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 몬트리올 동메달 기적부터 런던 4강’ 여자배구 올림픽 도전사

서영욱 기자 / 기사승인 : 2021-07-17 20: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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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1일 영국 런던의 얼스코트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여자배구 3~4위전.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주포 김연경을 앞세워 36년 만에 동메달에 도전했다. 하지만 당시 세계랭킹 5위로 한국보다 10위나 높았던 ‘숙적’ 일본의 벽은 높았다. 김연경이 팀 최다인 22득점으로 활약했고, 일본보다 7㎝ 가량 큰 평균 신장(182㎝)을 앞세운 블로킹 득점에서도 8-0으로 일본을 압도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일본은 김연경과 한송이(10득점)를 겨냥한 목적타 서브로 한국의 리시브를 흔들었고, 사코타 사오리(23득점)를 위시한 빠르고 조직적인 플레이로 공격을 성공시켰다. 결국 한국 여자배구는 세트스코어 0-3(22-25, 24-26, 21-25)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경기가 끝난 뒤 김연경은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겼고, 양효진과 당시 막내였던 김희진은 울음을 터뜨리며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단 한 번만 이기면 동메달을 획득할 수도 있었던 경기. 매 세트 접전을 펼쳤기에 더욱 안타까운 결과였다.

“나는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리시브와 수비가 강하지만 선수들의 신장 탓에 블로킹이 높은 팀에는 약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팀은 신장이 좋고 블로킹이 좋아 강점을 보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경기는 초반부터 어렵게 흘러갔다. 이미 수많은 경기를 치르며 올라오느라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였고, 부담감은 배가 돼 있었다. 첫 세트를 뺏기면서 심리적인 압박은 더해졌고, 간발의 차이로 밀리는 상황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패배한 이유를 고민해보고, 내가 어떤 역할을 더 해야 했는지 반성해 보다가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연경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당시의 아쉬움을 이렇게 떠올렸다. 비록 한국은 염원해온 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김연경은 국제배구연맹(FIVB)이 선정한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대체로 우승팀에서 MVP를 선정하는 관례를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세계랭킹 15위 한국이 세계적인 강호들을 모두 물리치고 올림픽 4강에 진출한 게 얼마나 큰 이변이었는지를 대변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올림픽 여자배구에서 아시아 선수가 MVP로 선정된 건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중국의 금메달을 이끈 쿤펭 이후 김연경이 두 번째였다. 김연경은 이 대회에서 8경기 총 207점을 올려 미국의 데스티니 후커(161득점)를 제치고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런던 4강’ 창조한 여자배구
비록 메달이란 성과로 끝을 맺진 못했지만,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배구가 신화를 창조했다는 사실엔 이견이 없다. 여자배구 대표팀이 3~4위전까지 오른 것도 사실 기적같은 일이었다. 당시 한국 여자배구의 세계랭킹은 15위로 본선에 오른 12개 팀 중 세 번째로 낮았다. 직전 해에 출전한 월드컵에서도 한국은 3승 8패로 9위에 그쳤던 상황이었다.

런던에서의 조 편성도 낙관적이지 않았다. 한국은 미국(1위), 브라질(2위), 중국(3위), 세르비아(7위), 터키(8위) 등 세계적인 강호들과 함께 B조에 배정됐다. ‘죽음의 조’라고 불릴 정도로 강팀이 몰려, 한국은 조별리그 통과를 걱정해야 할 만한 상황이었다.



기우였다. 뚜껑을 열고 보니 한국은 강했다.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미국과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1대 3으로 패했지만 예상외로 선전했고, 2차전에선 이전까지 7전 전패의 상대전적 열세를 안고 있던 세르비아를 사상 처음으로 격파했다. 3차전에서도 이변은 이어졌다. 한국은 2003년 그랑프리대회 승리 후 9년간 13연패를 당했던 브라질을 만나 3-0 완승을 거뒀다. 터키와 중국에는 패했지만, 풀세트 접전으로 승점을 챙긴 한국은 기어코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맞이한 이탈리아와의 8강전. 한국은 17-19로 2점차 리드를 내준 상황에서 내리 5점을 헌납하면서 첫 세트를 내줬다. 하지만 2세트부터 반격이 시작됐다. 리시브가 살아나자 전반적인 공격이 살아났고, 결국 한국은 내리 세 세트를 따내며 이탈리아를 침몰시켰다. 김연경이 블로킹 4개 포함 28점을 올렸고, 한송이(17득점)와 양효진(12득점)까지 제 몫을 다 해줘 일궈낸 3-1(18-25, 25-21, 25-20, 25-18) 역전승이었다.

