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봄이 왔다! KGC인삼공사 한송이

서영욱 / 기사승인 : 2020-05-03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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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 최고의 공격수, 2002 신인드래프트 1순위, 2003 슈퍼리그 신인왕, 2007~2008시즌 득점왕. 그렇게 빛나던 청춘도 서른을 넘기고선 황혼에 기우는 듯 했다. 아스라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은퇴 시기를 저울질하던 그녀가 생생한 활력을 되찾았다. KGC인삼공사 한송이는 올 시즌 ‘배구인생에 봄이 다시 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익숙지 않은 미들블로커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떨치고 있고, 약 5년 만에 여자배구대표팀 승선이라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더스파이크>는 3월 11일 대전에 위치한 KGC인삼공사 연습장에서 한송이를 만났다. 본지와 첫 대면 인터뷰를 가진 한송이는 이번 기회에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모두 풀었다. 지금부터 ‘배구도사’ 한송이의 배구 인생 속으로 들어가 보자.


#배구도사 #회춘송이
한송이의 올 시즌은 특별하다

한송이는 프로배구 출범 이전인 지난 2002년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한국도로공사에 입단했다. 슈퍼리그 시절인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코트 위를 밟고 있다. V-리그 여자부에서 한송이보다 오래 뛴 선수를 고르라면 한 손가락에 뽑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한송이는 아직도 기억 생생한 V-리그 출범 초창기를 돌아보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땐 난 그냥 남자아이였다. 지금은 자유롭게 머리도 기를 수 있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액세서리, 메이크업 그런 게 일체 안 됐다. 선수로서 멋을 부릴 수 없었다.”

지금 보면 코트 위에서 플레이도 어색했다. 어딘지 모르게 선수들의 플레이, 표정이 굳어 있었다고 한다. 한송이는 “최근 코보티비 콘텐츠인 ‘탑골공원’에서 내가 뛰던 시절의 옛 경기가 나오더라. 그 경기를 보는데 우리 팀 선수들 중 웃고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 상대 팀도 웃지 않았다. 그때 당시에는 웃으면 ‘장난치나, 진지하게 경기 안 하나’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실 한송이는 자신이 배구를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V-리그 출범 초창기 여자 선수들의 은퇴 시기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이었기 때문이다. 전성기를 달리고 있을 시기에 모두 은퇴를 하고 새로운 인생을 찾았다. 한송이는 “처음 팀에 입단했을 때 제일 나이 많은 언니가 30살이었다. 대부분 20대 중반이나 늦어도 30대 초반에는 은퇴를 했다. 모두들 그렇게 은퇴를 하니 나도 그럴 줄 알았다”라며 “하지만 실업리그에서 프로리그로 바뀌고, 자유계약(FA)이 생기고 하니까 선수 생활도 자연스럽게 늘어나더라”라고 말했다.

한송이는 1984년 출생이다. 이제 팀 동생들과 나이 차도 제법 난다. 한송이는 “내가 2005년 프로 원년 때 이야기를 하면 팀 동생들은 그때 다 초등학생, 유치원생이었다고 하더라. 그럴 때마다 ‘아, 내가 정말 배구를 오래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막내인 (정)호영이가 20살인데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태어났더라”라고 웃었다.

한송이는 오랜 세월 코트에 살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한송이에게 잊지 못할 힘든 시절은 언제였을까. 한송이는 지금의 소속팀인 KGC인삼공사로 이적한 해인 2017년을 꼽았다. “배구선수로 안 좋았던 시기는 2017년이었다. GS칼텍스에서 KGC인삼공사로 오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스스로도 ‘그만해야 되는 시기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짐을 싸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서남원 감독님께서 ‘우리 팀에서 한 번 해보자’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포지션 변경에 혼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한송이의 본래 포지션은 윙스파이커였으나 GS칼텍스 시절부터 차츰차츰 미들블로커로 출전하는 날이 늘어났다. 한송이는 당시 상황에 대해 “GS칼텍스에서 포지션 변경을 할 때 ‘내가 왜 미들블로커를 해야 되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줄곧 윙스파이커로 뛰었으니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거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라고 토로했다.



