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력.’ 배구 기사를 보거나 방송 중계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 득점을 내야 결정력이 강한 팀이고 선수인지는 느낌상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를 한눈에, 손쉽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상황도 많고 활용해야 하는 데이터도 많다. 그중 한 가지 상황으로만 결정력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여자부에서 ‘랠리의 마침표’를 누가 제일 많이 찍었을까.
상황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데이터를 찾아서
한국배구연맹(이하 KOVO)은 주최하는 공식 대회 기록을 모두 데이터로 정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취재진은 실시간으로 바뀌는 선수들의 기록을 확인하고, 경기 후에는 더 자세하게 정리된 데이터를 본다. 현재 KOVO에서 제공하는 공격 기록은 공격 성공률과 효율, 점유율이 있다. 더 자세하게 파고들면 여러가지 공격형태의 성공률도 확인할 수 있다. 공격 성공률은 ‘성공/시도x100’, 공격 효율은 ‘(성공-범실-상대블럭)/시도x100’의 계산을 통해 구한다.
공격 성공률을 보면 선수의 공격 능력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공격 효율은 상대 블로킹에 막힌 것과 범실을 제외하기에, 말 그대로 공격수가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공격을 다뤘는지 파악하기 쉽다. 하지만 이 두 지표를 가지고 공격 결정력을 이야기하긴 다소 어렵다.
랠리가 길어질수록 공격 시도는 많아지지만, 공격 성공은 적어진다. 자연스럽게 성공률 수치도 내려간다. 특히 남자부보다 랠리가 긴 여자부에선 높은 성공률을 찾기 힘들다. 수치상으로는 낮은 성공률을 보여주더라도 “결정력이 좋다”라고 평가받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배구를 더 깊이 분석하고픈 사람들에게는 어떤 수치로 공격 결정력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결정력, 그게 뭔데?
먼저, 배구에서 결정력을 이야기하는 상황은 언제일까. 흔히 상대 서브에 리시브가 크게 흔들렸을 때나, 상대 공격에 디그가 불완전하게 됐을 때, 어렵게 올라온 공을 득점으로 성공시키는 경우다. 이와 함께 길게 이어진 랠리 상황에서 득점을 했을 때 많이 언급된다.
이 가운데 상대 서브로 시작해 우리 팀의 리시브-세트-공격으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공격패턴이 아닌, 상대 공격 이후 우리 팀의 디그-세트-공격에 주목해보려고 한다. 디그 이후 공격 성공률은 ‘디그 이후 공격 성공/디그 이후 공격시도x100’로, 효율은 ‘(디그 이후 공격 성공-범실-상대블록)/디그 이후 공격 시도x100’로 계산했다. 2022-2023시즌 여자부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기록을 대상으로 정리했다. 각 팀의 3라운드까지 누적 기록과 라운드별 기록도 함께 살펴봤다.
한국도로공사는 3라운드까지 1514번의 공을 걷어 올리며 7개 팀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디그를 성공했다. 디그 이후 공격시도도 1415번으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범실이 많았다. IBK기업은행과 함께 가장 많은 106개의 범실, 79번의 차단까지 더해지면서 효율은 19.7%에 머물렀다. 실제로 한국도로공사는 이번 시즌 외국인 선수의 낮은 결정력으로 3라운드까지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카타리나 요비치는 후위 공격이 서툰 약점까지 있었다. 이 바람에 제대로 세트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카타리나의 해결 능력은 아쉬웠다.
1~2라운드까지 꾸준히 3위 자리를 지킨 한국도로공사는 3라운드에 급격히 흔들렸다. 이 결과 시즌 처음 3연패를 기록하며 3라운드를 2승 4패, 라운드 순위는 6위로 마무리했다. 김종민 감독은 결정력을 여러 번 얘기했다. “결정을 내줘야 할 상황에서 결정이 안 난다. 공격수들의 결정력이 아쉽다”고 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과연 기록은 어떨까.
한국도로공사는 2라운드까지 30%가 넘는 성공률과 20%를 웃도는 효율을 보여줬지만, 3라운드에 급격히 디그 이후 반격에서의 수치가 떨어졌다. 최고의 리베로 임명옥을 둔 덕분에 디그 성공은 540개로 3라운드 중 가장 많았다. 하지만 범실을 비롯해 상대 블로커에 차단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성공률(28.5%)과 효율(13.7%) 모두 크게 떨어졌다. 결국 랠리 상황에서 한국도로공사가 마침표를 찍는 경우가 이전 라운드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온다.
1라운드를 4위로 마무리한 KGC인삼공사는 2라운드 1승 5패를 기록하며 라운드 6위를 기록했다. 2라운드 기록을 보면, 우선 디그 성공 숫자가 다른 팀보다 적었다. 448개의 디그 성공으로 6위였다. 다른 팀보다 많은 반격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는 얘기다. 자연스레 공격 시도와 성공 횟수도 줄었다. 이런 가운데 41번이나 공격이 차단되면서 7개 팀 중 가장 많이 가로막혔다. 2라운드 디그 이후 공격 효율은 20.7%였다. 전체 6위다.
