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로의 역할부터 살아가는 법까지' [리베로 집중탐구]

서영욱 / 기사승인 : 2019-02-22 02: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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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로는 배구 경기를 처음 보는 사람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포지션이다. 같은 팀 선수임에도 혼자 다른 색 유니폼을 입기 때문이다. 팀 동료 선수보다 신장도 작아 더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리시브와 디그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수비의 핵심 리베로를 언급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한눈에 봐도 눈에 띄고 익숙해진 리베로. 리베로를 향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전·현직 리베로와 해설위원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리베로가 어떤 포지션인가요?






리베로 어원은 자유 그러나 플레이 제약 많은 포지션



‘리베로(Libero)’는 이탈리아어로 ‘자유’를 뜻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베로란 포지션은 어원이 가진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국제배구연맹(FIVB)에 명시된 2017~2020년 규정을 보더라도 리베로는 플레이와 관련된 제약이 상당히 많다.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 리베로만이 규정집에 별도 항목이 존재한다는 것부터 범상치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그중에서 ‘19.3 리베로에 관련한 행동’ 항목에서 리베로와 직접 연관이 되는 것만 추려본다면, 우선 볼이 네트 상단보다 위에 있는 경우(경기 코트 및 자유지역 포함) 어느 곳에서든 공격을 완료할 수 없다. 당연히 서브나 블로킹, 블로킹 시도도 할 수 없다. 리베로가 전위 지역에서 오버핸드 패스로 올린 볼은 네트 상단보다 높은 위치에서 공격을 완료할 수 없다. 전위 지역 외에서는 같은 행동을 했을 때 공격이 가능하다. 플레이와 관련한 요소 외에도 팀에서 주장을 맡을 수 없다는 또 다른 제약이 있다. 아무리 봐도 어원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리베로에게 주어진 자유는 교체 횟수에 제한이 없다는 것 정도이다. 본래 배구에서 한 세트 한 팀이 시도할 수 있는 교체는 6번이다. 하지만 리베로는 이 횟수에 구애받지 않고 후위에 있는 선수와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로테이션상 후위로 오는 미들블로커가 서브를 날리고 서브권이 넘어갈 때 해당 미들블로커와 교체하지만, 규정상으로는 후위에 있는 모든 선수와 교체될 수 있다.



리베로는 역사도 짧은 편이다. 소개하는 곳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FIVB에 의해 1997년 월드리그(現 발리볼네이션스리그)에서 소개돼 1998년 국제적으로 퍼졌다는 게 정설이다. 이제 20년이 조금 넘은 셈이니 FIVB가 창설된 게 1947년이고 최초의 배구가 태생한 게 1890년대 후반이니 상대적으로 짧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장소연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리베로의 도입이 여자배구 특유의 긴 랠리를 만드는 데 일조해 여자배구만의 매력을 구축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을 냈다. 키가 작은 선수도 배구선수로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일종의 전문 직업인의 길을 제공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장 위원은 장신에 움직임이 많았던 미들블로커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면서 선수 생활을 전반적으로 늘였다는 의견도 함께 밝혔다.



리베로 역사는 짧아도 한국 배구를 대표하는 리베로 계보는 존재한다. 남자배구의 경우, 원조 리베로이자 월드 클래스로 불린 이호 前감독이 첫 번째로 꼽힌다. 그 뒤를 여전히 현역으로 맹활약 중인 여오현(현대캐피탈)이 잇고 있다. 여오현은 V-리그 10주년 올스타에도 선정됐다. 여자배구에서는 구기란과 김해란을 들 수 있다. 특히 V-리그 10주년 올스타에 선정된 김해란은 여전히 녹슬지 않은 순발력을 선보이며 매 경기 디그로 하이라이트 필름을 장식 중이다. 장 위원은 “김해란은 순발력과 위치선정, 특히 순발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라고 극찬했다.





리베로, 코트 위 야전사령관

리베로는 코트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까? 수비 전문 선수인 만큼 당연히 리시브부터 디그까지 수비에 모든 걸 쏟아붓는다. 다른 선수들이 놓치는 볼이나 빈 공간으로 오는 볼도 몸을 날려 막아내야 하는 게 리베로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전·현직 리베로와 해설위원들은 리베로에게 코트 전반적인 상황을 읽고 지휘할 수 있는 ‘야전사령관’ 역할을 주문했다.



