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지도자,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 [이정원의 발리볼데이트]

이정원 / 기사승인 : 2022-03-03 12:00:27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성공에 도취한 지도자는 망한다”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현역 배구 감독으로서는 드물게 석·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감독을 맡은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는 아직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다. 우리카드 제자들과 끊임없이 연구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마지막 꿈인 ‘우승’을 향해 달려가는 신영철 감독이 배구인들의 배구 인생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이정원의 발리볼데이트’ 세 번째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배구에 진심인 남자, 신영철 감독과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컴퓨터 세터도 가끔 하는 상상
“요즘 시대에 선수 했으면 어땠을까?”

Q. 배구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요.
배구 처음에 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입니다. 처음에는 공격수를 하다가, 수성초로 전학 가면서 본격적인 세터 역할을 맡기 시작했죠. 처음 배구했을 때 키가 147cm이었나(웃음)? 공격수도 좋았지만, 저와는 세터가 잘 맞았죠.

Q.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감독님의 플레이를 영상으로만 지켜봤습니다. 감독님은 어떤 선수였나요.

기본기는 괜찮은 선수였다고 생각합니다. 리시브도 할 줄 알았고, 다방면에서 좋은 기술을 보여줬다고 봐요. 키가 작아서 그렇지만, 나름대로 공격형 세터였습니다(웃음). 패스도 빠르게 할 줄 알았고요. 기똥찼습니다.

Q. 월드리그에서 2번, 월드컵에서 1번 총 세 번의 베스트 세터상을 받으셨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나요.

흔히 리시브가 좋으면 속공을 하고, 안 좋으면 속공을 안 해요. 그런데 저는 좋고, 나쁘고 그런 게 없었어요. 무조건 공격수 타이밍에 맞춰졌어요. 제 손에 걸리면 B속공이든, C속공이든 어떻게 해서든 다 올렸어요. 국제 대회에서도 통했던 게 무엇이냐면 속공 각도가 안 나오는데 속공을 올리니 준비 안 하고 있던 키 큰 외국 선수들이 당하게 되죠. ‘요즘 시대에 선수 생활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하게 됩니다.

Q. 한국전력, 상무, 삼성화재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왔습니다. 선수 시절을 한 번 되돌아본다면요.
데뷔 팀이었던 한국전력은 공격수들의 키가 대부분 작았어요. 183, 184cm가 대부분이었고 김철수가 187cm로 가장 컸을 거예요. 그래도 겨울리그 4강도 가고 행복했어요. 상무에서는 1992년에 슈퍼리그 우승을 했잖아요. 고려증권 선수층이 좋았는데도 우승을 했으니 행복했죠. 그리고 삼성화재에서는 원체 좋은 선수들이 많았어요. 우승을 많이 했잖아요. 국제 대회에서 기억에 남는 건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월드컵 때예요. 그때 서독과 동독의 독일 단일팀에 5세트 10-14로 밀리고 있었어요. 제가 서브를 할 차례였는데, 범실하면 끝나는 거잖아요. 정말 긴장됐어요. 다행히 경기가 잘 풀려 독일을 이겨 올림픽 티켓을 땄을 때가 기억에 남네요.

Q. 신치용 전 감독님을 모시면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전력 때부터 함께 했으니 감독님의 배구 인생에 큰 영향을 준 한 분이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김세진, 최태웅, 장병철, 석진욱 등 다 신치용 감독님 밑에서 컸죠. 저는 선수, 코치 다 포함해서 17년을 모셨어요. 감독님께서 선수단 관리를 정말 잘 하셨어요. 그리고 약주를 드셔도 다음 날 선수들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요. 본인 관리도 철저히 잘하신 분이었죠. 저 역시 신치용 감독님과 마찬가지로 우리 선수들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합니다. 물론 신치용 감독님 외에도 대학교, 고등학교 때 저를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도 다 기억에 남죠. 특히 고등학교 감독님은 배구는 전문적으로 하신 분은 아니었고, 기계체조를 하신 분이었는데 부지런하고 열정을 갖고 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신영철 감독이 전한 한 마디
“선수들이여, 공부하고 또 공부해라”

Q. 현역 배구 감독 중에서는 드물게 석·박사 학위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학위를 취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땄어요. 나중에 운동을 그만두면 교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교원 자격증을 따려고 했죠. LG화재(現 KB손해보험) 감독을 하면서 박사 학위에 도전했습니다. 석사, 박사 학위를 따는 데 정말 힘들었어요.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시도해 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감독 생활을 하면서도 수업은 꼬박꼬박 들어갔어요. 어릴 때부터 연애 소설이나 만화책보다는 스포츠 심리학, 인생론에 관한 책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런 쪽으로 자연스레 관심이 가더라고요. 지금도 심리학, 영향, 트레이닝 쪽에 대한 공부를 하곤 합니다.

