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크죠. 그러나 끝나고 나서 준우승이 오히려 잘 된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021-2022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은 V-리그 역대 최고의 명승부로 손꼽힐 정도로 치열했다. 대한항공과 KB손해보험은 5세트 8번의 듀스를 거듭했고, 대한항공이 결국 5세트 23-21로 승리하며 2년 연속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석권 및 V3 역사를 쓰는 데 성공했다.
대한항공의 벽을 넘지 못한 KB손해보험은 그 어느 시즌보다 아쉬움이 크다. KB손해보험은 3차전 5세트 14-13 챔피언십 포인트 상황까지 갔으나 경험의 한계를 느껴야 했다. 또한 노우모리 케이타(등록명 케이타)에 의한, 케이타에 위한 공격만이 이어지다 보니 정지석-링컨 윌리엄스(등록명 링컨) 쌍포가 버틴 대한항공을 넘을 수 없었다. 결국 많은 어려움을 느꼈고, 경기에서 패했다.
그래도 KB손해보험의 올 시즌은 특별했다. 창단 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2위 성적을 거둬 플레이오프 직행에 성공했고, 또 첫 챔프전 진출과 함께 첫 챔프전 승리도 챙겼다. KB손해보험에서 프로 감독 첫 시즌을 맞이한 후인정 감독의 데뷔 첫 시즌도 실패한 시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최근 <더스파이크>와 이야기를 나눈 후인정 감독은 "많은 분들이 좋은 성적 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올 시즌 성적은 내가 낸 게 아니다. 다 선수들 덕분이다. 선수들이 고맙다"라고 운을 뗐다.
말을 이어간 후 감독은 "성적은 나도 열심히 해야 되지만 구단, 선수, 프런트가 하나가 되어야 이룰 수 있는 거다. 프로는 결국 돈이다. 지원이 없으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좋은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한다. 성적 내야 하는데 돈을 쓰지 않는다? 그러면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힘들다. 올 시즌에는 회사에서 많은 지원을 해줬다. 사무국에서도 선수들을 잘 챙겨줬다"라고 덧붙였다.
프로 감독 데뷔 시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면 하나의 역사가 쓰일 수도 있었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도 부임 두 번째 시즌에 챔프전 우승을 챙겼고, OK저축은행에 두 번의 우승을 안겨줬던 前 김세진 감독(現 KBSN스포츠 해설위원)도 부임 두 번째 시즌에 우승을 안았다. 국내 감독 최초 V-리그 데뷔 시즌 우승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도 있었다.
후 감독은 "물론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끝나고 나서 준우승이 오히려 잘 된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승을 하면 다음 시즌에 무조건 우승을 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생긴다. 그러나 준우승이면 우승이라는 목표가 생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 다시 달려가겠다"라고 미소 지었다.
많은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던 3차전 승부가 끝나고, 선수들에게 해준 말은 무엇일까. 모든 선수들이 그날 경기가 끝나고 많은 아쉬움과 눈물을 보였고, 특히 케이타는 코트에 주저앉은 채 한동안 일어서지 못하며 KB손해보험 팬들의 마음을 가슴 아프게 했다.
후인정 감독은 "3차전 끝나고, 인터뷰도 다 마무리하고 와서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말해줬다. ‘준우승도 잘 한 거니, 경기장 나갈 때 당당하게 나가자’라고 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힘들었을 거다. 우승컵 받을 자격이 있지만, 결과는 준우승이지 않냐. 많이 힘들었을 거라 본다"라고 힘줘 말했다.
승패를 떠나 챔프전 3차전 5세트에 보여준 선수들의 투혼과 의지는 후인정 감독과 많은 배구 팬들에게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후 감독도 "내가 지금까지 봤던 경기 중에 원탑으로 뽑을 수 있을 만큼 재밌었다. 지도하는 나도 심장이 쫄깃쫄깃한데, 보시는 분들은 얼마나 재밌었을지"라고 웃으며 "난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진 이유는 경험 때문이다. 그날 기자회견에서도 말했지만 대한항공은 챔프전을 많이 치러봤고, 우리는 처음이었다.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진짜 어느 누가 알았겠나. 정지석 선수가 그렇게 때릴 줄"이라고 연신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다음 시즌이 중요하다. 케이타의 거취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국내 선수들의 기량 향상이 중요한 다음 시즌이다. 챔프전 3차전에서도 케이타를 제외하면 단 한 명의 국내 선수도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국내 선수들의 힘이 커진다면 다음 시즌도 반란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후인정 감독은 "현 멤버 구상이라면 윙스파이커 활약이 중요하다. 또 시즌 전에 트레이드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그건 여러 상황을 봐야 한다"라며 "박진우, 김홍정 선수를 지금 더 끌어올리는 건 무리다. 그저 잘 버텨주기만 하면 좋을 것 같다. 이제 양희준 선수가 올 시즌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라고 희망했다.
KB손해보험과 함께 아름다운 시즌을 만든 후인정 감독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더스파이크> 5월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진_수원/홍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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