여오현은 “후위에서 전체적인 조율을 많이 한다. 세터가 볼 배분을 담당한다면 리베로는 리시브 라인 위치선정 관련해 윙스파이커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상대 서브 특징이나 코스에 따라 위치를 조율하고 리베로가 넓은 범위를 잡고 들어간다. 수비 과정에서도 미들블로커와 말을 많이 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2017~2018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치고 IBK기업은행 코치로 활동 중인 남지연 코치 역시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상대 공격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플레이를 할지, 선수마다 자주 쓰는 플레이를 비디오 분석을 통해 많이 확인한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선수들에게 상황마다 가능성이 큰 플레이를 설명하고 수비 위치를 조정한다. 야전사령관 느낌으로 보면 된다.” 한국도로공사 임명옥은 인터넷 라이브 방송에서 공격수가 볼을 처리하려 할 때 상대 블로커와 수비 위치를 보고 순간적으로 뒤에서 어떻게 처리하라고 외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단순 수비 이상의 역할을 맡는 셈이다.



리베로란 포지션은 이같은 역할을 자연스럽게 맡게 한다. 이세호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기본적으로 능력 있는 리베로는 시야가 넓다. 게다가 다른 포지션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공격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리베로의 능력과 관련 경험의 축적도 강조했다. 이 위원은 “경기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고 상대 플레이까지 잡아낼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능력도 좋고 경력도 어느 정도 쌓인 베테랑이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막 주전으로 투입된 신인급 선수들은 본인 수비 위치를 잡는 것만 해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이럴 때는 비단 리베로가 아니더라도 팀을 전반적으로 지휘할 역량이 되는 다른 선수가 지휘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장 위원은 색다른 시각을 내놓았다. 최근 여자배구의 경우, 주전 세터 나이가 젊어지면서 상대적으로 리베로의 경기 운영 기여도가 올라갔다는 게 그의 시각이었다. “V-리그 여자부의 경우, 최근 팀을 이끄는 세터들이 상대적으로 젊어졌다. 예전에는 세터가 완전한 야전사령관으로 상황마다 지휘하고 팀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이런 역할을 완전히 할 수 있을 만큼 경력이 오래된 세터가 이효희 정도다. 그래서 후위에서 경험이 많은 리베로가 선수 위치를 잡아주고 범위를 설정하기도 한다.”



이런 전반적인 경기 운영 외에도 여오현과 남지연 코치 모두 세터 다음으로 많은 세트를 시도해야 하기에 정확한 이단 연결, 팀에 파이팅을 불어넣고 분위기를 반전하는 역할을 강조했다. 경기 중에는 OK저축은행 부용찬이 이런 행동이 두드러지게 자주 보이는 편이다.


여오현&남지연이 말하는 좋은 리베로의 조건







위의 내용처럼 경기 중에 많은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리베로. 그렇다면 좋은 리베로가 되기 위한 조건에는 어떤 게 있을까?



여오현은 수비에서 빠르게 반응하는데 필요한 순발력을 위해 튼튼한 하체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장은 너무 크지 않고, 어느 정도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 하체 힘이 좋아야 순발력도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체가 튼실한 리베로가 좋지 않나 싶다. 훈련 중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체 위주로 많이 한다. 물론 강한 공을 버티려면 팔에 힘도 좋아야 하니까 상체 운동도 한다. 하체와 상체 비중을 나누면 대략 6:4 정도 되는 것 같다.”



남지연 코치는 “예전에는 하체가 튼튼하고 무게 중심이 낮으면 좋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임명옥, 김해란을 보면 다리가 길어도 볼을 다루는 센스나 기본기만 좋다면 괜찮은 것 같다”라며 약간은 다른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순발력과 위치선정 능력은 기본이었다. 이는 기사 작성과정에서 자문을 얻은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말한 부분이었다. 장소연 해설위원은 “수비에서 보는 길이 있다. 우리 블로커가 두 명이 뛴다고 했을 때 비는 공간이 생기는데, 이걸 빨리 잡아내서 가는 위치선정이 좋아야 한다. 순간적으로 역동작에 걸렸다가도 반응할 수 있는 순발력도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장 위원은 이에 더해 팔에 타고난 감각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 리시브 부문 1위, 3위에 오른 오지영과 임명옥을 예로 들며 “두 선수는 리시브에서 중요한 팔 감각을 타고난 선수들이다”라고 설명했다. 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 역시 “리시브를 잘할 수 있는 팔 감각은 연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타고나는 영역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위원은 위치선정과 관련해 이호와 여오현 모두 학창시절에는 공격수였다는 점, 2018년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브라질 주전 리베로로 출전한 무릴로 엔드레스도 본래 뛰어난 윙스파이커였다가 선수 말년에 리베로로 전향했다는 걸 예로 들며 중·고등학생 시절까지 공격수로 뛴 선수가 더 유리하다고 전했다. “리베로에게 중요한 건 볼의 위치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다. 이호나 여오현 모두 본래 좋은 공격수였다. 두 선수 모두 볼을 잘 때렸다. 그래서 상대 공격수가 어디로 볼을 때릴지 좀 더 빨리 머릿속에 그리고 위치를 찾아가는 것이다. 먼저 예측하지 못하고 소리가 나고 반응하면 늦을 수밖에 없다. 특히 남자배구는 볼 스피드가 빨라 못 쫓아갈 가능성이 크다.”






