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벨과 박정아의 같은 각오 “공이 올라오면, 무조건 점수를 내겠다” [CH4]

김천/김희수 / 기사승인 : 2023-04-05 0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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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체력은 바닥났지만, 박정아와 캣벨은 계속해서 점프하고 또 공을 때렸다.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마음속에 단단히 새긴 하나의 각오였다.

한국도로공사는 도드람 2022-2023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에서 1, 2차전을 모두 패하며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역대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에서 1, 2차전을 모두 내준 팀의 우승 확률은 0%다. 3차전에서 시리즈가 싱겁게 끝날 것이라는 예측도 많았다. 그만큼 한국도로공사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는 홈인 김천에서 조금씩 기운을 차렸다. 감기로 인해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선수들은 조금씩 건강을 회복했고, 팀의 경기력도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다. 3차전을 승리하며 반격의 서막을 알린 한국도로공사는 4일 김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4차전에서도 흥국생명을 세트스코어 3-1(22-25, 25-21, 25-22, 25-23)로 꺾고 기어코 5차전을 성사시켰다. 그야말로 ‘봄배구 좀비’가 따로 없다.

그 중심에는 한국도로공사가 자랑하는 쌍포 캐서린 벨(등록명 캣벨)과 박정아가 있었다. 캣벨은 경기 최다인 30점을 터뜨렸다. 특히 4세트에는 23-23에서 경기를 끝내는 2개의 득점을 책임지며 김종민 감독과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박정아 역시 20점을 올리며 제몫을 다했다. 체력 저하가 뚜렷하게 느껴지는 모습이었지만 투지와 정신력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득점을 올렸다.

두 선수는 인터뷰실에 들어올 때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박정아는 “힘들어 죽겠다(웃음). 다리가 너무 아프다. 2세트까지는 정신이 있었는데 3세트부터는 정신도 없고 무슨 생각으로 경기를 한 지도 모르겠다. 캣벨이 너무 잘 해줘서 이겼다”는 승리 소감을 전했다. 30대가 돼 처음 맞이하는 챔피언결정전이 유독 더 힘든지 묻는 질문에는 “20대 때도 많이 힘들었다. 물론 30대에 맞이하는 첫 챔피언결정전 역시 힘들지만, 지금은 모두가 힘들다. 힘든 건 핑계가 될 수 없다. 다시 정신 차리고 잘 하겠다”는 씩씩한 답변을 내놨다.

경기 후 눈물을 보이기도 했던 캣벨은 “마지막 득점을 올리는 순간 되게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한국도로공사에 와서 팀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감동적이었다”고 감격에 겨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원래 성격이 감성적인 편인지 묻자 캣벨은 “그렇다. 지금 인터뷰를 하는 이 순간도 믿기지 않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경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믿기지 않는다. 그냥 귀화를 할까 싶다(웃음)”는 유쾌한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캣벨은 “만약 우승을 한다면 유니폼을 찢어서 머리 위로 들고 빙빙 돌릴 거다. 아마 난 우승을 하면 미쳐버릴 거다”라는 파격적인(?) 우승 세리머니 예고를 하기도 했다.
 

4세트 도중 잠시 전새얀과 교체돼 벤치에 앉아 있기도 했던 박정아는 16-20에서 다시 코트에 투입됐고, 팀의 기적적인 역전승에 기여했다. 박정아는 당시에 대해 묻자 “5세트로 갈 거라고 생각했다. 계속 앉아만 있다가 들어가는 것보다는 막바지에라도 들어가서 감각을 올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감독님이 투입하신 줄 알았는데, 역전을 할 줄은 몰랐다”며 당시의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한편 캣벨은 이날 한국도로공사 승리의 원천이었던 수비에서도 역할을 더 하고 싶음을 강조했다. 그는 “공격수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공격이지만, 2단 연결이나 디그처럼 내가 코트 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비수로서의 역할도 잘 해내겠다. 나는 코트에 들어가면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평소에는 에너지를 비축한다. 경기 시작하기 전에는 너무 힘들어서 할머니처럼 걸어 다닌다”며 익살스럽게 각오를 다졌다.

온 몸에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로 체력의 한계에 봉착한 두 선수지만, 함께 마음에 새겨둔 같은 각오 하나가 두 선수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바로 득점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박정아는 이날 어려운 토스를 득점으로 연결한 뒤 코트에 넘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어떤 순간에도 공이 올라오면 점수를 내겠다는 생각뿐이다. 점수 내고 나서 벤치에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했는데, 그건 다리가 풀려서 넘어질 뻔 했다가 그 김에 그냥 한 거다”라며 너스레와 함께 굳은 결의를 전했다.

캣벨 역시 4세트 23-23에서 보여준 왼손 공격에 대해 “어떤 공이 오든 점수를 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래서 왼손으로 쳐야 할 공인 것 같아 왼손으로 쳤다”고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 단기전마다 감독들이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이걸 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캣벨과 박정아는 그 어려운 일을 지금까지 잘 해내왔다. 과연 대망의 5차전에서도 그들의 정신력은 체력을 초월할 수 있을까.

사진_김천/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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