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배구인생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죠!” 현대캐피탈 박준혁

서영욱 기자 / 기사승인 : 2020-06-01 2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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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혁’이라고 한다면 배구선수로서 유명세보다 ‘여자농구 스타 박지수의 오빠’로 좀 더 알려져 있을 듯하다. 박준혁은 아직 그 수식어를 완전히 벗어 던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2019~2020시즌에 박준혁은 배구 선수로서 뭔가 보여주기 시작했다. 배구를 시작한 지는 이제 6년째로 선수로서 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았다. 하지만 205cm라는 엄청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에서 터져나올 그 잠재력은 그의 미래를 기대케 만든다. 한국 남자배구 미래를 걸어볼 만한 자원으로도 종종 언급된다. 그의 배구 이야기를 들으러 4월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 카페로 향했다.


잊지 못할 그 날, 2019년 12월 24일
박준혁에게 2019년 12월 24일 OK저축은행전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두 주전 미들블로커, 신영석과 최민호가 모두 대표팀에 차출된 그 날, 박준혁이 선발 출전했고 프로 데뷔 후 가장 빛났던 경기로 장식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준혁은 공격 득점은 1점뿐이었지만 커리어 하이인 블로킹 6개를 잡아내는 깜짝 활약을 펼쳤다. 당시 경기 후 방송 인터뷰, 기자단 수훈선수 인터뷰 모두 그의 몫이었다(기자단 수훈선수 인터뷰는 문성민과 함께했다).

당시 경기 투입은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다. 일찍이 신영석과 최민호가 이 시기에 대표팀에 차출돼 결장할 게 시즌 전부터 확실시됐고 최태웅 감독도 이를 메울 대안을 일찌감치 준비했다. 박준혁도 그 대안 중 한 명이었다. 최태웅 감독은 지난해 10월 초에 열린 2019 순천·MG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대회에서 젊은 선수 위주로 경기를 치르며 이들이 올림픽 공백기를 책임질 것이라고 밝혔다.



박준혁은 “비시즌부터 항상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비주전 선수들도 똑같이 운동량을 가져가면서 경기에 들어가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라고 컵 대회 당시를 돌아봤다. 따로 주문한 내용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다른 주문보다 내가 부족한 부분이 많으니 실수했을 때 거기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하셨다. 형들에게도 많이 도와주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 덕분에 편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었고 그게 이후에도 주효했던 것 같다”라고 답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박준혁에게 당시 경기는 좋은 기억으로 가득했다. 박준혁은 팬들의 응원이 정말 큰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팬들로부터 많은 연락이 왔다고. “리그 개막 전부터 형들이 올림픽 예선으로 빠지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당시 팀이 조금 힘들 때였고 경기 자체도 중요했어요. 형들이 없는 티가 나지 않도록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죠. 처음에 몸 풀 때는 정말 긴장 많이 됐어요. 다행히 경기가 잘 풀려서 이후에도 잘된 것 같아요. 팬분들이 응원을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이전부터 SNS로 응원을 많이 보내주셨거든요. 그게 힘이 됐어요.”

경기 상황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박준혁은 “1세트에 첫 블로킹을 잡았을 때는 그냥 오늘 좀 괜찮나 싶었다. 그다음에 (이)승원이 형이랑 블로킹 위치를 바꿔서 (송)명근이 형 공격을 잡았는데 그때 오늘 잘 될 것 같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방송 인터뷰는 “경기보다 더 긴장돼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말을 제대로 못 한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대표팀이 복귀한 이후에도 박준혁은 한 번씩 코트를 밟았다. 최민호나 신영석이 잠시 주춤하거나 컨디션 조절이 필요할 때면 박준혁이 투입됐다. 선발로 나올 때와 웜업존에서 출발할 때 마음가짐 역시 달랐다. 올 시즌 첫 선발 경기부터 이어지는 벤치 출격까지, 느낀 게 많다.

