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한 소통의 리더십, KB손해보험 후인정 감독 [이정원의 발리볼데이트]

이정원 기자 / 기사승인 : 2022-05-05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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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과 행복한 배구를 꿈꾼다!

KB손해보험 후인정 감독은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는 쓴소리보다는 온화한 말 한 마디로 선수들의 잠재력, 선수들의 정신을 깨우는 지도자다. 올 시즌 KB손해보험의 돌풍을 이끌며 구단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안긴 후인정 감독. 이제 프로 감독 첫 발을 내디뎠지만 V-리그 남자부에 신선한 바람을 안겨준 그가 배구인들의 배구 인생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이정원의 발리볼데이트’ 다섯 번째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역대급 챔프전 승부를 마무리한 후 더 바쁜 비시즌을 보낸다는 후인정 감독과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삼성화재 만난다 하면, 전날 밤 잠도 못 잤죠”
“첫 우승할 때는 눈물 안 날 줄 알았는데…”
Q. 후인정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배구 팬은 없습니다. 선수 시절 본인을 회상해 본다면요.
처음에는 배구를 아예 몰랐죠. 그저 아버지(후국기 씨)가 하는 모습을 봐 왔고, 그냥 막연히 ‘이걸 내가 해야 되는구나’ 이런 상황이었어요. 그때는 농구나 배구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아버지가 하는 모습을 봐왔기에 배구를 택했죠. 그런데 중·고등학교 때는 너무 힘들더라고요. 하기 싫어 도망도 갔어요. 그러다 경기대 진학하고 정신을 차렸어요. 진짜 열심히 했어요. 어느 정도 기량을 끌어올리다 보니 좋은 실업팀에 갔죠. 그때도 열심히 했는데 삼성화재라는 좋은 팀이 생기고, 삼성화재에 좋은 선수가 많이 가면서 계속 준우승에 머물렀잖아요. 그때 조금 위기가 왔어요.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현대자동차라는 좋은 팀에 왔는데 선수 생활하면서 우승 한 번 못 하고 은퇴하는 거 아니냐’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

그러다 김호철 감독님이 현대에 오시면서 제게도 새로운 인생이 열렸죠. 실업에서 프로로 바뀌는 과정이 있었고, 대학 때 차오르던 열정이 다시 생기더라고요. 예전에 한 번 말한 적이 있는데 김호철 감독님 오시고 나서 일본 전지훈련을 간 적이 있어요. 근데 저를 안 데리고 갔어요. 그때 제가 에이스고 주장이어서 당연히 갈 줄 알았는데, 몸이 안 되어 있고 운동을 안 했다는 이유로 감독님이 데리고 가지 않았어요. 자존심이 상했는데(웃음), 그 계기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제2의 전성기도 맞은 것 같고요.

Q. 다른 팀들의 제의도 많았을 텐데 현대자동차에 입단한 이유가 있을까요.
전 구단에서 제의가 왔어요. 삼성화재도 제의가 왔었고요. 그러나 삼성화재에는 같은 포지션인 김세진 선배가 있다 보니 생각을 안 했어요. 그리고 대학교 3학년 말에 이미 현대랑 가계약이 되어 있었어요. (신)진식이도 같이 현대를 가기로 했었는데, 마지막에 틀어져서 삼성화재로 가게 됐죠.

Q. 현대자동차에 입단한 후 우승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잖아요. 좌절감도 컸을 것 같습니다.

좌절보다는 노이로제가 왔어요. 현대 입단 3~4년차까지는 괜찮았는데 5년차 되니까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다른 팀이랑 경기할 때는 괜찮았는데 다음날 삼성화재랑 경기 있다고 하면 전날부터 잠이 안 와요. 너무 긴장되니까 잠도 안 오고, 그렇게 몇 년을 고생했던 것 같아요.

Q. 2005-2006시즌 통합 우승을 차지한 후 펑펑 우는 모습이 지금도 회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때는 어떤 감정이었나요.
현대 입단 10년 만에 우승을 한 거잖아요. 저는 솔직히 안 울 줄 알았어요. 지금은 눈물이 많은데, 그때는 없었거든요(웃음). 기자분들 오셔서 인터뷰하고, 챔프전 우승 확정되면 울리는 ‘We Are The Champions’ 나오고, 옆에서 다들 축하한다고 하니까 참았던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저도 눈이 모르게 빨개졌어요. 우승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이었죠.

