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을까’ 정상 향한 아름다운 동행, 최태웅-문성민

최원영 / 기사승인 : 2017-04-06 0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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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파이크=천안/최원영 기자] 피보다 진하고 눈물보다 뜨거운 두 남자. 현대캐피탈 감독 최태웅과 주장 문성민이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바라봤다. 그곳은, 정상이었다.


2017년 4월 3일. 현대캐피탈이 10년 만에 왕좌를 탈환했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세 번째 별을 차지했다. 그 속에는 최태웅 감독과 문성민의 깊은 우정이 담겨있었다. 피날레 후 이튿날인 4일, 천안에 위치한 현대캐피탈 숙소에서 그들을 만났다. 사제간 선은 지키면서도 죽마고우처럼 이야기를 주고 받던 두 사람. 그 대화를 고스란히 담아봤다.


챔피언 축하 드립니다. 우승 후 회식 기억나세요? 문성민 선수가 ‘최태웅 카와이(귀엽다는 뜻의 일본어)’를 외치던데요.
최태웅(이하 최) 나 귀엽다고? 귀엽다고 하네요. 하하.
문성민(이하 문) 예전에도 건배 제의할 일이 있었어요. 딱딱한 말보다는 웃으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싶었어요.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서 한 번 더 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뜻을 잘 몰라서 어리둥절했다니까요.



문성민 선수 챔프전 MVP 상금 500만 원은 어떻게 쓸지 결정했나요?
좀 나한테 좀 써라 인마. 커피 한 잔 못 얻어 먹고 살아요 제가.
감독님께 쓰는 것도 좋겠지만, 선수들이 있기에 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선수들부터 챙기려고요. 여유가 생긴다면 감독님까지 생각해보겠습니다(웃음).
여유 돼요 얘.



문성민, 신영석 선수가 최태웅 감독과 커피타임을 가진 뒤 어김없이 살아났어요.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해주신 거죠?
원래 잘될 때와 안될 때 사이클이 있잖아요. 안될 때 얘기를 했으니 저절로 잘될 때가 온 거 아닐까요? 아무래도 영석이는 성민이랑 있으면 2인자라는 느낌이 들 것 같았어요. 성민이가 워낙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으니까요. 영석이가 섭섭해하지 않을까 싶어서 살짝 물어봤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성민이를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팀이 어려울 때 성민이가 공을 때려주고, 해결해주는 모습이 자기가 보기엔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영석이도 비시즌에 날개 공격 연습을 해봤거든요. 어려운 걸 아니까 성민이를 잘 이해해줬어요. 둘이 잘 맞네, 그렇게 생각했죠.



감독님께서 아주 오래 전부터 제게 그러셨어요. 팀 주축 멤버들이 좋고, 문성민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우승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요.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떨쳐낼 수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 챔프전 1차전 끝나고 커피타임 때도 편하게, 힘 빼고 하라는 조언을 해주셨고요. 사실 그동안 제가 처리해야겠다는 욕심이 많아서 스스로 무너지곤 했거든요.



미디어데이에서 문성민 선수가 내걸었던 우승 공약이 이뤄지겠네요. 선수단 다 함께 챔피언스리그를 보러 가자고 했잖아요.
어린 선수들은 조금 싫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자유롭게 개인 시간을 쓰고 싶을 텐데 말이죠. 후배들에게 의견을 듣고 말한 건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가게 된다면 다들 기분 좋게 갈 거예요.
그지? 반발 있지? 있어. 내가 볼 땐 분명히 있어.
하하.
선수가 먼저 이런 제안을 해주면 좋죠. 누가 그런 얘기를 하겠어요. 하와이 가자, 놀러 가자. 이런 게 대부분이잖아요. 물론 가서 배구만 보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더 넓은 세상을 겪고 오는 게 도움이 많이 돼요. 쉽게 볼 수 있는 경기도 아니고요.



반대로 감독님은 선수들과 하고 싶었던 게 있었나요?
모르겠어요. 제가 그런 걸 미리 준비해놓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또 갈래 여행?
아 저희 둘이요? 지난번에 제가 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신영석 선수를 추천하겠습니다.
지난 시즌 끝나고 동탄 쪽으로 단둘이 여행을 갔거든요. 2박 3일 동안이요.
제가 그때 굉장히 좋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영석이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근데 영석이는 막 여기 가자, 저기 가자 할 것 같아. 저희는 둘이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제가 ‘밥 먹으러 가자’라고 하면 성민이는 ‘네~’하고, ‘술 먹으러 가자’하면 또 ‘네~’했죠.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 편하게 즐기다 왔어요.



