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V-리그, 흥행의 빛과 그림자

이현지 / 기사승인 : 2018-02-16 18:14:0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한국 4대 프로 스포츠 가운데 프로배구는 가장 늦게 출범했다. 프로야구(1982년)와 프로축구(1983년) 프로농구(1997년)보다 훨씬 늦은 2005년 프로리그가 시작됐다. 프로배구는 흥행에서 앞서서 출범한 세 종목에 늘 밀렸다. 배구는 겨울철 실내 스포츠 라이벌 종목인 농구보다 8년 뒤늦게 프로화가 이뤄졌다. 오랫동안 흥행 노하우를 축적한 세 종목과 비교해 프로배구의 흥행은 ‘소규모 상인’에 그쳤다. 그러나 프로 출범 13년을 맞이한 올해 배구의 시청률은 야구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TV 시청률이 흥행의 척도를 결정하는 비중이 커졌다. 여기에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스타들이 대거 등장하며 배구 인기는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KakaoTalk_20180216_172756818.jpg




프로야구 위협하는 시청률, 겨울철 가장 많이 보는 종목된 배구


올 시즌 전반기 프로배구 시청률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청률 조사기관 AGB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17~2018 V-리그는 전반기 평균 시청률이 0.831%(이하 전국 유료가구 기준)였다. 지난 2016~2017 시즌 평균 시청률인 0.757%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프로농구의 올 시즌 전반기 평균 시청률은 0.2%다. 프로배구는 농구보다 무려 4~5배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겨울철 실내스포츠 라이벌 종목인 프로농구를 멀찌감치 따돌린 프로배구는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프로야구의 연간 평균시청률은 0.884%였다.



스포츠 전문 채널에서 방송하는 스포츠 중계가 시청률 1%를 넘으면 이른바 ‘대박’이라고 표현한다. 지난 1월 10일 대한항공과 우리카드의 경기 시청률은 1.248%를 기록했다. 인기 구단인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 그리고 여자부 빅 매치의 시청률도 지난해와 비교해 상승했다.



배구 한 시즌 경기를 모두 생중계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여자 배구 최고 무대인 터키 리그도 생중계가 되지 않는 경기가 있다. 오랜 기간 배구 중계의 질을 높여온 방송사의 노력도 배구 흥행에 힘을 불어 넣었다. 한 경기당 16대에서 18대의 카메라가 동원된다. 또한 중요한 장면을 다시 보여주는 슬로모션의 질은 매우 뛰어나다.



2017~2018 시즌은 남녀부 팀들의 전력이 비슷해졌다. 특별한 강자와 약자가 없는 상황이라 박빙의 경기가 자주 펼쳐지는 점도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다.



배구 시청률 상승은 꾸준하게 진행됐다. 특히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여자 대표 팀이 선전한 이후 관심은 한층 뜨거워졌다. 지난해 여자 대표팀은 국제배구연맹(FIVB) 그랑프리 대회와 아시아선수권대회, 그랜드챔피언스컵 그리고 2018년 세계선수권대회 예선에 출전했다.



이 대회는 모두 KBS N 스포츠와 SBS 스포츠(이상 그랑프리) SPOTV(아시아선수권대회, 그랜드챔피언스컵, 세계선수권대회 예선)를 통해 생중계됐다. 이런 열기는 고스란히 2017~2018시즌 시청률로 이어졌다.



배구장을 방문하는 관객의 수도 증가했다. 올 시즌 전반기 배구장을 찾은 이는 31만 명이었다. 지난 시즌 30만을 웃도는 수치다. 배구장을 찾는 관객들의 연령과 특징도 다양해졌다. 프로배구 초기에는 주로 각 구단의 응원단이 관중석 빈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족 단위는 물론 연인, 친구들과 배구를 보는 문화가 발전했다. 각 구단은 관중을 끌어 모으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펼쳤다.



인기 구단인 현대캐피탈의 경우 연고지인 천안 팬들과 많은 소통을 하며 이벤트를 기획했다. 국내뿐만이 아닌 해외의 프로 구단 마케팅을 연구한다. 지역 팬들을 위한 배구 교실과 외국인 선수를 앞세운 영어 강습 등 색다른 이벤트는 관중들을 매료했다.



올 시즌 주목해야할 부분은 여자 배구의 인기몰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열린 한국도로공사와 흥국생명의 경기 시청률(1.02%)은 1%를 넘었다. 경기가 열린 김천실내체육관을 찾은 관중 수는 5,500명이 넘었다. 올 시즌 전반기 여자 배구의 평균 관중은 2,000명을 돌파했다.



과거 여자 배구는 남자 배구와 비교해 호쾌한 스파이크와 긴장감이 덜 하다는 이유로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여자 배구가 한층 공격적으로 변하며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이재영(22, 흥국생명) 이다영(22, 현대건설) 쌍둥이 자매와 양효진(29, 현대건설) 김희진(27, IBK기업은행) 등 스타 선수들이 등장하며 남자 배구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1월 21일 의정부체육관에서 열린 올스타전 티켓은 10분 만에 매진됐다. 이재영, 이다영 자매는 팬들을 위해 올 시즌 올스타전에서도 재미있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실력은 물론 개성이 넘치는 끼를 가진 선수들이 많아진 점도 배구의 흥행 요소 가운데 하나다.