Q. 배움을 통해 얻은 게 많으신 듯 합니다.
저는 지금도 선수들에게 대학원에 갈 수 있거나, 가고 싶은 사람은 가라고 하는 편이에요. 훈련 한 시간 일찍 끝내주면 됩니다. 선수들도 공부를 해야 됩니다. 유소년 배구도 좋지만, 또 중요한 게 지도자 육성입니다. 올바른 지도자가 나와야, 선수도 잘 키울 수 있는 거죠. 지금 지도자들을 보면 자기가 아는 것은 정말 잘 가르칩니다. 그런데 자기가 잘 모르는 부분은 잘 못 가르치죠. 그래서 계속 토론하고 세미나 같은 자리가 많아져야 합니다. 우리카드 감독으로 선임되고 나서 재능 기부 형식으로 한 번 해보려 했는데, 반대에 부딪혀 못했어요. ‘내가 돈 받고 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들을 알려주겠다’라고 했는데 못 했죠. 아마 기존에 있는 틀을 깰 수 있을까 봐 그랬던 것 같은데 이해는 하는데 아쉽죠. 배우는 게 나쁜 거는 아니에요.

Q. 감독님들마다 개개인의 선수 조련법이 다 있는데, 감독님만의 지도자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지도자들은 가르치려고 덤벼들면 안 돼요. 만들 줄 알아야 해요. 사람마다 특성, 스타일이 다르죠. 그 선수에 눈높이에 맞춰 단계별로 해야 해요. 결국 중요한 건 소통이죠. (하)승우하고 저하고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야 해요. 승우 머릿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야죠. 어떻게 배구를 해야 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시간을 갖고 기다려야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배구 이론은 누구나 다 이해해요. 중요한 건 무엇이냐, 훈련 과정을 봐야 하고요. 경기에서 불안함을 갖고 하냐, 아니면 집중력을 갖고 하냐 등 세세한 부분을 다 봐야 하고요. 생활하다 보면 그 선수의 특성이 있고, 성격이 있어요. 그 사람의 방법으로 컨트롤하면 됩니다. 최근 경기에서 승우와 가위바위보를 했잖아요. 승우만의 방식으로 접근해 승우를 강해지게 만들어야죠. 밑에서부터 하나하나씩 가르쳐야죠. 소통을 계속해야 됩니다. 다만 잘 안되는 선수가 알렉스에요. 개성이 강해요(웃음). 물론 경기 중에는 본인 생각이 있으니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지난 시즌과 비교해 공격 효율이나 성공률이 많이 떨어졌어요. 선수들이 괜찮다고 다독거리기도 하지만 본인도 미안한 마음을 갖죠. 결국 모자란 부분은 서로 커버해 주며 원팀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죠. 완벽한 팀은 없어요. 각팀마다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어요.

Q. 감독님 하면 나경복, 하승우 선수가 먼저 떠오릅니다. 두 선수는 어떤 선수인가요.
경복이는 아까도 말했듯이 정말 이해력이 빠르고, 습득력도 좋습니다. 이제는 팀의 에이스로서 공격은 물론이고 리시브, 수비 능력도 갖춘 선수로 커야죠. 승우는 아직 덜 익었어요. 세터로서 정확한 패스 능력을 갖춰야 하고, 수비가 조금 약해요. 기술적으로 발전시키려고 노력 중입니다.


“지난 시즌 챔프전은 지금도 아쉬워”
“배구 발전을 위해 계속 공부해야죠”

Q. 감독님의 이름을 건 ‘신영철 세터상’도 감독님하면 떠오릅니다.
계속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2018년도부터 제 이름을 건 ‘신영철 세터상’을 주기 시작했죠. 원래는 대통령배 대회 남자 고등부 세터에게만 상을 줬는데, 한국중고배구연맹에서 여자 부문도 해줄 수 있겠냐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죠. 지금 남녀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시상을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배구를 했는데 받은 것을 후배들에게 베풀어야죠. 제가 세터상을 만들었으니 나중에는 공격수상, 리베로상도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Q. ‘신영철이 감독을 맡으면 그 팀은 최소 봄배구는 간다’라는 말이 있어요. 팬들에게 ‘봄배구 전도사’로 불립니다.
힘든 팀을 맡으면 진짜 쉽지 않아요. 가장 먼저 하는 게 선수들의 생각을 바꾸는 거예요.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어야 인생이 바뀝니다. 선수들 생각 자체가 패배주의면 안 되죠.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도 안 되잖아요. 마음을 열고, 단계별로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지금보다 분명히 좋아질 거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요. 저만의 노하우, 경험을 가지고 해야죠. 그러려면 공부를 계속해야 합니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 중 누가 리더에 더욱 어울린다고 생각하나요?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이 리더가 돼야 해요. 한발 물러나고 밑에 있는 사람들이 뭘 하는지 지켜보며 잘못된 것은 체크하며 알려주고요. 리더가 분석하고, 모든 부분을 다하면 밑에 있는 사람은 필요 없죠. 반발심만 일어날 뿐이죠.