대장정이 끝났는데 휴가 계획도 궁금해요.
휴가 일정이 시상식(4월 6일) 이후에 나오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일단 아내가 시즌 동안 고생했으니 시호(아들)는 부모님한테 맡기고 아내와 둘이 여행을 가고 싶어요.
지가 애를 봐주겠다는 건 아니고. 아주 웃겨요 얘.


둘이서 가까운 일본 쪽으로 다녀올까 생각 중입니다.
너는 일본 너무 좋아한다. 저는 2주동안은 못 움직여요. 트라이아웃 준비도 있고, 인터뷰도 해야 하고요. 집에 못 가니 아내가 입이 이만큼 나오려고 해요.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걱정이네요. 사실 전 쉬고 싶지 않아요. 가끔 그런 생각도 해요. 사람이 잠을 안 자고도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냥 계속 공부하고, 일하고 싶어요. 항상 즐거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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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대표팀 룸메이트를 시작으로 두 분 우정이 10년이 넘었어요. 문성민 선수가 2008년 독일(프리드리히스하펜), 2009년 터키(할크방크)에서 뛸 때도 여러 조언을 해주셨다면서요.
우리나라 선수가 외국에 나갔으니 잘했으면 했어요. 실패하지 말고 잘하고 왔으면, 아니 아주 잘 돼서 돌아오지 않았으면 했죠. 그런데 성민이가 경기 뛰는 걸 보니 힘들어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당시 성민이가 밖에 나가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한다고 해서 전화를 걸었죠. 그때는 아마 제가 무척 어려웠을 거예요. 저는 한참 선배고 얘는 이제 갓 스무 살 초반이 됐으니 말도 잘 못할 때였거든요. 그래도 먼저 연락해봤어요. 누군가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한참 어린 후배에게 선배가 먼저 다가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듯 한데요.
저는 원래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괜찮았어요. 성민이 마음 속에 짐이 쌓이고 쌓이는 게 보였거든요. ‘쟤 정말 답답할 텐데’하고 걱정이 되더라고요. 경기가 안 될 때는 포효를 하거나 뭔가를 표출하며 해소해야 하는데 얘는 혼자 가슴에 쌓아놓고 있으니까요. 성민이가 저에게 기대길 바랐죠.


성민이는 소극적인 편이어서 다 터놓고 얘기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확실히 결혼하면서 바뀌었죠. 이제 성민이도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그런 걸 더 배워야 해요. 그러면서 진솔한, 자기만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거죠. 저는 그런 걸 원했어요. 이번 챔프전 때도 어떻게 하면 저 응어리를 풀어줄까 했거든요.



무언가 본인과 닮은 구석이 있어서였을까요?
저는 성민이와 완전 반대예요. 현역 때 엄청 까불어서 많이 혼났어요. 승부욕도 너무 강해서 내기 같은 건 했다 하면 싸웠어요. 성격도 급해서 고치려고 노력했죠. 나이 들면서 좋아지는 것 같아요. 감독이 된 뒤에 주위에서 경기할 때 어떻게 감정을 잘 다스리냐고 물어요. 사실 속으로는 막 부글부글 끓고 있거든요. 야 성민아, 네가 나중에 지도자 돼서 재욱이 세트 하는 거 봐라. 너도 가만히 있기 힘들 거야. ‘감독님 대체 어떻게 참으셨습니까’ 그럴 거야(웃음).



배구 인생을 통틀어 ‘나를 키운 시련’도 있었을 텐데요.
감독님께서 항상 선수는 잘할 때도 못할 때도 있는 거라고, 수많은 경기 중 한 경기일 뿐이라고 말씀하시거든요. 저도 과거에 힘들었던 것들은 다 지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챔프전에서도 힘든 경기도 있었지만, 그만큼 기쁜 경기도 많았잖아요. 매 경기 매 순간을 거치면서 제가 조금씩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배구 시작해서 지금까지 울어본 적이 딱 세 번 있어요. 주위에서 저한테 ‘넌 진짜 눈물도 없는 사람이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만큼 독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자주 했거든요. 처음 눈물을 흘렸던 건 2013년 현대캐피탈에 김호철 감독께서 재부임 하셨을 때예요.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해보자고 해서 훈련량이 어마어마했어요. 하루는 운동장을 뛰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 펑펑 울었어요. 힘들어서가 아니었어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우리는 안될까’라는 생각이 밀려왔어요. 운동하면서 정말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또 한 번은 2년 전 OK저축은행과 원정 경기(2015년 1월 4일)에서였어요. 저희가 다 이긴 경기였는데 5세트에도 앞서다 막판에 역전 당해서 졌어요.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데 마지막에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후배들에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결국 화장실에서 혼자 대성통곡을 했어요. 제가 너무 우니까 성민이가 수건을 가져와서 저를 감싸주더라고요. 후배들에게 그 모습이 안 보이게요. 화장실로 저를 데리러 와준 성민이가 고맙더라고요. 그때 그 시련이 지금 저를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마지막은 이번 챔프전 2차전 끝나고 성민이에게 미안하다고 운 거고요. 딱 세 번이네요. 저는 선수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제가 모범이 돼서 보여주고 싶었고 그만큼 노력했죠.