그렇게 한송이의 존재감은 희미해져만 갔다. 윙스파이커와 미들블로커를 번갈아 뛰다 보니 어느 한 포지션에서 확실하게 자리잡지 못했다. GS칼텍스에서 KGC인삼공사로 이적 후에는 팀이 2018~2019시즌 19연패에 빠지는 등 힘든 순간이 계속 됐다. 2017년에 이어 또 한 번 은퇴를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한송이는 지금까지 해온 배구를 이대로 놓을 수 없었다.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배구를 팬들에게 보여주고 은퇴를 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이 섰다.

“2018~2019시즌 끝나고도 고민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올 시즌 전에 경기들을 보면 행복해 보이고 웃으며 경기를 했던 게 적었다. 하지만 결심을 했다. 지금 그만두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배구를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올 시즌 끝나고 그만두더라도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팬들이 ‘한송이가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를 만들었다. 그래서 비시즌에 계속 멘탈을 관리했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한송이는 올 시즌 처음으로 미들블로커 자리를 고정받아 출발했다. 비시즌에도 미들블로커 자리에서만 훈련했다. 몇 시즌 전부터 진행해오던 미들블로커와 윙스파이커 병행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됐다. 시간과 마음에 모두 여유가 생겼다. 그는 “지난 시즌까지는 공격 포지션을 모두 소화했기에 리시브, 공격 연습을 모두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들블로커에서만 훈련하니 신경 쓸 부분이 한정적이다. 준비할 시간이 많아졌다”라고 웃었다.

그 결과 한송이는 박은진과 함께 KGC인삼공사 미들블로커진을 든든하게 책임졌다. 리그 블로킹 4위(세트당 0.64개), 속공 7위(38.24%)에 오르며 정통 미들블로커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 주었다. 한송이의 맹활약에 KGC인삼공사 이영택 감독은 ‘배구도사’라는 별명을, 팬들은 ‘회춘(回春) 송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저 감사하다. 감독님이 주관 방송사 인터뷰에서 ‘한송이 선수와 오지영 선수가 팀을 잘 잡아줘서 좋은 경기를 했다’라는 말을 하실 때마다 감사하고, 책임감이 든다. 올 시즌을 치르면서 팬들에게 ‘언니의 플레이를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뛰어주셔서 감사해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플레이가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그런 벅차오르는 감정들이 올 시즌 다시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한송이 역시 올 시즌을 프로 데뷔 후 가장 뜻깊은 시즌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송이는 “올 시즌 전까지는 ‘경기에서 이겨야 된다’라는 압박감이 있었다. 하지만 올 시즌은 ‘정말 행복하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이번 시즌 원하는 성적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경기 준비하는 과정, 훈련 등이 너무 재밌다. 시즌 중간 (서남원) 감독님이 사임한 것은 빼고는 힘들었던 기억이 없다”라고 말했다.

한송이는 KGC인삼공사 선수들의 마음 가짐도 달라졌다고 이야기했다. KGC인삼공사는 올 시즌 전반기만 해도 승(6승)보다 패(9패)가 많았다. 하지만 후반기에 보여준 투지는 대단했다. 시즌을 치르면 치를수록 단단한 모습을 보이며 리그 막판 5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 19연패를 기록하며 패배 의식에 젖어있던 KGC인삼공사 선수들의 모습은 더 이상 상상하기 힘들다.

그는 “선수들이 진짜 많이 밝아졌다. 물론 지난 시즌에도 밝았지만 계속 패하다 보니 코트 위에서는 웃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즐겁게 배구를 하고 있다. 베테랑과 후배들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언니들은 잘 끌어주고, 동생들은 잘 따라와 주니 팀 분위기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웃었다. 한송이는 선수들의 멘탈이 강해진 부분을 지난 시즌과 다른 점으로 뽑았다.


오랜만에 국가대표 승선
라바리니 감독과 첫 만남

한송이에게 또 하나 뜻깊은 일이 있었다. 바로 국가대표 승선이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약 5년 만에 대표팀에 승선해 주목을 받았다. “사실 올 시즌을 치르면서 내가 꿈꿔왔던 목표 중 하나였다. 오랜만에 가서 어색하고 뻘쭘할 줄 알았는데 새로운 부분을 배우고 와 재밌었다.”



