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최원영 기자] 지난 4월 3일 삼성화재는 ‘푸른 왕조’ 명예를 되찾을 지휘자로 신진식 감독을 택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변화가 필요했다. ‘갈색 폭격기’로 이름을 날리던 ‘삼성맨’ 신진식은 코치가 아닌 감독으로 팀에 돌아왔다.
숱한 우승 경력을 가진 ‘배구 명가’ 삼성화재. 하지만 최근 크게 휘청거렸다. 2015~2016시즌 정규리그를 3위로 마친 이들은 준플레이오프를 거쳐 플레이오프에 올랐으나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했다. 이번 시즌에는 정규리그 4위에 머물며 간발의 차로 포스트시즌 티켓을 놓쳤다. 팀 창단 후 처음으로 ‘봄 배구’에 초대받지 못 한 것이다. 삼성화재는 감독 신진식으로부터 변화를 꾀했다.
감독으로서 선수들과 대면한 신진식 감독. 그간 어떻게 지냈을까. “열심히 인터뷰하면서 지냈다(웃음). 훈련도 시작했다. 체력이나 기본기 위주다. 선수들이 한 시즌을 마치기도 전에 휴가가 끝난 건 처음이라고 하더라. 휴가를 다녀왔는데도 챔피언결정전이 진행되고 있었으니 말이다(4월 3일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이 진행됐다). 첫 날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감독도 바뀌었고, 포스트시즌 진출도 실패했으니 전반적으로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그런 상태에서 훈련을 하니 다들 의욕이 떨어지는 듯 했다.”
신 감독은 선수들을 일깨우기 위해 애썼다. “훈련은 훈련대로 하고 그 외적인 부분에서는 편하게 해주려 했다. 선수들은 마음이 편해야 잘 먹고, 잘 쉬고, 운동할 수 있다. 사실 힘들더라도 지금은 참을 때다. 서서히 체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해야 여름휴가 이후 전술훈련이 제대로 이뤄진다. 6월에 선수단 재계약 협상이 있다. 그래서인지 선수들이 쉽게 아프다고는 안 하는 것 같다. 훈련을 거듭할수록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더불어 그는 선수들에게 여러 조언도 건넸다. “서로 뭉쳐야 한다고 했다. 객관적으로 우리는 다른 팀 선수들과 일대일로 비교해봤을 때 실력이 다 뒤처진다. 그러니 다같이 힘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내야 상대를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선수들끼리도 대화를 많이 하며 한 곳을 보고 가자고 말했다.”
운동에서만큼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신 감독. 선수들을 이끌고 가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선수들이 조금 아프거나 힘들다고 해도 열외시키지 않고 데려가고 싶다. 못 따라오는 선수가 있어도 내 갈 길은 갈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지옥훈련을 하거나 훈련량을 늘린다는 것은 아니다. 훈련을 1~2시간 하더라도 그 안에 집중력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때의 힘든 것을 이겨내는 것이 훈련이다.”
카리스마를 뽐내는 그였지만, 유쾌한 입담도 자랑했다. “훈련 시작 전에 선수들이 하나 둘 체육관으로 나오면 ‘어디 아프냐? 그럼 집에 가야지~’하고 농담을 건네봤다. 운동할 때도 강하게 하되 재미있는 방식을 섞어서 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훈련하다 중간에 3분 휴식을 주고 ‘어떤 자세든 너희가 쉬고 싶은 대로 편히 쉬어도 좋다’라고 한다. 다시 운동을 시작할 때는 ‘야 3분 넘은 거 같다. 너무 쉬는 거 아니냐?’라는 식으로 분위기를 풀어주려 노력한다.”
그는 삼성화재라는 팀에서 선수, 코치, 그리고 감독 길까지 걷게 됐다. 감독의 시선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다. “코치 때는 선수들을 하나하나 가르치려고 했다. 지금은 선수 개개인도 중요하지만 팀 전체를 봐야 한다. 그러다 보니 코치할 때는 못 봤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배구는 종목 특성상 개개인 능력도 중요하지만 팀워크가 우선시돼야 한다. 혼자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으니 누군가 옆에서 도와줘야 한다. 선수들에게 무조건 뭉쳐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신 감독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많다며 걱정을 내비쳤다. 우선 FA(자유계약선수). 삼성화재는 라이트 박철우를 비롯해 세터 유광우, 레프트 류윤식, 리베로 부용찬, 센터 하경민까지 다섯 명이나 FA 자격을 얻었다. 내부 단속에 외부 자원 영입까지 고려하려면 계산이 어려워진다. 신 감독이 조심스레 속내를 드러냈다. “그림은 그려놨다. 현재 선수 구성으로는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가 조금 힘들다. 중앙을 강화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어떤 선수가 FA 시장에 나올지 모르니 1차, 2차 방안 등을 생각했다. 누구든 나오기만 하면 다 잡고 싶어 만반의 준비 중이다.”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도 큰 산이다. 타이스와 재계약을 할지, 새 선수를 영입할지 고민이 많다. “이달(4월) 말에 새 참가자를 두 명 정도 직접 보고 올 것이다. 마음에 드는 선수가 있다. 영상으로만 보면 판단하기 어렵더라. 하이라이트와 전체 영상간 격차가 크다. 득점 내는 것만 보면 누구나 다 세계적인 선수들이다. 실제로 보고 와야 타이스와 재계약 여부도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타이스도 좋은 선수다. 수준급 공격력을 갖췄다. 하지만 서브와 블로킹에서 다소 약점이 있고, 범실도 잦은 편이다. 시간이 지나야 결단을 내릴 수 있을 듯 하다.”
