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자신이 세운 기록을 넘어선 이수황이지만, 그는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다. 대신 함께 고생한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수황은 대한항공에서 주로 원 포인트 서버로 활약하는 선수다. 범실 없이 목적타를 구사하는 능력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그의 본 포지션은 미들블로커지만, 시즌 중에 그가 미들블로커로 나서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대한항공은 김규민과 김민재를 필두로 조재영, 진지위까지 버티고 있는, 미들블로커 선수층이 매우 두터운 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2023 구미·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에서 이수황은 미들블로커로 많은 시간을 뛰고 있다. 김규민과 김민재는 대표팀에 가 있고, 진지위는 팀 사정상 아포짓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재영과 함께 대한항공의 중앙을 지탱하고 있는 이수황은 10일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KB손해보험과의 남자부 조별리그 A조 예선 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18점을 올린 이준에 이어 팀 내 두 번째로 많은 15점을 올렸다. 이는 이수황의 한 경기 최다 득점 신기록이다(종전 기록: 12점 – 2015년 12월 1일 VS 한국전력).
경기 후 인터뷰실을 찾은 이수황은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새로 쓴 걸 알았냐는 질문에 “오, 경기를 치를 동안은 전혀 몰랐다”며 웃음을 지었다. 승리 및 준결승 진출 소감으로는 “처음에 몸이 좀 무거운 느낌을 받았는데, 동료들이 잘 도와준 덕에 경기를 잘 풀어간 것 같다. 팀원들한테 잘 묻어간 듯하다”며 겸손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한항공은 대회 내내 미들블로커들을 활용한 다양한 전술을 가동하고 있다. 이수황은 진지위와 동시에 전위에 올라갔을 때 동시에 A-B속공을 뜨면서 상대를 교란시키고 있고, 조재영은 이동공격까지 구사하고 있다. 미들블로커들의 다양한 변칙 전술에 대해 이수황은 “우리 팀은 리시브가 워낙 좋다보니까 다양한 패턴 플레이가 가능하다. (유)광우 형도 상황을 잘 만들어준다”며 그것들이 가능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덧붙여 “이동공격 같은 경우는 연습 때 미들블로커들끼리 다 시도를 해봤는데, 내가 제일 못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심지어 본 포지션이 미들블로커인 진지위는 아예 포지션을 옮겨 아포짓으로 뛰고 있는 상황이다. 이수황은 “(진)지위에게는 미안하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포지션이 따로 있는데 팀을 위해 다른 포지션에서 뛰고 있고, 또 그 자리에서 실수를 하면 미안함도 많이 느끼고 있더라.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며 진지위를 격려했다. 본인도 아포짓으로 뛰어볼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는 “나는 아예 밀려났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은 많은 기회를 받고 있고 또 그 기회를 잘 살리고 있는 이수황이지만, 시즌에 돌입하면 결국 또 다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리그에서도 더 많이 경기에 나서기 위해 무얼 보강하고 싶냐는 질문에 이수황은 “블로킹을 좀 더 잡을 줄 알아야 한다. 또 우리 팀은 빠른 배구를 하는 팀이니까 그 과정에서 나오는 범실도 줄여야 하고, 연결도 늘어야 한다. 전반적으로 한 두 단계 이상은 올라서야 주전 경쟁에 뛰어들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이 발전해야 할 부분들을 객관적으로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이수황에게 남은 대회에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공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목표다. 대한항공은 이런 배구를 하는 팀이구나 하는 걸 보여주고 싶다. 얼마 전에 농구팀이 나오는 영화 <리바운드>를 봤는데, 그 영화에 나오는 팀 같은 느낌을 보여주고 싶다”고 씩씩하게 답했다.
인터뷰에서 보여준 이수황의 겸손함과 유쾌함을 보며 그가 왜 지난 10시즌 간 주목받는 위치는 아니었을지라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선수 생활을 이어왔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과거의 자신을 넘어선 이수황이 이제는 리그에서도 2023년 8월 10일의 자신을 넘어서는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사진_구미/김희수 기자,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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