미국과의 4강전과 일본과의 3~4위전에서 모두 0-3으로 패하며 치열했던 도전은 4위로 끝났지만, 한국 대표팀은 각종 악조건을 극복하며 4강 신화를 썼다. 높은 공격 비중을 감내한 김연경과 세터 김사니는 어깨 통증에 고전하면서도 매 경기 집중력을 발휘했다. 대표팀에 대한 열악한 지원은 또 다른 악조건이었다. 금전적 지원이 부족했음은 물론, 대표팀을 돕는 지원 인력이 한 명도 현장에 파견되지 않아 김형실 감독이 사소한 일까지 도맡아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선수단은 똘똘 뭉쳐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김 감독은 사비를 털어 선수들과 ‘승리의 반지’를 맞췄고 선수들은 김연경을 구심점으로 ‘원 팀’을 만들었다. 그렇게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이후 36년 만에 4강 신화가 완성됐다. 김연경은 런던 대회를 이렇게 회고한다. “더 이상 올림픽이 꿈의 무대가 아니라 기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무대라는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다.”


1976년엔 무슨 일이 있었나
여자배구가 4년마다 올림픽에 도전할 때면 어김없이 ‘1976년’이 소환된다. 2021년 현재로부터 45년 전이니 강산(江山)이 4번도 더 바뀐 과거다. 그만큼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 나선 여자배구 대표팀이 보여준 활약은 대단했다. 이순복, 유정혜, 변경자, 이순옥, 백명선, 장희숙, 마금자, 윤영내, 유경화, 박미금, 조혜정, 정순옥 등 12명의 선수들은 당시 A조 4팀과 B조 4팀으로 총 8개 팀이 참가한 대회 B조에서 소련 동독 쿠바를 만났다.

첫 상대인 소련에 패한 대표팀은 동독과 쿠바에 각각 풀세트 접전 끝에 3-2로 역전승하며 B조 2위로 4강에 진출한다. 출전국 중 신장이 가장 작았지만 빠르고 민첩한 배구로 강팀들을 연이어 잡아내며 현지 관중들의 환호를 독점했을 정도로 활약이 대단했다.

하지만 164㎝의 단신이지만 놀라운 점프력을 앞세운 강한 스파이크로 대표팀의 공격을 이끌었던 ‘나는 작은 새’ 조혜정이 부상을 입는 악재 속에 일본에 0-3으로 패하며 결승 진출엔 실패했다. 그리고 밟게 된 3~4위전 무대. 대표팀은 헝가리를 만나 기어코 세트스코어 3-1 역전승을 거두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올림픽 구기 종목 사상 최초로 따낸 메달이었다. 당시 여자배구 대표팀은 이 대회 레슬링 종목에서 광복 이후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된 양정모의 활약과 함께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사진: 한국 여자배구가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메달을 획득한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사진 속 12번이 조혜정이다


이런 호성적엔 그에 상응하는 지원이 있었다. 당시 배구협회 차원에서 조직한 후원회를 통해 거액의 기금이 조성됐고,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의 금메달을 이끈 감독이었던 다이마쓰 히로부미를 초빙해 혹독한 훈련을 진행하며 선수들이 선진 배구를 경험하게 했다. 동메달은 그런 수 많은 노력들이 한 데 모인 결과였다.

남녀배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64년 도쿄올림픽에 처음 출전해 5전 전패로 최하위를 기록했던 한국 여자배구는 그렇게 12년 만에 세계에서 손꼽을 만한 팀으로 부상했다.

