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블로커는 내 운명’ 삼성화재 안우재와 함께한 배구인생 토크

서영욱 기자 / 기사승인 : 2021-04-24 22: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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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욕 약한 아이가 배구선수가 되기까지

삼성화재 고희진 감독은 2020-2021시즌 전격 리빌딩에 돌입했다. 각 포지션에 새롭게 주축이 되어줄 만한 선수들을 채워 넣었다. 한국전력으로부터 트레이드로 넘어온 안우재도 그중 한 명이다. 윙스파이커로 프로 무대에 진출했지만 이제는 본격 미들블로커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다 보니 이 선수, 뭔가 미들블로커가 돼야만 하는 운명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인터뷰는 3월 중순 진행됐습니다.)


삼성화재는 젊고 밝은 팀
이적 후 적응은 이상 무!


Q__프로 입단 후 두 번째 팀에서 첫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즌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처음 경험하는 이적 때문인지 유독 정신없었던 시즌이었어요. 군대 다녀와서 중간에 합류했고 또 팀도 옮겼으니까요. 정신이 없었죠. 삼성화재에 와서는 감독님께서 많이 알려주려고 하셔서 그걸 배우는 데도 정신없었고요. 여러모로 정신없었네요.

Q__팀 성적 등 여러모로 아쉬움도 큰 시즌이 아닐까 싶어요.
프로는 성적으로 이야기하잖아요. 아쉬운 부분도 많고 제가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팀도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 점에서 오는 아쉬움이 커요.

Q__시즌 처음부터 함께한 건 아니지만 삼성화재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냈잖아요. 삼성화재는 어떤 팀처럼 느껴지나요. 이전과는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는 평가도 많아요.
여기 오기 전에 삼성화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워낙 강했어요. 처음 왔을 때 사실은 걱정도 많이 했어요. 워낙 그런 이미지가 오래전부터 있던 팀이기도 하면서 명망 높은 팀이잖아요. 팀을 옮길 때 ‘어떨까’라는 생각은 많이 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까 선수들도 많이 젊어졌고 감독님께서도 분위기를 밝게 가져가려고 노력하세요.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분위기였어요. 선수 중에도 밝은 친구들이 많았죠.

Q__삼성화재로 오면서 입지도 바뀌었어요. 워낙 젊은 선수가 많다 보니 팀 내에 선배가 몇 없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바뀐 입지를 체감할 때가 있다면요.
6라운드 첫 경기였죠? 우리카드와 경기였는데 (이)승원이 형이 나가니까 주전 라인업 중에 제가 제일 베테랑이더라고요. 저 나름대로는 나이가 많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그때 조금 느꼈어요. 또 애들이 와서 장난을 많이 치거든요. 선후배 관계도 부담이 없어서 장난도 받아주고 하다 보면 그럴 때도 느껴요.

Q__상무를 다녀오고 이전보다 여유가 생긴 것 같다는 이야기를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군대 다녀오면 사람 바뀐다는 말도 우스갯소리로 하곤 하는데 안우재 선수는 어떤가요.
저 개인으로 볼 때는 군대 다녀오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봐요. 군대에 있으면서 팀 성적에 연연하지 않으니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덜 받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여유가 있고 저만의 시간이 많이 생기니까 배구 생각도 많이 하고 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면서 되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Q__구단 유튜브 영상을 보니 인연이 있는 엄윤식 선수와 친하다고 들었어요(엄윤식과 안우재는 비슷한 시기에 상무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팀을 옮기게 됐을 때 윤식이한테 먼저 연락했어요. 윤식이 말고도 대학교, 고등학교 후배도 많아서 어려움 없이 편하게 친해졌죠.

Q__엄윤식 선수 외에 삼성화재 와서 더 친해졌거나 장난을 많이 치는 후배가 있나요.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팀에 98라인이 있거든요. 네 명이 있어요. (정)승현이, (정)성규, (구)자혁이, (박)지훈이까지 네 명인데 그 라인이 유독 장난이 많아요. 그래서 제가 그런 말을 해요. “네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데, 이렇게까지 안 맞으니까 볼 필요가 없는 것 같다”라고요(웃음). 지훈이 경우에는, 제 학교 후배(두 선수 모두 경기대 출신이다) 중에 그런 후배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운동선수와 거리가 멀었던 어린 시절
“돌이켜보면 저도 신기하네요.”


