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두 명장이 한국 배구와 V-리그의 화두인 ‘스피드 배구’에 대해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했다.
2023 한국배구연맹(KOVO) 통합워크샵이 1일 엘리시안 강촌에서 개최됐다. 이날 워크샵에는 각 구단 감독 및 코칭스태프, 단장 및 사무국 직원, KOVO 관계자 및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 배구와 V-리그의 발전을 위해 도핑 방지 교육, 외부 특강 등 다양한 컨텐츠를 진행했다.
이날 워크샵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컨텐츠는 해외우수지도자 초청 포럼이었다. 국제배구 명예의 전당(IVHF)에 나란히 헌액된 두 이탈리아인 감독 안드레아 가르디니(베우하투프)와 로렌조 베르나르디(노바라)가 직접 현장을 찾아 김상우, 김종민 감독과 함께 배구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놓고 허심탄회한 토론을 진행했다.
선수 컨디션 관리·세대교체·SNS 관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가운데, 늘 배구계의 화두인 스피드 배구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포럼의 진행을 맡은 윤성호 SBS 스포츠 아나운서가 스피드 배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과 전략을 묻자, 두 감독은 작심한 듯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먼저 베르나르디 감독이 입을 열었다. 베르나르디는 “빠르지 않으면 배구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선수들은 무조건 속도를 올리려고 한다. 그러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선수들에게 왜 이렇게 속도에 집착하냐고 물어보니 ‘그렇지 않으면 주변에서 내가 못하는 선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다. 이런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며 스피드 배구가 전부는 아님을 강조했다.
두 감독은 계속해서 스피드 배구에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역설했다. 베르나르디는 “감독으로 일을 할 때 윌프레드 레온(폴란드)을 가르친 적이 있다. 레온은 전 세계 최고의 스파이커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그는 스피드 배구에 집착하지 않는다. 속도를 올리려면 자신이 원하는 타점을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욘디 레알 히달고와 히카르도 루카렐리 소우자(이상 브라질)도 마찬가지다. 공이 포물선으로 여유 있게 올라올 때 상대 블로커를 보고 공격을 결정한다. 사람들은 루카렐리가 스피드 배구를 하는 선수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편견이다”라며 세계적인 선수들도 스피드 배구에 집착하지 않음을 밝혔다.
가르디니는 스피드 배구의 정석처럼 여겨지는 일본 대표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일본같은 국제 경쟁력을 한국이 갖추기 위해 스피드 배구가 꼭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시카와 유키나 다카하시 란을 보면 스피드 배구뿐만 아니라 하이볼 처리 능력도 상당히 좋다. 그들은 스피드에 집착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세컨드 찬스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일본은 뭐든 잘한다. 그래서 성과를 낸 것이다. 물론 빠른 배구도 잘한다. 그런데 그것만 잘하는 것은 아니다. 속도가 전부가 아니다. 속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한국 선수들이 가진 진정한 강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두 명장의 소신 발언은 한국 배구와 V-리그의 현실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 현장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V-리그 감독들이 과연 다음 시즌에 어떤 배구를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사진_춘천/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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