그는 삼성화재라는 팀만의 문화에 대해 명료하게 정의를 내렸다. 나아가 앞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삼성화재는 기본기다. 모든 것은 기본기에서 나온다. 바탕이 무너졌기 때문에 범실이 많이 나왔다. 서브 범실 등 눈에 보이는 것보다 경기 중 보이지 않는 범실들이 더 크다. 쉽게 말하면 이단 연결 실수를 한다거나 수비 위치를 잘 못 잡는 것, 블로킹 콤비가 안 맞는 것 등이다. 이런 것들을 통틀어 범실을 딱 절반으로 줄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다시 밑바닥부터 닦기 시작해 팀을 단단하게 세우고 싶다.”
선수들에게 특별히 강조한 것도 있다. 부상 관리다. “미래 지향점에 대해 거창한 수식어는 붙이고 싶지 않다. 앞으로는 선수들이 얼마나 잘 따라와주느냐에 달려있다. 80% 정도는 자신 있다. 걱정되는 건 부상이다. 비시즌 훈련에 매진하다 보면 아플 수밖에 없다. 스스로 몸 관리를 하며 노력해야 한다. 선수들에게 ‘너희는 프로다. 자신의 몸을 챙기지 않는 사람은 프로의식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선수들은 젊은 편이라 쉴 때 잘 쉬면 금방 회복이 된다. 나처럼 나이든 사람은 2~3일씩 걸리지만 말이다(웃음).”
V-리그 남자부에는 삼성화재 출신 감독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든든하기도 하지만 책임감도 느낄 터. 자연스레 신치용 현 삼성화재 단장 이름이 나왔다. “부담되기 보다는 좋다. 동료들 중 지도자가 많이 배출돼 기쁘다. 우리는 신치용 단장을 보고 배웠다. 스승의 장점만 뽑아내 각자 노하우를 접목시키려 한다. 나는 선수 관리 능력을 배우고자 했다. 현역 시절 신치용 감독께서는 이기든 지든 한결 같은 표정으로 앉아계셨다. 그때는 ‘와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싶었다. 카리스마에 압도됐던 것 같다. 냉철하면서도 세세한 부분들을 놓치지 않는 대단한 분이셨다. 시간 약속도 철저하고, 예의범절을 중시하셨다.”
이제 신진식 감독은 삼성화재 수장으로서 김세진(OK저축은행), 최태웅(현대캐피탈), 김상우(우리카드) 감독과 자존심 대결을 펼쳐야 한다. “발표 난 뒤에 축하 연락이 왔다. 특히 최태웅 감독은 내 기사가 나온 날(3일) 우승하지 않았나. 나도 그 경기를 보고 있었다. 내가 먼저 축하한다고, 잘 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틀 뒤에 전화가 오더라. ‘아유 감독되신 거 축하합니다’라고. 서로 축하하다가 나중에 소주 한 잔 하자고 했다. 다들 종종 보겠지만 이제 말 한 마디가 조심스러운 사이가 됐다. 삼성 출신이라 라이벌인 것은 아니다. 나는 모든 팀을 경쟁 상대라 여긴다.”
신 감독은 삼성화재 옛 명성을 찾기 위해 긴 여정의 첫 발을 뗐다. “감독 선임됐을 때 누군가 꽃길만 걸으라고 메시지를 남겼더라. 나도 그 길, 꽃길 걷고 싶다. 선수들이 대부분 우승을 맛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크게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시즌도 4위를 했는데 아주 못한 것도, 잘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종 결과를 보면 딱 한 경기 차이다. 여섯 라운드 동안 한 경기를 더 못 이겨서 떨어졌다. 그 아쉬움을 없애기 위해 다음 시즌에는 초반부터 잘하고 싶다. 목표는 정규리그 우승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멋진 각오 한 마디를 청했다. “다가오는 시즌에는 다시 정상으로 갈 수 있게 만들겠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한마음으로 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내년 4월에는 꽃길 위에 서 있겠다. 그때는 내가 최태웅 감독에게 우승 축하 문자를 받고, 이틀 뒤에 전화하는 걸로 하겠다. 뒤끝 작렬(웃음).”
신진식 감독
생년월일: 1975년 2월 1일
출신교: 남성고-성균관대
약력:
1996~2007 삼성화재 선수
2010.08 국가대표팀 트레이너
2010.12 KBS N 스포츠 해설위원
2011~2013 홍익대 감독
2013~2016 삼성화재 코치
2017~ 삼성화재 감독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5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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