한송이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대표팀과 거리가 멀었다. 2016 리우올림픽도 예비 엔트리에는 뽑혔으나 최종 엔트리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이재영, 박정아가 치고 올라오면서 세대교체가 되었다. 한송이가 들어갈 자리는 없어졌다. 한송이는 약 5년 간의 시절을 되돌아봤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이후에는 발목 수술을 하면서 그해 시즌을 접었고, 2016 리우올림픽 때도 예비 엔트리에는 있었지만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해 굉장히 아쉬웠다. 다른 선수들이 뽑히는 걸 보면서 나도 내심 ‘대표팀에서 뛰고 싶다’라는 생각을 매일 했었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예선전에 나서는 여자배구대표팀 미들블로커로 양효진(현대건설), 이주아(흥국생명), 김수지(IBK기업은행)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한송이는 대표팀 승선 소식에 환호를 질렀다. 그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대표팀 승선은 나의 목표였다. 그 약속을 내가 지켜 너무 기뻤다. 물론 많은 나이를 먹고 국가대표팀에 들어가는 부분이 창피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왔기에 보상받은 결과라고 생각한다”라고 웃었다.

그간 한송이는 대표팀에 이름을 올려도 포지션은 윙스파이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들블로커로 이름을 올렸다. 두 포지션에 걸쳐 국가대표를 지낸 선수는 드물다. 한송이에 남다르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두 개의 포지션으로 올림픽을 나가면 대박이다’라고 하더라. 나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한송이는 한국 사상 첫 외국인 감독인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을 뒤늦게 만났다. 라바리니 감독에게 조련을 받은 대표 선수들은 모두 “배구 열정이 뛰어난 분이다”라고 말했다. 한송이도 같은 느낌을 받았을까.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배구 열정이 뛰어나고 하루 종일 배구 생각밖에 안 한다. 약팀이든, 강팀이든 그날 경기에는 그날 경기만 신경을 쓴다.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이다. 또한 라바리니 감독에게 내일은 없다. 오늘만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자만심도 없고, 늘 겸손했다.” 한송이는 라바리니 감독에 대해 칭찬만을 늘어놓았다.

라바리니 감독은 한송이에게 많은 부분을 알려줬다. 정통 미들블로커가 아닌 한송이에게 미들블로커가 가져야 하는 부분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설명했다고 한다. 한송이는 라바리니 감독의 가르침 속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정통 미들블로커가 아니다 보니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라바리니 감독님이 속공 뜨는 타이밍이나 이동 공격 타이밍에 대해 정말 많이 이야기를 해줬다. 또한 리딩 블로킹에 대해서도 배웠다”라고 설명했다.


한송이가 겪은 올림픽 예선전

2020년 1월 5일. 한송이는 오랜만에 대표팀에서 조우한 동료들과 함께 태국 나콘라차시마로 향했다. 많은 국제 대회를 경험한 한송이도 지난 1월 올림픽 아시아예선전은 첫 경기부터 결승전까지 긴장감 속에 살았다. 한송이는 “인천국제공항에서 태국까지 가는 항공 일정도 쉽지 않았고, 예선전 일정도 타이트해 힘들었다”라고 돌아봤다.

당시 대표팀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는 연이은 선수들 부상이었다. 김희진은 종아리, 이재영은 허리, 김연경은 복근 부상 등으로 고생했다. 경기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맹활약을 펼쳤지만 경기장 밖에 나서면 선수들의 부상 정도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만 갔다.

한송이는 “정말 선수들의 부상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나는 많은 출전 시간을 소화하지 않았기에 괜찮았다. 하지만 재영이나, 희진이, 연경이 등 많은 선수들이 부상으로 너무 고생을 했다. 14명이 모두 모여 훈련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제대로 훈련을 소화하지 못한 채 경기에 나서는 데 젊은 선수들이 너무 안쓰러웠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모든 선수들은 부상 투혼을 발휘했다. 한국은 아시아예선전에서 전승을 기록하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도 개최국 태국을 3-0으로 물리치며 3회 연속 올림픽 진출권을 따냈다. 진통제 투혼을 보인 김연경을 포함해 모든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도쿄올림픽 본선진출 목표를 이뤘고, 선수들은 환호했다.