Q. 김세진, 신진식 등 내로라하는 공격수들과 함께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과의 추억을 떠올려 본다면요.
그때 선수층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91, 92, 93학번 선수층이 정말 좋았어요. 신진식, GS칼텍스 차상현 감독, 한국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이 제 동기에요. 그리고 위에 (김)세진이 형, (김)상우 형, (이)호 형, (박)희상이 형, (임)도헌이 형 등 대단한 선수들이 많았어요. 지금도 물론 좋지만 그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Q. 한 팀에서는 뛰지 못해도 대표팀에서 함께 활약을 했잖아요. 배운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함께 해서 좋았어요. 저는 선수들에게 항상 ‘열심히 해서 대표팀에 가라’라고 이야기합니다. 팀에서 같은 선수들이랑 매일 하는 것보다 대표팀에 가서 타팀 선수들이랑 한 번 하는 게 더 실력이 금방 늘어요. 저는 우리 선수들이 국가대표 욕심을 갖길 바라요. 진짜 두 배 이상으로 실력이 늘어요. 성인 대표, 유니버시아드 등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라면 무조건 갔으면 좋겠어요.

Q. 국가대표로 뛰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많죠. 1995년에 월드리그를 나갔는데 6강까지 들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남자 배구가 6강 드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그때 대표팀 최선참이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님, 인하대 최천식 감독님이 계셨죠. 그리고 그해 1995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 나가서 금메달을 땄고요. 그래도 기억에 남는 순간을 뽑으라고 하면 2006년에 도하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순간이겠죠.

Q. 만약 아버지의 한국 귀화 찬성이 아니었다면, 지금 뭘 하고 있었을까요.
은퇴를 더 빨리했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선수 생활할 때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선수들이 31살, 32살이면 은퇴를 했어요. 다들 입버릇으로 ‘이제 은퇴하고 회사 들어가야겠다’라고 말했어요. 저도 ‘31살 되면 은퇴하고 회사 가야지’라는 생각이었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때는 좋은 선수들이 워낙 많았어요. 밑에서 치고 올라오니 형들이 못 버티고 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 뛰고 있는 37살, 38살 선수들은 대단한 거예요.

근데 베테랑 선수들이 대단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밑에 있는 선수들이 못 올라온다는 이야기잖아요. 물론 어린 선수들이 열심히 해주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남자 배구가 더 살려면 초·중·고·대학교 선수들이 더 올라와야 해요. 언제 확 꺾일지 모르잖아요. 걱정입니다.


“김호철 감독님은 고마운 스승님”
“선수라면 자기 관리 철저해야”

Q. 감독님께서는 현역 시절 사이드 블로킹의 일인자로 정평이 났습니다. 케이타 선수도 감독님을 만나 블로킹 실력이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평을 들었고요. 현역 시절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선수는 누구였나요.
케이타는 아직 멀었죠(웃음). 막기 힘들었던 선수는 신진식이죠. 공격 폼도 특이했고, 워낙 공격을 잘 했어요. 정말 막기 힘들었어요.

Q. 김호철 감독님은 우승을 안겨준 팀이고, 신영철 감독님은 새로운 선수 인생의 꽃을 피우게 해 준 분입니다. 두 감독님은 감독님에게 어떤 스승님인가요.
그전에도 많은 스승님, 지도자님에게 배웠지만 늘 ‘기억에 남는 지도자가 누구인가요’라고 저에게 물어보면 항상 제 답은 같습니다. 김호철 감독님. 제게 우승을 안겨주셨고, 배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셨어요. 김호철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우승도 못했고, 그렇게까지 길게 선수 생활을 못 했을 거라 생각해요. 신영철 감독님은 제가 현대에 나오고 나서 5개월 정도 쉬고 있을 때였나, 연락을 주셨어요. ‘선수 생활 더 하고 싶냐’라고 물어보셨어요. 그때 제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선수들과 땀 흘리며 운동만 하게 해달라’라고 했어요. 신영철 감독님 덕분에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됐죠.