Q__부모님께서 모두 배구선수 출신이시라고 들었어요.
어머니는 늦은 나이에 시작하셔서 선수로 뛴 기간이 길진 않았어요. 아버지는 실업팀에서 뛰시다가 은퇴하시고 코치 생활을 하셨어요. 코치로 일하실 때, 제가 초등학생 때 몇 번 놀러 갔다가 배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부모님께서 워낙 조언을 많이 해주시기도 했고 저도 어려서부터 들은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았는데, 부모님 덕분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어요.



Q__학창 시절 배구할 때 많이 해주신 이야기는 어떤 거였나요.
배구 관련 이야기도 많이 하셨죠. 또 부모님께서 많이 하신 이야기가 선수이기 전에 사람이니까 인간성, 성품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하셨어요. 그 덕분에 사고도 안 치고 올바르게 자란 것 같아요.

Q__이제는 프로 선수로 활동 중이잖아요. 최근에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던가요.
그래도 아직 부모님 눈에는 차지 않는 것 같아요. 항상 배구 이야기를 할 때면 부족한 점을 이야기해주세요. 그게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도 있어서 서운한 점을 몇 번 이야기하기도 했고요. 부모님께서도 그것 때문에 속상해하시기도 했는데, 제가 가끔 그렇게 감정 컨트롤을 못하고 표출할 때도 있지만 제게 해주신 이야기 모두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감사히 여기고 있어요.

Q__과거 인터뷰를 보면 어렸을 때 운동능력도 별로 없었고 승부욕도 약했다고 했는데요. 운동선수에게 필요한 덕목이라면 덕목인데 특이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 같습니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항상 이야기하는 부분이긴 한데, 제가 정말 운동능력도 없었고 승부욕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운동회 때도 달리기 경주를 할 때 뒤에서 치고 나오면 그냥 인코스를 내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까 부모님께서도 제가 배구한다고 했을 때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처음에 말리셨어요. 초등학생 때 점심시간이면 축구도 하고 그러는데 형은 그랬던 반면 저는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으니까 부모님도 많이 걱정하시고 반대하셨죠.

Q__그런 걸 보면 프로까지 왔다는 게 지나서 생각해보면 신기한 부분도 있네요.
그렇죠. 저도 신기해요. 제 어린 시절을 기억하니까요. 코치 생활을 하셨던 아버지가 저를 이만큼 만드셨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제게 부족했던 승부욕이 올라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Q__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배구를 하겠다고 한 게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잘한 선택이겠죠. 어떻게 보면 운동을 할 때 프로를 목표로, 국가대표를 목표로 삼잖아요. 예전 선택에 후회하지 않아요.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배구를 하겠다고 이야기했나 싶어요. 운명이지 않았나 싶어요.

Q__학창시절 안우재는 어떤 선수였나요.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는 초등학생 시절과 다르게 승부욕도 많이 생겼어요. 욕심도 굉장히 많았고요. 정말 배구밖에 몰랐던 것 같아요. 고등학생 시절에는 잠도 안 자고 배구만 했을 정도로 욕심이 많았죠. 부모님이 배구 선수셨다 보니까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어렸을 때 철이 일찍 든 것도 같아요.

Q__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순위로 한국전력에 지명됐습니다. 프로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무슨 느낌이었나요.
그때는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드래프트 현장에도 거의 시간 딱 맞춰서 도착했거든요. 시간에 맞춰서 허둥지둥 들어갔는데 맨 앞에 자리가 비어서 저랑 동기들이 맨 앞에 앉았어요. 그리고 이제 뽑힐까 안 뽑힐까 고민하다가 한국전력 순서가 됐죠. 열도 많이 오르고 긴장도 많이 돼서 겉옷을 벗고 있었는데 제 이름이 불리더라고요. 그래서 ‘예?’하고서 나갔어요. 그날 하루도 정말 정신없이 보냈네요.