경험에서 오는 노하우도 있지만 철저한 사전 분석도 필수다. 경기를 앞두고 철저한 비디오 분석을 통해 상대 주 공격수의 공격 코스와 서브 특징, 세터의 버릇까지 익히고 들어가야 경기에서 수월한 대처가 가능하다.



남지연 코치는 “나는 선수 시절 막판에 순발력이 좋은 리베로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머리를 더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를 더 유심히 관찰하고 흐름을 챙겼다. 그래서 더 여유를 가지고 경기를 준비하고 다른 선수들한테도 조언할 수 있었다”라고 과거 경험에 비추어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강조한 건 정신력이었다. 수비 전문 선수이기에 특히 리시브에서 불안함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경기력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리시브는 배구에서 선수에게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만큼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계속 잘하다가도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축구의 골키퍼와 닮은 점이 있다. 공격으로 만회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오현은 후배 리베로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냐는 질문에 “프로까지 온 선수가 기본적인 자세를 모르는 경우는 없다. 내가 봤을 때 경기 중 흔들리는 건 자신감 문제가 크다. 그래도 자신감이 많은 상태에서는 실수해도 만회할 수 있는데,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실수하면 더 위축되고 자기 실력도 못 보여준다”라고 답했다. 그만큼 강한 정신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남지연 코치도 같은 의견이었다. “우리끼리 하는 말로 리베로는 잘해도 혼나고, 못해도 혼나는 포지션이라고 한다. 계속 볼을 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 이걸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더불어 자기 포지션에 대한 자부심도 있어야 한다. 리베로는 공격수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감당해야 할 몫은 많다. 여기에서 오는 회의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 감내하고 경력이 쌓여 베테랑 리베로가 된다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면 좋겠다.”



이 위원은 특히 최근 점점 강해지는 서브 때문에라도 이른바 ‘멘탈’이 더 중요해졌다고 덧붙였다. “정지된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빠르게 상대 서브가 날아오는 건 심적으로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멘탈이 강해야 한다. 위축되지 않고 ‘내가 저걸 잡겠다’라는 생각으로 미리 준비하는 선수가 잘할 수밖에 없다.”


V-리그 속 리베로의 위상과 팀 성적


그렇다면 이토록 특수한 상황에 둘러싸인 리베로는 V-리그에서 얼마나 중요성을 가지고 있을까? 우선 ‘수비 전문 선수’라는 타이틀이 붙은 포지션답게 수비부터 시작하는 팀의 전반적인 안정감과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배구는 공격을 위해서는 상대 서브를 받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받는 것부터 흔들리면 당연히 이후 연결 과정이 매끄러울 수 없고 세터에게 한정적인 옵션만 주어진다. 당연히 블로커는 선택지가 좁혀지니 예측이 쉬워진다. 최근 세계 남자배구에서 강서브에 이어 이를 효과적으로 막아낼 블로커, 특히 이를 주도하는 미들블로커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서브 위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남자부에서 이 현상이 특히 두드러진다. 여오현 역시 위와 같은 이유를 덧붙여 최근 리베로 중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워낙 서브가 강하게 들어온다. 동시에 이를 받기 위해 들어오는 리베로 비중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이 위원 역시 강서브 빈도 상승과 리베로 영향력 상승은 함께 간다는 의견을 더했다. “배구는 일단 받고 연결이 되어야 한다. 그 이후 세터가 상대를 속여 공격수가 적은 블로커를 만나게 해야 한다. 이런 세트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역시 리시브 이후 세터로 넘어가는 과정이 매끄러울수록 좋다. 아무리 서브가 강하게 들어와도 손도 못 대고 당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커버하고 연결해주는 게 최근에는 더 중요해졌다.”






