줘 말하기도 했다.
이강원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절로 KB손해보험 시절을 꼽았다. 그는 “그때는 그래도 내가 팀에서 꼭 필요한 선수였던 것 같다. 해야 할 일도 많았다”며 손현종과 함께 토종 쌍포를 구축했던 영광의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시절 못지않게 이강원이 빛났던 순간이 바로 지난 2024-25시즌이었다. 팀의 주장이자 게임 체인저로 활약하며 제대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그는 “그간 경기에 나설 기회가 없어서 공백기가 길었다. 그렇지만 꼭 코트로 돌아와서 나름의 역할을 해내고 싶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해낸 것 같다”고 지난 시즌을 자평했다.
이제 선수 이강원은 코치 이강원에게 바통을 넘긴다. 이강원 본인이 앞서 말했듯 선수 시절에 남았던 아쉬움은 코치 이강원이 대신 풀어볼 참이다. 그는 “일단 감독님께서는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사이의 유대와 화합을 내가 이끌어주길 바라신다. 이것만큼은 큰 걱정이 없다. 잘해보겠다”며 자신에게 주어진 코치로서의 첫 임무를 밝혔다.
새내기 코치 이강원은 동기도 생겼다. 원조 토종 거포 박철우와 함께 다음 시즌 코치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그는 “(박)철우 형과는 선수 때 같은 팀에서 뛰어봤다. 또 고교 선배로서 우상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코치 전환을 결정하기 직전에 철우 형에게 연락이 와서 같이 열심히 해보자는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결정에 도움이 됐다. 같이 하게 돼서 너무 기쁘다. 형이 ‘나도 처음이지만 최선을 다할 테니,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고 해주셨다. 정말 마음이 편해지고 든든했다”며 박철우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표했다.
이강원은 과거 <더스파이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후회를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그런 그에게 “우리카드의 동생들에게는 같은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강원은 “마침 그 부분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해봤다. 사람은 항상 나름의 아쉬움과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도 배구선수로서 이뤄낸 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열정만큼은 다 쏟아본 사람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조언이나 쓴 소리를 잘 귀담아들었다면 후회를 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내가 선수 때 꼭 듣고 싶었던 이야기, 또 명심해야겠다고 느꼈던 이야기들을 선수들에게 공유해줄 것”이라며 그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 이강원에게는 지도자로서의 롤 모델이 있다. 그는 “꿈꾸는 지도자 상이 있다. 바로 강성형 감독님이다. 제 신인 시절 때 많은 배려를 해주시고 저를 이해해주신 분이다. 제가 신인이라서 경기를 할 때마다 소통이 엇갈리거나 실수가 나오는 상황에도 제가 기죽지 않도록 저를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셨다. 베테랑부터 막내까지 모든 선수들을 관대하게 바라봐주셨고, 유하면서도 꼭 필요한 지적들은 아끼지 않으셨다. 나도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다”며 강 감독을 롤 모델로 꼽았다.
그렇게 한참을 코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 인터뷰가 선수 이강원으로서의 마지막 인터뷰일 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은 선수 이강원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남기기로 했다. 오효주 KBSN 아나운서가 김연경의 마지막 방송사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남겼던 질문을 인용해, “지금 이 순간 선수 이강원의 은퇴는 행복한 은퇴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강원은 “솔직히 나와 김연경 선배는 비교할 수가 없다. 한국 배구 최고의 선수와 나의 은퇴를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겸손한 목소리를 먼저 냈다.
이후 이강원은 “그래서 나는 내 은퇴가 행복한 은퇴인지 같은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선수 이강원의 모든 것을 코트 위에 내려두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선수들에게 뒤를 맡긴다는 마음으로 떠나려고 한다. 내 경험 상 아포짓은 아무래도 외국인 선수와 경쟁해야 하기에 기회를 잡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외국인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선수를 키울 수 있는 지도자가 돼보려고 한다. 코치 이강원의 새로운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만 먹겠다”는 답을 들려줬다. 이미 자신의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선수 이강원은 코치 이강원에게 건투를 빌어주며 완전히 바통을 넘겨준 것이었다. 그 바통을 꽉 쥔 채 새롭게 시작될 코치 이강원의 질주를 기대해본다.
사진_KOVO, 더스파이크DB(유용우 기자), 우리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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