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오기 마련이다. 그 슬럼프를 어떻게 어느 시기에 극복하냐가 중요하다.
KB손해보험 김정호는 지난 시즌 기량이 만개했다. 공격 3위(성공률 54.73%), 서브 7위 등 공격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다. 노우모리 케이타와 함께 팀을 10년 만에 봄배구로 이끌면서 완벽한 주전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지난 시즌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앞서면서 정신이 육체를 지배했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몸까지 말썽이었다. 김정호는 “사실 몸상태는 괜찮았는데 군문제, FA 등 생각이 너무 많으니까 안 움직이게 되더라”라고 했다.
시즌 개막 세 경기째. 김정호는 한 자릿수 득점에 머물렀다. 첫 경기에서는 교체로 코트를 드나들었다. 직전 삼성화재전에서는 아예 명단에서 빠졌다. 김정호는 “지난 시즌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이다 보니 코트 안에서 작아지더라. 주변에서 나를 좋지 않기 보는 시선도 힘들었다”라고 털어놨다.
제 모습을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김정호는 3일 대한항공과 경기서 13점, 공격 성공률 63.13%로 활약했다. 필요한 순간 특유의 서브와 빠른 스윙으로 득점을 뽑아냈고, KB손해보험은 대한항공을 잡고 3연패 탈출에 성공했다.
주변 도움이 컸다. 후인정 감독은 김정호에서 몇 경기 쉬어갈 것을 권유했다. 동료들도 김정호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케이타와 (정)민수 형이 ‘네가 흔들리면 팀이 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도와줄 테니까 믿고 뛰어보자. 안되는 걸 신경 쓰지 말고, 같이 뛰면 좋은 경기 할 수 있다’라면서 위로해줬다”라고 했다.
특히 케이타는 김정호에게 “나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선수다. 작년도, 올해도 정호 형이 있었기에 점수를 낼 수 있었다”라며 믿음을 보였다.
지금껏 해왔던 걱정이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김정호는 “그 말들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내가 했던 안 좋은 생각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느꼈다”라고 말했다.
극복법도 스스로 찾았다. 홀로 산책에 나서면서 음악을 들었다. 마음을 위로받은 노래는 노라조의 ‘형.’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라는 가사를 읊은 김정호는 “노래를 들으면서 혼자 많이 걸었다. 생각이 비워지더라”라고 이야기했다.
지난 시즌과 달라진 점. 리베로 정민수가 복귀했고, 윙스파이커 홍상혁이 이번 시즌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다. 후인정 감독은 김정호를 배려해 수비 비중을 줄이면서 공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김정호 생각은 달랐다.
그는 “누구 한 명이 수비에 치중하고, 공격하는 것보다는 둘이서 함께 공격과 수비 모두를 해야 한다. 그래야 각자 값어치도 올라가고, 서로 짐을 덜어줄 수 있다”라며 책임감을 보였다.
사진_의정부/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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