문성민 선수는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말 안 듣는 동료도 있을 듯 한데요.
선수들이 자신을 희생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시즌을 준비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모여서 큰 힘이 됐어요. 챔프전을 치르며 깨달은 게 있어요. 감독님이 코트에서 선수들이 좀 더 뛰었으면 좋겠다, 천진난만하게 경기를 했으면 한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저도 선수들에게 그렇게 하자고 했죠.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선수들은 다 신나게 하고 있는데 오히려 제가 못 즐기고 있더라고요. 팀원들에게 배운 게 더 많아요. 대니도 챔프전 말미에 발목 부상이 있었지만 강한 승부욕을 보여줬잖아요. 선수들에게 큰 자극이 됐죠. 본받고 싶었어요. 주장하는 데 있어 영석이, (박)종영이 등이 잘 도와줘서 어려움은 없었어요.



보통 챔프전 4, 5차전에 가면 부담감이 커지거든요. 어려운 경기에서도 애들이 신나게 플레이를 하더라고요. 배짱이 좋은 걸까요? 선수들이 스스로를 잘 이끌어 나간 것 같아요.



아, 그리고 말 안 듣는 후배는 없습니다.
노재욱이 말 안 듣잖아.
그런 성격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팀에 플러스가 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웃음).
재욱이 얼마나 까부는데~ 걔가 영석이 잡아먹지?
요즘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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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현대캐피탈이란 팀이 완전체로 거듭난 듯 해요. 그럼에도 보완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요?
기술적인 부분들을 조금씩 다듬어야죠. 그건 매년 어느 팀이든 해야 하는 거니까요. 선수들 기본기를 차근차근 닦아 나쁜 습관이 들지 않게끔 하려고요. 이번에 우승을 하면서 10년동안 쌓였던 묵은 갈증을 풀어냈잖아요. 이제 이걸 유지해야죠. 그것도 쉽게 되는 게 아니니 열심히 노력해야 할 테고요. 팀워크를 더 단단히 다지지 않으면 금세 어려움이 닥칠 수 있어요. 정상을 찍고 나면 으레 위기가 따라오기 마련이죠. 철저히 대비해서 발전할 수 있는 팀이 되길 바라요. 선수들이 잘 따라와줬으면 해요.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감독님께서 ‘스피드배구’라는 걸 추구하고 계시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 따라가야 할 것 같아요. 부족한 점들은 좀 더 보완해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선수들 모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각오로 하겠습니다.



최태웅 표 스피드배구 ‘업템포 2.0’이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어요. ‘업템포 3.0’은 어떤 모습일지 청사진을 살짝 공개해주세요.
올 시즌을 치르며 다음 시즌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어요. 이건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 바뀔 수도 있는데요. 다가오는 시즌에는 팀의 조화를 더 추구하려고요. 스피드배구라는 시스템과 선수들이 맞물려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요. 그러다 보면 실수를 점점 줄일 수 있을 거예요. 모두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팀이 됐으면 해요. 공격도 각 선수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스피드를 낼 수 있는 배구를 구상 중이에요. 무엇보다 문성민이 잘해야겠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두 분에게선 단순한 동료를 넘어 가족 같은 끈끈한 정이 느껴져요.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 한 마디씩 전해볼까요?
너 있냐? 얘는 저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 해요.
감독님은 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계시고, 저 또한 감독님께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앞으로도 서로의 신뢰와 선수들간 희생을 통해 강한 팀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솔선수범해서 노력할게요.


어떻게 해야 되니? 할 수 있겠니?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게 다지? 이러니까 산책을 해야 된다니까. 앉아서 얘기하다 보면 대답이 딱딱하게 정해져 버린다니까요. 전 항상 편하게 해요. 성민아! 잘해라~ 지금까지도 잘했지만 더 잘해라. 우승도 더 많이 해라. 우리, 같이 손잡고 가자.


감독과 주장, 선배와 후배, 형과 동생, 그리고 동반자. 최태웅과 문성민은 함께 걸을 수 있는 서로가 있어 든든하다.



사진/ 문복주 기자



*더 많은 이야기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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