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GS칼텍스에서 뛰었던 베띠
한국배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남녀대표팀 모두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대표팀 국제경쟁력에 대한 걱정이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특히 베이징행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평가받던 여자대표팀의 탈락은 당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베이징올림픽은 V-리그 코트에 우수한 기량을 가진 외국인선수들이 찾아오는 계기가 됐다. 여자부에서는 도미니카공화국과 푸에르토리코 등 ‘중남미’ 지역 출신 선수들이 대거 V-리그를 찾는 발판이 됐다.
*( )은 V-리그 당시 등록명
영입 트랜드 변화 주도…도미니카공화국 출신 등장
2008~2009시즌 V-리그 여자부 외국인 선수는 전 시즌과 견줘 모두 새 얼굴로 바뀌었다. 브라질 출신 선수가 대세였지만 2008~2009시즌은 달랐다. 도미니카공화국과 푸에르토리코 출신 선수들이 V-리그 코트로 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여자배구 세계예선전에서 한국과 직접 맞대결한 경험이 영입 배경이 됐다.
선두 주자는 베따니아 델라 크루즈(베띠)다. 베띠는 V-리그에서 남자부를 포함해 가장 먼저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선을 넘긴 선수다. 물론 당시 베띠와 계약한 GS칼텍스는 ‘그렇지 않다’고 했지만 에이전트와 국제배구 관계자들은 베띠가 당시 V-리그가 정한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선에 맞춰 한국으로 갔다고 여기지 않았다.
‘몸값’에 대한 논란을 떠나 베띠는 V-리그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아포짓 스파이커로 주 공격수 임무를 잘 수행했다. 그는 V-리그로 오기 전 일본 V.프리미어리그 도레이에서 뛰었다. 아시아 배구를 경험했기 때문에 적응에는 문제가 없었다. GS칼텍스는 당연히 2009~2010시즌에도 재계약을 결정했다. 그러나 베띠는 해당 시즌 GS칼텍스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아기를 가져 V-리그 코트에 나서지 못했다. 베띠는 출산 후 다시 코트로 복귀했다. 그는 자국리그와 푸에르토리코리그를 거친 뒤 다시 해외로 발길을 돌렸다. 2011~2012시즌 일본으로 와 덴소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2012~2013시즌 GS칼텍스로 다시 왔다. GS칼텍스는 2013~2014시즌에도 베띠와 함께했다.
베띠는 이후 터키리그로 건너가 현재 김연경이 뛰고 있는 엑자시바시 유니폼을 입었다. 터키에서는 당시 페네르바체 소속이던 김연경과 V-리그에 이어 다시 맞대결하기도 했다. 베띠는 이후 러시아리그(디나모 모스크바), 이탈리아리그(스칸디치) 그리고 인도네시아리그(자카르타 페르타미나)를 거쳐 올 시즌에도 여전히 코트에 나서고 있다. 베띠는 러시아리그를 다시 찾았고 이번에는 디나모 카잔 소속으로 뛰고 있다.
베띠와 비교해 주목을 덜 받았지만 2008~2009시즌 한국도로공사와 계약한 밀라그로스 카브랄(밀라)은 도미니카공화국 여자배구에서는 ‘레전드’로 꼽히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윙스파이커로 공격과 수비 모두 능했다. 자국대표팀에서는 오랫동안 주장을 맡기도 했다. 밀라는 일찍 해외리그로 진출한 경력이 있다. 그는 1997년 일본리그로 진출해 파이오니어 유니폼을 입었다. 도로공사로 오기 전 이탈리아리그 모데나와 러시아리그 사모로독 카바로브스크에서도 뛰었다.
밀라는 2009~2010시즌에도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고 V-리그 코트를 누볐다. 그러나 밀라는 한계가 있었다. 단신 윙스파이커라는 점도 그랬고 당시 V-리그에서 뛴 다른 외국인 선수들과 비교해 많은 나이가 발목을 잡았다. 선수로서 전성기를 지난 뒤에 V-리그로 왔다. 밀라는 고국으로 돌아갔고 푸에르토리코리그 피킨 코로살 유니폼을 입고 2010~2011시즌을 보냈다. 그는 이후 은퇴를 결정했다.
현대건설과 흥국생명은 푸에르토리코 출신 선수를 선택했다. 아우리 크루즈(아우리)와 카리나 오카시오(카리나)는 각각 현대건설과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다. 두 선수도 베띠, 밀라와 마찬가지로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배구 세계예선전에 뛰었고 국내 구단으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아우리는 최근 코트로 복귀했다. 그는 현대건설에서 한 시즌을 뛰었고 이후 이탈리아, 터키, 아제르바이잔리그에서 뛰었다. 2010~2011시즌 이후 한동안 배구공을 손에서 놓았다. 그러다 올 시즌 10년 만에 다시 자국리그를 통해 38세의 나이로 복귀했다. 아우리는 지난 2월 이탈리아리그 보랄토 카세트라와 계약했다.
중남미 출신 선수를 뽑은 4개 팀과 달리 KT&G(현 KGC인삼공사)는 헝가리 출신 마리안 나기를 영입했다. 나기는 여자부에서 최고령 외국인 선수(1976년생)로 V-리그 역사에 남았다. 그는 2008~2009시즌 종료 후 다시 유럽으로 건너갔다. 나기는 플로렌스, 폰테카지아노, 시겔 마르살라 등을 거치며 이탈리아리그에서 3시즌을 더 뛰었다. 2012~2013시즌 이후 선수 은퇴했고 헝가리로 돌아가 지도자로 제2의 배구인생을 시작했다.
