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말로만' 한국전력을 원하나

이광준 / 기사승인 : 2019-03-20 0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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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파이크=이광준 기자] V-리그 남자부 한국전력 연고지 문제로 배구계가 뜨겁다. 기존의 수원시, 그리고 새로 광주광역시(이하 광주시)에서 뛰어들며 논란이 커졌다. 한국전력은 수원시와 2006년부터 시작해 총 열두 시즌을 함께 보냈다. 이 둘의 연고지 계약은 3년 기간을 마치고 오는 4월 말 종료된다.


3년 전, 한국전력과 수원시가 재계약을 할 당시에도 지금과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2015년 말 한국전력 본사가 전라남도 나주시에 위치한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로 이전했다. 본사 이전과 함께 배구단도 이전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당시 한창 시즌 중이던 한국전력은 안팎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느라고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한국전력은 기존 수원시와 재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재계약 때가 다가오자 광주시는 또 한 번 연고지 이전을 주장하고 나섰다.


논란 있던 3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광주시는 2016년부터 꾸준히, 정기적으로 ‘한국전력 배구단 광주시 유치’를 주장했다. 이용섭 광주시장, 정순애 광주시의원, 천정배 민주평화당 광주 서구을 국회의원도 나섰다. 그야말로 여기저기서 강력하게 배구단 유치 의지를 보였다. 3년 전에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기필코 한국전력을 광주시로 데려오겠다는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3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건 없다.


공식적인 제안서는 나오지 않은 채 의지 표명만 있었다. 또 구단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만한 여건 조성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어떤 준비나 계획은 전혀 없었다. ‘일단 와라’ 식으로 강력하게 주장만 할 뿐이었다.


광주시 측은 현재 배구단과 공식적인 접촉은 단 한 차례만 가졌다. 지난 2월 말 광주시 측에서 서울시 한국전력 배구단 프런트를 방문한 이후로 아직까지 진전이 없다.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공식적인 제안서를 한국배구연맹(KOVO)에 제출하는 등 실질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구두’로 의지를 표현했을 뿐이다.


광주시에서 말하는 배구단 유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전력 본사가 전라도로 이전을 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현재 V-리그 배구단이 대부분 수도권에 몰려 있기 때문에, 배구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적으로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광주시에서 내놓은 일련의 주장은 배구단 유치 명분으로 내세울만 하다. V-리그를 위해서는 분명 필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엄연히 프로 구단이다. 그 명분을 위해 한국전력이 희생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프로 팀이 연고지를 정할 때는 대의명분도 좋지만 경기장 시설, 교통, 선수단 이동거리, 인구 밀집도 등과 같은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는게 당연한 수순이다. 즉, 더 좋은 경기력을 낼 수 있고 더 많은 팬들을 확보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다면 구단 측에서 이전을 자연스럽게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광주시는 이런 여건 마련에는 아직까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미 알려진 대로 광주시 측은 한국전력이 이전할 경우를 위한 세부적인 계획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 당장 오는 7월 중순(12일~28일)에는 광주시에서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이 때문에 올해 체육관 활용이 불가능한 상황. 광주시 측은 이에 대한 대비도 전혀 되어있지 않다.


현재 한국전력 배구단 숙소는 경기도 의왕시에 있다. 연고지를 광주시로 옮길 경우 한국전력 선수들은 한 시즌 서른여섯 경기를 원정으로 치르는 셈이다. ‘다른 스포츠도 오랜 시간 이동한다’라는 건 역시나 의미가 없다. 한국전력은 더 가까운 수원시로 가면 굳이 긴 이동 시간을 감내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3년 동안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는 점이다. 광주시는 의지만 드러냈을 뿐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 한국전력을 광주시로 데려오고자 했다면 3년 동안 어떤 대책을 세워야 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 때문에 3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한국전력이 굳이 광주시로 이전해야 할 필요성은 찾을 수 없다.



선수도 프런트도 ‘난감’한 한국전력


한국전력 구단 프런트, 선수단 모두 이번 논란에 대해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공정배 한국전력 단장은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할 건 선수들의 경기력이다. 구단주 역시 선수단 경기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광주시에서 제안한 점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한국전력 주장 서재덕은 3년 전 논란이 있었을 때도 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더스파이크>는 시즌을 마친 그와 지난 18일 짧은 통화로 이번 사건에 대해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서재덕은 “아무래도 많이들 신경 쓰고 있다. 3년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선수들은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힘들 수밖에 없다”라며 “올 시즌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시즌 더 악착같이 해야 한다. 그런데 광주시에서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짜고짜 연고지를 옮기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연고지가 바뀔 경우 선수들도 할 일이 많다. 당장 가족들과 살 곳을 찾아봐야 한다. 가까운 곳에 클럽하우스가 생긴다고 해도 그 결정이 나고 공사를 진행하기까지는 공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선수들은 한 시즌을 또 원정 경기처럼 치러야 하는 부담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광주시 “제안서 이번 주 내로 제출할 예정”


광주시 체육진흥과의 한 관계자는 지난 18일 <더스파이크>와 통화에서 “이번 주 말까지 제안서를 낼 예정이다. 현재 시민 만여 명을 대상으로 서명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이것이 되는 시기에 맞춰 직접 방문해 제안서를 내겠다”라고 말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다가올 시즌은 광주시에서 경기를 하는 게 실질적으로 어렵다. 이 관계자는 “그 문제도 알고 있다. 방법을 찾아 다가올 시즌부터 곧바로 광주시에서 경기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실질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외에 클럽하우스, 이동거리 극복 등에 대한 대책 역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여러 매체를 통해 확실한 의지표현을 한 것과 달리, 현재까지 그 어떤 것도 결정된 건 없었다. 한국전력에겐 이미 수원시라는 좋은 파트너가 있다. 현재 고심 중인 ‘200억’ 수준의 클럽하우스 건립지도 수원시 인근 지역을 물색 중이다. 광주시가 정말로 한국전력을 원한다면 수원시에 준하는 조건들을 갖추고 이야기를 해야 한국전력에서도 고민을 해볼 여지가 생길 것이다. 지금과 같은 태도는 그저 논란만 더 키울 뿐이다.


사진_더스파이크 DB(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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