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올스타전 단골 이벤트는 스파이크 서브 킹&퀸 컨테스트다. 반대편 코트에 넣은 서브의 속도를 측정해서 우열을 가리는 이 부문의 최고 기록 보유자는 시속 123km의 문성민(현대캐피탈)과 시속 100km의 카리나(前IBK기업은행)다.
사이드
라인이 18m인 배구 코트에서 시속 100~120km의 서브가 상대 코트에 도달하는 시간은 채 1초가 되지 않는다. 서브를 받는
입장이라면 눈 한 번 깜빡하기도 전에 이미 공의 향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경기 중 나오는 호쾌한 서브 에이스의 매력에 흠뻑
빠져 배구에 입문했다는 사람도 적지 않을 정도로 서브는 배구의 중요한 매력 포인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역사 속 서브의 발전
자취부터 V-리그의 서브 기록까지 찬찬히 짚어보고자 한다.
서브는 어떻게 바뀌어 왔나
서브의 원래 의미는 서비스(Service)다. 경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볼을 상대 코트에 넘겨 주는 것이 서브의 본래 목적이었다. 랠리 포인트제가 도입되기 이전인 사이드 아웃제도 내에서, 서브는 그 어원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서브권이 있는 팀만 득점을 할 수 있었던 시절, 서브한 볼이 네트 상단부를 맞으면 상대 코트에 떨어지더라도 득점 인정 없이 범실로 처리되어 서브권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격적인 서브보다는 자연스럽게 범실을 줄일 수 있는 서브가 주류를 이뤘다. 배구의 여러 기술 중 서브의 발달이 가장 늦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해외에서는 일찍이 스파이크 서브를 시도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1970년대 후반 중국 선수들 일부가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지금과 같은 방식을 정착시킨 선수는 캐나다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존 배렛(John Barrett)이었다. 그리고 스파이크 서브가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한 때는 1984년 LA올림픽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브라질 대표팀은 윙스파이커 헤난 달 조토(Renan Dal Zotto) 등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스파이크 서브를 구사하면서 전세계 배구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 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강한 서브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준 첫 번째 선례였다.
한국 배구사에서 가장 먼저 스파이크 서브를 시작한 선수는 역대 최고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前고려증권 소속 아포짓 스파이커 장윤창이다. 당시의 서브 규정은 지금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서브를 넣을 수 있는 위치까지 제한되어 있는 규정 속에서도 장윤창은 전략적으로 스파이크 서브를 구사한 선수였다. 지금보다 공의 움직임이나 회전 수준이 다소 밋밋했을지 몰라도, 구속은 지금보다 더 빨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유의 체공력을 이용한 스파이크 서브와 후위 공격은 장윤창에게 ‘돌고래’라는 수식어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1999년부터 랠리 포인트제가 도입되면서 세계 무대는 물론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다양한 유형의 강한 서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공인구에 딤플이 들어가면서 공기의 저항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서브를
넣는 위치의 규제도 없어지면서 공략법 또한 다양해졌다. 강한 타격을 기반으로 한 스파이크 서브는 정교함을 더해 보다 더
강력해졌고, 그나마 서브의 어원과 가까웠던 플로터 서브 역시 수많은 타법을 통해 회전 수와 볼 궤적이 셀 수 없이 다양한 유형으로
분화되었다. 서브는 그렇게 강해졌다.
V-리그의 역사 속 강력한 서버는
2005년 V-리그가 출범하고 수많은 선수들이 리그를 거쳐간 가운데, 서브로 강한 임팩트를 남긴 선수들이 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리그를 뒤흔들고 있는 서브를 가진 선수들을 소개한다.
서브 달성에 대한 기준 기록을 보면, 남자부는 3명의 선수가 서브 기록을 나란히 이끌고 있다. 최근 서브 300득점을 기록한 문성민(현대캐피탈), 가스파리니(대한항공)과 함께 박철우(삼성화재)가 250개의 서브 득점을 돌파하면서 강서버의 입지를 지키고 있다.
세 선수의 공통점은 매 시즌 꾸준히 강한 서브를 구사하면서 기록을 달성했다는 점이다. 2016~2017시즌 가스파리니가 서브 1위에 오른 것을 제외하고 이 세 명의 선수가 서브왕 타이틀을 가져간 적은 없다. 리그를 압도할 정도 파괴력은 아니어도 매 시즌 꾸준하게 서브 득점을 쌓아 온 것이 이들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여자부의 경우 기준 기록에 있어 독보적인 선수가 있다. 바로 황연주(현대건설)다. 신인 시절부터 꾸준히 서브 득점을 쌓아온 황연주는 현재 남녀부를 통틀어 유일하게 서브 400득점을 넘긴 선수다.
과거
조혜정 前GS칼텍스 감독은 KBSN스포츠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황연주 서브의 비밀은 바로 단단한 밸런스에서 나오는 강한
임팩트”라고 말했다. 게다가 황연주의 서브는 플로터 서브에 가깝다. 파워와 스피드보다는 섬세한 공략과 도약부터 볼 미팅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황연주만의 서브는 프로 원년부터 지금까지 상대 리시브를 강력하게 흔들어 왔다.
