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커지는 서브의 의미
현대 배구에서는 갈수록 서브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과거 상대 코트 쪽으로 서브를 집어넣는 ‘서비스’ 개념을 벗어나 이제는 강력한 선제공격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배구는 확률의 싸움이다. 세 명의 블로커는 상대가 어떤 공격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최대한 빠르게 파악해서 쫓아가야 한다. 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결국 사람의 움직임은 공보다 빠를 수 없기 때문에 ‘예측’이 필요하다. 이 예측을 흔들려면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더 많은, 다양한 공격 코스를 활용해야 한다.
막는 입장에서는 어떨까. 세 명의 블로커가 아무리 뛰어나도 확률 싸움에서 상대에게 밀리면 실점하게 된다. 그러나 좌우, 그리고 중앙. 상대 로테이션에 따라서는 중앙 후위, 그리고 각종 시간차 공격까지, 막아야 할 것은 너무나 많다.
이를 줄이는 방법이 ‘서브’다. 강한 서브로 리시브를 흔들어놓으면 상대는 세트플레이 운용이 어려워진다. 상대 공격수에게 강한 서브가 들어가면 그 공격수는 자세가 무너지면서 곧바로 공격에 가담하기 힘들다. 여기에 리시브가 세터 머리 위로 가지 않았다면 세터 역시 세트플레이를 정확하게 펼치기 어려워진다. 좌우 큰 공격수를 활용한 오픈 공격을 선택한다면? 막는 입장에서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오픈 공격은 다른 패턴 플레이나 퀵오픈 공격에 비해 대비할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블로킹 득점이 쉽게 나올 수 있고 유효블로킹에 걸리면서 반격 찬스로 이어갈 수 있다.
이것은 간단하게 정리한 ‘서브의 중요성’이 되겠다. 결과적으로 약한 서브는 상대 여러 공격수를 고루 살리는 셈이 된다. 블로킹을 잡는 데에도 어려움이 커진다.
이렇게 서브가 중요해짐에 따라 자연스레 ‘원 포인트 서버(One point server)’도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코트에 오를 기회가 없던 신인 선수들에게 이 역할이 주어졌지만 최근에는 전문 서브 스페셜리스트를 두는 팀도 생기는 추세다. 물론 선수 입장에서는 좀 더 코트에 오르고 싶겠지만 팀 입장에서는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 이만한 카드가 없다. 플레이 자체는 그리 많지 않지만 그 임팩트는 여느 선수들 못지않은 것이 원 포인트 서버다.
‘원 포인트 서버’란?
원 포인트 서버란 우리 팀 서브 기회 때 교체 투입돼 서브를 대신 넣는 선수를 의미한다. 우리 팀이 추격 기회를 잡았을 때, 혹은 상대 상승세를 막아야 할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투입될 수 있다. 원 포인트 서버는 포지션을 의미하진 않는다. 어떤 선수를 대신해 서브를 넣는 선수들을 모두 원 포인트 서버로 부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원 포인트 서버는 미들블로커 서브 타이밍에 자주 나선다. 서브를 넣어야 한다는 뜻은 곧 후위에 선수가 있다는 의미다. 미들블로커는 주로 전위에서 속공과 블로킹을 하는 선수. 후위에 오게 되면 리베로와 자리를 교체한다. 그러나 서브 타이밍에는 리베로와 교체할 수 없다. 본인이 서브를 넣고 후위 수비가담을 해야 한다.
아무래도 포지션 특성상 미들블로커들은 후위 수비에 약하다. 장신 선수들이 많아 순발력이 느리고 많이 받을 기회가 적어 능력도 떨어진다. 그렇기에 미들블로커 서브 때 보다 강한 서브도 노리고, 후위 수비도 보강한다는 의미로 원 포인트 서버를 기용하는 것이다.
남자부의 경우는 서브가 좋은 선수들이 우선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강한 서브를 때리는 선수가 적은 여자부는 서브보다는 주로 수비 보강 쪽에 의미를 두고 원 포인트 서버를 기용한다.
원 포인트 서버에게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브가 강해야 한다. 여기서 강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힘이 실린 공격일 수도 있고, 날카로운 코스를 공략하는 서브일 수도 있다. 혹은 움직임이 심해 쉽게 받지 못하는 플로터 서브도 강한 서브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범실이 없어야 한다. 원 포인트 서버는 대부분 세트 후반, 중요한 순간 코트 위에 오른다. 서브가 약한 선수를 대신해 출전하는 것이기에 범실은 절대 금물이다. 원 포인트 서버가 들어올 경우,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모두 ‘좋은 서브’가 나오길 기대한다. 범실은 그 기대를 무너뜨려 자칫 경기 분위기를 역으로 더 가라앉게 할 수 있다.