Q. 41살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어떤 노력이 있었나요.
크게 어려운 건 없었어요.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절제를 할 줄 알았고, 스스로 관리도 잘 했고, 무엇보다 큰 부상이 없었죠. 술은 조금 했는데, 담배는 잘 안 폈어요. 끊었다가 김호철 감독님 부임하면서 잠깐 다시 피긴 했지만(웃음) 바로 다시 끊었죠. 저는 선수들에게도 이야기를 해요. ‘나는 술, 담배 가지고 뭐라 안 한다. 지킬건만 지켜라. 너희는 공인이다. 얼굴 알아봐 주시는 팬들이 계시니, 행동을 조심하라’라고 해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선수들에게 합니다. 웜업존에 있는 것을 창피해하지 말라고요. 팀에서는 그 선수가 필요하니까 계약 해지를 안 하고 데리고 있는 거예요. 경기 뛰고, 안 뛰고를 떠나 팀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저도 한국전력에 있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웜업존에서 보내야 했어요. 밖에서 상황을 보다가 코치님들에게 가서 ‘이런 상황에서 이런 걸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만큼 선수들이 경기를 뛰고 싶다는 열망, 표현을 해야 해요. 베테랑이라고 해서 숨어 있는 게 아니라 맨 앞에 나와서 응원해 주고 파이팅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그게 프로죠. 현대캐피탈 여오현 (플레잉)코치도 웜업존에 있다가 세트 중반 잠깐 들어가는 거뿐인데, 정말 열심히 뛰고 나오잖아요. 그런 모습이 필요한 거예요. 한국전력 박철우, 현대캐피탈 문성민 선수도 정말 열심히 하고요. 그래야 밑에 선수들이 따라 올라와요.

Q. 한국전력 트레이닝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으셨나요.
선수들이랑 소통을 잘 하고 싶었어요. 항상 선수들에게 ‘어려워하지 말고, 이야기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해’라고 해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겠다. 내 기준에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겠다’라고 했어요. 그리고 연습과 경기 모두 재밌게 해야 된다고 봐요. 연습 때는 재밌게 못 하는데, 경기 들어가서 웃으며 한다? 말이 안 되죠. 연습이 재밌어야 경기에서도 자연스러운 재미가 나와요. 밝은 표정이 경기에서 나오면 보는 이들도 재밌고, 그러면 경기장을 찾는 팬분들도 많아져요. 코트 위에서 인상 쓰고 그러면 보는 팬분들도 불편해요. 지고 있어도 ‘힘든 건 아는데 웃으면서 하자’라고 해요. 프로면 프로답게 해야죠.

Q.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지도자 생활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있나요.

아직은 없어요. 한국전력에서 1년 반, 경기대에서 3년 반에서 4년 정도 했는데 힘들었던 적은 없어요. KB손해보험 와서도 성적 좋았으니 행복했고요. 물론 팀 성적이 안 나오고, 하위권 맴돌면 힘들겠죠(웃음).

Q. 한국전력, 경기대, KB손해보험에서 많은 선수들을 지도했잖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다면요.
지금 지도하는 KB손해보험 선수들은 다 기억에 남고요. 지나와서 보면 한국전력에서 만난 전광인(현대캐피탈) 선수. 진짜 배구를 영리하게 해요. 서재덕(한국전력) 선수도 성격 좋고, 운동도 정말 열심히 하고요. 대학에 있을 때는 현대캐피탈에서 뛰고 있는 김명관, 대한항공 임재영이 기억에 남아요. 임재영은 그때부터 ‘돌아이’였어요(웃음). 그래서 저는 대한항공이랑 재영이가 잘 어울린다 생각했어요. 서브 득점하면 외국인 감독에게 가서 하이파이브하고 하잖아요. 재영이는 대한항공 가서 저렇게 행동할 줄 알았어요.


“KB손해보험에서 꼭 우승컵 들고 싶다”
“누군가 나를 먼저 찾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Q. 대학에서 코치, 감독을 하고 프로팀 감독으로 출발을 하게 되었어요. 대학 시절 느낀 경험이 지금 많은 도움이 되나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안 오고 싶었어요. 부담도 되고, 망설였는데 주위에서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딨냐. 좋은 기회니 한번 해보라’라고 해서 했어요. 기자님들이 좋은 성적 내고 있어서 좋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올 시즌 성적은 제가 낸 게 아니에요. 다 선수들 덕분이에요. 선수들이 고마워요. 코로나19로 다들 힘든 시기를 보냈잖아요. 홈트레이닝 하면서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에요. 격리 해제 후에는 바로 경기 컨디션을 만들어야 했는데, 항상 고마울 뿐이죠.

