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첫 번째 아시아 쿼터가 남긴 다양한 키워드들

김종건 / 기사승인 : 2023-05-01 0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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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 선수들의 절실함, 다가올 메기 효과, V-리그의 국제화와 기대되는 새로운 관중 유입

 

아시아 쿼터가 마침내 첫걸음을 내디뎠다.

4월 21일 여자부 비대면 선수선발에 이어 남자부는 4월 25일부터 2박 3일간 제주도에서 대면 트라이아웃을 했다. 여자 23명, 남자 36명이 지원할 때까지만 해도 시큰둥했던 구단들의 반응은 점점 달라졌다. 팀에 필요한 부분을 효율적으로 보강하게 해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하위 순번의 팀마저 지명권을 행사했다. 물론 처음이라 아쉬운 점들은 보였지만, 이는 시간이 해결할 문제다. 이제 아시아 쿼터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V-리그는 출범 초기인 2005-2006시즌 남자부에서 먼저 외국인 선수를 도입해 지금의 틀을 만들었다. 출범 20년 째를 앞두고 시작하는 남녀 합동 아시아 쿼터는 또 다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V-리그가 잊고 있던 절실함을 보여준 남자부 선수들
제주도에 모인 24명의 지원자는 절실했다. 15점 1세트 경기를 7세트 연속 뛰면서도 한 번이라도 더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려고 했다. 태국 국가대표팀의 아몬뎁 콘한. 박기원 감독이 참가 기회를 준 덕분에 이틀간의 휴가를 받고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눈에 띄게 작은 키지만 혼을 담아서 스파이크를 때렸다. 아제르바이젠 리그에서 뛰는 몽골 국적의 밧수리 바투르. 무려 24시간의 비행 끝에 제주 땅을 밟았다. 비자 문제로 아제르바이젠~튀르키예~중국을 거치는 힘든 여정이었다. 오랜 비행시간의 피로를 뛰겠다는 의지로 극복하며 간절함을 보여줬다. 반면 인도네시아 대표팀 선수 7명은 협회에서 허락해주지 않아 참가 기회조차 사라졌다.

이번 아시아 쿼터 지원자 대부분은 V-리그를 “동경하는 꿈의 무대”라고 했다. 모두가 제주도까지 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여러 난관 속에서도 코리안 드림을 꿈꿨다. 이들이 배구를 대하는 자세는 풍요로움과 인기 거품에 취해서 절실함을 잃어버린 토종 선수들과 비교됐다. 과연 우리 V-리그는 예전의 절실함과 간절함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많은 연봉과 인기 거품에 취해 도전 정신을 잃어버리고, 배구의 인기를 되살리겠다는 순수한 열정마저 사라진 우리 선수들에게 아시아 쿼터 지원자들은 큰 울림을 줬다.



●기대되는 메기 효과
27일 선발된 남자부 아시아쿼터 가운데 3~4명은 당장 팀의 주전으로 자리를 잡을 것 같다. 여자부도 몇몇 선수들의 기량이 그 팀 주전 선수보다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이들의 연봉은 세금 포함 10만 달러다. 세금을 빼면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8000~9000만 원 정도다. 현재 각 팀 주전 선수들의 연봉을 생각해본다면 얼마나 빼어난 가성비인지 쉽게 비교된다.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지금 V-리그는 선수가 갑, 구단은 을의 위치다. 아마추어 배구의 열악한 인적 자원 탓에 토종 선수들은 지금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주전이 되고, 한 번 차지한 자리는 쉽게 뺏기지 않은 채 많은 연봉도 보장받는다.

점점 떨어지는 리그의 경쟁력은 아시아 쿼터 도입으로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이제 토종 선수들은 비슷한 생김새의 외국인 선수들과 자리다툼을 벌여야 한다. 자칫하면 내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기에 이전보다 더 열심히 할 것으로 기대한다. 아시아 쿼터가 만든 ‘메기 효과’다. 어느 구단 관계자는 “만일 이들이 성공하면 그동안 우리가 해온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아시아 쿼터가 어떤 결과를 낼지 솔직히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지금 인기는 하늘을 찌르지만 많은 이들은 여자부의 수준 낮은 경기력을 걱정한다. 김연경이 V-리그에 있는 동안에는 착시 효과로 보이지 않겠지만 운명의 시간은 계속 다가온다. 김연경이 빠진 이후 밑바닥으로 추락한 여자대표팀의 오늘은 V-리그의 내일이 될 수 있다. 이제 국제무대에 올림픽 출전은 고사하고 아시안게임 메달도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선수들에게 열심히 하라고 외쳐봐야 헛일이다. 현실이 편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만족하고 더 편한 것을 요구한다. 지금보다 건강한 V-리그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포식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특정 포지션으로 국한된 외국인 선수와는 달리 아시아 쿼터 선수들은 피부색이 같고 체형마저 비슷하다. 더 쉽게 직접적으로 기량이 비교될 것이다.