“OK저축은행전 이후 감독님이나 형들이 자만해선 안 되고 더 겸손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남은 경기에서도 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또 형들이 돌아온 이후에는 경기에 나설 기회가 계속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기회를 잡았을 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했죠. 교체 투입될 때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들어갔을 때는 몸이 안 풀린 것 같다가도 또 풀리기도 하고 그래요.”

본격적으로 코트 위에 서는 맛을 본 박준혁이기에 더 출전하고 싶은 의지도 강해졌다. 그는 “경기에 더 나서고 싶다. 지난 두 시즌 몸 풀 때와는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경기에 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니 몸도 더 열심히 풀게 된다”라고 밝혔다.

이전과 달리 ‘박지수의 오빠’로서가 아니라 ‘배구선수 박준혁’으로 더 많은 주목을 받으면서 느낀 바도 많았다. 박준혁은 “내가 인터뷰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경기도 그렇게 잘 풀릴지는 몰랐다. 첫 경기가 잘 되니 다음 경기도 자신감이 붙었고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다”라며 “부족한 것도 더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스스로에게도 뿌듯한 시즌이었고 지난 두 시즌보다는 얻은 게 많은 시즌이었다”라고 지난 시즌을 치르며 느낀 바를 전했다.


농구의 길을 접고 ‘배구길’을 걷다
박준혁은 농구선수로 학창시절 대부분을 보냈다가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오면서 배구로 전향했다. 배구를 위해 명지고에서 송림고로 전학을 갔고 이후 명지대에 진학했다. 배구로 전향한 이후 박지수와 함께한 인터뷰에서 박준혁은 배구 전향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농구를 그만두고 운동을 안 했으면 지금쯤 뭘 하고 있었을까 싶기도 해요. 배구를 한 게 좋은 선택이었다고 봐요. 농구를 그만둘 때는 운동을 하기 싫었어요. 단체 생활도 그만하고 싶었고 일반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죠. 그런데 막상 운동을 쉬니까 또 하고 싶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배구로 전향할 당시 상황도 돌아봤다. 박준혁은 “8~9년 정도 운동을 하다가 두세 달 쉬니까 운동을 하고 싶기도 했다. 배구를 처음 할 때는 농구와 너무 달라서 괜히 시작했나 싶기도 했다”라며 “대학 입학 후 경기에 나서면서 재미를 느꼈다”라고 말했다. 농구와 배구의 차이도 언급했다. 가장 큰 차이는 농구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게 있었지만 배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사실상 없다는 점이었다.

“농구는 공을 가지고 혼자 할 수 있는 게 있잖아요. 배구는 연습을 하려고 해도 공격하려면 누군가 볼을 올려줘야 하고 서브 연습을 하려면 누군가 받아줘야 하죠. 그래서 처음에는 배구가 정말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배구는 완전 팀 운동이잖아요. 기본기도 많이 어려웠죠. 기본기는 어려서부터 반복으로 숙달하는 건데 늦게 시작하면 당장 경기에 뛰기 위한 기술부터 배우니까요. 그래도 프로에 와서 기본기 위주로 훈련해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박준혁이 농구선수로 어린 시절을 보낸 데에는 운동선수 출신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 박상관 씨는 농구선수, 어머니 이수경 씨는 배구선수 출신이다. 부모님이 모두 운동선수였기에 자연스럽게 운동을 접하게 됐다. 박준혁은 “농구를 처음 할 때 엄청 좋아서 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이 그만하겠다고 했을 때 의견을 따라주셨다”라며 “이후에 배구하는 걸 싫어하진 않으셨다. 오히려 더 좋아하셨다. 어머니도 배구 시작하길 잘한 것 같다고 좋아하셨다”라고 회상했다.

