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서는 아쉽게 패했지만, 그 속에서도 빛난 요소들이 있었다. 한국도로공사를 대표하는 두 베테랑이 그 주인공이었다.
한국도로공사가 2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2라운드 경기에서 GS칼텍스에 세트스코어 2-3(19-25, 23-25, 25-23, 25-23, 10-15)으로 패했다. 한국도로공사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무기력한 모습으로 1-2세트를 내리 내줬고 3세트도 패배 직전까지 몰리며 셧아웃 패배를 당할 뻔 했지만, 3세트 막바지 대역전극을 만들어낸 뒤 4세트까지 따내며 경기를 5세트로 끌고 갔다. 그러나 5세트에 지젤 실바(등록명 실바)의 화력을 억제하지 못하며 승점 1점에 만족해야 했다.
완패는 면했지만 승리는 거두지 못하며 찜찜함을 남긴 경기 속에서도 한국도로공사는 나름 의미 있는 결실들을 발견했다. 그 중 하나는 문정원이 세운 대기록이었다. 문정원은 이날 V-리그 여자부에서 네 번째로 역대통산 리시브정확 4000개를 돌파했다. 3세트 12-17에서 강소휘의 서브를 정확히 이윤정에게 배달하며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날 70.27%의 리시브 효율로 총 26개의 정확한 리시브를 받아낸 문정원의 통산 리시브정확 개수는 총 4012개로 늘어났다.
이 기록이 더 의미를 갖는 지점은 문정원 이전에 리시브정확 4000개를 돌파한 세 명의 선수가 모두 리베로라는 점이다. 역대 최다 리시브정확 기록 보유자인 동료 임명옥(22일 경기 종료 후 기준 6129개)은 데뷔 초에 잠시 아웃사이드 히터를 소화했을 뿐 커리어의 대부분을 리베로로 뛰었고, 그 뒤를 잇는 김해란(흥국생명, 5005개)과 남지연(은퇴, 4211개)은 아예 커리어 내내 득점이 1점도 없는 정통 리베로들이다. 즉 문정원은 비(非) 리베로로서는 사실상 최초로 리시브정확 4000개를 돌파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배유나는 이번 시즌 들어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이날 배유나는 17점을 올리며 35점을 올린 반야 부키리치(등록명 부키리치)의 뒤를 이어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블로킹은 4개를 잡아냈고, 유효 블록도 6개를 기록했다. 속공-이동공격-개인 시간차-오픈 공격까지 다양한 공격 루트를 모두 선보였고, 서브 득점까지 기록하며 특유의 다재다능함을 뽐냈다.
배유나는 시즌 개막 전 팀과 재계약을 체결했지만 시즌 초반 다소 들쑥날쑥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경기 전까지 치른 9경기에서 공격 성공률이 50%를 넘은 경기는 두 경기 뿐이었고, 세트 당 블로킹이 0.7개를 넘은 경기도 두 경기 뿐이었다. 범실이 없었던 경기는 한 경기도 없었다. 그러나 이날은 그간의 부진을 모두 털어내는 맹활약을 펼쳤다. 시즌 처음으로 단 하나의 범실도 저지르지 않았고, 공격 성공률은 무려 70.59%에 달했다. 세트 당 블로킹도 0.8개를 기록했다. 정확성과 폭발력을 모두 보여준 날이었다.
물론 두 선수 모두 완벽한 하루를 보내지는 못했다. 문정원은 리시브에서의 탄탄함과는 별개로 공격에서는 3점‧공격 성공률 8.33%에 그치며 결정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윤정이 경기 초반 상대 블로커들의 움직임을 역이용하기 위해 문정원에게 많은 공을 올렸지만 득점으로 연결된 상황은 거의 없었다. 배유나는 5세트에 하나의 유효 블록도 기록하지 못하며 실바의 화력을 억제하는 데 실패한 부분이 아쉬웠다. 그러나 패배한 경기에서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다.
경기에서 지더라도 잘 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승점을 1점이라도 챙김과 동시에, 문정원의 리시브는 여전히 한국도로공사의 든든한 상수라는 점을 재확인한 것과 다소 우려스러웠던 배유나의 경기력이 오랜만에 고점을 찍었다는 것은 패배 속에서도 분명한 수확이었다. 이제는 이 수확들을 가지고 다음 경기에서 어떻게 승리를 일굴지를 김종민 감독과 한국도로공사 선수들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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