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MG컵] '알을 깨고 나온' KGC인삼공사 정호영

이정원 / 기사승인 : 2020-08-31 07: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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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파이크=제천/이정원 기자] "정호영 선수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성장했습니다"(GS칼텍스 차상현 감독), "개인적으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좋은 활약을 펼쳤다"(KGC인삼공사 이영택 감독). 모두 KGC인삼공사의 프로 2년차 정호영을 향해 던진 한마디다.

정호영은 지난 시즌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프로에 데뷔했다. 첫시즌은 그에게 큰 아쉬움과 실망감을 남겼다. 20경기, 20점이 전부였다. 시즌 전만 하더라도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불렸지만, 시즌 막바지에는 신인왕 경쟁에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 비시즌에 정호영은 윙스파이커에서 미들블로커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리시브 부담감을 덜어주고 싶은 이영택 감독의 마음이었다. 

 

KGC인삼공사는 지난 30일 제천체육관에서 2020 제천·MG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대회 여자부 B조 GS칼텍스와 첫 번째 경기를 가졌다. 사실 이 경기는 전 경기로 진행됐던 흥국생명과 현대건설의 경기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김연경 복귀전이라는 이슈가 컸기 때문이다. 

 

정호영의 포지션 변경이 가져온 대반전
두 팀이 보여준 경기 내용은 수준급이었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이어졌다. '보지 않았으면 큰일 날뻔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이 경기가 박진감 넘치고 긴장감 넘치는 데 불을 지핀 선수는 다름 아닌 포지션 변경자 정호영이었다.

사실 경기 초반 정호영의 투입은 쉽지 않았다. 1, 2세트 GS칼텍스의 맹공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러츠-이소영-강소휘의 삼각편대는 상대 코트를 휘저었다. 여기에 러츠와 한수지의 블로킹까지 터졌다.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 모두 3-0 GS칼텍스의 완승을 예상했다.

경기가 풀리지 않자 이영택 감독은 3세트 초반 박은진을 빼고 정호영을 넣었다. 세트스코어 0-2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갓 포지션 변경을 한 2년차 미들블로커를 중요한 순간에 넣은 것이다. 박은진의 부진도 있었지만 정호영을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이런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통해 제자가 한 단계 더 성장했으면 하는 이영택 감독의 바람이었다.

정호영은 이영택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3세트, 연이은 블로킹과 속공으로 현장에 있던 사람을 놀라게 했다. 하이라이트는 3세트 25-25 듀스 상황이었다. 세트를 가져오는 2연속 서브에이스를 기록했다. 다 잡은 경기를 놓친 GS칼텍스는 망연자실, KGC인삼공사는 환호를 내질렀다.

분위기를 가져온 KGC인삼공사는 이후 4, 5세트도 가져오며 짜릿한 대역전승의 기쁨을 맛봤다. 이날 정호영은 블로킹 3개, 서브에이스 2개 포함 12점을 올렸다. 디우프(21점)에 이어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이었다. 미들블로커 전향 첫 경기에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정호영을 바라본 양 팀 감독들은 모두 칭찬을 건넸다. 

 


차상현 감독, "정호영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성장"
GS칼텍스 차상현 감독은 "정호영 선수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성장했다. 여자배구를 짊어가야 하는 선수이지 않나. 정호영 선수의 성장은 반가운 일이다"라고 이야기했다. KGC인삼공사 이영택 감독 역시 "훈련 때나 오늘도 미들블로커에서 자기 장점을 다 살리더라. 개인적으로는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 좋은 활약을 해줬다"라고 말했다.

정호영은 고교 시절까지만 해도 주로 윙스파이커보다는 수비 부담이 적은 아포짓에서 뛰었다. 그러면서 연령별 대표팀은 물론이고 성인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프로에서는 달랐다. 외국인 선수가 주로 아포짓 자리에 서기에 뛸 자리가 없었다.

결국 지난 시즌 정호영은 윙스파이커 포지션에서 뛰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비에서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공격은 상대 수비에 막혔다.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니 자연스레 경기 출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20경기 20점, 1순위의 기록치곤 초라했다. 이다현(현대건설), 박현주(흥국생명)가 맹활약을 펼칠 때 정호영은 이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정호영은 "내가 그 정도 밖에 안 됐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올해부터는 자신의 높이를 살릴 수 있는 미들블로커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아직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성공적인 포지션 변경이다. 이영택 감독은 "그동안 윙스파이커 포지션에서 수비 부담을 느꼈다. 지난 시즌에도 공격이나 블로킹으로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수비 때문에 교체됐다. 신장도 좋고 점프력도 좋다. 기대가 된다"라고 미들블로커 기량을 칭찬했다.


정호영, "포지션 잘 바꿨다는 생각든다"
정호영 역시 "사이드 포지션에 있을 때는 어디 하나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지금은 근력과 체력이 많이 좋아졌다. 포지션 잘 바꿨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제2의 김연경'이란 별명은 정호영을 더욱 힘들게 했다. "이제 욕먹는데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라고 말은 하지만 한국 나이 20세가 감당할 수 없는 심한 말들이 이어지곤 했다. 이런 활약이 이어진다면 악플보다는 팬들의 응원 댓글이 많이 달릴 게 확실하다.

이제 '제2의 김연경'이 아닌 '제1의 정호영'을 향해 내달릴 준비를 마친 정호영. 배구 인생에서 포지션 변경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다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노력에 달려있다.


사진_제천/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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