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춤은 도쿄에서’ 김연경의 꿈은 이뤄질까

서영욱 기자 / 기사승인 : 2021-07-16 23: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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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배구 여제’ 김연경(33)에게 채워지지 않은 2%로 불리는 무대다. 3개국 리그 파이널 우승, 4개국 리그 정규시즌 우승, 4개국 리그 MVP, 3개국 리그 득점왕, 2개국 리그 공격상을 수상할 만큼 가지지 못한 트로피와 메달이 없다. 그러나 그녀에게 올림픽 메달은 좀처럼 잡히지 않은 신기루와 같았다. 이제 마지막 기회다. 나이가 찼다. 세 번째 올림픽에 나선다. 2021년 도쿄올림픽이다. 발리볼 네이션스리그(VNL)에서 한 달간 예열을 마쳤다.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배구계 메시’ 탄생
김연경은 9년 전 생애 처음으로 출전했던 런던올림픽을 기점으로 세계 여자 배구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탄생했다. 당시 대회 8경기에서 총 207점을 기록해 올림픽 여자배구 득점왕을 차지했다. 득점 부문 2위 미국의 데스티니 후커(161점)를 46점차로 크게 따돌렸다.

특히 한국은 4위에 그쳤지만, 보통 우승팀에서 나오는 MVP를 수상했다.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올림픽 여자배구 역사상 한국 선수가 MVP를 수상한 것은 처음이었다. 세계 대회에서도 1973년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컵에서 조혜정 이후 39년 만에 한국에서 MVP가 나온 것이었다. ‘여자배구계 메시’라는 별명은 이때 얻었다.

김연경이 MVP를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리베로 못지않은 수비력 덕분이었다. 올림픽 MVP는 득점 기술과 함께 리시브와 디그 등 비득점 기술과 팀 기여도까지 감안해 대회조직위원회가 선정한다. 김연경은 현재 192cm의 큰 신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원곡중 3학년 때까지 신장이 1m 70cm 미만에 불과해 리베로를 담당했다. 그때 터득한 수비력을 유지해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올림픽 무대에서 ‘월드 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김연경은 올림픽 메달을 목전에 두고 미끄러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일본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세트스코어 0대3으로 분패한 뒤 부모님과 두 언니의 격려 문자에 눈물을 쏟기도 했다. 김연경은 “세계적인 공격수로 인정을 받은 건 정말 기쁜 일이지만 우리가 메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가장 아쉬운 경기는 역시 일본과 벌인 3~4위전. 1세트 21-21로 팽팽한 상황에서 일본의 사코다가 의도적으로 블로커 터치아웃을 노렸는데 한국 선수들의 손에 맞지 않았다. 헌데 주심은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이 국제대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김연경은 “아무래도 일본전이 가장 아쉬웠다. 32년 만에 4강에 올랐는데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더 준비하고 노력했어야 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게 아쉬움이 남는다”고 회상했다.


최고의 몸 상태, 걸크러시 ‘식빵 언니’ 탄생
2016년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FIVB는 한국 팀을 이렇게 평가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인 김연경이 한국 배구를 한 단계 더 높여 놓았다”던 김형실 전 런던올림픽 여자배구대표팀 감독의 말을 두고 ‘한국은 리우올림픽에서 4년 전 감독의 말을 입증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런던 대회에서 라이벌 일본에 당했던 패배를 치유할 희망이 보인다’고 했다.

그 희망의 불을 밝힐 스타로 김연경을 주목했다. FIVB는 김연경을 ‘단언컨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며 엄지를 세웠다. 당시 네덜란드대표팀 사령탑이자 터키리그 바키프방크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지오바니 구이데티 감독도 FIVB를 통해 “김연경 같은 선수를 30년 동안 본 적이 없다”고 극찬했다.

바키프방크에서 구이데티 감독을 보좌했던 여자배구계 최고의 수석코치로 평가되는 페르하트 아크바쉬도 자신의 베스트 7에 김연경을 뽑을 정도. 놀라운 건 자신이 한 번도 지도하지 않았던 김연경을 포함시켰다는 것만으로도 김연경의 위상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김연경의 기량은 4년 전보다 훨씬 발전돼 있었다. ‘원숙미’가 느껴졌다. 터키리그 페네르바체 소속으로 신장이 큰 유럽 선수들 위에서 때리는 스파이크, 정교한 리시브와 디그 능력으로 유럽 무대도 평정해버렸다. 왜 그녀가 연봉 20억원 이상으로 ‘세계 배구계 연봉 퀸’이 됐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들 인정하는 대표팀 ‘캡틴’이 됐다. 4년 전에는 막내급이었다면, 이젠 후배들이 더 많아졌다.



사실 리우올림픽은 김연경이 원하던 올림픽 메달 획득에 더 가깝게 근접할 수 있었던 대회였다. 런던 대회에선 외로웠다. 사실상 팀 공격을 홀로 책임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외롭지 않았다. 후배들도 물오른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들블로커 양효진을 비롯해 윙스파이커 박정아와 아포짓 스파이커 김희진 등도 국제 경쟁력이 괜찮은 편이었다.

