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가 만드는 선한 영향력, 서울배구클럽

이광준 / 기사승인 : 2018-06-20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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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주말 나들이의 유혹을 떨쳐내고 실내체육관에 모이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배구가 전하는 긍정의 힘을 믿는 이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언남중학교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서울배구클럽을 찾았다.



서울배구클럽은 2011년 5월 창단해 올해로 7주년을 맞이했다. 기존 다른 배구 동호회에서 운동해오던 회원들이 청년부 위주로 독립해 만든 새로운 클럽이다. 우여곡절도 많았으나 이제 서울배구클럽은 아마추어 배구대회 우승을 휩쓸 만큼 탄탄한 동호회로 성장했다. 지난 3월 출전했던 제4회 안성한우배 남·여9인제 배구대회에서는 2개 부문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배구



서울배구클럽(회장 김희성)의 철학은 명확하다. ‘나만을 위한 배구’가 아닌 ‘세상을 향한 배구’. 이곳, 서울배구클럽에는 배구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서울배구클럽은 품격 있는 배구를 추구합니다. 배구를 통해 사회에 선한 기운을 전하고 싶어요. 동호회 활동을 통해 생활체육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승재(43) 부회장은 서울배구클럽이 체육관을 빌려 쓰고 있는 언남중학교의 체육교사다. 2011년 서울배구클럽의 창립 멤버로 시작해 동호회를 이끌어왔다. 육상 선수 출신인 그는 2002년 교사 임용 이후 배구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국가대표 세터 출신 엄세창(76) 감독에게 배구를 배우기 시작해 어느덧 16년 구력의 베테랑 동호인이 됐다. “동호회 회원들 중에 교사가 많아요. 학교 현장에서 스포츠클럽 리그를 지도하는 선생님들도 많고요.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신사적입니다.”



서울배구클럽은 교육자들이 모인 동호회인 만큼 배구를 통해 어떤 교육적 가치를 끌어낼 수 있는지에 관심이 많다. “저희가 즐기는 것도 좋지만 좀 더 큰 가치를 지향하며 운동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배구를 좋아하면, 배구에 재능 있는 학생들을 양성하는 데 도움이 되잖아요. 배구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게 저희 목표입니다.”



이 부회장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배구를 대했다. 서울배구클럽은 자체 엠블럼과 로고를 만들어 단체복에 활용하고 있다. “막걸리 마시며 설렁설렁하는 배구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프로는 아니지만 그만큼의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자는 의미에서 보이는 것도 신경 쓰고 있어요.”



그는 최근 장애인 체육을 어떻게 아마추어 배구와 접할 것인지 고민하는 중이다. “저희 대관 시간 앞에 장애인 청소년들이 농구를 배우고 있어요. 배구도 이런 시도들이 많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교사로서 생각할 게 많습니다.”


배구를 통한 사제동행



동호회의 이런 방향성 덕분에 서울배구클럽에는 사제관계의 회원들이 존재한다. 서울여상에서 체육교사와 학생으로 인연을 맺은 조원석(35) 사무국장과 주현정(19) 씨가 주인공이다. 조 사무국장이 유난히 배구를 좋아하던 학생들에게 동호회를 소개했다. 점심시간만 되면 선생님에게 배구공을 빌려 놀던 현정 씨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서울배구클럽에 가입했다.



“고등학교에서 3년 내내 배구대회를 했어요. 대회에 나갔다가 배구에 흥미를 느끼게 됐죠. 배구는 제게 ‘놀이’같아요. 지금은 초보라 열심히 기초 훈련만 하고 있지만 배구하는 게 정말 즐거워요.” 조 사무국장도 옆에서 거들었다. “선생님과 함께 운동하는 것이 제자들에겐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그래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나서서 운동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합니다.”



함께 호흡하는 프로 출신 코치



GS칼텍스와 흥국생명 소속으로 V-리그에서 활약했던 나혜원(32) 선수. 프로선수 시절 그의 팬이 소개한 아마추어 배구는 이제 삶의 한 부분이 됐다. 현역 시절부터 맺은 인연으로 재능기부 차원에서 서울배구클럽의 운동을 돕고 있다. 그는 프로선수일 때부터 생활체육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운동을 도와왔다. 당시에는 단순히 연습 게임을 하고 동작을 알려주는 것에서 그쳤다면 지금은 ‘코치’라는 이름을 달고 함께 동호회 생활을 하고 있다.



“엘리트 선수 출신으로서 웃으며 즐겁게 운동하는 아마추어들을 보면 정말 신기해요. 실력도 대단하고요. 배구를 이렇게 사랑할 수 있고, 배구에 열정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아직도 놀라요. ‘배구에 미친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프로 은퇴 후 체육교사로 일하고 있는 그에게 아마추어 배구는 큰 자극제다. “제가 선수로서 해왔던 배구와는 다르기 때문에 많은 깨달음을 얻고 가요. 지도자의 입장에서 배구를 새롭게 바라보면 선수 때 얻었던 성취감과는 다른 새로운 기쁨을 느껴요. 매번 새롭고, 재밌습니다.”