어려서부터 배구 선수로 활동한 다른 선수들과 달리 사실상 대학부터 본격적인 배구선수로 활동한 박준혁이기에 학창시절 배구 기억은 많지 않았다. 학창시절 배구 기억을 묻자 박준혁은 “대학에서 1학년 때는 거의 다 졌다. 2학년 때도 거의 다 졌는데 경남과기대를 만나 이겼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워낙 많이 져서 기억에 남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현대캐피탈행, 본격적인 배구 인생의 시작
박준혁은 배구로 전향하고 아마추어 선수 생활 3년 만에 프로에 입성했다. 뭔가를 익히기 전에 학창 시절이 끝나고 프로에 입성한 만큼, 다른 선수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프로 무대가 ‘진정한 시작’이라는 느낌도 준다. 박준혁 역시 이에 동의했다. 박준혁은 학창시절 경험하지 못한 우승을 프로에 와서 경험했다는 점 등을 언급하며 프로 무대가 진정한 배구 인생의 출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신인드래프트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프로 경력도 돌아봤다. 프로 지명 순간을 떠올린 박준혁은 “얼떨떨했다. 그래서 이름이 불리고 나갈 때도 한 박자 늦게 나간 것 같다. 명지대 형들이랑 같이 앉아있다가 불려 나갔는데 얼떨떨했다”라고 표현했다.

박준혁은 명지대에서 2학년을 마치고 프로에 진출했다. 배구로 전향한 지도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박준혁은 당시 선택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신인 시즌에는 너무 이른 시기에 온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부족한 게 너무 많았고 배운 것도 많지 않았으니까요. 대학 생활을 좀 더 하고 오는 게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도 시간이 흘러 지금 생각해보면 (신)영석이 형한테 배우는 것도 많고 코치님, 감독님도 알려주시는 게 많아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봐요.”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 됐지만 처음 프로에 들어갔을 때는 어려움도 많았다. 박준혁은 “대학 시절에 그래도 블로킹은 괜찮았다. 프로에 가서도 블로킹은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연습만 해봐도 차이가 느껴졌다. 플레이 속도나 공격에서 힘이 전혀 달랐다. 레벨이 다르다는 게 느껴졌고 어려움이 많았다”라고 돌아봤다. 어려움이 많은 가운데 정말 원석에 가까웠던 박준혁을 지명한 최태웅 감독은 그에게 급하게 가지 말자고 조언했다. 지명 당시에도 최태웅 감독은 최소 3년, 5~7년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준혁은 “감독님이 당장 경기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더 먼 미래를 보고 기본기부터 다지자고 하셨다. 너무 윗 단계부터 채우지 말고 처음부터 배운다고 생각하고 해보자고 말씀해주셨다”라고 프로 입성 당시 최태웅 감독이 남긴 조언을 밝혔다.



박준혁에게 현대캐피탈이 첫 프로팀이 된 건 굉장한 행운이었다. 국가대표 미들블로커이자 자타공인 V-리그 최고의 미들블로커인 신영석을 눈앞에서 보고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 중 신영석 이야기가 나올 때면 박준혁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두 선수는 룸메이트이기도 하다고. 박준혁은 “정말 큰 도움이 된다. 가까이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선배가 있는 것과 없는 건 차이가 있다. 또 시간을 내주시면서 많이 알려주신다.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라고 멘토로서 신영석을 치켜세웠다.

신영석은 배구계에서 익히 알려진 ‘열공파’ 선수이다. 신영석을 아는 배구계 관계자들은 정말 공부를 많이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룸메이트인 박준혁 역시 옆에서 지켜보며 그런 면모를 느꼈다. “영석이 형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요. 배구 영상도 많이 보시고 지금도 리그 최고 미들블로커인데 아시안게임 금메달처럼 더 높은 곳을 보세요. 그 정도 위치에 가면 나태해질 수도 있는데 전혀 그런 게 없고 새로운 걸 배우려고 하세요. 공부하는 모습, 연습하는 모습 보면 정말 대단해요.”

