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FA 시즌, 황금열쇠 스머프를 찾아서

정고은 / 기사승인 : 2017-04-20 0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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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영화 ‘개구쟁이 스머프’에서 마법사 가가멜이 스머프를 못 잡아 안달이었던 이유는 뭘까. 스머프 7마리를 모으면 황금으로 바꿀 수 있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 열리면 프로배구 감독은 너나 할 것 없이 가가멜이 된다. 리베로까지 포함해 최고 선수 7명으로 주전을 꾸리면 우승이라는 황금을 캐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거꾸로 가가멜은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 아즈라엘이 떠날까 걱정하는 일은 없지만 프로배구 감독들은 내부 FA 단속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 때문인지 몇몇 감독은 작전시간 때 FA를 앞둔 선수 플레이를 지적하다 뭔가 깨달았다는 듯 목소리를 낮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정 팀 감독이 떠오른다면 읽는 분께서 오해하신 거다.)



스머프는 가가멜에게 붙잡히지 않으려 도망치기 바쁘지만 FA 시장에서는 선수들도 ‘대박’이라는 황금을 노리고 때론 가가멜 품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무나 대박을 칠 수는 없다. 다른 팀에서 뛰던 FA를 영입하려면 지난 시즌 연봉 3배 또는 2배와 보상선수 1명을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보상제도가 문제다. 스머프를 새로 잡으려면 스머프 1명을 풀어줘야 하는 모양새기 때문에 다른 구단에서 FA를 향해 미끼를 던지는 일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지난 시즌까지 FA 자격을 얻은 선수 198명 중 18명(9.1%)만 팀을 옮겼다. 그나마 팀을 옮긴 남자 선수는 89명 중 4명(4.5%)밖에 되지 않는다. FA 등급제 시행도 내년부터라 올해 시장도 예년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구경꾼’에게 이미 잡은 스머프는 잊어도 좋을 만큼 맛있는(?) 스머프가 올해 시장에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과연 제대로 장이 설까? 아니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던 속담을 또 한 번 증명하고 말까? 일단 간이나 한번 보자.



글/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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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재건엔 ‘편리 스머프’
스머프 마을에서 가장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를 꼽으라면 역시 못 만드는 게 없는 ‘편리 스머프’다. 올해 남자부 FA 시장에도 편리 스머프가 있다. 공격과 수비 모두 되는 국가대표 공격수 서재덕(28·한국전력)이 주인공. 서재덕은 올 시즌 정규리그 때 상대 서브 중 46.6%(팀내 1위)를 받아내는 동시에 팀내 3위인 410점을 올렸다.



한국배구연맹(KOVO) 자유계약선수관리규정은 FA 시장이 열리면 선수는 일단 원소속구단과 먼저 독점적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이른바 템퍼링(사전 접촉) 금지 조항이다. 서재덕 역시 이 규정에 따라 원소속구단인 한국전력과 먼저 협상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공기업인 한국전력에서 서재덕이 원하는 수준으로 금액을 맞춰줄 수 있다고 보는 배구 관계자는 많지 않다. 내년에 전광인(26)도 FA 자격을 얻기 때문에 한국전력도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서재덕은 다른 구단과 협상할 수 있는 2차 계약 시장에 나올 확률이 높은 상태다.