Q__친정팀 한국전력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요. 한국전력에서도 윙스파이커로 시작해 이후 여러 포지션을 소화했고 미들블로커로 마무리했는데요.
한국전력에 제가 처음 입단했을 당시에는 저랑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선배들도 많았어요. 지금 경기대 감독으로 계신 후인정 감독님이나 은퇴하신 방신봉 선배 등 베테랑 선수들이 많아서 긴장을 많이 했어요. 프로 무대에 처음 발을 내딛기도 하고 그 선배들과는 나이 차도 스무 살, 열 아홉살 이렇게 났죠. 처음 갔을 때 그 선배들이 워낙 편하게 대해주셨어요. 팀 분위기도 정말 좋았거든요. 그때 제가 뛰는 윙스파이커 자리에 전광인, 서재덕 같은 정말 쟁쟁한 선배들이 있었죠. 그래서 제가 많이 위축되기도 한 것 같아요. 저런 선배들이 있는데 어떻게 뛸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했고 또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기도 했고요. 윙스파이커로는 많이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해요. 당시 김철수 감독님께서 팀에 미들블로커가 필요하기도 하고 제가 대학 시절 미들블로커를 소화한 경험도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포지션을 변경해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Q__그러고 보면 예전에 미들블로커 역할을 하면서 배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초등학생 때는 키가 크면 미들블로커 역할을 시키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미들블로커면서 높은 공을 때리는 경우도 많고요. 하이볼 공격을 하다 보니까 중, 고등학교 시절에 윙스파이커로 나섰고요. 윙스파이커, 아포짓 스파이커를 보다가 같은 팀 미들블로커가 부상을 당하면서 몇 번 미들블로커로 뛰었죠. 어머니께서 미들블로커 출신이어서 포지션 조언도 많이 해주신 덕분에 미들블로커도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__프로에서 처음 포지션 변경 제안을 들었을 때는 어떤 생각이었나요.
그때 당시에는 경기에 뛰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윙스파이커든 미들블로커든 경기에서 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죠. 팀에 도움이 된다면 미들블로커로 뛰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프로 인생 첫 번째 이적
그곳에서 찾은 새로운 기회


Q__말년 휴가 중에 트레이드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도 미복귀 전역이었으니까요(코로나19로 말년 휴가 이후 부대에 복귀하지 않고 곧장 전역한다). 휴가 나와서 한국전력에서 몸을 만드는 중에 트레이드 소식을 들었죠.



Q__프로 첫 번째 이적이었습니다. 다른 인터뷰에서 “왜 나일까”라는 생각도 했다고 밝혔어요. 트레이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를 지금 다시 돌아본다면요.
제가 (김)인혁이랑 (정)승현이랑 같이 팀을 옮겼잖아요. 감독님께서 우리 세 명을 부르는 순간 뭔가 느낌이 왔어요. ‘이건 뭔가 준비를 해야겠다’고요. 그러고 감독님 방에 들어갔는데 트레이드하게 됐다고, 그간 팀에 기여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당시에는 그냥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짐을 싸서 삼성화재로 넘어오면서 인혁이랑 승현이한테 가서 잘해보자고 이야기했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트레이드라는 게 양쪽이 카드가 맞고 그 선수를 필요로 해서 하는 거잖아요. 이 팀이 저를 필요로 해서 온 거니까 그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게 맞죠. 그렇게 생각하면 기회라고 봐요. 인혁이, 승현이한테도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진 거니까 한번 잡아보자고, 열심히 하자고 했어요.