장 위원은 리베로에 한정된 내용은 아니었지만 현대건설의 예를 들며 리시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공격의 화려함 때문에 가려지지만 리시브가 불안하면 팀이 전체적으로 불안하다. 그래서 보이지 않은 곳에서 역할을 하는 리베로가 중요하다. 리베로가 얼마나 안정감을 가지고 뒤를 지켜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살아난 현대건설을 봐도 그렇다. 이전에는 리시브가 불안해서 팀 성적도 떨어지고 어수선했지만 지금은 수비가 안정되면서 팀이 부드럽게 돌아간다.”



리베로 개인과 팀 수치로 본다면 어떨까. 남자부부터 봤을 때, 기록상으로 가장 뛰어난 리베로는 KB손해보험 정민수다. 정민수는 올 시즌 리시브 부문 1위(54.04%), 디그 부문 2위(세트당 2.23개)에 올라있다. 기록상으로 모범 FA의 표본이다. 정민수 효과인지 올 시즌 KB손해보험은 팀 리시브 3위(40.05%), 디그 3위(8.961개)에 올라있다. 한국전력 이승현은 디그 부문 3위(2.073개)로 매 경기 끈끈한 수비를 보이는 한국전력에서 자기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두 팀의 올 시즌 성적은 KB손해보험이 6위, 한국전력은 최하위다. 특히 한국전력은 올 시즌 4승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카드는 수비 관련 팀 지표가 그리 좋지 않다(리시브 7위, 디그 4위). 여자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KGC인삼공사 오지영은 리시브 1위, 디그 3위에 오를 정도로 수비에서 맹활약 중이다. 하지만 KGC인삼공사는 리시브는 여전히 1위인 반면 디그는 4위로 떨어졌다. 팀 성적 역시 16연패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우선 한국배구연맹(KOVO)이 산출하는 기록 순위, 특히 디그 관련해서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KOVO 디그 순위는 세트당 개수로 측정한다. 일단 많이 하면 순위는 올라간다.



하지만 디그 개수가 많다고 수비가 좋고 팀에게도 좋은 것이냐고 물으면 꼭 그렇지는 않다. 디그가 많다는 건 그만큼 상대 공격을 잘 막았다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들도 디그 후 반격으로 랠리를 빨리 끝내지 못했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지만 위에서 언급된 팀들의 공격 성공률을 보면 어느 정도 개연성을 볼 수 있다. 수비 지표는 좋지만 팀 성적은 낮은 KB손해보험은 공격 성공률 6위(49.77%), 한국전력은 7위이다(46.52%). KGC인삼공사 역시 공격 성공률 부문 최하위이다(33.51%). 추가로 현대캐피탈이 디그 6위라고 해서 수비를 못 하는 팀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장선으로 배구도 점수를 내야만 이기는 종목이기에 잘 받기만 한다고 해서 이길 수는 없다. 리시브부터 세트, 공격에 이르기까지 연결로 이뤄지는 종목이 배구이고 리베로는 공격 과정을 마무리할 수 없다. 아무리 리베로가 잘 받아도 세터의 연결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공격수가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이 위원 역시 “리시브가 중요하지만 절대적이진 않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리시브 혹은 디그 이후 패스가 좋으면 세터 능력이 좀 부족해도 메울 수 있다.



반대로 연결 과정이 원활하지 않았더라도 공격수 능력으로 득점을 만들어도 1점이 올라가는 건 같다. 어느 하나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다. 과거 가빈이나 레오(이상 삼성화재)도 그렇고 대형 공격수의 공격 점유율이 올라가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리베로 능력이 온전히 팀 안정성과 함께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서브 공략이 갈수록 정교해지는 이유도 있다. 팀들은 최대한 서브를 윙 리시버에게 보내려 한다. 리시브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상대 공격 옵션을 하나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 팀 리베로들의 리시브 점유율이 생각만큼 높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목적타로 들어오는 서브까지 리베로가 모두 커버해줄 수는 없다. 이럴 경우 리베로 능력과 별개로 팀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윙 리시버의 리시브 기복이 큰 KB손해보험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올 시즌 남자부 주전 리베로 중 리시브 점유율 30% 이상을 기록 중인 선수는 시즌 초 리시브가 흔들려 집중 견제를 받은 삼성화재 김강녕(34.56%)뿐이다. 여자부의 경우 리시브 점유율 30% 이상 기록하는 선수는 오지영 뿐이다(30.14%).



여오현은 이런 현상에 대해 “일단 목적타 서브는 대부분 리시브 능력이 떨어지는 윙스파이커에게 향한다. 그래서 수치상 점유율이 높아지는 셈이다. 스파이크 서브는 어디로 넣겠다고 의도한다고 들어오지 않는다. 한 경기에서 의도한 위치로 스파이크 서브가 들어가는 경우는 한두 번 정도이다”라고 설명했다.