단 한 플레이지만 원 포인트 서버가 갖는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언제 투입될지 모르기에 경기 내내 긴장해야 하고, 투입되고 나서는 최고의 서브를 넣어야 한다. 다른 것으로 만회할 수 있는 코트 위 선수들과는 달리 원 포인트 서버는 서브 하나로 모든 걸 보여줘야 한다(후위에서 수비 가담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서브 쪽에 무게가 실린다).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보여주고픈 프로 선수들 입장에서 서브 하나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은 부담이다. 자칫 서브에서 실수가 나게 되면 본인의 배구실력 전체를 서브 하나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원 포인트 서버는 ① 범실을 하지 않고 ② 강하게 서브를 넣어야 한다. 간단한 한 줄이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해내기 쉽지 않은 일이다. 전문 원 포인트 서버들이 듣는다면 ‘너무 쉽게 말하는 것 아니냐’라고 핀잔을 들을 지도 모르겠다.
리그 최고 원 포인트 서버는?
올 시즌을 빛낸 원 포인트 서버는 누가 있을지 함께 살펴보자. 남자부에서는 단연 이 선수, 현대캐피탈 이시우를 꼽을 수 있다. 이시우는 4라운드까지 모든 경기에 출전해 원 포인트 서버로 활약했다.
(모든 기록은 2월 22일 기준)
이시우 - 범실 적은 스페셜리스트
서브 시도 156회│득점 18│범실 27│세트 당 0.175개 득점
서브 1득점 당 범실 1.5개
(올 시즌 이시우 서브득점 분포)
이 선수만큼 ‘원 포인트 서버’에 어울리는 선수가 있을까. 강하고 범실이 적은 서브로 팀 분위기를 단번에 가져올 수 있는 선수다. 데뷔 시즌부터 지금까지 쭉 현대캐피탈 원 포인트 서버로 활약 중인 이시우는 믿고 내세울 수 있는 최강의 조커 카드다.
이시우의 가장 큰 장점은 강한 서브를 때리면서도 범실이 적다는 것이다. 이시우는 통산 42서브득점을 기록했는데, 범실은 78개 수준이다. 서브 1득점 당 범실이 1.86개로 낮은 편이다.
코트 플레이어가 아닌 원 포인트로 나선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는 굉장히 좋은 기록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올 시즌은 본인의 서브 커리어 하이를 달리고 있어 더욱 뛰어나다. 데뷔 첫 해인 2016~2017시즌은 13서브득점(세트 당 0.115개, 범실 28개), 2017~2018시즌에도 13서브득점(세트 당 0.111개, 범실 29개)을 기록했다. 아직 두 라운드가 남았지만 벌써 서브 최다득점을 경신했다.
서브 하나만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될 정도로 장점이 확실한 서브를 갖고 있다. 주로 코트 오른쪽에서 뛰어 상대 왼쪽 코트를 노리는 직선 서브를 구사한다. 드라이브를 강하게 거는 타법으로 공이 살아서 오다가 확 감기며 떨어진다. 공에 실린 힘이 좋아 네트를 맞고 코트 앞쪽에 떨어져 득점이 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주로 좌측 후위 코트에 공이 떨어진다. 라인 근처를 향해 가는 공이 많아 리시버 입장에서는 까다롭다.
최현규 - 예측불허 정확한 서브
남자부 신예 중에서 또 한 명을 꼽자면 이 선수, 우리카드 최현규다. 4라운드 6순위로 팀에 합류한 최현규는 올 시즌 원 포인트 서버로 나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서브 시도 108회│득점 10│범실 21│세트 당 0.099개 득점
서브 1득점 당 범실 2.1개
(올 시즌 최현규 서브득점 분포)
이시우 서브가 파워 넘치는 폭발력을 가졌다면 최현규는 정확함이 무기다. 팀이 원하는 코스로, 주문한 것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날카로운 서브를 가졌다. 임팩트 순간 회전을 강하게 걸어 서브에 묵직함을 더한다.
무엇보다 네트 상단을 아주 살짝 넘어가는 예리함이 일품이다. 일반적으로 서브는 네트를 낮게 통과할수록 위력적이다. 그래야 코트 안쪽에 떨어질 확률이 높고 리시버가 공이 오는 코스를 읽기 어려워진다. 이런 서브는 득점이 나지 않더라도 상대 리시브를 크게 흔드는 효과가 있다.