“올림픽 티켓을 따는 그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는 끝나고 울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 선수들 모두가 함께 따낸 올림픽 티켓이다.”

이번 아시아예선전을 치르면서 한송이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바로 2020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승선이다. 만약 대표팀에 뽑힌다면 한송이는 2012 런던올림픽의 아쉬움을 떨쳐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당시 한국은 1976 몬트리올올림픽 이후 36년 만에 4강에 올랐으나 일본과 3-4위전에서 석패하며 4위에 머물렀다. 이는 한송이의 가슴 한편에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는 “올림픽 출전이라는 목표가 없었다면 태국에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올림픽의 꿈, 메달의 꿈이 있다. 연경이, (양)효진이, (김)해란이, (김)희진이도 런던올림픽 때 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그때는 준비가 안 됐고, 최선을 다했지만 메달을 딸만큼의 그릇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아쉬움이 정말 많이 남았다. 누군가 나에게 ‘배구 인생 통틀어 꿈꾸고 있는 목표와 꿈은 뭔가요’라고 물어보면 항상 ‘올림픽 메달이에요’라고 말한다. 2020 도쿄올림픽에 나가고, 메달까지 딴다면 ‘송이야, 큰일 했구나’라고 나에게 칭찬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한유미 #김연경 그리고 #이효희
한송이가 전하는 고마움

한송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언니인 한유미 KBSN스포츠 해설위원일 것이다. 한유미 해설위원 역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구 스타였다. 한송이보다 2년 일찍 슈퍼리그에 데뷔했고, 슈퍼리그 시절 현대건설의 5연패를 이끌었다. 한송이도 한유미를 바라보며 배구의 꿈을 키웠고, 언니처럼 되고 싶었다. 한송이는 “배구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했는데, 언니 때문에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언니가 걸어왔던 길을 나도 그대로 따라갔다. 지금도 언니처럼 배구 인생을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라고 밝혔다.

이전에도 언니의 존재가 힘은 됐지만, 해설위원을 맡은 뒤에는 더욱 크게 언니의 존재감을 느끼고 있다. 여전히 한송이가 배구를 잘 할 수 있는 원동력에는 한유미 해설위원의 영향이 크다. “지금도 힘들면 언니와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는다. 아무래도 언니는 해설위원을 하면서 경기 전체적인 부분을 보다 보니 나에게 피드백을 해줄 수 있다. 언니도 나의 플레이를 보고 ‘오늘은 이 부분이 안 된 것 같아, 이 부분을 더 열심히 해야 된다’라고 계속 이야기를 해준다. 사실 서로 물어보지 않으면 배구 이야기를 잘 안 한다.”

한송이는 두 자매가 서로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는 “자매지만 성격은 완전 다르다. 나는 신중한 스타일이다. 낯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인 성격이다. 반면에 언니는 붙임성이 좋다. 활발하고, 선수들과도 두루두루 잘 지낸다. 얼굴만 봐도 밝은 성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두 자매가 힘든 운동 선수 길을 택해 부모님의 걱정도 있었을 법하다. 하지만 부모님은 두 자매가 배구 선수로 날개를 펼 수 있도록 응원해줬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다. 아버지께서 워낙 배구를 좋아해서 언니와 나 모두 운동을 시키고 싶어 하셨다. 물론 둘 다 할 줄은 몰랐겠지만 ‘그만두라’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부모님이 잘 지원해 주셨기에 나와 언니 모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한유미 해설위원 말고도 또 떠오르는 선수는 바로 ‘배구여제’ 김연경이다. 위에서 살짝 말했듯이 한송이와 김연경은 대표팀에서 오랜시간 호흡을 맞췄다. 또한 김연경의 프로 데뷔 팀인 흥국생명에서도 한솥밥을 먹은 바 있다. 한송이가 기억하는 김연경의 프로 데뷔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한송이는 “(김)연경이는 꼴통이었다”라고 웃은 뒤 “예전에 흥국생명에서도 같이 뛰었는데 쾌활하고 장난기 많은 소년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아까도 말했지만 연경이는 정말 대단한 선수다. 언니들이 많아도 팀에서 자신이 해야 될 몫을 다하는 리더의 모습이 데뷔 시절부터 보였다. 경기에서 실수를 해도 주눅 들지 않는다. 동생이지만 경기하는 걸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라고 말했다.