KakaoTalk_20180216_172800559.jpg




프로배구 흥행, ‘한겨울 밤의 꿈’ 될 수 있는 이유




시청률은 스포츠 흥행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하향곡선을 그릴 위험도 있다.



한 배구 관계자는 “현재 배구 계에서 높은 시청률로 즐거워하지만 그만큼 주의도 필요하다. 시청률은 언제든지 떨어질 위험이 있다”며 “올 시즌만 생각하고 미래에 흥행을 이끌어갈 유망주를 키우지 않으면 배구의 인기는 반짝하며 끝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남자 배구의 경우 흥행을 이끌어가는 대표 선수들 상당수가 서른을 훌쩍 넘었다. 현재 대학배구는 물론 중 · 고교에서도 ‘제2의 문성민’으로 불릴 수 있는 ‘특급 기대주’는 보이지 않는다.



여자 배구의 경우 ‘제2의 김연경’으로 불리는 정호영(17, 진주 선명여고)이 성장하고 있다. 190cm의 장신 공격수인 정호영은 2016년 9월 만 15살의 나이에 시니어 국가 대표로 발탁됐다. 그러나 선명여고에 진학한 지난해 대한민국배구협회의 전학 관련 제재 조치로 인해 공식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성장을 위해 한 경기가 중요한 유망주는 귀중한 한해를 날렸다.



과거 스타들이 즐비했던 프로농구도 ‘황금세대’가 코트를 떠난 뒤 침체기에 들어갔다. 한 농구 관계자는 “과거에는 농구판에 정말 스타들이 많았다. 지금 배구를 보면 비슷한 거 같다. 미래를 내다보지 않으면 어느 종목이건 인기는 한순간 사라진다”고 충고했다.



유망주 발굴과 이들을 육성하는 시스템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이 구단에 입단해 프로라는 무대에 걸맞은 활약을 펼쳐야 관중들은 지속적으로 경기장을 찾는다. 올 시즌 여자 배구의 인기는 국제 대회 선전이 힘을 불어넣었다.



한국 여자 배구는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연이어 출전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얻었다. 다가올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할 경우 여자 배구의 인기는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 미래 배구 흥행을 이끌 차세대 선수들을 육성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명문 구단은 언제나 미래를 준비한다. 해외 유명 축구단은 대부분 유소년 클럽을 운영한다. 터키 여자배구리그 구단도 유소년 클럽이 있다. 이 클럽의 성적과 성장은 팀의 승점 포인트에 영향을 준다.



반면 국내 리그는 2군조차 없는 상황이다. 프로배구는 최근 흥행에서 웃고 있지만 프로 리그 가운데 유일하게 2군 제도가 없다. 다른 국가 리그와 비교해 국내 선수층이 엷은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팀 전력을 받쳐주는 것은 물론 주전 출전 기회가 없는 선수에게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2군 제도는 설득력을 얻는다.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워크숍에서 배구 관계자들은 이 문제를 논의했다. 2군 제도는 팀의 주전급인 10명의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 이들에게 비시즌 동안 가칭 챌린지 리그(2군 리그)를 열어 실전 감각을 키우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연습 경기가 아닌 실전 경기를 치르면 선수들은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KakaoTalk_20180216_172757874.jpg



선수의 지속적인 기량 성장과 스타 발굴은 물론 유료 관중을 늘리는 점도 중요하다. 인기 구단인 현대캐피탈의 경우 대부분의 관중들이 직접 표를 사서 경기장에 입장한다. 반면 한국전력은 여전히 유료관중 비중이 50%대에 머물러 있다.



여자 배구의 경우 인기구단인 흥국생명은 지난 시즌과 비교해 유료관중 수가 무려 256% 증가했다. 순위는 최하위에 머물러 있지만 이재영 등 스타 선수들의 영향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반면 여전히 구단 회사 임직원이 많은 관중석을 채우는 구단도 있다. 프로 스포츠의 생명력은 직접 입장권을 구매해 관전하는 문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프로배구의 흥행은 ‘거품’이 많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팬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구단의 이벤트도 각 구단에 따라 차이가 크다.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구단이 있는 반면 흥행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구단도 있다.



연맹은 2015년 12월 KBS N 스포츠와 2016~ 2017시즌부터 2020~2021시즌까지 총 5시즌 간 총액 200억 원 규모의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연간 40억 원의 계약은 현재 시청률 호조로 나타났다. 이런 상승세가 계속될 경우 프로배구의 중계권료는 더욱 치솟는다. 그러나 여전히 프로배구가 흥행 지속을 위해 걸아가야 할 길은 멀다.



프로 스포츠의 흥행은 프로 무대에 어울리는 선수의 육성과 스타 발굴, 여기에 수익 창출에 대한 시스템이 결과로 나타나야 완성된다.



글/조영준 SPOTV 기자


사진/더스파이크_DB, FIVB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주요기사

더보기

HOT PHOTO

최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