종합하면 리베로의 기량과 안정성에 따라 팀 수비에 충분히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득점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완전한 효과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종목 이야기지만 축구에서 공격수가 수비수보다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것도 득점이 없으면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리베로는 누구?

앞서 언급했듯이 좋은 리베로는 수비만큼이나 전반적인 지휘자 역할까지 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경험이 필요하다. 그런 이유인지 남녀부 모두 어느 정도 구력이 쌓인 20대 후반 혹은 그 이상의 선수들이 강세를 보인다. 41세 여오현은 리시브 부문 3위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고 최근 국가대표 붙박이 리베로로 자리매김한 정민수도 28세이다. 여자부에서도 현재 기량으로 봤을 때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김해란(35), 임명옥(33), 오지영(31) 모두 30대이다.






베테랑의 강세가 유독 두드러지는 포지션이지만 그 아래 나잇대 선수 중에도 기대해볼 만한 선수들이 보인다. 우선 여자부에서는 2018 AVC컵 대표팀에도 뽑힌 현대건설 김연견(26)이 있다. 2011~2012시즌 데뷔해 여덟 번째 시즌을 보내는 김연견은 어느덧 경험도 많이 쌓이며 실제로 김해란, 임명옥, 오지영 세대 이후 가교 역할을 할 선수로 자주 언급됐다.



올 시즌 데뷔 이후 첫 주전 시즌을 보내는 박상미(25)와 한다혜(25)도 장래를 기대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장 위원은 박상미와 한다혜를 들며 “지금도 수비에서 보여주는 순발력은 좋다. 다만 경험에서 오는 경기 운영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 경험을 더 쌓는다면 좋아질 수 있다”라며 “한다혜는 최근 나현정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라고 최근 활약을 높이 샀다.



2018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IBK기업은행에 입단한 김해빈 역시 잠재력은 충분한 선수다. 김해빈은 2017 18세이하여자배구세계선수권대회 한국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린 유망주다. 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 역시 일찍이 김해빈의 잠재력을 높이 샀다. 156cm로 리베로치고도 단신이지만 발이 매우 빠르고 순발력이 좋다.



남자부에서는 올 시즌 주전 리베로 중 함형진(24)과 이상욱(24)을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이상욱은 올 시즌 새로 부임한 신영철 감독의 신임 속에 붙박이 주전 자리를 보장받았다. 신영철 감독은 시즌을 앞두고 신동광과 이상욱이 리베로 자리를 두고 경쟁할 것이라 밝혔다. 여기에 신인 이수범까지 더해 경쟁 체제를 시즌 초반까지 이어갔지만 어느덧 이상욱이 주전 자리를 확고히 했다. 이상욱은 올 시즌 디그 부문 1위로 신영철 감독 믿음에 부응하고 있다. 여기에 아가메즈의 집중 교육을 받고 있다는 후문. 이 위원은 “이상욱은 자세가 좋다. 신장도 좋은 편(182cm)이라 신체적인 측면에서 기대된다”라고 이상욱을 평가했다.




이 위원은 대학 시절까지 공격수를 봤다는 점에서 함형진도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함형진은 중부대 시절까지 윙스파이커로 뛰며 팀에서 많은 공격을 책임졌다가 프로 진출 이후 리베로로 전향했다. 하지만 이 위원은 유연성을 더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대학 신입생 선수 중에도 함형진과 같은 경우가 있다. 중부대로 입학한 송민근이 그 주인공이다. 송민근은 170cm로 일반인 기준으로도 크지 않은 신장의 소유자였지만 속초고 시절 윙스파이커로 뛰며 공격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대학부터는 리베로로 전향한 그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도 재밌는 요소일 것이다.



또 다른 유망주로는 인하대 박경민이 있다. 박경민은 임동혁(대한항공), 임성진(성균관대), 김선호(한양대), 최익제(KB손해보험) 등이 주축이 돼 2017년과 올해 각각 19세이하, 21세이하세계선수권에 나서는 대표팀에서 주전 리베로로 활약 중이다. 이미 고교 시절부터 ‘될성부른 떡잎’이라는 평가를 받은 선수로 지난 시즌 후반기에는 이상혁(KB손해보험)과 함께 더블 리베로 체제를 구축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박경민 역시 주목할 선수임에는 분명하다.


글/ 서영욱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_DB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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