Q__이번에 안우재 선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것도 프로 첫 이적이라는 부분과 고희진 감독님의 기대감 등 여러 요소가 겹친 덕분이었는데요, 이전보다 자신을 향한 관심도가 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한국전력에 있을 때보다는 지금 더 많은 관심을 받는 것 같아요. 주변 관심도 관심이고 감독님께서도 저를 많이 키워주시려고 하는 게 느껴지고 언급도 많이 해주시고요. 그런 덕분에 이런 대우를 받는 것 같아요. 그만큼 저도 더 열심히 해야 하고 많은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Q__개인 통산 한 경기 최다득점(2020년 12월 20일 우리카드전에 기록한 17점)을 올렸을 때 삼성화재가 이겼다면 안우재 선수를 수훈선수로 인터뷰하고 싶다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제가 프로에 입단하면서 처음에 잡은 목표가 그거였어요. 수훈선수 인터뷰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뭔가 제가 잘하는 날은 아쉽게 지더라고요. 그날도 제가 잘했다면 잘한 경기였지만 아쉽게 졌죠.

Q__고희진 감독님께서 윙스파이커로 다시 활용할 생각도 했다는 인터뷰 내용이 있었어요. 사실인가요.
저도 몰랐어요. 처음 삼성화재에 왔을 때부터 미들블로커로 연습했으니까요. 그러다가 감독님 인터뷰를 보고 알았어요. 제가 상무에서도 미들블로커로 뛰었지만 하이볼도 때리고 속공도 때리고 하고 싶은 대로 했거든요(웃음). 제가 윙스파이커로 뛰었으니까 아마 그런 생각을 하신 게 아닐까요. 물론 팀에 윙스파이커가 많았으니까 저를 미들블로커로 활용하려고 한 게 첫 번째 계획이었다고 생각해요.

Q__감독님께서 자기 노하우를 모두 가르쳐주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세요. 워낙 열정이 넘치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시는데, 훈련 때도 느껴지나요.
그렇죠. 항상 옆에 와서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요. 감독님께서 인상 깊게 보신 영상이나 분석이 있으면 저를 불러서 이야기해주시고요. 따로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 그래서 정말 많이 배우고 있어요. 그만큼 저도 빨리 흡수해서 성장하고픈 마음도 있어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Q__외국인 선수 공격을 잡는 법을 알려주신다는 이야기도 하셨는데, 기술적인 부분을 이야기하신 것 중에 특히 와닿던 게 있었나요.
감독님도 미들블로커로서 큰 신장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도 미들블로커로 당당히 살아남으셨고 한자리를 차지하신 거잖아요. 그런 스텝이나 타이밍 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그게 잘 통할 때 외국인 선수 하이볼도 잡기도 하고요. 알려주신 부분을 제가 알고도 못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럴 때면 아쉽더라고요.

Q__경기 중에 서브 구사 이후에 벤치로 들어갈 때면 오자마자 감독님께서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하시던데,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건가요.
주로 블로킹 위치나 타이밍, 손 모양을 이야기해주세요. 서브도 정확한 타이밍에 못 때리고 끌고 내려오면 그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Q__본격적으로 스파이크 서브를 구사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한국전력에 처음 입단했을 때 스파이크 서브를 구사하다가 미들블로커로 포지션을 바꾸면서 플로터 서브를 구사했어요. 당시에 범실이 좀 있는 편이어서 바꿨죠. 상무에 가서 해외 영상도 많이 보면서 흐름상 강서브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게 팀 색깔 측면에서도 장점이 될 것 같아서 상무에서 스파이크 서브 연습을 많이 했어요. 경기 중에도 많이 활용했고요. 삼성화재에서도 팀에 좋은 서버가 많으니까 저도 한 축을 담당해서 강서브를 팀 색깔로 가져가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Q__고희진 감독님께서는 이전 팀에서 왜 스파이크 서브를 계속 안 썼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하셨어요. 어깨 힘이 타고난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는데요.
근데 제가 어렸을 땐 되게 여리여리했거든요.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데 제 생각보다 힘이 더 잘 붙더라고요. 힘이 타고났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봐도 되겠죠?