사실 신영석을 롤 모델로 삼는 선수는 박준혁뿐만이 아니다. 미들블로커로 활약하는 젊은 선수들에게 롤 모델을 물으면 열에 아홉은 신영석을 언급한다. 박준혁은 “공격이나 열에 스텝이 독보적이다. 세터를 읽는 능력도 뛰어나고 기복도 없다. 미들블로커로서 ‘저렇게 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대표적인 선수다”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박준혁은 “농담 삼아 ‘형은 늙어서 힘들어, 이제 끝났어’라고 이야기하신다. 그렇게 말은 해도 배구에 대한 열정은 정말 최고다. 영석이 형을 따라가려면 더 노력해야 하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신영석 일화는 계속 이어졌다. 박준혁은 “쉬고 있을 때 야간에 개인 운동 같이하자는 이야기도 하시고 혼자 배구 영상을 보시다가도 같이 보자고도 하신다. 정말 힘드실 텐데 틈틈이 영어 공부도 하신다. 정말 대단하시다”라고 말을 이었다. 이어 “아무나 저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그 나이가 되면 저렇게 하기 힘들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함께 훈련하며 인상적이었던 기억도 들을 수 있었다. 박준혁은 “여러 에피소드가 있지만 처음에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새벽에도 일어나서 알려주신 점이었다”라고 운을 뗀 후 “새벽에 일어나는 게 쉽지 않다. 점프도 잘 안 된다. 그런데 새벽에 함께 운동할 때면 말로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시범도 보여주신다. 그게 인상 깊었다.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고 그때를 기점으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라고 과거 기억을 되짚었다.


진천선수촌 ‘남매의 만남’ 그날을 위해
지난 2017년 박준혁과 박지수가 함께한 인터뷰에서 박지수는 오빠 박준혁에게 한 가지 바람을 남겼다. 두 사람 모두 국가대표에 선발돼 진천선수촌에서 만나는 것이다. 박지수는 이미 한국 여자농구 간판으로 대표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됐다. 박지수의 바람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박준혁이 대표팀에 선발되어야 한다. 박준혁은 최근 미들블로커 국제 경쟁력이 화두로 떠오른 남자배구에서 자주 언급되는 유망주이다. 배구 경력은 짧지만 워낙 신장이 좋고 운동능력도 신장 대비 준수한 편이기 때문이다. 당장 실력만 본다면 대표팀과는 거리가 멀지만 향후 발전 정도에 따라 대표팀 미들블로커 한 자리도 노려볼만한 잠재력은 가지고 있다.



박준혁 역시 과거 박지수의 바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박준혁은 “그런 이야기는 자주 했다. 진천선수촌에 같이 가보자고 하더라. 가서 배구 선수 지인도 소개해달라고 이야기했다”라며 웃어 보였다. 이어 “아직 국가대표에 뽑히기는 많이 부족하다. 아직 힘든 길이다. 더 열심히 해서 대표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아직은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는 꿈이지만, 실제로 진천선수촌에서 본다면 어떤 느낌일 것 같을지를 물었다. 박준혁은 그렇게 된다면 신기하면서도 어색할 것 같다고 답했다. “동생하고 진천선수촌처럼 운동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같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처음에는 어색할 것 같아요. 이상할 것 같기도 하고요. 또 진천선수촌에서 배구장이랑 농구장이 붙어있잖아요. 지나가다 마주치면 신기할 것 같아요.”

아직 배구선수로서 발을 내디딘 지 얼마 되지 않은 박준혁이기에 그가 앞으로 밟아가야 할 길은 많다. 본격적인 2년차 시즌을 보낸 박준혁의 차기 시즌 목표는 무엇일까. “다음 시즌에는 블로킹도 잘해야 하지만 속공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해요. 다음 시즌에는 어떻게 출전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지만 경기에 투입된다면 팀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연습해야죠. 올 시즌 코트에 더 많이 나서니까 경기에 뛰고 싶다는 의지도 강해졌어요. 다음 시즌에는 더 많은 경기에 나서면 좋겠어요.”

