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길을 걷기란 쉽지 않다.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길을 만들기 위해선 당연히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4연속 통합우승’을 향해 도전하는 대한항공의 비행도 그렇다. 어떤 시즌보다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고난의 길 속에서 김규민과 조재영은 코트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불안했던 출발
Q. 모두가 아는 대한항공의 4연속 통합우승 도전. 시즌 들어서기 전 선수들의 마음가짐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재영 기회를 잡기 위해 연습도 정말 열심히 하고 몸 관리도 잘했어요. 그런데 여러 선수들이 대표팀에 차출되면서 팀에 남은 선수들이 정말 없었거든요. 그 남은 선수들끼리 KOVO컵도 치르고 일본 전지훈련까지 다녀오니깐 양쪽에서 체력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오래 맞췄던 만큼 합은 괜찮았는데 체력이 올라올 시간이 부족했어요.
규민 우리가 4연속 통합우승을 하게 되면 쉽게 깨지지 않을 기록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만큼 감독님부터 코칭 스태프들까지 준비를 더 많이 했고,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준비를 잘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Q. 팀 전체적으로 좋은 출발은 아니었습니다. 대표팀 차출로 호흡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고, 부상 선수도 여럿 있었고요.
재영 최초의 도전에 완벽한 전력으로 갔으면 정말 좋았을 건데, 생각에 미치지 못한 결과들이 있어서 걱정이 됐어요. 올해는 힘든 도전이 되겠고, 원하는 게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부상 선수들이 돌아오고 하면 좋아지고, 우리는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규민 처음에는 엄청 걱정됐어요. 대표팀에서 (정)지석이도 허리가 좋지 못했고, (김)민재는 발목 부상에, (한)선수 형도 많이 쉬지 못했어요. 다들 힘든 상태에서 한국에 돌아왔다 보니 체력 부분에서 많이 아쉬웠어요. 그래도 우리는 오랫동안 합을 맞췄고,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많았기에 가면 갈수록 좋아질 것 같았아요. 우리만의 배구를 하면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재영이랑 많이 대화를 나눴던 것 같아요.
MB 김규민과 조재영에게 한선수란?
Q. 같은 미들블로커로 많은 대화를 나눌 것 같은데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요.
규민 배구적인 부분에서는 미팅에 나온 약속을 잘 지키자고 말하죠.
재영 분석에 대해서 규민이 형의 생각을 듣고, 저도 제 생각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아요. 경기할 때 안 좋은 부분이 나왔다면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균형은 어떻게 맞춰야 할지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규민 필요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분석에서 나온 부분을 엄청 중시해요. 잘 도와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편이에요. 경기를 하다가도 필요한 부분이 생겼다면 바로 말해주기도 하고요. 토미 감독님부터 코칭스태프분들까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은 것 같아요.
Q. 서로에게 당근과 채찍도 자주 건네나요.
규민 채찍보단 피드백에 가깝죠. 아무래도 같은 포지션이다 보니깐 이야기할 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재영이한테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나 ‘이 방법은 어때’라고 조금은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재영 규민이 형이 워낙 잘하는 선수인 만큼 저는 많이 배워야 하는 입장이에요. 제가 부족한 부분들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Q. 특히 조재영 선수는 세터에서 미들블로커로 포지션을 바꿨습니다. 적응하기까지 어려운 시간을 보냈을 것 같은데요.
재영 포지션 변경하고 1~2년이 진짜 힘들었어요. 몸에 익지도 않은 처음 해보는 동작들이 너무 많았어요. 몸에 익숙해지려고 쉬지도 않고 반복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1~2년 동안 힘들게 미들블로커 연습했더니 어렸을 때 배우는 것보다 더 빨리 늘었다고 생각해요.
Q. 서로에게 탐나는 부분이 있을까요.
재영 규민이 형은 공격이랑 블로킹 모두 좋아요. 항상 뒤에서 보고 따라하고 있어요. 완벽하게 흡수할 수는 없지만 좋은 걸 많이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규민 외모가 탐이 나죠(웃음). 군대 가기 전에 최부식 코치님께 재영이를 엄청 높게 평가한다고 이야기했거든요. 포지션 변경하고 주전으로 뛰는 걸 보면 재영이가 정말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재영이는 포지션 변경했음에도 블로킹 스텝이랑 손모양이 예뻐요. 그래서 정말 대단하게 생각해요. 미들블로커가 머리싸움을 많이 해야 해요. 상대 세터랑 공격수 코스랑 많이 싸워야 하는 자리인데 정말 잘해주고 있어요.
