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이다영, 루마니아 리그에서의 한 시즌을 되돌아보다

김종건 / 기사승인 : 2023-04-17 0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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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100%를 해야 하는 용병의 삶과 성장, 유럽 리그 2년 차에 그가 배운 것들

 

이다영의 루마니아 리그(Divizia A1) 도전이 4강 플레이오프(이하 PO)에서 멈췄다.
2022-2023시즌 라피드 부쿠레슈티 소속으로 활약한 이다영은 8강 PO 1차전 뒤 허리 이상으로 시즌을 조기 종료했다. 3월 25일 벌어졌던 8강 PO 1차전 디나모 부쿠레슈티전이 루마니아 리그에서의 사실상 마지막 경기가 됐다. 그는 구단과 귀국 일정을 조율 중이다.

디나모 부큐레슈티를 상대로 이다영은 4개의 서브에이스를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팀에 3-0 승리를 안겼다. 경기 결과는 좋았지만, 이다영에게는 최악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허리 부상이었다. 시즌 2번이나 햄스트링을 다치고 독감으로 고전했던 가운데 시즌 막판부터 허리에 문제가 생겼다. 디스크 협착 증세다. 7년 전 V-리그 현대건설 시절 다쳤던 부위에서 또 통증이 생겼다. 현대건설의 외국인 선수 야스민이 겪었던 상황과 비슷하다. 무리하지 않고 충분히 쉬어주면, 조기 치료가 가능한데도 아픈 몸을 참고 8강 PO 1차전에 출전했다.
 

 


시즌 도중에 영입했던 태국 국가대표 출신의 폰푼 게드라르드도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데다 공격수와의 호흡도 좋지 못하자 팀은 이다영에게 중요한 경기를 맡겼다. 이다영은 “허리를 삐끗해서 좋지 않았는데 팀에서 꼭 뛰어달라고 부탁해 무리해서 출전했다. 마취 크림을 바르고 통증 완화 주사를 맞고 나가서 경기는 이겼지만, 다음날부터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허리 상태가 나빠졌다. 지금은 통증이 다리로까지 전달돼 걷기도 불편하다”고 털어놓았다. 8강 PO 2차전은 폰푼이 출장해 3-1 승리를 견인했다. 이다영은 출전선수 명단에도 아예 빠졌다.

운동이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불편을 느낄 정도가 되자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MRI 검사 결과 “생각보다 상황이 심하다. 디스크에 염증이 생겨서 다리로 내려가는 신경에 자극을 주고 있다. 응급 처방으로 주사를 맞더라도 큰 효과는 보장할 수 없다. 재활이 필요하다”는 소견이 나왔다. 의사의 최종 진단은 “더 이상의 출전은 불가능하다. 억지로 뛰면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 위험이 올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그날 이후 이다영은 팀 훈련에서 제외된 채 치료에 전념했다. 매일 1시간 20분씩 레이저 등 전기자극과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이후 국내에서의 완벽한 치료를 위해 구단과 조기 귀국을 협의해왔다.

 

 


그리스 리그 PAOK 테살로니키를 거쳐 라피드 부쿠레슈티에서 2022-2023시즌을 시작한 이다영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리스 리그에서의 인연으로 라피드 행을 주선했던 카를로 파리시 감독과 함께 시즌 초반 3연승의 주역이 되며 홈 팬들에게 멋진 신고식도 했던 이다영은 이후 햄스트링을 다쳐 한동안 주전 세터 자리도 내줬다. 시즌 성적은 8경기, 49세트 출장 37득점(12서브에이스, 15블로킹) 세트성공률 37.09%다.