편리 스머프는 스머프 마을에서 버섯 모양으로 된 집을 짓거나 고치는 일도 맡는다. 명가 재건을 천명한 삼성화재에 서재덕이 필요하다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 템퍼링 금지 조항이 없어 ‘다이렉트’로 삼성화재에 ‘지금 뭐 봐?’하고 물을 수 있다면 서재덕이라는 답도 나올 게 틀림없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총알은 충분하다. 샐러리캡(연봉 상한선)에도 여유가 있고 지난 시즌 이선규(36)가 FA 자격을 얻어 KB손해보험 유니폼을 입게 되면서 받은 보상금도 금고에 남아 있다”라며 “템퍼링 우려 때문에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FA 시장에 우리에게 필요한 선수가 나오기만 한다면 무조건 잡겠다”라고 말했다. 나머지 팀에서는 서재덕에 대한 관심이 삼성화재보다 덜한 게 사실이지만 몇몇 구단에서는 새 감독 부임, 트레이드 계획 같은 변수에 따라 서재덕 영입전에 뛰어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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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이 궁금한 ‘자연이 스머프’
삼성화재로서는 박상하(31·우리카드)도 시장에 나와주기만 한다면 ‘감사합니다’이다. 미들블로커가 급하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이선규가 떠나고 지태환(31)도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하면서 삼성화재는 주전 중앙공격수 둘을 잃었다. 코트 안에서 팀이 흔들릴 때마다 ‘파파 스머프’처럼 선수들을 다독이던 고희진(37)도 부상에 시달리다 결국 유니폼을 벗었다.



박상하가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올해 FA 시장에는 미들블로커가 유독 많다. 삼성화재 소속인 하경민(35)을 포함해 김시훈(30·우리카드) 김형우(35·대한항공) 방신봉(42·한국전력) 진상헌(32·대한항공) 최민호(29·현대캐피탈) 한상길(30·OK저축은행) 등 7명이 올해 FA 자격을 얻는다.



이 중 최민호는 올 시즌이 끝나면 입대할 예정이라 패스. 나머지 선수는 냉정하게 말해 아무리 급해도 보상선수를 내주면서까지 데려올 수준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박상하로서는 다른 팀을 만나 자기 가치를 묻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카드에서는 박상하뿐 아니라 신으뜸(30), 최홍석(29) 등 주전 선수 세 명이 한꺼번에 FA 자격을 얻는다. 최홍석도 다른 팀에서 구미가 당길 만한 카드다. 1차 협상 과정에서 우리카드가 박상하에게만 집중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역시 박상하가 2차 계약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이유다.



OK저축은행도 박상하 영입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 OK저축은행은 외국인 선수 시몬(30·쿠바)이 빠지면서 세트당 블로킹 기록이 지난 시즌 2.4개(1위)에서 올 시즌 1.7개(7위)로 내려갔다. 전체 공격 시도 중 속공이 차지하는 비율(점유율)도 21.3%에서 15.0%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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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손 발타자르?
삼성화재가 명가재건에 성공하려면 ‘집토끼’ 단속도 필수다. 류윤식(28) 박철우(32) 부용찬(28) 유광우(32) 등 주전 4명이 FA다. 이 중에서 ‘The 사위’ 박철우는 몰라도 유광우는 ‘유혹하는 손길’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유광우는 2014년 FA 때도 ‘모 팀에서 거액을 베팅했다’는 템퍼링 루머가 돈 적이 있었다. 세터는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포지션이다.



문제는 삼성화재가 최고 마술사 발타자르처럼 마력을 발휘해 FA를 모두 수집해도 모든 선수를 지킬 수 없다는 점이다. 규정에 따르면 FA 보상선수를 내줄 때 새로 영입한 FA를 제외하고 4명까지만 보호할 수 있다. 현재 집토끼 FA는 4명이지만 군입대 중인 선수도 자동 보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지태환도 보호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박철우 부용찬 유광우 지태환을 보호한다고 하면 류윤식이 보호 선수 명단에서 빠져야 한다. 이에 대해 삼성화재 관계자는 “아직 다른 팀에서 FA를 영입한 게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 물론 아니다. 다만 어떤 팀에서 어떤 선수를 영입하는지에 따라 보상 선수 명단을 달리해 전력 유출을 최소화하겠다는 게 기본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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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스머프, 가가멜에 붙잡히나
여자부 FA 시장에서는 누가 ‘덩치 스머프’가 되느냐가 최고 관심사다. 덩치 스머프는 가가멜이 마을에 쳐들어 오자 제일 먼저 용감하게 나서지만 결국 제일 먼저 가가멜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프로 스포츠 FA 시장에서도 계약 덩치가 큰 선수부터 교통정리가 되는 게 일반적이다.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이다.)



