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11일 흥국생명-IBK기업은행 5R 후폭풍과 5일 만에 나온 KOVO의 공문.

김종건 / 기사승인 : 2023-02-20 08: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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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팀 감독 경질 요구하며 구단에 조화를 보내고 팩스 테러를 하는 극성 팬덤, 그들은

 

11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벌어졌던 흥국생명-IBK기업은행 5라운드의 파장이 한참을 갔다.

1위를 눈앞에 뒀던 흥국생명이 IBK기업은행에 1-3으로 무기력하게 졌는데 다음날부터 3세트 도중 발생한 사건을 놓고 한국배구연맹(KOVO)의 게시판이 뜨거웠다. 이들은 상대 팀 선수에게 화를 낸 김호철 감독과 이런 상황을 만든 심판을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김연경을 교주처럼 떠받드는 이들이 앞장섰다. KOVO에만 항의한 것이 아니다. IBK기업은행도 공격대상이었다. 서울 을지로의 은행 본점에 근조화환을, 사무실에는 항의 팩스를 쉴새 없이 보냈다. 요즘 V-리그는 이처럼 극성 팬덤이 걸핏하면 근조화환과 시위 트럭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다.

 

이들이 왜 김호철 감독을 공격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그날 경기를 되돌아봐야 한다.

3세트 7-4로 흥국생명이 앞선 상황에서 사건이 시작됐다. 세터 이솔아가 랠리 도중 패스한 동작이 애매했다. 반대편 코트의 김연경이 더블 콘택트 반칙을 주장했다. 두 팔을 옆으로 치켜드는 동작을 했지만, 주심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IBK기업은행이 득점했다. 이후 김연경이 계속 어필을 하는 장면이 중계방송 화면에 나오고 경기는 진행됐다. IBK기업은행이 또 득점하자 흥국생명 벤치는 타임아웃을 요청했다. 이때 캐스터가 김연경 선수가 격앙된 표정으로 어필했다고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방송 화면은 흥국생명의 벤치 모습을 보여줬다. 이때 김연경의 입 모양을 보면 어떤 말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경기가 재개되기 전에 한유미 해설위원은 두 팀 모두 침착해야 할 것 같다. 김연경도 옐레나도 모두 감정적으로 경기를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전에 김연경 선수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김호철 감독이 한마디를 했고 김연경 선수는 감독님에게 한 게 아닌데 왜 저한테 그러시냐는 내용 같다고 상황을 추가 설명했다. 방송 화면에는 주심이 두 팀의 주장에게 얘기하고 김호철 감독도 주심에게 가까이 가서 뭐라고 한 것이 전부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김연경의 팬들은 일제히 김호철 감독을 공격했다. 이는 2년 전 GS칼텍스-흥국생명 경기 도중 김연경이 네트를 잡아끄는 행동을 놓고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를 기억나게 했다. 당시 김연경은 경기 도중 공을 바닥에 팽개쳤고 블로킹을 당한 뒤 네트를 잡아당겼다. 그 행동이 문제가 있다고 걸고넘어졌던 GS칼텍스 차상현 감독은 지금껏 김연경 팬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김연경은 상대를 존중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며 나중에 사과했지만, 사건은 묘하게 흘렀다. 열흘이 넘게 배구판을 달구는 뜨거운 이유가 되더니 엉뚱하게도 녹취와 심판의 회유가 등장한 뒤 경기운영본부장이 사퇴했다.

 

 

11일 경기의 방송 화면만 본다면 김호철 감독은 상대 팀 선수에게 화를 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경기 뒤 김호철 감독은 당사자 모두의 얘기를 들을 수 없어서 지금 여기서 말을 하면 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둘 다 문제가 있었다며 취재진에게 양해를 구했다. 김연경을 따르는 이들은 집요하게 당시 상황을 김호철 감독의 잘못으로만 몰아갔다.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지만 이들은 걸핏하면 김연경 주변 사람들 모두를 공격대상으로 여긴다. 그 바람에 쌍둥이 자매는 2년째 괴롭힘을 받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김연경에게 공을 잘 올려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세터 김다솔이 비난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는 그의 남자친구 SNS에도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도쿄올림픽 4강 뒤 귀국 기자회견 때는 사회자가 공격을 받았다. 그 바람에 그는 1년간 일자리를 잃었다. 이때도 가족의 SNS까지 찾아내 저주의 말을 퍼부을 정도로 그들은 통제 불능이다. 응원과 집착을 넘어서 때로는 광기에 가깝다.