4년 전 아픔은 씻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숙적 일본을 세트스코어 3대1로 꺾었다. 조별리그를 무사히 통과했지만, 한국은 토너먼트 8강전에서 네덜란드에 세트스코어 1대3으로 패했다. 그렇게 김연경의 두 번째 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모두가 허탈했다. 모두가 고개 숙였고, 우는 선수도 있었다. 그 가운데서 중심을 잡고 눈물을 닦아준 이는 김연경이었다. 마음은 누구 못지않게 쓰라렸겠지만 차분하게, 정신을 차리고 모두를 다독였다. 김연경은 “결국 경험의 문제다. 런던올림픽의 경험 여부 차이가 상당히 컸던 것 같다”고 짚었다. 이어 “어린 선수들이 와서 공격력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결국 안정적인 면이 부족했다. 기복 있는 경기가 많았다”며 “각자가 생각하고 노력해야 한다.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국내 경기에 만족하지 말고 안 된 부분을 좀 더 성장해나가려고 각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쉬움과 달리 김연경은 ‘식빵 언니’로 재탄생했다. 세계에서 가장 배구를 잘하는 여자선수가 한국선수인 데다 ‘걸크러시’ 매력을 뿜어내자 여기에 반한 여성 팬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경기 중 강한 승부욕에 내뱉는 욕도 ‘식빵’으로 미화될 정도로 김연경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농구황제의 ‘라스트 댄스’처럼…쉽지 않은 현실
최근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라스트 댄스’를 정주행했다. 슈퍼스타도 ‘처음’과 ‘끝’이 있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조던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김연경이 떠올랐다. 김연경도 태극마크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 끝은 도쿄올림픽이다. 5년 전 “자신의 인생을 시계에 비유한다면 몇 시 정도 됐을 것 같냐”는 질문에 김연경은 “오후 1시”라고 답한 적이 있다. 이젠 그녀의 대표팀 시계는 오후 10시 정도 됐을 것이다. 도쿄올림픽 이후 16년간 단 태극마크를 내려놓는다.

사실 5년 사이 김연경의 선수 생활 그래프는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타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10년 만에 V-리그로 돌아온 것도 코로나19 영향이 컸지만, 기량이 더 떨어지기 전에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국내에 돌아와 뛰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도 영향을 끼쳤다. 그래도 명불허전이었다. V-리그 2020-2021시즌 공격종합 1위(45.92%), 오픈 공격 1위(44.48%), 서브 1위(세트당 평균 0.277개) 등 모든 공격부문 상위권을 차지했다. 다만 과거만큼 파괴력 넘치는 해결능력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면서도 선수 생활 중 가장 큰 부상을 안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올림픽 아시아예선에서 복근이 찢어졌다. 그러나 진통제를 맞고 맹활약하며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그만큼 마지막 올림픽 출전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던 김연경이었다.

한국 여자배구팀은 김연경의 ‘라스트 댄스’에 희망을 걸어봐야 한다. 하지만 모의고사 성적이 좋지 않았다. 지난 2021 VNL에서 3승 12패를 기록, 16팀 중 15위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체력안배를 위해 김연경이 휴식을 취한 경기도 있었고, 강소휘(GS칼텍스), 김희진, 김수지(이상 IBK기업은행) 등 국제대회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부상과 수술로 인해 대거 이탈해 전력이 약화된 상태라고 해도 리우올림픽 때보다 선수들의 국제 경쟁력은 뚝 떨어진 모습이었다. 상대의 높은 블로킹을 조직력으로 뚫지 못했다. 김연경도 반성모드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경기도 자주 하지 못하고, 훈련도 부족했던 것이 결국 결과로 드러났다.” 이어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고 진단하며 “도쿄올림픽을 대비해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연경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 선수 중 가장 많은 196점(전체 11위)을 올리며 고군분투했지만 대표팀은 여전히 많은 숙제를 안고 있어 메달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도쿄올림픽에서 같은 조에 편성된 라이벌 일본, 남미 강호 브라질과 도미니카공화국에 세트스코어 0대3 셧아웃 패배를 당했다는 것. 한국 여자배구는 도쿄올림픽에서 일본, 세르비아, 브라질, 도미니카공화국, 케냐와 A조에 편성됐다. 다행히 세르비아를 상대로 이기긴 했다. 그러나 당시 세르비아는 당시 1.5군급 선수들이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세터와 공격수들의 호흡이 대회 후반으로 갈수록 안정됐다는 것이다. 남은 기간 적극적으로 소통하면 조직력은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소영(KGC인삼공사)과 박정아가 김연경에게 쏠리는 공격을 분산시켜줘야 한다. 최대 숙제다. 런던 때도, 리우 때도 경기를 복기해보면 김연경에게 공격이 몰렸다. 세터들의 적절한 공격 분배도 필요하다. 또 김다인, 정지윤, 이다현(이상 현대건설), 박은진(KGC인삼공사) 등 어린 선수들이 소중한 경험을 쌓은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김수지와 김희진까지 더해 최종엔트리 12명을 추린 라바리니호는 20일 일본으로 출국한다. ‘라스트 캡틴’의 ‘라스트 댄스’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글. 김진회 스포츠조선 기자
사진. FIVB, 더스파이크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7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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