박준혁은 수치로 목표를 설정하기보다는 팀에 ‘믿음’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먼저 전했다. 그는 “영석이 형, 민호 형이 있어서 경기에 계속 나서기는 어렵다. 형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교체 투입된다면 좋을 것 같다. 형들이 좋지 않을 때 팀에서 믿고 내보낼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게 지금의 목표다”라고 밝혔다. 이어 어떤 수식어를 듣고 싶은지 묻자 박준혁은 “영석이 형처럼 V-리그 최고 미들블로커가 되는 게 목표다. 다만 노력을 조금 많이 해야 할 것 같다”라며 웃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의 배구 인생을 시작한 것 같다는 박준혁. 이제 배구 선수가 된 지 6년째에 접어든 박준혁은 “아직 어느 정도까지 왔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보다는 잘하는 건 부각시키고자 한다. 기본기 연습도 많이 하고 블로킹 영상도 많이 보면서 공부한다. 이제 시작한다고 생각 중이다”라고 지금까지 배구 인생을 요약했다. 지금의 배구 인생을 경기로 비유한다고 했을 때, 이제 1세트 시작이라고 답한 박준혁의 말에서도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부탁하자 그는 팬들과 가족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박준혁의 마지막 말에는 다음 시즌을 향한 각오와 가족을 향한 마음이 담담하게 녹아있었다. “이번 시즌에 잘된 경기도 분명 있었어요. 다음 시즌에는 그 경기들이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다음 시즌에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팬분들도 많이 좋아하실 것 같아요. 팀이 우승에 이르는 데도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운동을 시작한 이후 가족과 한동안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요. 요즘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서 좋아요. 이런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온 가족이 선수 출신’ 박준혁의 소소한 가족 스토리


사진_동생 박지수와 함께 인터뷰에 나섰던 명지대 시절 박준혁(출처: 점프볼 DB)

지난 컵 대회 때 박지수 선수가 ‘박준혁 선수가 공식 경기에서 뛰는 걸 보는 게 처음’이라고 했어요. 당시 경기가 끝나고는 만났나요.
네, 그때 가족 다 같이 봤던 걸로 기억해요. 동생이랑 저랑 시즌을 치르는 시기가 겹치잖아요. 저도 동생 경기를 올 시즌에 처음 보러 갔어요. 같은 시기에 시즌을 치르니 시간이 서로 안 맞아서 공식전을 보기는 어려웠어요.

당시에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나요.
오래 이야기하진 못했어요. 팬분들도 계시니까 사인도 해드리고 하느라 오래 보진 못했어요.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눴죠.

시즌 중에 만날 시간은 거의 없을 텐데, 가끔 연락하면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자주 연락하진 않아요. 제가 올 시즌 처음 경기 나올 때 동생이 SNS에 언급을 많이 해주더라고요. 동생 경기 보러 갔을 때 2쿼터 끝나고 라커룸으로 동생이 들어갈 때 잠깐 만났어요. 그때 동생 팀이 지고 있었는데 옆에서 ‘왜 이렇게 못하냐’라고 말했는데 그걸 나중에 다른 곳에서 말하더라고요(웃음).

온 가족이 운동선수 출신이잖아요. 좋은 점과 조금 덜 편한 점이 있다면요.
불편한 점이라면, 운동선수라서가 아니라 키 때문에 있긴 해요. 우리 가족이 키가 다 크거든요(박준혁만 해도 205cm, 박지수도 196cm에 달한다. 아버지 박상관 씨도 200cm다). 가족이 모두 모여서 외식하러 나가면 시선이 쏠릴 때는 있어요. 동생을 알아보는 분들도 많고요. 저는 없지만 동생에게 사인을 부탁하는 분도 많았어요. 말을 거시는 분들도 많고요. 가족이 모두 운동선수 출신이어서 좋은 점이라면 제 실력 대비 관심을 더 많이 받은 점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저와 동생 비교를 많이 했어요. 저는 크게 신경 안 썼는데 부모님은 제가 동생이랑 비교되면서 운동을 하기 싫어할까 걱정하시기도 했죠. 저는 크게 신경 안 썼어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죠. 예전에는 저와 동생 모두 농구를 했고 동생이 워낙 잘했으니까요.


글/ 서영욱 기자
사진/ 홍기웅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5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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