루마니아 1부 리그는 11개 팀이 홈&어웨이로 한 시즌 동안 각 팀이 20경기를 소화한다. 이후 상위 8개 팀이 8강, 4강 PO를 거쳐 챔피언 결정전을 치르는 방식이다. 이다영은 부상으로 팀의 시즌 경기를 많이 출전하지 못했다. “초기 부상 때 충분히 쉬어주고 몸이 완벽하게 됐을 때 출전했으면 좋았을 텐데 구단 사정상 조기에 출전해 경기에 뛰다 보니 다시 근육이 찢어졌고 복귀가 늦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루마니아 리그는 선수가 다치면 정성을 들여서 치료하고 전담 트레이너가 몸 상태를 관리해주는 V-리그 같은 시스템이 아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아파도 참고 뛰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다영은 “한 번은 독감에 걸렸는데 팀에서 ‘출전할 선수가 부족하다’면서 딱 하루 연습시키고 출전시킨 적도 있다”고 했다.

 

 


팀 내부의 사정도 여러모로 좋지 못했다. 처음 그를 선택했던 파리시 감독이 시즌 초반에 물러났다. 이후 브란코 가이츠 감독이 팀을 이끌었다. 시즌 도중에는 포지션 경쟁자인 폰푼이 영입되면서 이다영의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시즌 막판 라피드는 다시 이다영을 찾았다. 기대했던 폰푼이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이다영이 투입되면서 팀은 6연승을 달렸고 4위(16승 4패 승점43)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다영은 막판 연승 과정에서 허리에 이상이 생겼고 8강 PO 1차전을 끝으로 도저히 참고 뛰기 힘든 몸 상태가 됐다. 라피드는 4월 8일 벌어졌던 알바 블라지와의 4강 PO 1차전을 앞두고 이다영의 출전을 원했다. 이다영도 어지간하면 출전하겠지만, 부상 부위가 허리라 고민이 많았다. 라피드 구단은 물론이고 동료들이 이다영의 출전을 원했던 이유가 있다.

 

 


이번 시즌 리그 1위(17승 3패 승점43)를 차지한 알바는 라피드에게 지난 7년간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세르비아 대표팀의 세터와 아웃사이드 히터, 미들블로커 등이 5명이나 뛰는 최강팀이다. 시즌을 4위로 마친 라피드는 3월 12일 후반기 맞대결에서 3-2로 이겼다. 그날 이다영은 주전 세터로 출전해 많은 활약을 했다. 라피드와 동료들은 그 경기의 승리 기억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이다영의 몸 상태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렸다.

알바와의 원정은 버스로 6시간 이동 거리였다. 허리 디스크 환자에게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이다영은 고민 끝에 4강 1차전 원정 출장을 포기했다. 결국 팀은 0-3(16-25, 14-25, 11-25)으로 완패당했다. 폰푼마저 뛰지 못하자 리베로 알부 미하엘라를 세터로 급조해 경기를 치렀다. 4강 PO 2차전은 20일 열린다. 라피드가 4강 PO에서 탈락하면 3,4위 전을 치른다.

 

 


다음은 귀국을 앞둔 이다영과의 일문일답.
-한 시즌 수고 많았다. 이번 시즌 어떤 부분에서 성장했는지 궁금하다
“지난 시즌 뛰었던 그리스보다 수준이 더 높은 루마니아에서 유럽식 배구를 더 많이 알았다. 기술적으로는 이동 속공을 가장 많이 배웠고 급할 때일수록 차분하게 패스하는 능력도 좋아졌다. 무엇보다 파이프 공격을 가장 많이 배웠다. 지금 V-리그 출신으로 유럽 리그에서 유일하게 뛴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배우려고 한다. 지금이 배구를 배울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면서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이 보여서 뿌듯하기도 하다.”

-팀의 경기 영상을 보면 파이프 공격을 기본 옵션처럼 사용하는데.
“여기는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반드시 파이프 공격을 한다. 모든 공격수가 언제든지 때릴 수 있게 준비한다. 하이볼 상황에서도 파이프 공격을 때려야 한다. 속공은 한계가 있어서 파이프 공격을 사용하는데 우리 팀에서는 나스야 디미트로바와 호흡이 좋아서 많이 사용했다. 윙 공격수와 외국인 선수에게 많은 공이 가는 V-리그 배구와는 다르다. 중요한 경기일수록 미들블로커의 역할이 크다. 알바와의 경기 때도 우리 팀의 미들블로커가 잘해서 이겼다. ”

