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느닷없이 등장한 흥국생명 로테이션 논쟁의 이면

김종건 / 기사승인 : 2023-01-09 08: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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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영역으로 받아 들여졌던 로테이션이 갑자기 논쟁의 중심으로 등장한 배경은

 

요즘 로테이션 논란이 배구계의 핫이슈다.

로테이션은 코트의 6명이 시계 방향으로 한 자리씩 이동하며 자기 코트 가장 오른쪽 자리의 선수가 서브를 넣는 것을 말한다. 야구의 타순과 비슷하다. 골수팬이 아니라면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로테이션은 그동안 감독의 작전과 전술의 영역으로 인식됐다. 12일 느닷없이 권순찬 감독을 경질한 흥국생명 덕분에 많은 이들은 배구의 로테이션을 강제로 공부하게 됐다.

 

자기 팀 코트의 가장 오른쪽 자리를 기준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세터(S) 아웃사이드히터(OH) 미들블로커(MB) 아포짓 스파이커(OPP), 아웃사이드히터(OH), 미들블로커/리베로(MB/Li)가 위치하는 것이 로테이션의 기본이다. 우리 팀이 득점하면 계속 서브권을 보유해 연속 서브가 가능하다. 실점하면 서브를 넘겨주고 시계 방향으로 한 칸씩 옮긴다.

 


감독은 기준인 세터의 출발을 어느 자리에서 시작하느냐와 전·후위 ⓶⓹, ⓷⓺ 위치에 어느 선수를 투입하느냐에 따라 상대의 블로킹에 어떻게 대비하고 어떤 공격을 하겠다는 전술을 짠다. 로테이션에 변화를 줬다면 감독이 특정한 게임 플랜을 준비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흥국생명 권순찬 감독이 화두를 던졌다. 그가 선택한 로테이션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세터의 오른쪽 OH는 주로 공격 능력이 좋은 선수를 세웠지만, 그는 다른 선택을 했다.

 

이번 시즌 흥국생명이 사용해온 기본 로테이션은 김다솔(S) 김다은/김미연(OH) 김나희(MB) 옐레나(OPP) 김연경(OH) 이주아(MB) 순서다. 김연경과 옐레나가 쌍쌍으로 돌아간다. 3라운드까지 치른 18경기에서 이 로테이션으로 42세트를 따냈고 22세트를 졌다. 승률 64%.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도 이 방식을 사용한다. 허수봉(OPP)오레올(OH)을 나란히 붙여서 돌린다. 번은 전광인(OH)이다. 반면 대한항공은 정지석(OH) 곽승석(OH)이다. 이처럼 감독의 판단과 팀플레이의 특성에 따라 선수들의 위치가 정해진다.

 


권순찬 감독의 로테이션이 불만스러운 사람들도 나왔다. 이들은 김연경과 엘레나가 쌍쌍으로 움직이면 후위에 두 사람이 있을 때 연속 실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흥국생명이 가장 득점하기 어려운 자리는 전위에 김미연(OH) 김나희(MB), 김다솔(S)이 있을 때다. 그렇지만 어느 팀도 로테이션이 돌아가다 보면 득점이 힘든 자리는 나온다.

 

흥국생명의 쌍쌍 로테이션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옐레나에게 공격이 몰리고 김연경에게는 공이 자주 가지 않는 현상을 지적한다. 3라운드까지 옐레나는 825번의 공격을 시도해 363차례를 성공(성공률 44%)시켰다. 김연경은 670차례 공격 시도, 315차례 성공(성공률 47.01%)을 기록했다. 보통은 주 공격수에게 세터의 패스가 더 자주 가지만, 오직 김연경 중심으로만 경기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3라운드까지의 결과가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배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꾸준히 이 로테이션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공교롭게도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상황도 나왔다. 3라운드 흥국생명-도로공사의 인천경기였다. 흥국생명은 1,2세트를 기존의 로테이션으로 시작했지만 연달아 패했다.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이 특별히 준비한 수비와 블로킹 전술이 효과를 봤다. 1세트 김연경은 2득점에 그쳤다. 도로공사 정대영은 1~2세트에만 7개의 블로킹을 잡았다. 흥국생명의 공격을 도로공사의 수비가 잘 막았다.

 

권순찬 감독은 3세트부터 OH 김연경과 김미연의 위치를 맞바꿨다. 그 결과 김다솔(S) 김연경(OH) 김나희(MB) 옐레나(OPP) 김미연(OH) 이주아 (MB) 순서로 로테이션이 돌았다. 김연경과 옐레나를 분리한 변화는 통했다. 25-19로 쉽게 반격했다. 옐레나가 8득점으로 살아났다. 4세트도 마찬가지였다. 김연경과 옐레나가 11득점을 합작하며 26-24로 이겼다. 5세트는 전위 번 자리에서 김연경을 출발시키는 로테이션으로 나섰다. 김연경이 전위에서 옐레나가 후위에서 공격하고 쉽게 득점하는 장면이 많아졌다. 15-8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은 “1,2세트 좋은 흐름이던 경기가 바뀐 것은 상대의 로테이션 변화가 아니라 김연경이 우리 수비의 빈틈을 찾아내서 공격을 잘했기 때문이다. 한곳이 무너지자 다른 곳도 빈틈이 생겼다고 했다. 권순찬 감독은 상대의 블로킹이 낮은 곳, 세터 앞에서 공격하도록 김연경의 자리를 바꿔줬더니 경기가 잘 풀렸다고 경기를 복기했다.