Q__가끔 서브를 구사할 때, 옆에서 감독님이 굉장히 큰소리로 뭔가 외칠 때도 있는데 혹시 선수들이 놀라거나 할 때는 없나요.
그거에 놀란 적은 없어요. 감독님께서 워낙 성량이 좋잖아요. 서브를 때릴 때 위에서 때려야 범실도 적고 제 타이밍에 나가는데 제가 자꾸 힘이 들어가서 끌고 내려와서 때리면 범실을 하거든요. 범실이 많으니까 옆에서 타이밍을 잡아주세요. 처음 삼성화재로 이적했을 때 그렇게 잡아주셔서 잘된 적이 많았는데 욕심이 생기면서 범실이 늘어났죠. 감독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은 있어요. 혹사 자기가 옆에서 그렇게 하는 게 방해가 되지는 않냐면서요. 그런 건 전혀 없고요. 오히려 감독님께서 타이밍을 잡아주시는 게 저는 편해요.

Q__감독님의 열정이 가장 잘 느껴질 때는 언제인가요.

감독님께서 장난도 많이 쳐주시고 분위기도 띄워주려고 하세요. 그런 감독님 성격이 가장 잘 나오는 곳은 경기장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경기 시작부터 윗옷을 벗으시고 파이팅해주시고 세리머니도 같이 해주세요. 소통도 많이 하려고 하고요. 팀에 젊은 선수들이 많고 파이팅을 잘 받아주셔서 그런지 시너지 효과가 날 때는 쌍방향으로 불타오르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우리 팀 장점이기도 하고요.

Q__안우재 선수를 두고 미래에 삼성화재가 다시 챔피언결정전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선수라는 식으로 감독님께서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감독님께서는 확실히 욕심이 있으신 것 같아요. 지도자라면 자기 제자가 국가대표도 뽑히고 중요한 경기에서 한 건 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까요? 그만큼 욕심을 가지고 선수들을 키워주려고 하시니 선수들도 그만큼 노력하고 있죠. 저도 챔피언결정전에 가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고 태극마크도 한번 달아보는 게 꿈이니까요. 같은 목표를 보고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Q__대표팀 이야기가 나왔으니 예전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 해요.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청소년 대표팀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에 대표팀 일원으로 해외 나갔을 때는 어땠나요.
공교롭게도 그때도 저는 윙스파이커로 뽑혔는데 대표팀에 가서는 미들블로커로 뛰었어요. 청소년대표팀도, 유니버시아드 대표팀도 그랬어요. 뽑히긴 윙스파이커로 뽑혔거든요. 근데 항상 미들블로커가 부상이 있거나 다른 요인 때문에 제가 항상 미들블로커로 뛰고 있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미들블로커로 시작해서 쭉 하는 게 맞았나 싶기도 해요. 근데 그때는 대표팀에 가서 그렇게 뛴 거라서 지식도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대표팀에서도 정신이 없었어요. 해외에 나가서 그런 거라 더 정신없지 않았나 싶네요.

Q__지금은 아니라고 했지만, 과거에 한 번씩 포지션 변경을 후회한 적도 있다는 솔직한 답변을 남긴 적도 있습니다. 포지션에 따른 주목도 이야기도 했는데, 과거에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뭐였을까요.
미들블로커로 뛰면서 느낀 건, 미들블로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을 많이 해야 하는 포지션이라고 생각해요. 블로킹을 잡으면 좋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유효 블로킹으로 팀에 기여해야 하고 다른 포지션에 비해 범실도 적어야 하고요.
포지션 변경을 후회한 적이라고 한다면, 제가 높은 공을 때렸잖아요. 팀이 한 자리에서 대량 실점할 때나 리시브가 많이 흔들릴 때는 미들블로커가 할 수 있는 게 적은 것 같아요. 대학 시절에는 리시브가 흔들려도 제가 공격해서 점수를 내고 사이드아웃을 돌리면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인지 그럴 때 가끔 답답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요.


