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MVP나 신인왕이 한 팀에서 나온 건 한 번 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이 두 번째였으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후인정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KB손해보험은 창단 후 정규리그 최고 성적을 거뒀다. 19승 17패(승점 62점)을 기록하며 1위 대한항공(승점 70점)에 이어 2위로 정규리그를 마무리했다. KB손해보험은 V-리그 출범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따는 데 성공했다.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부임 첫해 KB손해보험 선수들과 일을 낸 후인정 감독은 물론이고 KB손해보험 일원 전부가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세터 황택의가 물오른 기량을 보였고, 김정호-한성정도 든든하게 윙스파이커 라인을 지켰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리베로 정민수는 여전했다.
그래도 이 선수가 없었다면 KB손해보험의 대활약도 없었을 거라는 게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다. 바로 말리 출신 아포짓 스파이커 노우모리 케이타(등록명 케이타)다. 케이타는 지난 시즌보다 더 농익은 기량으로 V-리그를 평정했다.
일단 기록부터가 모두를 놀라게 한다. 케이타는 36경기(142세트)에 출전해 1,285점, 공격 성공률 55.51%, 세트당 서브 0.768개를 기록했다. 세 개 부문 모두 1위에 해당되는 기록이다. 특히 1,285점은 OK금융그룹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가 2014-2015시즌 삼성화재 시절 세운 1,282점을 뛰어넘는 역대 한 시즌 최다 득점 신기록이다.
언제나 기대감을 갖게 하는 플레이로 보는 팬들을 설레게 만든 케이타였다. 화끈한 세리머니, 파워풀한 공격과 서브, 몸을 날려 공을 살려내는 집중력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강력한 MVP 1순위 후보다.
시즌 중반, 주장 김홍정이 부상으로 빠졌을 때 박진우와 그 공백을 훌륭하게 메운 신인 미들블로커 양희준은 후인정 감독이 올 시즌 뽑은 최고의 수확 중 한 명이다.
한양대 출신으로 지난해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순위 지명을 통해 KB손해보험에 입단한 양희준은 지난 1월 8일 4라운드 현대캐피탈전에서 프로 데뷔전을 가졌다. 전반기까지는 KB손해보험 내에서 불리는 '상비군'에서 김진만 코치와 함께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프로 데뷔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비군에서 흘린 땀의 열매는 달콤했다. 케이타와 마찬가지로 흥 넘치고, 든든한 중앙 지배력을 보여줬다. 2월 12일 한국전력전에서는 개인 최다 12점을 올리는 등 후인정 감독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렸다. 속공 타이밍, 센스가 좋다. 양희준은 16경기(56세트)에 출전해 89점, 속공 성공률 57%(8위)를 기록했다.
현재 케이타와 양희준은 각각 강력한 MVP, 신인왕 후보 중 한 명이다. 케이타의 경쟁 상대로는 대한항공 한선수와 곽승석, 우리카드 나경복이 거론되고 있으며 양희준은 OK금융그룹 박승수와 함께 신인왕 경쟁을 펼치고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후인정 감독은 자신의 팀에 속한 제자들이 MVP와 신인왕을 모두 받길 바란다.
후인정 감독은 지난 14일 우리카드전 종료 후에 "케이타가 MVP를 받는다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올 시즌 케이타가 케이타 했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또한 지난 30일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한국전력전을 마친 후 후인정 감독은 "올 시즌 수확은 양희준 선수다. 상비군에서 열심히 훈련을 해서 올라왔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선수다. 계속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다. 팀을 운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말을 이어간 후인정 감독은 "희준이가 신인왕을 받았으면 좋겠다. 솔직히 MVP와 신인왕이 한 팀에서 나온 건 지금까지 딱 한 번 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 기회다. 부탁드린다"라고 적극 홍보했다. 2005-2006시즌에 흥국생명이 신인왕과 MVP를 모두 석권했는데, 이때 두 상을 모두 탄 선수가 바로 김연경이다.
보통 V-리그 MVP는 정규리그 1위 팀에서 배출된다. 물론 팀이 2위에 오르고도 MVP를 수상한 사례는 있다. 2016-2017시즌 현대캐피탈 문성민이 그 유일한 예다. 당시 현대캐피탈은 2위에 머물렀지만, 문성민은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케이타가 MVP를 받는다면 두 번째로 2위 팀에서 나온 MVP가 된다. KB손해보험은 정규리그 1위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정규리그에서 가장 돋보인 선수가 케이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2005년 하현용(LG화재)-2009년 황동일(LIG손해보험)-2017년 황택의 이후 끊긴 KB손해보험 출신 신인왕 명맥을 양희준이 이을 수 있을지도 기대를 모은다. 박승수보다 경기 출전(16-31)은 적지만 팀 성적도 낫고, 보여준 임팩트도 강하기에 충분히 기대를 모은다. 원년 신인왕 하현용(3라운드 1순위) 이후 두 번째 非 1라운더 신인왕이 나올 수도 있다.
정규리그는 끝났다. 어떤 선수가 MVP를 받고, 어떤 샛별이 신인왕을 탈지는 오는 4월 18일에 알 수 있다. 후인정 감독의 깨알 홍보가 통할지도 기대를 모은다.
한편, V-리그 정규리그는 30일 KB손해보험과 한국전력의 경기를 끝으로 모두 마무리됐다. 한국전력이 KB손해보험을 3-1로 제압하며 가까스로 봄배구 기차에 탑승했다. 한국전력은 승점 56점(20승 16패)으로, 3위 우리카드(승점 59점)와 승점 차를 3점으로 좁혔다.
4월 1일 서울장충체육관에서 우리카드와 한국전력의 준플레이오프 단판 승부가 펼쳐진다. 이 경기 승자는 3일 의정부로 이동해 KB손해보험과 플레이오프 단판 승부를 가진다.
사진_의정부/유용우 기자, 더스파이크 DB(홍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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