 

 


-라피드에서의 생활이 궁금하다. 훈련은 어떤가.
“상상외로 힘들다. 지난 시즌 뛰었던 그리그 리그와 비교해도 훨씬 강도가 세다. 그때는 배구를 재미있게 했지만 여기는 리그 수준이 높아져서 그런지 더 힘들다. 일요일만 빼고 매일 훈련한다. 월, 화요일에는 오전 오후로 나뉘어 두 차례 볼 훈련이고 수요일에는 반나절만 운동한다. 목, 금요일에는 오전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 볼 훈련이다. 그나마 주말에 경기가 있으면 금요일에는 오전에 한 번만 운동한다. V-리그 때와 비교하면 이곳의 훈련이 더 디테일하고 훈련의 강도도 높다. 훈련이 많고 힘들어서 쉬는 날은 잠만 잤다. 그 바람에 주변에 유명한 곳을 찾아가 보지도 못했다. ”

-루마니아 리그 운영 방식과 현지에서의 생활이 궁금하다.
“여기 리그는 시즌 도중에 경기 일정이 자주 바뀌는 등 V-리그와는 다르다. 이동 거리는 그리스 리그 PAOK 때보다는 줄었다. 그때는 우리 팀이 지방에 있어서 이동 거리가 많았는데 여기는 부쿠레슈티를 중심으로 많은 팀이 있어서 이동 거리는 줄었다. 루마니아가 넓어서 버스로 10시간 이동하는 팀도 있다. 알바가 5~6시간 걸리고 가까운 곳은 40분 거리다. CEV컵 때는 다른 나라 팀과의 경기여서 주로 항공기를 이용했다. 구단이 제공해준 숙소는 2베이 스타일인데 아담해서 살기 편하다. 주변에 한국 식당도 있고 한인 마트도 있다. 팬들이 택배로 한국 음식을 자주 보내주신다. 덕분에 잘 먹고 있다. 정말로 감사드린다.”

 

 


-동료들은 어떤가.
“팀 평균 연령이 30대다. 나와 세세(쿠바 출신의 아웃사이드 히터, 아일라마 세세 몬탈보)가 어린 편에 속한다. 동료들은 잘 대해줬다. 세세와는 자주 대화도 나눴다. 그에게 V-리그에 가면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면서 도전해보라고 했다. 세세는 V-리그가 가면 혹사당해서 다음 시즌 못 뛸 수도 있어서 꺼려진다고 했다. 이번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던 세르비아 대표팀의 리베로 테오도라 푸시치도 나를 잘 챙겨줬다. 내가 부상으로 힘들어할 때 자주 연락도 하면서 챙겨줬다. 선수들은 모두 착했다.”

-루마니아에서의 모든 생활을 혼자서 해온 것인가. 소통은 어떻게 하나.
“그리스 시절에도 그랬고 통역 없이 지냈다. 영어로 대화하고 있다. 일상생활은 할 수 있을 정도다. 동료들과는 단체 대화방으로 얘기를 주고받는다. 이번에 내가 아파서 출전이 어렵다고 할 때도 동료들이 꼭 같이 뛰었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며칠 전에 대화방에 내 몸 상태를 정확하게 알렸다. 그동안은 아파도 힘든 기색을 하지 않고 어지간하면 괜찮다고 하고 뛰었으니까 선수들은 내 허리부상을 잘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내 상황을 알고 잘 치료받고 선수 생활을 오래 하라고 응원해줬다.”

 

 


-루마니아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용병은 항상 100%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리그에서는 내가 용병이라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았는데 루마니아 리그는 달랐다. 리그 수준이 올라갈수록 이런 압박은 더 많아질 것이다. 쉽지 않은 해외리그 생활이다. 혹시 해외 리그에 도전해보고 싶은 국내 선수들이 있다면 이 부분을 잘 살펴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더 성숙해졌다.”

 

사진 라피드 부쿠레슈티, 이다영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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