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를 적으로 만나게 됐지만 무운을 기원한다. 적을 제자로 들인 이들은 기대감을 드러낸다.
2025 한국배구연맹(KOVO) 여자부 아시아쿼터 드래프트가 11일 서울 메이필드호텔에서 진행됐다. 7개 구단의 2025-26시즌 준비를 위한 사실상의 첫 걸음이 떼지는 현장에서,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은 또 한 번 부각됐다. 일곱 명의 선택받은 선수들 중 V-리그 무대를 경험해본 선수가 다섯 명이나 됐다.
그런데 이들 중 지난 시즌에도 V-리그에서 뛰었지만, 다음 시즌에는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게 된 선수가 두 명 있었다. 바로 스테파니 와일러와 위파위 시통이다. 와일러는 GS칼텍스, 위파위는 현대건설에서 활약했고, 두 선수는 각각 페퍼저축은행과 정관장으로 둥지를 옮기게 됐다.
자연스레 배구인들과 팬들의 눈길 역시 두 선수와 두 선수를 선택한 팀, 또 두 선수를 떠나보낸 팀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 종료 후 진행된 감독 인터뷰를 통해 와일러와 위파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먼저 이영택 감독은 “우선순위는 아니었지만, 와일러에 대한 생각은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 왔고, 몸 상태에 대한 대화도 나눴다. 고민은 계속 하고 있었는데, 결국 우리의 순번이 오기 전에 뽑혔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면서 이 감독은 “내가 작년에 와일러를 7순위로 뽑았는데, 이번 드래프트에서 1순위가 됐다. 내가 잘 가르친 모양”이라며 유쾌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회복을 잘해서 한국으로 돌아와 좋은 활약을 펼치길 바란다”며 적이 된 제자에게 덕담도 잊지 않은 이 감독이었다.
이어서 강성형 감독 역시 위파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어제(10일)까지도 위파위가 우리의 순번까지 남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 팀에서 중요한 선수였던 만큼 신중하게 생각해봤지만, 결국은 부상으로 인해 선택을 포기했다. 첫 시즌에는 어깨, 두 번째 시즌에는 무릎 부상이 문제였다. 세 번째 시즌까지 안고 가기는 쉽지 않았다”며 위파위를 내려놓은 이유를 먼저 밝혔다.
그러나 강 감독도 이 감독과 마찬가지로 위파위를 응원했다. 그는 “하지만 위파위는 분명히 잘하는 선수다. 정관장에 가서도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적이 된 위파위의 앞날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한편 전체 1순위로 와일러를 호명한 장소연 감독은 와일러의 화력에 기대를 건다. 그는 “아웃사이드 히터 쪽을 보고 있었다. 와일러는 높이와 공격력을 갖춘 선수고, 리시브도 가능하다. 우리 팀에 가장 적합한 선수라고 판단된다. 몸 상태는 계속 확인했다. 시간적으로는 회복할만한 충분한 여유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와일러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와일러-박정아 OH 조합은 리시브에서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장 감독 역시 이를 알고 있다. 그러나 장 감독은 “어떻게 하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공격적인 방향성을 선택하기로 생각했다”며 수비보다는 공격에 초점을 맞춘 방향성으로 나아갈 것임을 강조했다. 두 선수가 리시브에서 잃는 점수를 공격으로 얼마나 만회할 수 있느냐가 다음 시즌 페퍼저축은행의 최대 관건이 됐다.
한편 단상에 올라 위파위를 호명하는 고희진 감독의 모습에서는 과거 삼성화재 감독 시절 직전 시즌 한국전력에서 활약했던 카일 러셀의 이름을 호명했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경력자를 활용한 경험도, 아시아쿼터 지명으로 ‘초대박’을 터뜨린 경험도 있는 고 감독이기에 선택의 근거가 궁금했다.
고 감독은 “배구 실력은 충분히 검증된 선수다. 트라이아웃 풀 안에서 위파위보다 나아보이는 선수는 없었다. 또한 현 제도 하에서 나의 선택 기준은 확고하다. 포지션과 상관없이 가장 좋은 선수를 뽑아서 우리 팀에 맞게 변신을 시키겠다는 생각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순번에서 가장 좋은 선수를 뽑았다”고 선택의 근거를 밝혔다. 위파위의 부상 문제에 대해서는 “열심히 재활하다보면 복귀 시점은 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위파위는 잘 극복할 것”이라며 희망을 품기도 한 고 감독이었다.
유니폼을 갈아입은 와일러와 위파위를 바라보는 네 감독의 시선은 이처럼 제각각이면서도 비슷했다. 두 선수가 얼마나 건강하게 돌아오는지, 또 어떤 활약을 펼치는지에 따라 네 감독의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릴 전망이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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