Q. 아직 감독 커리어에 우승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 있다면요.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정점을 찍어야 하는데 아쉽죠. 지난 시즌이 정말 좋은 기회였죠. 스포츠라는 게 실력과 동시에 운도 따라줘야 한다고 봐요. 알렉스가 아플 줄 누가 알았겠어요. 부상으로 경기를 못 뛰면 아무 의미 없는 거죠. 자기 관리를 잘해야죠. 올림픽도 마찬가지예요. 실력과 운이 동시에 따라줘야 금메달이 다가와요. 본의 아닌 부상 혹은 결정적인 심판 오심으로도 금메달이 날아갈 수 있어요. 골프도 마찬가지고요. 장갑을 벗어봐야 결과를 안다고 하듯이 무슨 상황이 어떻게 일어날지 몰라요. 우승 목전까지 왔다가 놓치면 본인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죠.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2021 KOVO컵 우승은 진짜 신기해요. 우승을 할 거라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다른 팀들이 의정부 근처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출퇴근제를 실시했어요. 4일에 3경기를 하는 강행군이었죠. 알렉스도 없었는데…그런 거 보면 스포츠는 정말 묘해요. 기술적으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 건 맞아요. 나머지는 운이라고 봅니다.

Q. 2019-2020시즌도 그렇고, 지난 시즌도 그렇고 두 번의 우승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떤 시즌이 조금 더 아쉬우신가요.
지난 시즌이죠. 챔프전 전적 2승 1패로 앞서고 있었으니까 한 경기만 이기면 끝나는 거였잖아요. 알렉스 3차전 공격 성공률이 63%였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새벽에 아플 줄 누가 알았을까요.

Q. 올 시즌은 어떻게 흘러갈 것 같나요.
알렉스가 정상 컨디션이 아니에요. 삼성화재전에서는 공격 성공률이 39% 나왔어요.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준 셈이죠. 물론 이전보다 늦게 오면서 부담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알렉스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한 발짝 뒤에서 공격을 해보라고 하는 등, 플레이오프만 가면 그 이후는 모르잖아요. 플레이오프는 단기전이에요. 괜찮지 않을까요. 알렉스가 키플레이어죠.

Q. 지난 시즌 종료 후 우리카드와 재계약을 맺었습니다. 우리카드에서 그리고 있는 그림은요.
알렉스와 다시 한번 같이 하기에 1, 2라운드 승률 70, 80% 정도 욕심을 냈죠. 그런데 그 반대로 갔네요(웃음). 또 FA 자격을 얻는 선수가 다섯 명 정도 있어요. 선수들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 같아요. 정신적인 교육을 많이 했죠. ‘FA는 상대팀에 콜이 왔을 때 몸값이 올라간다’고요.

Q. 만약 우승을 하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하기보다는 일단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감독으로서는 선수들에게 고마움이 크겠죠. 그런 다음에는 바로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죠. 성공에 도취한 지도자는 망해요. 항상 연구하고 또 다음을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한국 배구가 발전할지 생각하고, 그래서 배구 지도자 토론회도 한 번 열렸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안주하면 안 되잖아요. 선의의 경쟁을 계속하면서 서로 발전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합니다.

Q. 훗날 어떤 지도자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지금은 팬들에게 단순하게 ‘봄배구 전도사’로 불리는데 우승도 좋지만 전 이렇게 불리고 싶어요. ‘저 지도자는 선수들을 진짜 잘 가르친다. 만들 줄 안다. 공부하는 지도자이면서, 선수들을 잘 육성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좋은 선수 가지고 하는 거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어려운 환경에서 발전 가능성이 큰 친구를 가르치고 키우고 싶어요.

Q. 언제나 한국 배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큰 감독님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실까요.
대표팀 코치는 해봤지만 대표팀 감독도 훗날에 해보고 싶어요. 전체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준 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배구 발전을 위해 더 공부를 해야죠. 그러고 난 다음에 여자팀도 한 번 맡아보면 어떨까 생각을 해요. 잘 모르니 한 번 경험을 해보고 싶네요. 여자 선수들도 남자 선수들처럼 스피드 있게 가르쳐보고 싶어요. 여자, 남자 구분 지어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운동은 운동다워야죠. 공수부대 나온 사람들처럼 정신력이 강해야 합니다. 운동선수는 운동선수답게 해야 하고요. 주어진 시간만 가지고는 하면 안 됩니다. 스스로 늘어지면 안 돼요. 우리 젊은 선수들이 선수답게 열정을 갖고 항상 공부하고 배우며 한국 배구 발전에 이바지 했으면 좋겠어요.

글. 이정원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KOVO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주요기사

더보기

HOT PHOTO

최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