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하면 맨날 제가 밀려요.” 바야르사이한의 화려한 언변에 기가 눌린 에디는 익살스러운 푸념을 남겼다.
20대 몽골 청년 에디와 바야르사이한은 6년 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열심히 배구하면 V-리그에서 뛸 기회는 물론 한국으로의 귀화까지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그들의 심장을 뛰게 했다. 그렇게 함께 순천제일고 배구부에서 출발해 각각 성균관대(에디)와 인하대(바야르사이한)의 에이스로 성장한 두 선수는 드래프트를 통한 V-리그 입성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최근 귀화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두 선수의 귀화와 드래프트 참여가 불발됐다. 그나마 에디는 아직 성균관대 4학년이기에 U-리그 경기를 계속 소화하면서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었지만, 이미 졸업유예 신분인 바야르사이한은 자칫하면 경기 감각까지 떨어질 위기였다. 이런 두 사람에게 아시아쿼터 트라이아웃은 또 한 번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동아줄’이었다. 최종 선발만 된다면 V-리그에서 뛸 기회를 얻음과 동시에 정기적인 소득을 확보해 귀화 조건을 만족시킬 방법까지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함께 아시아쿼터 트라이아웃에 지원한 두 선수는 27일 제주 썬호텔 볼룸홀에서 진행된 2023 한국배구연맹(KOVO) 남자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나란히 선발되는 데 성공했다. 에디는 1순위로 삼성화재의 유니폼을, 바야르사이한은 4순위로 OK금융그룹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드래프트 행사가 종료된 뒤 두 선수는 함께 인터뷰실을 찾았다. 최종 선발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에디는 “너무 좋았다. 6년 동안 이날만을 기다려온 것 같았다”고, 바야르사이한은 “드래프트가 시작됐을 때부터 떨렸다. (이름이 빨리 나오지 않아서) 내가 보여준 실력이 조금 안 좋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4순위에 불렸을 때 긴장이 풀렸다”고 각각 소감을 전했다.
먼 타지에서 갖은 고생을 한 끝에 결실을 맺은 두 선수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누가 가장 먼저 생각났을까. 정답은 역시나 가족이었다. 에디는 “고등학교 때부터 다른 나라에 와서 가족과 떨어져 있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 6년을 기다려서 1순위를 받으니, 엄마가 많이 보고 싶다”며 애틋한 답변을 들려줬고, 바야르사이한 역시 “부모님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집에서 처음 떠날 때부터 지금까지 늘 나를 응원하고 위로해주셨다. 드디어 자랑스러운 아들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의젓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에디와 바야르사이한은 모두 소속팀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예정이다. 에디는 성균관대 시절 스승이었던 김상우 감독과, 바야르사이한은 인하대 동료였던 신호진과 김웅비(현재 상무, 다음 시즌 중 팀 합류 예정)를 다시 만난다. 에디는 “지금의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많이 도와주신 분이다. 다시 함께하게 되면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좋은 모습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고, 바야르사이한은 “제주도 오기 전에 학교에서 신호진과 함께 며칠 시간을 보냈다. 그때 맨날 OK금융그룹으로 오라고 했다(웃음). (김)웅비 선배도 그랬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때 즈음, 취재진이 바야르사이한의 범상치 않은 말솜씨에 감탄하자 에디는 “같이 인터뷰하면 맨날 내가 밀린다”고 푸념하며 인터뷰실에 있던 모두를 폭소케 했다. 이렇게 뜨거운 우정과 V-리그에 대한 열망, 나이에 어울리는 순수함과 유쾌함까지 한껏 드러낸 두 선수는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실을 빠져나갔다.
사진_제주/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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