●새로운 관객의 유입과 V-리그의 국제화
이번 남자부 트라이아웃에서 가장 이외의 선택은 대한항공이 했다. 국가대표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 2명을 보유한 팀에서 마크 에스페호를 선택했다. 구단 관계자는 “트라이아웃에서 비예나를 뽑았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라고 했다. 인터뷰 때 그에게 “대한항공에는 2명의 국가대표 경쟁자가 있다”고 하자 에스페호는 “나도 필리핀 국가대표”라고 당당히 말했다. 자부심이 대단했던 그에게서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연상됐다. 우리 야구팬이 메이저리그를 친숙하게 받아들인 계기는 박찬호가 LA다저스에서 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130년 오랜 역사의 메이저리그는 소수 백인의 공놀이로 시작했지만 다양한 혈통의 선수를 품으면서 성공역사를 썼다. 루 게릭(독일), 스탠 뮤지얼(폴란드), 조 디마지오(이탈리안), 재키 로빈슨(흑인), 페르난도 발렌주엘라(히스패닉), 노모 히데오, 박찬호(동양인) 등 상징성이 있는 메이저리거의 등장은 다양한 인종을 경기장으로 인도했고 메이저리그 중계권 구매로 이어졌다.

에스페호는 “필리핀 배구의 인기를 높일 도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 꿈이 성공하길 바란다. 이번에 선택된 다른 선수들도 모두 그 나라 배구계에서는 상징적인 존재다. 이들이 V-리그에서 뛴다면 그 나라 배구 팬의 관심 또한 높아질 것이고, V-리그는 국제적인 리그로 위상이 올라갈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상상외로 많은 다문화 가정이 있다. 음지에서 힘든 일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도 많다. 이들에게는 타국에서의 고달픈 생활을 위로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고국의 향수를 달래줄 상징적인 존재가 V-리그에서 뛴다면, 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경기장을 찾을 것이다.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몽골 국적이 관중들이 자국의 선수를 응원하러 경기장을 가득 메우면 아시아 쿼터는 분명히 성공한다. 

 

 

●과연 아시아쿼터는 토종 선수의 씨를 마르게 할까
아시아 쿼터는 첫 운을 떼고도 실행까지 5년이 유예 기간이 필요했다. 반발 여론 탓이었다. 이들이 등장하면 토종 배구선수의 씨가 마른다는 주장에 구단과 한국배구연맹(KOVO)이 몸을 사렸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이미 학생 배구에서는 V-리그보다 많은 외국인 선수가 활약 중이다. 주로 몽골 출신인 이들은 학생 비자 신분으로 입국해 각 팀의 선수로 뛴다. 만일 이들 때문에 토종 배구선수의 씨가 마를 것을 걱정한다면, 이들부터 막아야 하지만 실상은 반대다. 대한배구협회를 비롯해 아마추어 배구계 누구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이들 유학생마저 없으면 제대로 팀이 꾸려지지 않을 정도로 배구를 하겠다는 자원이 모자라다. 그만큼 지금 대한민국은 운동을 하겠다는 아이들의 절대 숫자가 부족하다.

그동안 배구는 토종 선수 자원이 한정돼 쉬운 취업이 보장됐다. 해마다 신인드래프트가 기록한 높은 취업률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이는 V-리그의 낮은 경쟁력이 만든 신기루다. 현재 대학 졸업자가 좋은 직장을 가질 확률은 그보다 훨씬 낮다. V-리그의 취업률 40%는 기적과도 같은 수치다. 해외 다른 종목의 사례도 있다. 미국의 베이스볼 이글이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미국 대학 야구 리그에서 뛰는 약 3만6000명의 선수 가운데 10.5%만이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았다. 고교 선수가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는 확률은 이보다 훨씬 낮은 0.5%였다. 그런데도 메이저리그는 이것만으로는 선수공급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전 세계의 유망주를 대상으로 또 다른 드래프트도 한다.

 

 

V-리그도 이제 선택해야 한다. 암담한 미래가 뻔한 지금의 방식을 고집할 것인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해외 유망주에게도 눈을 돌릴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어느 베테랑 감독은 “우리 배구가 국제 대회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보다는 새로운 핏줄의 문호 개방이 먼저”라고 했다. 지금 여러 나라는 대표팀을 위해 귀화를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래도 필요한 우리 선수들을 위한 무대
아시아 쿼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양한 부분에서 조금 더 정교하게 규정들을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 우선 참가 대상국의 범위는 확대해야 한다. 해외시장 개척과 전력 균형 유지, 새로운 흥미 유발 등을 고려한다면 더 용감할수록 좋다. 연봉도 올려야 한다. 토종 선수와의 어느 정도의 차이는 인정하겠지만,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곤란하다. 당사자들은 의욕을 잃을 것이고 지원자의 숫자도 줄어들 것이다. 공정성에도 문제가 된다. 외국인 선수들에게만 국적에 따라 차별을 준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에이스급 선수들에게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아시아 쿼터 선수들의 등장으로 피해를 받는 토종 선수들은 분명 나올 것이다. 이들에게 뛸 기회를 주는 방법도 찾아내야 한다. 투자 대비 효율성을 따지는 구단은 2군 리그 출범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렇다면 구단에 추가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토종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다른 방안은 없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런 고민의 결과를 보여줘야 아시아 쿼터는 팬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사진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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