챔프전 우승, 대표팀 선발도 욕심나고
든든한 선수, 팀 기둥같은 선수 되었으면

Q__군대도 다녀오고 프로 두 번째 팀을 겪은 만큼 커리어 새로운 국면을 맞은 셈인데요, 선수로서 장기적으로 이루고픈 목표가 있다면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팬이 있으니까 선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팬들 기억에 좋은 선수였다고 남는다면 선수로는 성공한 것 같아요. 제 커리어로 볼 때는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해보고 싶고 대표팀에도 가고 싶고요. 욕심은 많죠. 그만큼 빨리 성장해서 더 많이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Q__경기대 시절 신인드래프트를 앞두고는 “외국인 선수처럼 파워 있는 공격수가 되고 싶다”라는 목표를 밝혔어요. 포지션이 바뀐 만큼 그 목표에도 변동이 있을까요.
이제는 미들블로커잖아요. 완전히 다르죠. 든든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팀에서 든든하게 자리 잡은 선수 말이죠.

Q__앞으로 나아가야 할 커리어가 많이 남았는데, 스스로를 향한 각오를 끝으로 부탁드려요.
어느 팀에서든 한 축을 담당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미들블로커로서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든든하게, 팀에 기둥 같은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안우재와 함께하는 TMI 토크
Q. 구단 유튜브로 확인한바 팬서비스가 정말 좋다고 들었어요. 기억에 남는 팬이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대학 시절부터 응원해주시는 팬이 몇 분 계세요. 워낙 오래 알고 지내고 있는데, 제가 이겼을 때 축하를 받기도 하지만 저도 그 친구들이 취업하거나 졸업했다고 하면 축하해주기도 해요.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친한 팬들 느낌이에요.

Q. 삼성화재 특징 중 하나가 영어 이름인데, 적응은 됐나요.

지금은 완벽하게 적응한 것 같아요. 오히려 계속 영어 이름을 우리끼리 부르니까 밖에 나갔을 때 한국 이름이 기억이 안 난 적이 있어요. ‘누구더라’ 하다가 필터를 거쳐서 이름을 부른 적도 있어요. 너무 완벽하게 적응하지 않았나 싶어요. 처음 왔을 때는 영어 이름을 정하라길래 ‘이게 뭐지’ 싶었어요. 계속 재촉하더라고요. 왜 이렇게 집착하나 생각도 했어요(웃음). 영어 마을에 온 느낌도 들었는데 지금은 완벽 적응했어요.

Q. 누구 이름이 제일 매치가 안 되던가요.
이름은 얼추 다 어울렸던 것 같아요. 또 외우기도 금방 외웠거든요. 지훈이 이름이 에이든인데, 나머지 사람들은 항상 자몽이라고 부르거든요. 그게 제일 부르기도 편하고 잘 어울리지 않나 싶어요.

Q. STC 식당은 반찬이 많아서 좋다고 했는데, 최애 반찬 하나를 꼽긴 어렵다고도 했는데 지금은 혹시 최애 메뉴가 있나요.
항상 이야기하는 거지만 밥이 정말 잘 나와요. 말로만 들었는데 와서 먹어보니까 장난 아니더라고요. 메뉴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하나만 고를 수 있나 싶어요. 그래도 그중에서 제일 선호하는 건 육식입니다. 저는 고기가 좋아요.

Q. 한국전력 시절 취미가 인형 뽑기라고 했는데, 지금도 좋아하시나요.
그때는 인형 정말 많이 뽑았죠. 지금은 안 하고요, 졸업했습니다. 컴퓨터 게임도 많이 했는데 군대 가면서 멀어졌고 요새는 노래를 많이 들어요. 게임은 어려서는 피파 온라인 많이 했고 군대 가기 전에는 스팀에서 게임을 사서 많이 했어요.

Q. 혹시 즐겨듣는 가수나 추천하는 노래나 앨범이 있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목소리이기도 하고 분위기도 좋아하는 가수인데 ‘너드 커넥션’이라는 가수가 있어요. 그분들 노래 중에 ‘대나무숲’이랑 하나 더 있는데, 그 두 개를 많이 들어요.

Q. 한국전력 시절에는 광교 호수공원 가는 걸 추천한다고 하셨는데, 삼성화재 이적 후 선호하는 장소가 있나요.
STC 앞에 보정동 카페거리가 있더라고요. 아직 많이 둘러보진 못했어요. 한두 군데 가보긴 했는데 그냥 가서 알아보는 식으로 보는 정도에요.


글. 서영욱 기자
사진. 박상혁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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