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제천/이정원 기자] "연경이는 점수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선수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제아무리 슈퍼스타가 새로운 팀에 온다고 그 팀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슈퍼스타를 바라보며 자라온 선수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그들이 묵묵히 제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주는 역할만 해도 그 선수는 역할을 다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김연경이 흥국생명에서 어린 선수들에게 그런 존재다.
지난 30일 제천체육관에서 열린 2020 제천·MG새마을금고컵 여자부 A조 현대건설과 흥국생명의 경기는 김연경의 3,647일만의 국내 무대 복귀전으로 많은 관심이 쏠렸다.
사실 많은 이들이 지난 1월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예선 이후 실전 경기를 소화한 적이 없는 김연경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박미희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선수들에게 힘을 주고, 코트 위에서 조금의 존재감만 발휘해도 김연경의 역할은 충분했다.
김연경이 있음으로써 가장 많은 효과를 본 선수로 대다수가 이재영을 뽑을 것이다. 이재영은 김연경을 자신의 롤 모델로 밝혀왔고, 배울 점도 많다고 지난 7월 말 진행된 미디어데이에서 말한 바 있다. 이재영은 “어렸을 때 연경 언니랑 같은 팀이 되는 게 꿈이었다. 꿈을 이룬 것 같아 좋다”라고 언급했다.
김연경이 오기 전 흥국생명은 이재영의 원맨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 시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재영이 있을 때에는 공수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없을 때는 공수 모두 흔들리면서 7연패 늪에 빠졌던 적도 있다. 이재영에게 쏠리는 공격과 리시브는 그녀에게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제는 김연경이 옴으로써 이재영의 부담도 덜 수 있게 됐다.
이날 이재영은 수비보다 공격에 집중했다. 19점, 양 팀 통틀어 최다 득점이었다. 공격 성공률 역시 43.59%로 준수했다. 리시브 시도는 8번에 불과했다. 박미희 감독은 "김연경이 다른 선수들에게 득점을 양보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재영이 펄펄 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공격에서 이재영이 덕을 봤다면, 수비에서는 리베로 도수빈이 큰 도움을 받았다.
초호화 라인업을 구축한 흥국생명이지만 단 하나의 포지션, 리베로는 여전히 물음표다. 한국 최고의 리베로라 불리던 김해란이 은퇴를 선언했다. 도수빈과 박상미가 있지만 김해란에 비하면 아직 보여준 게 없다.
박미희 감독도 “리베로는 누가 와도 김해란만큼은 안되지만 도수빈과 박상미가 경쟁하고 있다. 그래도 도수빈이 오랫동안 함께 해서 동선 면에서 더 편안해 하는 것 같다"라고 도수빈의 선발 출전을 예고했다.
지난 시즌 22경기에 뛴 도수빈은 안정적인 서브와 디그에 강점을 보이고 있는 선수다. 하지만 대부분 출전이 원포인트 서버였다. 잠깐 들어가는 것과 리베로로 코트 위를 쭉 지키고 있는 것은 심리적인 부담감부터 큰 차이가 있다.
모든 이들이 흥국생명 리베로 자리를 걱정했지만 도수빈은 무리 없이 해냈다. 도수빈은 양 팀 최다인 17개의 디그를 받아냈다. 김해란의 공백을 잊게 하는 엄청난 디그가 계속됐다. 리시브효율도 41%로 준수했다. 제5회 아시아배구연맹(AVC)컵 여자배구대회 국가대표로 리베로로 뽑혔을 만큼 잠재력을 인정받았던 도수빈이 그때의 잠재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다.
박미희 감독은 경기 후 방송 인터뷰에서 "김연경, 이재영 선수가 든든하게 서브리시브를 잘 하는 선수이다. 수빈이가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연경이 오니 어린 선수들이 자신들의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박미희 감독은 "연경이는 도수빈, 루시아 등 선수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선수다. 점유율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김연경 효과를 이야기했다.
데뷔 때부터 이재영은 흥국생명의 에이스였다. 힘들어도, 부상이 있어도 팀을 위해 묵묵히 뛴 선수였다. 이제 그런 그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언니가 왔다.
도수빈 역시 4년차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김연경과 함께 리시브 라인에 서면서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이번 기회를 잘 살린다면 흥국생명 차세대 리베로의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
김연경과 이재영, 도수빈을 비롯한 어린 선수들이 함께 펼칠 흥국생명의 배구. 더욱 기대된다.
사진_제천/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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