같은 소속팀에서 시작해 대표팀까지 인연을 이어온 김연경과 한송이. 이 둘은 이번 아시아예선전을 통해 약 5년 만에 재회했다. “연경이가 나를 보고 딱 한 말이 ‘언니도 정말 배구 오래 한다’였다”라며 “연경이는 어릴 때도 팀을 이끄는 선수였는데 지금은 진짜 리더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다그칠 때는 다그칠 줄 안다. 그러면서 동료들에게 파이팅도 넣어주고, 코트 위에서 열정을 갖고 뛰니 후배들이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대표팀에 헌신하는 멋있는 선수고, 후배 친구들에게 귀감이 된다.”

한송이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배구를 하면서 가장 고마웠던 사람은 누구냐’라고. 한송이는 한국도로공사에서 뛰고 있는 이효희의 이름을 언급했다. 두 선수는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흥국생명에서 한솥밥을 먹었고, 국가대표에서도 호흡을 맞췄다. 한송이는 “효희 언니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물론 (이)숙자 언니, (정)지윤 언니도 같이 뛰고 있을 때 많은 도움을 줘서 고맙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효희 언니는 나에게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해준다. 나도 그 진심을 크게 느끼고 있다. 힘들 때 기대기도 하고, 주제넘게 내가 언니에게 피드백을 드리곤 한다. 힘들 때 항상 찾는 고마운 사람이 효희 언니다. 지금도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에서 뛰고 있는데 대단한 언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한송이는 같이 뛰고 있는 KGC인삼공사 선수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다시 한번 KGC인삼공사로, 한송이의 미래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시점에 KGC인삼공사(승점 36점 13승 13패)는 리그 4위였고 결국 그대로 시즌이 끝났다. 3위 흥국생명(승점 48점 14승 13패)과 승점차는 12점차였다. 시즌이 계속됐더라도 뒤집기는 쉽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한송이를 비롯한 KGC인삼공사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고 숙소에서 맹훈련을 반복했다. 한송이는 “가능성이 0.001%밖에 안 되는 건 알고 있지만 기적을 만들고 싶다. 선수들과 플레이오프에 가고 싶다. 또한 리그 BEST7에도 이름을 올리고 싶다”라고 희망한 바 있다. 그의 바람대로 베스트7에는 이름을 올렸다.

한송이는 동고동락하는 팀원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송이는 선수들이 밝게 플레이하면서도 자신을 향해 한계점을 두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 말에는 자신은 어릴 적 신나는 배구를 못했기에 후배들만큼은 신나게 배구를 했으면 한다는 한송이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KGC인삼공사 선수단은 정말 다 열심히 하고, 능력이 많은 선수들이다. 그런데 그 능력을 코트 위에서 다 보여주지 못해 너무 아쉽다. 착하고, 배구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런 부분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는 이어 “선수들에게 가끔 진지한 이야기를 한다. ‘너 스스로 한계점을 두지 마라’, ‘키가 작아서, 배구를 늦게 시작해서, 나이가 많아서라는 핑계를 두지 마라’라고 이야기를 한다. 충분히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친구들이기에 한계점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어릴 때 배구를 즐겁게 하지 못했는데 우리 팀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구를 신나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한송이는 지난해 11월 27일 IBK기업은행전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자신의 배구 인생을 5세트 10점으로 비유한 적이 있다. 당시 한송이는 “아마 당장 은퇴해도 이상할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5점은 예쁘게 잘 마무리 짓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난 2월 12일 IBK기업은행전이 끝난 뒤에는 “요즘 5세트도 25점까지 하더라”라며 여전히 자신의 배구 인생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지금 이 시점에서 한송이는 자신의 배구 인생 종점을 언제쯤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사실 지난 시즌까지는 금방 은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올 시즌을 뛰다 보니 아직 팬들에게 보여줄 게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 보여주고 은퇴를 해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1년 뒤, 2년 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아직 팬들에게 보여줄 게 있다.”

