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적인 봄배구 진출을 향한 희망의 불씨가 점차 커져가던 순간, IBK기업은행의 두 기둥은 체력의 한계에 봉착하고 말았다. 결국 IBK기업은행은 패했지만, 누구도 그들을 쉽게 비난할 수 없었다.
IBK기업은행을 이끄는 베테랑 표승주는 달리 산타나(등록명 산타나)와 함께 아웃사이드 히터 포지션에 붙박이 주전으로 나서며 공수 양면에서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8일 경기 종료 후 기준 득점 8위, 공격종합 8위, 디그 8위, 수비종합 6위 등 각종 지표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출전 시간 역시 매우 길었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은 시점임에도 33경기‧124세트에 출전하며 자신의 한 시즌 최다 경기‧최다 세트 출전 기록을 갈아치웠다.
IBK기업은행을 지탱하는 베테랑은 표승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앙을 든든히 지키는 김수지 역시 IBK기업은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프로에서의 18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는 김수지는 서브 5위, 블로킹 5위, 이동공격 6위, 속공 7위에 오르며 시즌 내내 IBK기업은행의 날카로운 창이자 든든한 방패로 활약하고 있다. 김수지 역시 표승주와 마찬가지로 33경기‧124세트에 출전하며 자신의 한 시즌 최다 경기‧최다 세트 출전 기록을 새로 썼다.
그러나 두 선수는 이제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표승주는 1992년생, 김수지는 1987년생이다. 시즌의 끝을 향해가는 6라운드는 베테랑들이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시기이고, 이번 시즌 전 경기에 출전하며 강행군을 이어온 두 선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버티던 표승주와 김수지였지만, 결국 두 선수도 체력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그 한계에 봉착한 순간이 야속하게도 IBK기업은행이 기적을 향해 다가가던 순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승리가 절실했던 4세트, 표승주와 김수지는 부진에 빠졌다. 세트 시작과 동시에 정호영에게 공격이 가로막히며 불안한 출발을 보인 표승주는 6-7에서 또 한 번 정호영의 블로킹을 뚫지 못했다. 정호영의 높이를 뚫을 수 있는 점프를 뛸 힘도, 블로킹을 역이용할 수 있는 집중력도 체력이 방전된 표승주에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표승주는 16-21에서 또 다시 정호영에게 블로킹 득점을 헌납하며 4세트에만 정호영에게 3개의 블로킹을 내줬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것은 김수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기 내내 서브 영점을 조절하지 못하던 김수지는 15-17에서 3단 처리에 실패하며 점수를 내주더니, 이어진 15-18에서는 네트에 스치며 짧게 떨어지는 공에 반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늘 노련함을 뽐내던 김수지답지 않은 장면이었다. 이 장면이 나온 직후 김호철 감독은 바로 김수지를 빼고 김현정을 투입했다.
결국 IBK기업은행은 4세트를 KGC인삼공사에 내주며 5세트로 끌려갔고, 중요한 순간 깨어난 엘리자벳 이네 바르가(등록명 엘리자벳)를 막지 못하며 세트스코어 2-3(25-18, 19-25, 25-15, 17-25, 14-16)으로 패했다. 조금씩이나마 키워갔던 봄배구를 향한 희망의 불씨가 사실상 사그라진 경기 결과였다.
결정적인 순간 체력이 방전되며 무너졌지만, 표승주와 김수지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IBK기업은행의 경기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두 선수가 이번 시즌 얼마나 좋은 활약을 펼쳤는지, 또 얼마나 헌신적으로 뛰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준 선수들에게 고맙다. 남은 경기도 이렇게 열심히 해주리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표승주와 김수지는 IBK기업은행 선수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봄배구 진출 여부와는 관계없이, 두 베테랑의 헌신은 충분히 값지다.
사진_대전/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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