Q. 작전 타임 때 선수들에게 크게 야단치는 걸 못 봤습니다. 원래 온화한 성격이신가요.
맞습니다(웃음). 저는 선수들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없어요. 감독이 화낸다고 해서 경기가 잘 되는 게 아니에요. 경기 안 풀릴 때 맨날 화내서 이겼으면 화를 내겠죠. 그런데 아니잖아요. 분위기가 떨어졌으면 떨어졌지, 저도 선수 생활해 봐서 알잖아요. 프로 선수들이라면 이야기를 안 해도 자신들이 뭘 해야 될지 알아요. 저는 그저 도움만 줄 뿐이죠. 이제는 선수들이 제 마음을 다 알고요(웃음).

Q. 프로 감독 데뷔 시즌에 KB손해보험 구단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일궈냈습니다. 한 시즌을 되돌아본다면요.
너무 감사하죠. 성적은 저도 열심히 해야 되지만 구단, 선수, 프런트가 하나가 되어야 이룰 수 있거든요. 프로는 결국 돈이에요. 지원이 없으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죠. 좋은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하잖아요. 성적 내야 하는데 돈을 쓰지 않는다? 그러면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힘들죠. 올 시즌에는 회사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셨어요. 사무국에서도 선수들을 잘 챙겨줬고요.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해요.

Q. 데뷔 시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면 하나의 역사가 쓰일 수도 있었는데, 지금도 많은 아쉬움이 남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아쉬움이 크죠. 그러나 끝나고 나서 준우승이 오히려 잘 된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승을 하면 다음 시즌에 무조건 우승을 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생겨요. 그러나 준우승이면 우승이라는 목표가 생기잖아요.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 다시 달려가야죠.

Q. 챔프전 3차전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선수들에게 해준 이야기가 있나요.
3차전 끝나고, 인터뷰도 다 마무리하고 와서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말해줬어요. ‘준우승도 잘 한 거니, 경기장 나갈 때 당당하게 나가자’라고 했어요. 그러나 선수들은 힘들었을 거예요. 우승컵 받을 자격이 있지만, 결과는 준우승이잖아요. 많이 힘들었겠죠.

Q. 챔프전 3차전 5세트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많은 팬분들이 남자배구에 푹 빠졌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봤던 경기 중에 원탑으로 뽑을 수 있을 만큼 재밌었어요. 승패를 떠나서요. 지도하는 저도 심장이 쫄깃쫄깃한데, 보시는 분들은 얼마나 재밌었을지(웃음). 저는 5세트 12-9에서 ‘아, 끝났다’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정지석 선수 서브만 돌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돌리지를 못했죠. 또 14-13 챔피언십 포인트 상황에서 케이타 서브가 잘 들어갔잖아요. 링컨 이단 연결이 정지석에게 간 순간, 아웃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득점으로 연결됐고요. 전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진 이유는 경험 때문이에요. 그날 기자회견에서도 말했지만 대한항공은 챔프전을 많이 치러봤고, 우리는 처음이잖아요.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에요. 진짜 어느 누가 알았겠어요. 정지석 선수가 그렇게 때릴 줄(웃음).

Q. 이제 다음 시즌이 중요합니다. 어떤 선수에게 큰 기대를 걸고 계시나요.
현 멤버 구상이라면 윙스파이커 활약이 중요하죠. 한성정 선수가 공격에서 더 올라와준다면 올해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또 시즌 전에 트레이드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여러 상황을 봐야겠죠. 그리고 미들블로커 보강을 해야 될 것 같아요. 박진우, 김홍정 선수를 지금 더 끌어올리는 건 무리고, 그저 잘 버텨주기만 하면 좋을 것 같고요. 양희준 선수가 올 시즌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야죠.

Q. 아버지가 속했던 팀, KB손해보험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
우승이죠. 물론 평생은 아니지만(웃음), 그래도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그래서 이 팀을 나갔을 때 구단 관계자나 많은 분들에게 ‘이 친구 잘했어, 이 감독 잘 하더라’라고 기억되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감독님은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구단에서 저를 찾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우리 팀 한 번 맡아달라’라고 구단에서 저를 먼저 찾는 지도자. 제가 먼저 찾는 게 아니라요. 그러려면 KB손해보험에서 잘 해야겠죠(웃음).

글. 이정원 기자
사진. 홍기웅 기자, 한국배구연맹 DB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5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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