Q. 두 선수에게 한선수는 어떤 존재인가요.
규민 애증의 관계죠. 아마 선수형은 저랑 재영이 없으면 심심해서 못 살 걸요?
재영 선수 형은 저희가 편한 것 같아요. 밑에 동생들이랑 나이 차가 많이 나니깐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원정 경기 가면 선수 형이랑 방을 같이 써요. 거의 5년 정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난 챔프전의 기억
Q. 조재영 선수는 4번의 우승을, 김규민 선수는 2번의 우승을 함께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은 언제인가요.
규민 당연히 2021-2022시즌 우승이 아닐까요. 모든 사람들이 역대급 시즌이라고 평가를 하잖아요. 하는 저희도 정말 쫄깃쫄깃했어요. 긴장도 많이 했고, ‘괴물’ 케이타를 어떻게 막아야 하는 것도 이제 와선 재밌게 기억되고 있는 것 같아요.
재영 그 시즌도 기억에 남지만, 앞선 2020-21시즌에 우리카드랑 5차전까지 하고 난 이후의 우승도 의미 깊었어요. 다만 우리카드랑 했을 땐 마지막에는 점수 차가 많이 난 상황에서 우승했다면, KB손해보험이랑 했을 땐 5세트에 듀스까지 했잖아요. 만약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다른 우승을 다시 해보라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2021-22시즌 마지막 경기는 절대 못할 것 같아요.
Q. 2021-2022 챔피언결정전 3차전 5세트 19-20 당시, 조재영 선수의 B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규민 코트 밖에서 엄청 긴장하면서 봤는데, 그 때는 선수 형의 강심장이 대단했습니다.
재영 그 당시 리시브가 완벽하게 올라온 게 아니었어요. 2번 자리에 짧게 올라갔는데, 선수 형이 저한테 공을 갑자기 주더라고요. 전부터 줄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서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진짜로 주더라고요. 그 때 공격을 성공했으니 지금처럼 잘 된 거지 실패했으면 은퇴했어요(웃음). 저로 인해서 경기가 끝났을 수도 있었잖아요. 여파가 진짜 컸을 거예요.
Q. 득점으로 이어졌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재영 영상에도 남아있지만 온갖 세리머니를 다 했어요. 그걸로 놀림받고 있지만,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보여줬고 기뻤던 것 같습니다.
Q. 세 번째 시즌을 함께하고 있는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은 어떤 분인가요.
재영 제가 지도자의 꿈을 꾼다면 본받고 싶은 사람이에요. 본인 만의 배구 철학이 확고하고 틀이 확실한 게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규민 ‘배친놈(배구에 미친 사람)’이에요. 배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고 본인 만의 배구에 대해 확고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파이팅이 선수들보다 훨씬 좋아요. 한국 사회에서는 위계질서가 있기 때문에 감독 자리에 쉽게 다가갈 수 없었잖아요. 그런데 토미 감독님은 운동할 때 엄청 밝게 하고 분위기도 이끌어주셔서, 우리도 자연스럽게 재밌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Q. 틸리카이넨 감독의 배구에 대해 이해는 됐을까요.
규민 이제는 어떤 방향성으로 가려고 하는지 정확하게 알 것 같아요. 지금도 완벽하지 않지만, 맞춰가려고 다들 노력하고 있고, 저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은퇴를 하고 지도자를 하게 된다면 배울 점이 많아서 공부할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Q. 조재영 선수는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다녀왔습니다. 일본 시스템이랑 틸리카이넨 감독님의 시스템은 비슷했나요.
재영 감독님의 시스템이 일본에는 기본적으로 장착돼 있는 느낌이었어요. 도쿄 그레이트베어스랑 파나소닉 두 팀 모두 우리의 상위호환 느낌이었고, 감독님이 원하는 배구를 직접 느낄 수 있었어요. 근데 감독님이 원하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라면 어렸을 때부터 기본기를 더 갖춰야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대한항공에서 점점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건 어떤가요.