 

그 로테이션은 GS칼텍스와의 3라운드에서 또 등장했다. 이번에도 상황은 같았다.

김연경과 옐레나가 쌍쌍으로 이동하는 로테이션으로 1,2세트를 내줬다. 3,4세트는 두 사람을 분리한 로테이션으로 전환했다. 여기까지는 도로공사 경기의 데자뷔였지만 5세트가 문제였다. 권순찬 감독은 1,2 세트의 로테이션을 또 선택했다. 통상적으로 이전 세트를 이기면 다음 세트의 로테이션은 그대로 유지하는데 권 감독은 아니었다. 경기 결과는 GS칼텍스의 15-8 일방적인 승리.

 

 

권순찬 감독은 우리가 사용하는 로테이션은 블로킹과 수비를 먼저 생각한다. 김미연이 들어가면 블로킹이 낮아져 마주 돌아가는 상대의 외국인 선수에게 쉽게 뚫린다. 블로킹을 높이려고 김연경과 옐레나를 나란히 붙여서 돌린다. 만일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더 공격적인 방법으로 김미연과 김연경의 자리를 맞바꾼다. (GS칼텍스전 5세트에) 김연경과 옐레나를 붙여서 돌린 것은 상대의 외국인 선수 모마를 막기 위해서였다. 보통 5세트는 외국인 선수에게 공격이 몰린다. 이를 예상해서 로테이션을 원위치했다. 이번에는 GS칼텍스에서 강소휘가 우리 세터 김다솔 앞에서 공격을 쉽게 했다. 그 바람에 계산 착오가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그 경기 이후 감독의 로테이션을 향한 비난은 더 거세졌다.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기사도 나왔다. 어느 기자는 친절하게도 그 기사를 권순찬 감독에게 카톡으로 보내줬다. 그 뜻을 알 수는 없지만, 권순찬 감독은 가까운 이들에게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런 가운데 구단도 움직였다. SNS에서 들끓던 팬들의 거부반응을 근거로 감독에게 로테이션에 관한 얘기를 했다. 이를 어떤 방식으로 어떤 목소리로 했느냐에 따라 조언도 참견도 강요도 된다. 이는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1229일 현대건설과의 경기가 열렸다. 권순찬 감독은 평소의 로테이션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경기 뒤 사흘 만에 그는 경질됐다. 그 이유를 모두가 궁금해 하는 가운데 구단은 서로의 방향성이 달라서라고 했다. 15GS칼텍스와의 4라운드를 앞두고 흥국생명의 새 단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 자리에서 로테이션 얘기가 느닷없이 등장했다. 감독 교체의 타당성을 설득하는 근거로 로테이션 얘기가 나왔다. 물론 반응은 좋지 못했다. 일단 취재진을 설득하지 못했다. “구단의 중요 정책이 유튜버나 배구 커뮤니티에서 떠드는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냐는 질문에 새 단장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황당한 일은 또 있다. 그토록 권순찬 감독을 비난했던 사람들이 감독 교체 이후 문제의 로테이션을 구단의 지시라면서 비난의 화살을 구단으로 돌려버렸다. 팬들은 그럴 수 있다. 비난도 의견 제시도 그들의 권리다. 게다가 자신의 얘기에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반면 구단은 다르다. 행동과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 흥국생명은 여기서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로테이션 논란의 마무리는 5일 경기를 끝으로 팀을 떠나겠다고 폭탄 선언한 이영수 감독 대행이 했다. 그는 보란 듯이 비난을 받아왔던 로테이션으로 승리했다. 흥국생명은 5세트 6-6에서 후위에 김연경과 옐레나가 함께 있는 상황에서 연속 5득점 하며 승기를 잡았다. 이영수 감독 대행은 “(김연경과 옐레나를 분리하는 로테이션 얘기가) 팬클럽, 배구계 등 어디서 나오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여태까지 연습한 결과 (두 사람이 붙어서 도는 방식) 제일 좋은 포지션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8IBK기업은행과의 경기에서도 문제의 쌍쌍 로테이션은 또 등장했다.

 

김대경 감독 대행이 지휘를 맡은 경기에서도 번 위치에는 김미연이 번 위치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결장한 김연경을 대신한 김다은이 투입됐다. 그래서 옐레나와 김다은이 쌍쌍으로 돌았다. 결과는 흥국생명의 세트스코어 3-1 승리였다. 그동안 권순찬 감독의 로테이션을 비난해왔던 이들은 최근의 결과와 로테이션 관련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훈수꾼이 아무리 떠들어도 전문가들은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서 경기를 준비한다. 흥국생명 선수들 가운데 누구도 이 로테이션에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일 것이다. 자칭 전문가라는 이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와 이들에게 동조한 사람들 때문에 지금 흥국생명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 속에 빠졌다. 그 해결 방법을 어떻게 찾을지 궁금하다.

 

사진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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