물론 KGC인삼공사가 2라운드 부진했던 이유엔 다른 요인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KGC인삼공사는 2라운드에 139개의 범실로 7개 팀 중 가장 많았다. 스스로 발목을 잡은 것이다. 디그 이후 공격 성공으로만 팀의 상승과 부진을 평가할 순 없지만, 3라운드의 KGC인삼공사는 결정력이 상승했다. 디그 성공 횟수는 여전히 하위권(473차례로 6위)이지만, 이전과는 달리 찾아온 기회를 쉽게 놓치지 않았다. 2라운드와 비교했을 땐 디그 이후 범실(27-32)은 늘었어도 상대에 차단(41-28)되는 경우가 현저히 줄었다. 이 수치의 변화는 경기 결과로도 이어졌다. KGC인삼공사는 12월 25일에 진행된 현대건설과의 3라운드에서 상대에게 이번 시즌 첫 패배를 안겼다.
공격 결정력과
순위의 상관관계?
1, 2위에서 상위권 다툼을 하는 현대건설과 흥국생명. 디그 이후 반격 상황에서도 강했다. 현대건설은 성공률(38.7%) 2위, 효율(28.7%) 1위를 차지했다. 실제로 12연승을 달리던 1라운드부터 2라운드까지 디그 이후 공격 성공률은 39.8%로 제일 높았다. 2라운드에는 5세트 경기가 잦아지며 고비도 있었지만, 현대건설은 어려운 순간마다 강했다. 40.5%의 디그 이후 공격 성공률을 자랑했다. 7개 구단 가운데 유일한 40%대의 성공률이었다.
첫 고비를 무사히 넘겼지만 3라운드에 찾아온 위기는 극복하기 힘들었다. 야스민 베다르트(등록명 야스민)가 허리 디스크 시술로 자리를 비우면서 결정적인 한 방을 책임져줄 선수가 없었다. 황연주가 대신 들어가 좋은 활약을 했지만, 야스민의 공백을 느낀 경기도 분명 있었다. 현대건설 선수들도 “야스민이 빠지면서 큰 공격을 책임질 선수가 없어졌다”라고 입을 모았다. 기록에도 야스민의 부재는 쉽게 드러난다. 3라운드 현대건설의 디그 이후 공격성공률(40.5% → 36.5%)과 효율(31.1% → 27.7%) 모두 2라운드와 비교했을 때 많이 떨어졌다.
흥국생명은 성공률(37.7%) 3위 효율(27.3%) 2위를 차지했지만, 디그 이후 공격 연결 시도(디그 이후 공격 시도/디그 성공)가 94.2%로 가장 많았다. 공을 단순하게 넘기지 않고 자신들의 플레이를 만들었다. 더불어 끈질겼다. 범실을 만들거나 차단되는 경우가 현대건설 다음으로 적었다. 랠리 상황에서 집중력 있게 경기를 해서 손쉽게 상대에게 점수를 내준 경우가 적었다고 해석된다. 여기에 반격의 중심에 배구IQ가 높은 김연경이 있기에 생기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순위표 맨 아래에 머무는 페퍼저축은행이다. 일단 디그 이후 반격 상황에서 낮은 수치를 보여줬다. 7개 팀 가운데 가장 적은 1309개의 디그 성공으로 반격의 첫 번째 발판을 만들지 못했다. 어렵게 공을 걷어 올렸지만 자신들의 공격으로 연결하는 횟수도 가장 적었다. 유일하게 90%를 넘기지 못했다. 85.2%의 낮은 연결 수치를 기록했다. 성공률도 30.5%로 최하위다.
결국 디그 이후 반격 상황에서 페퍼저축은행이 7개 팀 가운데 가장 약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 기록에서 드러난다. 반면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성공률(27.6% → 30.6% → 34.2%)과 효율(14.8% → 15.0% → 22.7%)이 상승했다.
이 수치만 보면 디그 반격 이후 공격 성공률이 높을수록 높은 순위에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물론 이 기록이 승패 전체를 아우른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배구는 워낙 다양한 상황이 일어나기에 쉽게 일반화할 수 없다. 상대의 연타 공격을 수비한 디그나 강타를 어렵게 받아낸 디그 모두 성공 1개로 표시되기에 공격 난이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또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는 블로킹 성공이 제외되기에 랠리 속 공격 결정력의 전부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 밖에도 리시브 이후 공격과 서브, 블로킹 등 배구 경기의 승패를 좌우할 변수는 많다. 그래서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해석은 가끔 거짓말을 유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공격 결정력은 순위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만큼은 확인할 수 있다. 결론은 간단하다. 랠리의 마침표를 공격으로 많이 찍은 팀이 강팀이라는 것이다.
글_김하림 기자
사진_더스파이크
자료 제공_W.Data volley stat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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