서브 1위 타이틀에서 알 수 있는 남녀부의 차이
매 시즌 딱 두 번을 제외하고는 외국인 선수들이 남자부의 서브왕 타이틀을 가져갔다. 보비, 에반, 마틴, 가스파리니(이상 前대한항공), 안젤코, 가빈, 그로저(이상 前삼성화재), 시몬(前OK저축은행), 파다르(현대캐피탈)까지. V-리그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외인의 필수 조건 중 하나가 서브왕 타이틀이라 볼 수 있을 정도다.
그 사이에서 빛난 선수는 프로 최고공격수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이경수(前LIG손해보험)다. 그는 2005 시즌과 2005~2006 시즌 연속으로 서브왕을 거머쥐었다. 특히 2005~2006 시즌의 경우 외국인 선수들이 리그에 등장했음에도 서브왕 자리를 지켜냈다.
반면 여자부의 서브왕 타이틀은 매번 그 주인공이 바뀌었다. 외국인 선수로서는 하께우(前GS칼텍스), 케니, 폴리(前현대건설), 니콜(前한국도로공사)이 각각 한 번씩 1위를 차지했으며, 독보적인 기록을 보유한 황연주를 비롯해 김연경(엑자시바시), 황민경(현대건설), 백목화(IBK기업은행), 김희진(IBK기업은행), 문정원(한국도로공사) 등의 국내 선수들 역시 서브왕을 거머쥐었다.
남자부와 사뭇 다른 흐름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외국인 선수들이라고 해서 강한 스파이크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가 많지 않을뿐더러, 정교한 서브 테크닉에 있어 국내 선수들이 조금 더 앞서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인상적인 최근의 서브 공략
남자부 서브의 묘미는 핀치 상황에서 들어가는 호쾌한 스파이크 서브라고 할 수 있다. 그 서브 하나가 경기 결과를 좌우하기도 한다. 11월 27일 천안에서 치러진 현대캐피탈과 한국전력의 2라운드 맞대결 역시 서브에서 승부가 갈렸다. 한국전력은 외국인 선수 공백에도 불구하고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며 1세트를 가져갔다.
이어진 2세트 듀스 접전에서 한국전력을 울린 것은 다름 아닌 서브였다. 25-25의 동점 상황에서 파다르의 강서브가 연이어 코트에 꽂히면서 세트가 마무리 됐다. 이날 파다르는 무려 9개의 서브 에이스를 코트에 꽂아 넣으며 현대캐피탈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남자부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반면 여자부 경기에서 서브는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공략법이다. 12월 12일 김천에서 열린 한국도로공사와 흥국생명의 3라운드 경기는 이러한 서브 공략이 얼마나 주효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경기였다. 경기 중계를 맡았던 김사니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중계 내내 흥국생명의 예리한 서브 공략을 언급했다. 이날 흥국생명은 전위 3번 또는 4번 자리로 짧게 서브를 넣었다.
특히
김나희(흥국생명)는 특유의 플로터 서브를 상대 전위 속공수에게 지속적으로 넣는 모습이었다. 이전 경기까지 속공 1위를 달리던
정대영(한국도로공사)의 속공을 저지하기 위한 이 전략은 효과적으로 적중했다. 이날 도로공사의 중앙 공격 점유율은 다른 경기와
비슷하게 20%에 달했지만, 플레이 패턴은 속공이 아닌 개인 시간차와 같은 오픈성 플레이였다. 허를 찌르는 서브 공략으로 상대의
장점인 빠른 속공에 대한 여지를 주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서브가 강해질수록 흔들리는 리시브
배구를 오랫동안 봐온 팬들이 항상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것 중 하나가 리시브 실력의 퇴보다. 하지만 서브의 발전 속도가 리시브 실력의 향상 속도보다 월등히 빠른 지금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완벽한 리시브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은 스피드 배구 또는 토탈 배구는 안정적인 리시브를 강요한다기 보다, 모든 선수들의 기민한 공수 전환과 정확하면서도 빠른 이단 연결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배구라는 종목의 특성상 모든 항목의 정확도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기록도 마찬가지겠지만, 서브와 리시브는 특히 그 효율성을 기록으로 표기하기가 난감한 항목이다. 강력한 서브의 척도를 에이스 개수로만 판단할 수 없고, 리시브의 정확도는 더욱 더 수치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서브 공략이 까다로워지는 만큼, 리시브 정확도 역시 매 시즌 감소하는 추세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의 감소를 단순히 리시브 능력의 약화로 해석할 수만은 없다. 과거와 같은 기준으로 리시브의 완성을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탓이다. 예전에는 리시버가 받아 올린 볼이 어택라인 근처로 올라간 경우 무조건 좌우 오픈 공격으로 올렸을 테지만, 이제는 세터 또는 연결하는 선수 능력에 따라 속공이나 퀵오픈으로 연결하는 것이 가능하다. 리시브 성공률이라는 숫자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경기 전 감독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항상 강조하는 것이 안정적인 리시브다. 리시브를 전담하는 특정 선수들이 버텨줘야 한다는 언급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서브는 이런 전략을 단숨에 무력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해왔다. 강타 서브와 연타 서브가 쉴 새 없이 반복되고, 9m×9m의 코트 반경을 전부 활용한다. 완벽한 리시브를 기대하기 더욱 어려워진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코칭 스태프는 물론 선수들 역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세계적인 트렌드는 그 해법이 스피드 배구임을 보여주고 있다. 포지션과 관계없이 모든 선수들이 리시브를 준비하고 그 이후에는 전원이 공격에 뛰어 드는 것, 그것이 스피드 배구의 첫 걸음이다.
글/ 강효상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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