일과 취미의 공존, 배구로 힐링하기



여러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운동인 배구는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홍순길(46) 부회장은 16년 전 돌파구가 필요한 순간 배구를 만났다. 주말에 배구를 하며 흘리는 땀이 한 주를 건강하게 나는 그의 비결이다. 그는 배구를 통해 더 즐겁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과 취미의 공존이 주는 행복감을 만끽중인 홍 부회장이다.



“초등학생 때 잠시 배구를 배우긴 했지만 직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배구를 잊고 살았어요. 사회 초년생 때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조직의 위계질서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당시만 해도 회사 내 질서가 군대같이 엄격했거든요. 주중에는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주말에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도구가 필요했어요. 그때 배구를 시작했죠. 이제는 배구가 곧 힐링입니다.”



홍 부회장은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1학년 두 딸의 아빠다. 날씨 좋은 주말에는 가족들도 아빠와 함께 나들이를 떠나고 싶어 하지만 동호회 부회장직을 맡은 이상 연습에 빠질 수는 없다. “이제 가족들이 토요일은 제가 배구하는 날이라는 걸 다 받아들였어요. 가족들과 토요일을 같이 못 보내는 대신 평일과 일요일에는 가정에 충실하려 해요. 동호회에 나와서 운동하는 게 스트레스 해소라는 걸 가족들도 아니까요.”



단체운동이 주는 자극



인생을 젊게 살려고 노력하는 홍 부회장에게 동호회 회원들은 큰 자극제가 된다. “나이가 40대 중반이 되다 보니 사회에서 어울리는 사람들도 모두 제 또래가 되었어요. 동호회 활동을 하며 좋은 점은 어린 친구들과 호흡할 수 있다는 거죠.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거리낌 없이 함께 운동하고 어울린다는 게 매력적입니다.”



이제 그는 자신이 받았던 위로를 젊은 동료들에게 되돌려주는 중이다. 코칭스태프는 아니지만 동호회 활동을 오래한 만큼 신입 회원들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젊은 시절에는 센터 공격수를 맡았지만 이제는 뒤에서 묵묵히 공을 받아내며 헌신하고 있다. 짧은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다시 공을 올리기 위해 달려가는 그에게서 동호회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고향 누나가 알려준 배구의 매력



김대선(46) 고문은 취미로 배구를 시작한지 23년 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그가 배구에 빠진 건 ‘옆 학교 출신 누나’ 덕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옆 학교인 광주여상에 배구부가 있었어요.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55)이 당시에 실업리그에서 뛰고 있었는데 광주여상 출신이더군요. 동향에다 옆 학교 출신인 ‘고향 누나’를 보며 자연스럽게 배구팬이 됐죠. 박미희 감독 덕분에 배구가 참 멋진 종목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배구를 취미로 삼은 것은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면서부터다. “고향을 떠나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주말에 집에 있는 게 허무하더라고요. 외롭기도 하고요. 마침 현수막에서 배구 동호회 회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봤어요. 그게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김 고문은 동호회 배구가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이 참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초창기엔 4~5명이 운동하던 때도 있었어요. 지금은 생활 체육 저변이 확대되어 젊은 친구들도 많이 찾아와요. 참여도도 높고 대회 성적도 좋고요.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정말 감사한 일이죠. 청년들이 즐겁게 운동할 수 있도록 유연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활체육인들을 위한 배려



오랜 세월 생활체육인으로 살아온 김 고문은 아마추어 배구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배구를 하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배구협회가 아마추어 배구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정책적으로 뒷받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젊은 친구들이 배구를 하다가 다치면 재정적으로 부담이 커서 몇 개월 동안 운동을 못하거든요. 이런 생활체육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단이나 협회에서 팀 단위로 보험을 들어주는 등의 방책을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부상에 대해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해요.”



동호회 실무를 맡고 있는 조원석 사무국장은 운동 공간 확보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배드민턴 클럽의 수가 많다보니 대부분의 학교 체육관은 배드민턴 클럽이 잡고 있어요. 배구 클럽은 시간 활용이나 대관이 쉽지 않아요. 운동 장소나 여건을 확보하는 게 실무자로서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회원들의 열정을 넘치는데 제반 환경이 받쳐주지 못하는 게 아쉽죠.”


배구도 좋고 사람은 더 좋아



동호회에서 막내 급인 이승주(25) 씨는 건국대 체육교육과 배구 동아리에서 처음 배구를 배운 후 이제는 서울배구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졸업 전에는 대학 동아리와 동호회 활동을 병행하며 일주일 내내 배구공을 잡기도 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배구를 하니까 어울려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배구를 배우게 됐어요. 이제는 배구 자체의 매력을 알게 됐죠. 제가 더 발전할수록 배구가 재밌게 느껴져요.”



그는 동호회 사람들에 대한 진한 애정을 표했다. “서울배구클럽은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인천, 일산에서도 운동하러 매주 양재까지 오세요. 동호회에 매력이 없다면, 배구가 재미없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까요?”




배구의 힘을 믿는다



여러 배구인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배구는 단체 운동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종목. 그래서 더욱 함께 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서울배구클럽 구성원들이 보여준 서로에 대한 신뢰,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굳건한 철학이 있기에 오늘도 배구로 연결된 이 세상이 조금 더 건강해지리라 믿는다.


글/ 권소담 기자


사진/ 홍기웅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6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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