여자부 최대어는 역시 김희진(26·IBK기업은행)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희진은 올해 연봉으로 이미 지난 시즌보다 1억 원 많은 2억5000만 원을 받았다. 현대건설과 연봉 3억 원에 계약한 FA 양효진(28)에 이어 여자부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수다. 김희진은 ‘대체 송금은 얼마나 하니?’라며 FA 시장 개장을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IBK기업은행이 김희진을 팀에 앉히려면 연봉을 대체 얼마나 올려줘야 할까? 역시 양효진이 가장 좋은 비교 케이스다. 양효진은 FA 자격 취득 직전인 2012~2013시즌 연봉 1억5000만 원(당시 3위)을 받았다. 그해 시즌이 끝나고 나서 양효진은 현대건설과 연봉 2억5000만 원에 재계약하며 ‘연봉 퀸’ 자리에 올랐다. 그러니 이번 시즌이 끝나고 김희진이 연봉 퀸 자리를 물려받는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김희진 덕에 흥국생명 김수지(30)가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있다. 김희진이 1차 계약기간에서 IBK기업은행에 잔류한다면 김수지는 2차 계약에 나올 수 있는 최대어가 된다. 그건 흥국생명이 김수지를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놓칠 것 같지도 않다. 흥국생명이 올 시즌을 앞두고 괜히 2012년 은퇴했던 김수지 친동생 김재영(29)을 영입한 건 아닐 테니 말이다.



김수지는 2014년 FA 시장에서 흥국생명으로 유니폼을 갈아 입으면서 9800만 원이던 연봉을 1억7000만 원으로 73.5% 올렸다. 이번 FA 시장에서도 최소 2억 원 정도는 기대할 것이다. 프로야구에 ‘인생은 이호준처럼’이 있다면 프로배구에서 ‘인생은 김수지처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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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페트의 궁금증
이번 시장 ‘두 번째 대어’ 박정아(24)는 김희진이 떠나면 IBK기업은행에서 꼭 붙잡아야 하는 선수고 남아도 붙잡아야 하는 선수다. 박정아는 올 시즌 460득점을 올렸다. 이보다 득점이 많은 ‘토종’ 공격수는 479점을 기록한 흥국생명 이재영(21)뿐이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만 배구를 본 이들이 아니라면 박정아가 괜히 올 시즌 여자부 연봉 공동 3위(2억2000만 원)가 아니라는 걸 안다.



스머프에 비유하자면 박정아는 ‘스머페트’ 같은 존재다. 이 여자 스머프는 가가멜이 만들었다. 그저 어디선가 황새가 스머프 마을로 물어다 놓은 다른 스머프와 다른 점이다. 그래서 스머메트는 늘 자기 존재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박정아도 존재가 고민이다. 후위로 빠지면 리베로와 자리를 바꾸는 윙스파이커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박정아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미 갖춘 IBK기업은행과 달리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는 다른 팀에서 박정아 가치는 어떻게 다를까? 박정아는 올 시즌 팀 서브리시브 중 0.92%밖에 책임지지 않았다. 따라서 IBK기업은행에 잔류하는 게 본인에게도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그래도 바람은 늘 갈대를 흔들고 지나간다. 예컨대 과연 박정아가 김희진보다 몸값을 적게 받아야 할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까 아니면 FA 협상 우선순위에서 박정아가 김희진 뒤로 밀려야 할 이유는? 이런 걸 고민한다면 2차 계약 시장에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김희진과 박정아가 모두 IBK기업은행을 떠나는 수준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전체적으로 여자부 FA는 대부분 잔류할 확률이 높다. 기본적으로 FA가 총 22명나 돼 시장에서 선수를 주고받은 다음 손익계산을 따지기보다 집토끼를 잡는 게 더 간단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령탑을 영입한 현대건설에서 세터 염혜선(26)이 2차 계약 시장에 나온다면 연쇄이동이 일어날 확률이 없지 않다.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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