어느덧 한송이와 길고 길었던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송이는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더스파이크>와 첫 인터뷰를 가진다고 말했다. 표지 인터뷰도 처음이지만 본지와 대면하는 인터뷰도 처음이라고 밝혔다.

한송이는 “사실 <더스파이크>와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국가대표 승선처럼 <더스파이크> 표지 인터뷰 역시 내가 가지고 있는 꿈 중에 하나였다. 인터뷰를 한다고 구단 측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 옷도 오산에 있는 본가에서 택배로 보내주고, 화장도 6개월 만에 했는데 사진이 잘 나올지 모르겠다. 남자친구는 긴장하지 말라고 했는데 정말 긴장이 많이 됐다”라고 웃었다. 이어 “은퇴하기 전에 표지 인터뷰를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라고 희망했다.

한송이는 특별한 꿈을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까지 자신과 배구 인생을 동고동락한 선수들과 본지 표지 인터뷰를 장식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선수들과 <더스파이크> 인터뷰를 한 번 같이 하고 싶어요. 김연경, 김해란, 양효진, 김수지, 저까지. 5명이서 한 번 같이 찍고 싶어요. 아시아예선전 끝나고도 함께 찍은 사진이 있는데 그런 사진들을 보며 서로 말해요. ‘우리에게도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라고요. 각자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더스파이크> 표지 인터뷰를 한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아요. 아, 도쿄올림픽 메달까지 걸고 찍으면 더욱 좋고요.”

그렇게 한송이는 자신의 꿈을 하나하나씩 이뤄갈 날을 생각하며 오늘도 훈련장에서 배구를 놓지 않고 있다. 한송이는 자신을 지금껏 있게 해준 팬들을 향해 고마움을 표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싶어요. 팬들 덕분에 제가 힘을 낼 수 있었고, 배구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테니까 많이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팬들이 저를 통해 행복한 감정을 느끼듯이, 저도 팬들에게 행복한 존재가 되도록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아, 코로나19 조심하시고 다시 경기장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뵙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한송이가 말하는 특별한 사람
남자친구 배우 조동혁

한송이와 조동혁은 지난 2016년 3월 방송된 KBS2 TV 예능프로그램 ‘우리동네 예체능’ 배구편을 통해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17년 5월 연인 사이를 공식 인정하며 스포츠스타-배우 커플의 계보를 이었다. 조동혁은 지난 1월 23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KGC인삼공사와 현대건설전에서 한송이를 응원하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한송이가 말하는 조동혁의 첫 인상은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처음 만났는데 겉모습은 정말 차가워 보였어요. 하지만 알고 지내면 지낼수록 마음이 따뜻하고 성품이 착하다는 걸 알았죠. 사귀고 나서도 제가 힘들 때마다 많은 조언을 해주고 옆에 있어줘서 든든하죠. ‘송이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이런 식으로 많은 이야기를 꺼내줘요. 오늘도 인터뷰 있다고 했는데 잘 하고 오라고 응원해 줬고요.

한송이가 조동혁에게 전하는 한 마디
4년 동안 만나면서 크게 싸운 적이 없네요. 서로 맞춰주려고 노력하고, 힘들 때나 좋을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줘서 고마워요.


한송이 프로필
생년월일 1984. 09. 05
소속 KGC인삼공사
신장/체중 186cm/64kg
포지션 미들블로커/윙스파이커
출신교 성호초-수일여중-한일전산여고(현 한봄고)
프로입단 2002년 한국도로공사 입단
주요경력
2002~2008 한국도로공사
2008~2011 흥국생명
2011~2017 GS칼텍스
2017~ KGC인삼공사
2003 슈퍼리그 신인상
2007~2008 득점상
2004 아테네올림픽 국가대표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국가대표(은메달)
2012 런던올림픽 국가대표(4위)
2014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금메달)
2020 올림픽 아시아예선 국가대표


글/ 이정원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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