규민 팀의 미래가 밝죠(웃음). 같은 포지션인 민재도 잘해주고 있고, (정)한용이랑 동혁이도 자리를 잘 잡았잖아요. 지석이가 위에서 잘 잡아준다면 앞으로 리빌딩이랑 세대교체에 대해선 걱정이 없을 것 같아요. 재영이랑도 항상 이야기하는 게 선의의 경쟁을 하는 입장이잖아요. 민재가 잘해준다면 저희도 그만큼 잘하기 위해 서로 열심히 노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재영 지금은 형들이 주축이지만 은퇴하고 난 뒤에도 이 팀이 안 무너졌으면 좋겠어요. 애정을 가진 팀인 만큼 계속 잘하는 팀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밑에 있는 동생들이 잘해주면 좋겠고, 그 기반을 다지기 위해 우리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마지막에 웃으며 만나겠습니다
Q. 앞으로 대한항공을 이끌 선수는 누가 될까요.
규민 연차로만 보면 지석이랑 동혁이가 잘 이끌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이)준이랑 한용이, 민재까지 잘 받쳐준다면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좋은 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후배들과 점점 나이 차가 나는데, 세대 차이를 느낄 때도 있나요.
규민 그러기엔 동생들이 저랑 재영이를 너무 놀려요(웃음). 놀리느라 신났어요. 경기 때 서브 때리러 뒤로 나가면 ‘티라노~’하면서 놀려요. 근데 옛날 노래 나올 때 얘들이 모르면 그 때 조금 느끼죠.
재영 제가 살짝 ‘꼰대’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 저희 때 당연했던 게 지금 아이들에겐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잖아요. 그럴 때 다르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Q. 팀에 있는 동안 가장 힘들었을 때가 있나요.
재영 포지션 바꿨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의 미래가 불투명했어요. 그 당시 고민도 엄청 많았고, 경기를 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고요.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배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생각해요.
규민 군대 전역한 이후가 가장 힘들었어요. 감독님 배구에 대해 이해도도 떨어졌고, 제 고집의 배구를 꺾지 못했어요. 경기도 다른 시즌보다 많이 못 뛰어서 힘들었습니다.
Q. 틸리카이넨 감독 배구의 타협점을 찾는 데 시간이 어느 정도 걸렸나요.
규민 꽤 오래 걸렸는데, 지금 와서 생각보면 ‘왜 빨리 맞추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지금은 저도 감독님의 배구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이게 경기력이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깐요. 그래서 더 빨리 흡수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죠.
Q. 쉬는 날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재영 아직 자식이 없어서 와이프랑 연애할 때처럼 데이트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규민 주말에 쉰다면 아들이랑 노는 게 유일한 낙이고, 평일에는 아들 유치원 등원시킨 뒤에 와이프랑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는 것 같아요.
Q. 김규민 선수는 육아랑 배구 중 어떤 게 더 편할까요.
규민 육아가 훨씬 힘든 건 맞는데, 아들이랑 노는 걸 좋아해요. 둘이 보내는 시간도 많고, 경기장에도 자주 와요. 최근에 아들이 경기장에 왔을 때 계속 이겼어요. 평소에는 주말 경기에만 왔는데, 이기니깐 평일에도 오더라고요. 본인이 ‘승리요정’이 됐다고 나름 루틴도 만들어서 와요. 이겼을 때 맨 가방을 똑같이 들고 오더라고요(웃음).
Q. 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경기들이 소중할 것 같은데 어떨까요.
규민 대한항공만의 배구를 잘 준비해야죠. 우리 배구만 잘하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잘 준비해서 제일 높은 곳에서 시즌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재영 남은 시즌 안 다치고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다들 안 다치고 좋은 결과로 꼭 저희가 목표하는 바 이루어서 시즌을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항상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감사 인사 부탁드립니다.
규민 이번 시즌 보는 팬들도 많이 힘들 것 같아요. 그만큼 잘 준비해서 이번 시즌 잘 마무리 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에 꼭 함께 웃을 수 있도록 우승해보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마지막에 웃으면서 만나요.
재영 이번 시즌 유독 팬이 늘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어요(웃음). 그만큼 항상 경기장에 찾아오셔서 응원해주시고 선물 챙겨주셔서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코트에 들어가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기 위해 더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깐, 모두가 생각하는 그 결과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글. 김하림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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