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에이스가 자리를 비웠다. 그러나 받아든 결과는 정반대였다.
브라질이 31일(이하 한국 시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2조 1주차 경기에서 중국에 세트스코어 2-3(23-25, 25-22, 20-25, 25-20, 12-15)으로 석패했다. 공격(브라질 69-68 중국), 블로킹(9-7), 서브(2-4), 범실 관리(25-28) 등에서 모두 큰 차이가 없었을 정도로 치열한 경기였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의 집중력 싸움에서 중국이 한 수 위였다.
브라질의 선수 명단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 하나가 빠져 있다. 바로 ‘가비’ 가브리엘라 기마랑이스다. 브라질 전력의 핵심인 공수겸장 아웃사이드 히터 가비는 최근 바키프방크 소속으로 튀르키예 술탄 리그 플레이오프 일정과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 결승 일정을 소화했다. 컨디션 관리 차원에서 VNL 1주차 로스터에서는 제외된 상태다. 빠르면 2주차, 혹은 3주차 로스터에 합류가 예상된다.
호세 로베르토 기마랑이스 감독은 가비가 빠진 아웃사이드 히터 자리에 아나 크리스티나 데 소우자와 줄리아 베르그만을 출전시켰다. 젊음과 높이를 겸비한 기대주들의 조합이었다(크리스티나 2004년생-192cm, 줄리아 2001년생-191cm). 두 선수는 전반적으로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안타깝게도 브라질이 패한 세트마다 결정적인 순간 아쉬움을 남겼다.
1세트에는 줄리아가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16-17에서 줄리아의 공격이 댜오 린유의 블로킹에 걸렸고, 이후 이어진 유안 진유에의 연속 서브에 브라질이 흔들리며 호세 감독이 작전 시간을 요청했다. 그러나 작전 시간이 끝난 직후 16-19에서 줄리아의 공격이 또 다시 댜오 린유의 블로킹에 걸렸다. 상대의 흐름 끊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상대에게 20점 선착을 허용한 것. 이어서 20-22에서는 서브 범실을 저지른 줄리아는 23-24에서 결정적인 디그를 잡아냈지만 크리스티나와의 연결 호흡을 맞추지 못하며 팀의 1세트 패배를 막지 못했다.
줄리아와 크리스티나는 2세트에 나란히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반격을 이끌었지만, 3세트에는 또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줄리아는 세 번의 서브 차례에 모두 범실로 물러났고, 크리스티나는 14-16에서 과감한 오픈 공격을 시도했지만 유안 진유에의 블로킹에 가로막혔다. 크리스티나는 20-22에서 공 샹유의 서브를 받아내지 못하며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후 브라질은 완전히 중국에게 기세가 눌린 모습이었다. 가비의 경기력뿐만 아니라 스타성과 존재감이 모두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절치부심한 줄리아와 크리스티나가 다시 한 번 높은 타점과 빠른 스윙으로 불을 뿜으며 4세트를 따내면서 경기는 5세트를 향했다. 그러나 5세트 10점대 이후 크리스티나의 리시브 불안이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12-11로 앞선 상황에서 크리스티나의 불안한 리시브를 줄리아가 연타로 처리하려고 시도했지만 이것이 유안 진유에의 블로킹에 걸리며 12-12 동점이 됐다.
이후 왕 윤루의 서브가 크리스티나와 리베로 나탈리아 아라우호의 사이에 떨어지며 중국이 역전에 성공했다. 크리스티나의 후위공격 옵션을 살리기 위해 나탈리아가 리시브 범위를 넓게 가져갈 필요는 있었지만, 분명 크리스티나도 충분히 몸을 던지거나 팔을 뻗어볼 만한 방향이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는 떨어지는 공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 득점으로 분위기는 완전히 중국 쪽으로 넘어갔고, 줄리아의 마지막 공격이 또 다시 유안 진유에의 블로킹에 가로막히며 중국이 승리를 챙겼다.
물론 두 선수 대신 가비가 뛰었다고 해서 상술한 모든 순간에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분명 ‘가비였다면’하는 아쉬움이 남을 법한 순간들이었다. 특히 5세트에 크리스티나 쪽에서 리시브가 무너지면서 나온 실점들은 가비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상황이었다.
이러한 브라질의 가비 빈자리 메우기 실패는 하루 앞선 30일 태국을 꺾은 이탈리아의 모습과 대비됐다. 특히 두 팀의 경기는 몇몇 요소들이 유사했기에 더욱 극명하게 대비됐다. 상대팀이 아시아 팀이었다는 점, 풀세트 혈전을 벌였다는 점, 무엇보다 이탈리아 역시 주포 파올라 에고누가 로스터에서 제외된 채로 경기를 치렀다는 점이 비슷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탈리아는 태국을 꺾고 소중한 대회 첫 승을 챙겼다. 에고누의 빈자리는 실비아 은와칼로가 무리 없이 메웠다. 은와칼로는 경기 최다인 24점을 터뜨리며 반대편에서 22점을 보탠 오고사세레 오모유리와 쌍포를 이뤄 팀 공격을 이끌었다. 공격 성공률도 46.34%로 높았다. 빈자리가 생기면 또 다른 선수가 그 자리를 가볍게 메우는 강팀의 전형이었다.
각종 리그 일정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작되는 1주차에는 브라질과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많은 팀들이 컨디션 관리 차원에서 주전급 선수들을 로스터에서 뺀 채로 경기를 치른다. 이탈리아처럼 이 시기에 대체 선수를 빠르게 찾아 많은 승수를 올리는 팀이 진정한 강팀이다. 과연 브라질이 다음 경기에서는 가비의 빈자리가 생각나지 않는 경기력으로 승리를 거둬 강팀의 면모를 다시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사진_Volleyball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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