최현규는 프로 무대에 적응하면서 서브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시즌 초, 그러니까 1, 2라운드와 비교해 3, 4라운드 서브 성적이 훨씬 좋다
1~2라운드 11경기 28세트, 득점 2, 범실 8, 시도 41, 세트 당 0.071개
3~4라운드 12경기 47세트, 득점 5, 범실 7, 시도 67, 세트 당 0.106개
5라운드는 세트 당 0.176개 서브득점으로 더 위력적이었다. 올 시즌이 프로 첫 해인 점을 고려해볼 때 최근 페이스는 놀라운 수준이다.
이예솔 - KGC인삼공사 비밀병기
여자부에서는 KGC인삼공사 이예솔을 꼽았다. 이예솔은 부상으로 시즌 초 뛰지 못했지만 이후 팀에 합류해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팀 에이스 알레나가 부상으로 빠진 사이 원 포인트 서버가 아닌 코트 플레이어로 나선 경기가 더 많았지만 강력한 서브도 갖춰 주목 대상이 됐다.
또 다른 이유라면 서남원 KGC인삼공사 감독이 시즌 시작부터 꾸준히 “우리 팀 비밀병기는 이예솔이다. 원 포인트 서버로 적극 활용하려 했지만 부상으로 아쉽게 됐다”라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4라운드 마지막 경기서 알레나가 복귀해 자리를 내줬지만 서남원 감독이 아끼는 선수인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출전기회를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서브 시도 99회│득점 9│범실 14│세트 당 0.237개 득점
서브 1득점 당 범실 1.56개
(올 시즌 이예솔 서브득점 분포)
이미 선명여고 재학 시절부터 서브로 이름을 날렸던 이예솔이다. 고교 무대에서는 그야말로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오죽하면 팀 동료들이 “이예솔 서브가 우리 팀 가장 큰 무기”라고 말할 정도였다.
왼손잡이인 까닭에 오른손잡이들과는 반대 궤적으로 서브가 들어온다. 여기에 강하게 힘을 실은 스파이크 서브는 여자 선수들에게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서브다. 김사니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이예솔 서브를 보고 “알레나가 들어와도 원 포인트 서버로 계속 나설 선수”라고 칭찬했다.
아직까지 팀이 연패를 끊지 못해 힘든 상황이지만 이예솔 활약은 긍정적이다.
mini INTERVIEW
‘최강 조커’ 현대캐피탈 이시우
원 포인트 서버도 하나의 롤(role)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 데뷔 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3년차 원 포인트 서버로 활약하고 있는 현대캐피탈 이시우에게 간단한 원 포인트 서버 이야기를 들었다.
Q. 세 시즌 째 원 포인트 서버를 하고 있는데요.
지난 시즌은 서브로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에 조금 떨어졌는데요, 올 시즌은 부담을 조금 내려놔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습니다. 확실히 올 시즌 서브가 잘 들어가는 기분이에요.
Q. 원 포인트 서버로 뛰는 고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데뷔 시즌에는 그저 들어가는 게 즐거웠는데요, 이제 3년차쯤 되고 하니 다른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서브를 노리고 들어가는 만큼 서브 하나만큼은 잘 들어가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요.
Q. 늘 어려운 상황에 들어오니 그 부분도 힘들겠어요.
오히려 쫓아가야하는 상황일 때는 부담이 적어요. 반면에 차이가 크게 나면서 이기고 있을 때 더 부담인 것 같아요. 다른 형들이 잘 하고 있던 걸 제가 실수해서 무너뜨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Q. 서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정확함이 가장 중요해요. 제 서브가 아무리 강하게 친들 다른 외국인선수처럼 들어가는 건 아니니까요. 특히 원 포인트로 들어가는 만큼 범실이 나면 안 돼요.
Q. 서브 영감을 얻는 선수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KB손해보험 황두연 선수를 보고 많이 배워요. 공에 임팩트를 넣는 타이밍이 굉장히 일정해요. 기술도 좋아서 다양한 코스를 노리는 게 대단해요. 보통 서브 토스와 임팩트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힘든데 황두연 선수는 그 부분 흔들림이 없더라고요. 그런 점은 많이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Q. 본인의 역할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려요.
저는 리그 내 원 포인트 서버 중 가장 서브가 좋은 선수라고 자부해요(웃음). 서브는 지금처럼 하면 좋을 것 같고 기회가 된다면 윙스파이커로 들어가서 리시브, 공격에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글/ 이광준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서브득점 위치 자료/ KOVO 제공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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