 

졸지에 김연경 팬들의 타도대상이 된 김호철 감독은 당시의 상황에 입을 열었다.

그는 김연경이 어필을 하면서 불경스러운 동작을 했고 욕도 했다. 그래서 그것을 지적했을 뿐이라고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팔을 벌려서 손을 위로 치켜드는 동작은 유럽에서는 좋지 않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와 함께 욕을 하면 퇴장을 시키는데 김연경은 이 동작을 하면서 여러 나라 언어로 욕을 했다. 우리 팀의 산타나도 그 욕을 알아듣고 깜짝 놀랐다. 나는 김연경에게 너 같은 스타 선수가 욕을 하면 되느냐고 말했고 심판에게도 욕을 했으니, 경고가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짧은 영상에는 김호철 감독이 왼팔을 치켜들며 심판에게 다가가는 장면이 있다. 김연경의 팬들은 이 장면이 김연경을 향해 도발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날 이후 난처한 쪽은 KOVO였다. 흥국생명이 이 문제를 놓고 KOVO에 항의 공문을 보낸다는 소문이 돌았다. IBK기업은행도 대응을 준비했다. 당시 김연경의 행동이 담긴 영상을 찾았다. 두 구단 사이에 낀 KOVO는 눈치만 봤다. 결국 KOVO16원활한 경기 운영을 위해 감독 코치 선수들이 불필요한 언행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며 이번 사안을 조용히 정리했다. 5일 만에 나온 후속 조치였다. 어떤 징계도 없었다. 김연경을 따르는 팬덤은 이 사실에 또 분노했겠지만, KOVO는 여기서 논란을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사실 이날 가장 큰 문제를 만든 이들은 심판진이었다. 두 팀 선수단이 흥분하고 격앙된 말이 오고 갔다면 어떤 형태라도 경고를 했어야 좋았는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러는 바람에 두 팀 모두 흥분했고, 관중과 시청자에게 보여주지 않아야 할 장면을 보여주고 말았다.

 

김연경의 팬덤이 IBK기업은행과 김호철 감독에게 공격용 좌표를 찍은 가운데 그들에 동조하는 극소수의 언론도 등장했다. 한쪽의 일방적인 목소리만 담은 내용에 IBK기업은행은 불만이 많았지만, 싸워봐야 이득이 없다고 판단해 입을 다물기로 했다. 대신 극성 팬덤의 비상식적인 행동에는 법률적인 대응 방법을 찾아봤다. 은행 본사에 놓인 조화는 구단이 마음대로 치울 수 없어 구청에 철거를 요청했다. 구단의 업무를 방해할 목적으로 보내는 팩스는 발신 번호를 추적해야 하는데, 경찰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동안 V-리그는 이런 행동에 현명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애써 외면했다. 이번에는 딱 이틀간 IBK기업은행을 향해 집중적인 공격을 하고는 잠잠해졌다. 극성 팬덤이 주도하는 비이성적인 행동은 이미 도를 넘었다. 많은 배구 관계자들도 이 문제를 안다. 단호한 해결 방법을 외면하는 가운데 이들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황당하게도 이들은 자신들이 떠받드는 선수로부터 공식 팬클럽이라는 인정도 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익명에 숨어서 기회만 되면 힘을 과시한다. 이번 시즌 뒤 선수 생활을 접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 위원을 꿈꾼다는 김연경에게도 이들의 존재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동안의 행태로 봐서는 은퇴를 막으려고 무슨 짓이라도 할 기세다. 배구 커뮤니티에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과연 김연경이 배구계를 떠나면 이들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사진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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