다만 ‘몬트리올의 영광’은 이후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넘어야 할 하나의 숙제가 됐다. 도쿄(6위), 멕시코(5위), 뮌헨(4위), 몬트리올(3위)까지 상승하기만 하던 대표팀의 올림픽 순위는 이후 정체기를 맞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한국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땐 아예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때문에 런던올림픽 4위는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5위), 2000년 시드니올림픽(8위), 2004 아테네올림픽(5위)에서 입상에 실패한 한국의 존재감을 1976년 이후 36년 만에 입증한 대회였다고 할 수 있다.


기대한 만큼 아쉬웠던 2016년
런던올림픽 4위 이후 4년이 지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나서는 여자배구 대표팀에 대한 기대는 컸다.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한국(당시 9위)은 네덜란드(14위)-일본(5위)-카자흐스탄(26위)-페루(21위)를 연이어 잡아내며 8개국 가운데 4위로 본선 진출을 손쉽게 확정 지었다. 예선에서 2위를 기록한 네덜란드 대표팀과 두 차례 평가전을 진행해 1승 1패를 기록하는 등 본선 준비도 착착 진행됐다.

첫 경기 상대는 공교롭게도 런던올림픽 3~4위전 패배를 안겼던 일본. 한국은 4년 전 복수에 성공했다. 김연경이 30득점으로 양 팀 최다 득점을 기록했고, 양효진(22득점) 이재영(11득점)이 제 몫을 다 해 결과는 3-1(19-25, 25-15, 25-17, 25-21) 역전승. 첫 경기 한·일전에서 역전승이 나오자 대표팀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러시아(4위)와 브라질(3위)에 패했지만 아르헨티나(12위)와 카메룬(21위)을 잡아낸 한국은 조 3위로 8강에 진출한다. 8강 상대는 한국보다 랭킹이 두 계단 낮았던 네덜란드. 올림픽 직전 가진 두 차례 평가전에서 1승 1패로 팽팽한 전적을 거둔데다 올림픽 최종예선에서도 한국이 3-0으로 이겼던 팀이라, 4강 진출이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죽음의 조’였던 B조에서 세계랭킹 1위 미국에 진 걸 빼곤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네덜란드의 전력은 강했다. 한국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한 번도 리드를 잡지 못하고 1세트를 쉽게 내줬고, 2세트에서도 리시브가 흔들리며 11-22 더블 스코어로 벌어진 끝에 2세트도 헌납했다. 3세트에서 네덜란드의 범실과 김연경의 활약으로 한 세트를 만회하긴 했지만, 마지막 세트에선 네덜란드의 다채로운 공격에 고전하며 범실을 연발해 결국 세트스코어 1-3(19-25, 14-25, 25-23, 20-25)으로 패하고 말았다. 김연경은 이 경기에서도 홀로 27득점을 올리며 분전했지만, 양효진(10득점)을 비롯해 박정아(7득점) 김희진(5득점) 등의 활약이 아쉬웠다.

40년 만의 메달 획득의 꿈에 어느 때보다 부풀어있었던 상황. 선수들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한 경기를 넘어서지 못했다. 어느 때보다 전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것만큼 대회 후엔 특정 선수들에 대한 도 넘은 비판이 줄을 잇기도 했다. 선수들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아쉬움만큼 비난에 대한 아픔을 감내해야 하기도 했다.

이후 5년이 지났다. 한국은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을 영입해 본선행에 성공했고, 또 다시 염원이었던 메달의 꿈을 꾸고 있다. 그 동안 대표팀을 이끌었던 ‘배구 여제’ 김연경의 마지막이 될 올림픽. 코로나19로 대회가 1년 연기된 데다 그동안 학교폭력 논란으로 주전 선수들이 이탈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배구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던 도쿄 땅에서, 한국 대표팀은 각종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까. 이제 길고 긴 도전기의 결말이 다가오고 있다.


글. 이동환 국민일보 기자
사진. 대한체육회, FIVB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7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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