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위에 아로새긴 이름, 일등 감독 ‘박미희’

최원영 / 기사승인 : 2017-03-07 19: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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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파이크=인천/최원영 기자] 선수 시절 ‘코트 위 여우’로 정평이 났던 박미희. 그가 감독으로서 첫 정규리그 우승을 맛보며 ‘코트 위 여왕’으로 거듭났다.


“너마저 실패하면...” 박미희 감독이 처음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았을 때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봄 배구’ 단골 손님이던 흥국생명. 2011~2012시즌부터 암흑 터널 속으로 접어들었다. 2012~2013시즌까지 연속으로 정규리그 5위에 그쳤다. 2013~2014시즌에는 최하위까지 떨어졌다.


그랬던 흥국생명에 2014~2015시즌 새 사령탑이 찾아왔다. 사상 두 번째 여성 감독, 박미희였다. 2010년 조혜정 감독이 첫 여성 지도자로 GS칼텍스를 맡았다. 그러나 팀이 꼴찌로 처지며 한 시즌 만에 물러났다.


그렇기에 박미희 감독의 도전은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주위에서는 ‘박미희마저 실패한다면…’하는 우려도 컸다. 박 감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곤 속으로 독을 품었다.


▲엄마이자 아빠, ‘박미희 리더십’
감독 박미희는 선수들에게 엄마이자 아빠였다. 평소에는 선수들에게 엄마처럼 다가가 세심히 살폈다. 대화를 통해 속마음을 들어주고, 여가생활을 공유하는 등 친근함을 형성했다. 반면 실전에서는 선수단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쓴소리를 하거나 호통을 쳤다. 경기장에서만큼은 눈빛이 달랐다.


그런 박 감독 진심이 느껴졌던 때가 있다. 지난 2016년 3월 13일. 흥국생명이 플레이오프에서 현대건설 벽에 부딪혀 봄 배구를 마감하던 날이었다. 박 감독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시즌이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박 감독은 평정을 잃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선수들 얘기가 나오자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말을 잘 들어줬다. 서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많이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즐거운 날도 많았다. 시원섭섭하면서도 아쉬움이 더 크다. 아이들을 계속 볼 수도 있지만…” 왈칵 쏟아진 눈물. 그 속에는 ‘아이들’을 향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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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은 고민 없이 박 감독과 재계약 했다. 2017~2018시즌까지 2년이었다. 비시즌 팀 재정비에 나선 박 감독. 선수들과 일일이 개인 면담을 나눴다. 특히 출전기회가 적었던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려 했다.


올 시즌 흥국생명 주전 리베로 자리를 꿰찬 한지현은 “감독께서 ‘선후배, 수련선수 출신 등은 상관없다. 오로지 실력으로만 판단하겠다’라고 말씀해주셨다. 선수들을 같은 출발선에 놓고 편견 없이 보시겠다고 하더라. 그때 더욱 이 악물고 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라고 밝혔다.


박 감독은 위축된 선수들에게 “너 이거 왜 못 해? 이렇게 해야지”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괜찮아. 잘하고 있으니 자신 있게 해”라고 했다. 물론 때때로 엄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것이 ‘박미희 리더십’이었다.


▲‘스타 플레이어’에서 ‘스타 감독’으로
신장 174cm의 센터 박미희. 그는 광주여상 재학 시절 1980년 아시아청소년배구선수권대회, 1982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맹활약하며 한국을 우승으로 인도했다. 이어 1983년 미도파에 입단해 신인왕을 거머쥐며 스타 플레이어로 도약했다.


1984 LA올림픽, 1988 서울올림픽, 1990 베이징아시안게임 등 대표팀에도 수차례 발탁됐다. 특히 서울올림픽에서는 한국 여자배구 최초로 개인상인 수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김연경(페네르바체)이 득점왕을 챙긴 것이 유일한 개인상일 정도로 대단한 기록이었다.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접고 은퇴한 뒤에는 대학 교수로 강단에 섰다. 이후 2006년부터 2014년까지는 KBSN 스포츠에서 해설위원으로 목소리를 들려줬다. 2014~2015시즌 흥국생명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지도자 길에 섰다.


박 감독 부임 첫 해 흥국생명은 정규리그를 4위로 마감했다. 2015~2016시즌에는 리그 3위로 한 계단 뛰어올랐다. 당시 외국인선수 테일러가 족저근막염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며 대체 외인으로 센터 알렉시스를 영입하는 등 어려움도 따랐다. 우여곡절 끝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현대건설에 2전 전패하며 챔프전은 넘보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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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에는 달랐다. 1, 2라운드를 2위로 마친 후 3라운드부터는 줄곧 정상을 지키며 기대감을 높였다. 그리고 2017년 3월 7일, 드디어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다.


연신 눈물을 훔치던 박미희 감독은 “주전 및 교체 선수들이 모두 잘해줬다. 일등 감독 만들어줘서 고맙다. 이겨도 울지 않으려 했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라며 기쁨을 드러냈다.


이어 “여성 감독이니 더 특별하고 잘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똑같은 결과를 낳아도 특별하게 생각해주시는 것은 원치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여성 감독으로서 사상 첫 우승. 하지만 ‘여성’이란 단어는 필요하지 않았다. 지도자 ‘박미희’라는 이름만 기억하면 될 뿐이었다. 인천에 봄 꽃이 만개했다.



사진/ 인천=신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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