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배구연맹이 주관하는 2022 AVC컵 여자부에서 일본이 우승을 차지했다.
8월 29일 필리핀에서 끝난 결승전에서 일본은 중국을 세트스코어 3-1(25-23 25-21 19-25 25-16)로 이겼다. 두 팀 모두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국가대표 1진을 제외한 가운데 대표 2진이 힘을 겨뤘다. 일본은 대회에서 6전 전승의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했다. 일본은 올해 U-18, U-20 대회에서도 각각 중국을 누르고 우승했다. 이들이 성장해서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우리 배구의 앞날은 더 걱정스럽다.
이번 대회는 세계 랭킹 포인트가 부여되지 않았다. 아시아배구연맹(AVC)은 내년부터 격년제에서 해마다 대회를 개최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우승팀에게 FIVB(국제배구연맹) 챌린지컵 출전권도 주기로 했다. 2024년 이후 VNL 잔류 여부가 걱정스러운 우리로서는 앞으로 AVC컵 대회의 성적이 중요할 수도 있다. 선수 층이 탄탄한 일본과 중국은 어느 대회에 출전해도 상위권이지만, 선수 층이 얇은 우리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우리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4전 전패, 9위로 순위를 마쳤다. A조에 속해 중국, 이란, 베트남 필리핀을 상대로 한 세트도 따내지 못했다. 총 12세트를 치르는 동안 20점을 넘긴 적도 없었다. 중국에게는 각각 9, 8, 9점을 뽑았다. 사실상 상대 팀과 제대로 경기가 되지 않을 정도의 큰 실력 차이였다. A조 최하위였던 우리 대표팀은 상대인 B조가 4개 팀밖에 출전하지 않아서 자동으로 9위가 됐다.
아쉬운 결과지만 더 슬픈 것은 누구도 이번 여자 대표팀이 어떻게 구성됐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선수단을 파견한 대한배구협회는 대회 종료가 한참 지났지만, AVC컵 출전 대표 선수 명단을 아직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았다. 협회는 우리 대표팀과 중국의 첫 경기가 열리던 21일에서야 그것도 순천 KOVO컵 남자부 경기가 막 시작한 오후 2시께 대표팀 구성 사실을 알렸다. 왜 일요일 오후에 ‘여자배구 국가대표 후보 선수 팀 2022 AVC컵 여자대회 참가’라는 제목의 이메일 보도자료를 보내면서 대표팀 명단을 알렸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선수 층이 워낙 허약한 우리 사정 탓에 대표팀을 복수로 구성할 수 없는 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이미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국가대표 후보 16명의 차출을 놓고 V리그 팀과 힘겨운 실랑이를 해왔던 배구협회였다. 사실 특별한 대안도 없었다. 누구도 이 부분을 지적하지 않지만, 협회는 프로 구단과 합의했던 대표팀 소집 규정을 스스로 깨뜨렸다. 프로 구단 단장들과 합의한 협약에 따르면 대표 선수의 일반 국제 대회 차출 기간은 20일, 세계선수권대회는 25일, 올림픽은 40일이다. 그 이상은 프로 팀에서 선수를 보내주지 않아도 징계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협회는 무리수를 뒀다. VNL에서 여자대표팀이 12연패를 하자 8월 1일 대표선수들을 차출했다. 세계선수권대회는 9월 23일부터 시작된다. 규정대로라면 8월 말 소집이 맞다. 당연히 한국배구연맹(KOVO)은 반대했다. 협회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기에 대표팀을 구성해서 훈련에 들어갔지만, 계획이 틀어졌다.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러자 추가로 발탁한 대표선수들의 프로 소속 팀에서 버텼다. 법대로 해도 밀릴 것이 없었다. 결국 양측은 순천 KOVO컵을 마친 뒤 합류하는 것으로 적당한 선에서 합의했다.
이런 상황에서 AVC컵 출전을 위해 프로 팀에 또 선수 차출을 요구하기는 어려웠다. 프로 팀이 ‘KOVO컵 기간에만 대표팀 선수의 출전을 허용해달라’던 요청을 협회가 거부한 터였다. 지금은 프로 팀도 선수가 모자라 훈련이 어렵다고 아우성을 치는 상황이었다. 모두 선수 숫자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다. 대표 2진에 선수를 보내줄 프로 팀이 없자 배구협회가 찾아낸 차선책이 고등학생의 출전이었다. 물론 이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 반발해 각 팀의 주전을 뽑지 못했다. U-18, U-20 대회에 출전했던 선수들이 대거 빠진 채 국가대표팀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협회는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여자대표팀 파견을 포기한 적이 있다. 당시 도쿄올림픽을 마치자마자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예정됐는데 도저히 대표팀을 구성할 여력이 없었다. 협회는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계약을 끝나는 라바리니 감독을 대신해서 아시아선수권대회만 맡아줄 아르바이트 감독을 공모하는 등 대표팀 구성을 추진했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결국 대회 출전을 포기했다. 다행히 대회는 연기됐다.
지난해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중요한 변수였다. 남자대표팀은 출전을 결정했지만, 백신이 문제였다. 미 접종자가 대부분인 선수들을 한창 코로나19로 난리가 난 일본으로 보낼 프로 구단은 없었다. 무사히 대회를 마쳐도 2주간의 자가격리가 필요했다. 시즌을 코앞에 두고 이런 위험을 감수할 구단은 없다. 협회는 대한체육회를 통해 대표선수들만이라도 백신을 먼저 맞는 방법을 찾았다. 끝내 방법은 없었다. 결국 백신 접종을 완료한 상무가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그 대회에서 4강에 오르지 못하면서 남자대표팀의 세계 랭킹은 급추락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세계 랭킹 포인트는 없지만, 대회를 포기하기는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대한배구협회의 표현대로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고등학생 선수들로 구성된 국가대표’였다. 역대 대표팀 가운데 최연소 팀이 꾸려졌다. 12명의 대표 선수 가운데 고교 3학년은 황지민(OPP·중앙여고), 고서현(OH·제천여고), 임혜림(MB·세화여고) 등 3명, 2학년은 최호선(OPP·일신여상), 도혜리(OPP·중앙여고), 류혜선, 김세율(이상 OH·일신여상), 이다혜(MB·일신여상), 이윤신(S·중앙여고) 최영혜(S·제천여고), 유가람(L·제천여고) 등 8명, 1학년은 오나영(MB·선명여고) 1명이었다. 김동천 감독과 지경희 코치가 어린 선수들을 다독이며 대회를 무사히 마쳤다. 김 감독은 현재 대한배구협회 선수위원회 간사 겸 유소년분과위원회 위원이다.
이들 어린 선수들은 대표팀 소집부터, 훈련 과정, 대회를 마칠 때까지 관심을 받지 못했다. 마치 유령처럼 취급을 받았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자랑일 수도 있는 대표팀이었지만 고생한 이들에게 누구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지 않았다. 매스컴도 무관심했다. 좋지 못한 성적은 체급이 다른 팀과 경기를 하게 만든 어른들의 잘못이었다. 그 바람에 어린 꿈나무 선수들은 패배의 쓰라림만 간직하고 돌아왔다. 여자 고등학교 17개 팀 196명, 대학 5개 팀 67명, 실업 4개 팀 38명에 7개의 프로 팀 112명 등 총 413명의 빈약한 선수 층과 기형적인 구조를 갖춘 우리 여자 배구의 현실이 만든 서글픈 이야기다.
사진 A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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