사랑이 꽃피는 코트
카리나는 흥국생명에서 두 시즌을 보냈다. 카리나는 흥국생명에서 보낸 첫 시즌 김연경, 황연주(현대건설), 한송이(KGC인삼공사) 등과 함께 막강 화력을 뽐냈다. 김연경이 임대로 일본리그 JT 마블러스로 이적한 뒤인 2009~2010시즌에도 주포로 활약했다. 카리나는 당시 정규리그 마지막 날 특별한 이벤트와 마주했다. 남자친구로부터 프러포즈를 받았다. 당시 팀 홈구장이던 인천 도원체육관(현 여자농구 신한은행이 홈 코트로 사용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이후 남자부 대한항공과 함께 인천 계양체육관으로 홈구장을 이전했다)을 찾은 팬들과 동료선수들 모두 카리나에게 축하를 보냈다.

사진_IBK기업은행 시절 카리나
당시 멕시코 농구대표팀 소속이던 하림이 주인공이다. 그는 인천을 찾아 카리나 앞에 무릎을 꿇은 뒤 반지를 건넸다. 카리나는 남자친구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카리나는 4살 연하이자 배구 선수인 율리세스 말도나도와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렸다. 율리세스는 푸에르토리코리그에서 뛰고 있다.
카리나는 배구가족이기도 하다. 언니인 쉘리아도 배구선수로 뛰었다. 카리나는 V-리그로 오기 전 푸에르토리코와 이탈리아에서 뛰었다. 그는 2010~2011시즌은 터키리그로 건너가 갈라타사리아에서 뛰었고 페네르바체로 이적한 김연경과 다시 같은 리그에서 만났다. 이후 중국리그 원난과 푸젠에서 두 시즌을 보냈다. 자카르타 BNI46와 계약해 2017~2018시즌에는 인도네시아리그에서도 뛰었다. 카리나는 V-리그로 다시 왔다. 2013~2014시즌 IBK기업은행 유니폼을 입고 네 시즌 만에 다시 한국으로 왔다. 그는 선수로 계속 뛰고 있다.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 푸에르토리코리그에서 뛰고 있다.
카리나와 인연이 있는 선수는 또 있다. 2009~ 2010시즌 남자부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에서 뛴 카를로스 테히다(피라타)다. 그는 V-리그에서 뛴 최초의 베네수엘라 출신 선수다. 피라타는 V-리그 경기를 치르며 오가다 만난 카리나에 반했다. 피라타는 남미 출신 답지 않게 조용한 성격을 가졌다. 당시 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박기원 감독도 피라타를 ‘말수도 적고 정말 착했던 선수’라고 기억한다. 박 감독은 그에게 ‘코트 안에서 좀 더 파이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을 정도다. 피라타는 카리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가슴만 앓았다. 이런 가운데 카리나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피라타는 한동안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당시 LIG손해보험은 정규리그에서 8연승을 내달리며 상승세를 탔으나 결국 봄배구에 진출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피라타의 부진이 팀 성적 하락과 맞물렸다. 피라타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V-리그 코트를 떠났다.
그는 LIG손해보험에 오기 전 아르헨티나(오브라스 산 후안), 이탈리아(레이마 크레마), 그리스(아테네), 터키리그에서 뛰었다. V-리그에서 짧은 인연을 끝낸 뒤 카타르(알 라얀), 이란(하르비시), 레바논(자하라)리그에서 뛰었고 2017~2018시즌에는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친정팀 오브라스 산 후안과 다시 계약을 맺었다. 그는 지난 시즌에는 베네수엘라리그로 돌아와 와디 모우사 소속으로 뛰었다.
V-리그 코트는 외국인 선수 커플 탄생에도 발판이 됐다. 주인공은 2011~2012시즌 현대캐피탈 소속으로 뛴 달라스 수니아스(캐나다)와 같은 시즌 GS칼텍스에서 뛴 레베카 페리(베키, 미국)다. 수니아스는 소속팀 경기가 없는 날이나 휴식일에 장충체육관을 직접 찾아 페리가 뛰는 GS칼텍스 경기를 지켜보며 응원을 보냈다.
수니아스는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로 입단 당시 큰 기대를 모으지 않았으나 가성비가 괜찮았던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는 올스타전에서 최고의 팬서비스를 보이는 등 쇼맨십으로만 놓고 보면 V-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선수로 첫 번째로 꼽힐 만하다. 캐나다 알베르타대학을 졸업한 뒤 폴란드, 프랑스, 러시아, 스페인리그를 거쳐 현대캐피탈로 왔다. 그는 2012~2013시즌에는 푸에르토리코리그에서 뛰었고 2013~2014시즌 다시 아시아리그를 찾았다. 중국(푸젠)과 카타르(알 아라비)리그에 짐을 풀었다. 수니아스는 2015~2016시즌 이탈리아리그로 건너갔다. 베키를 만나기 위해 시에코 오르토나에 입단했다. 베키는 당시 이탈리아리그 부스토에서 뛰고 있었다. V-리그에서 시작된 인연이 이탈리아까지 이어진 셈이다. 수니아스와 베키 커플은 부부의 연을 맺지는 않았다.

사진_현대건설에서 뛰었던 베키
한편 베키는 V-리그에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자유선발과 트라이아웃 모두를 통해 V-리그로 왔다. 그리고 두 번 모두 해당 시즌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 워싱턴대학을 졸업한 베키는 2010~2011시즌 푸에르토리코리그에서 뛰었고 2011~2012시즌 GS칼텍스 유니폼을 입고 한국에 왔다. 그러나 기량 미달로 시즌 도중 교체됐다. 그는 2018~2019시즌 트라이아웃을 통해 현대건설에 입단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기량 미달과 부상 등을 이유로 교체됐다. 7년 만에 다시 도전한 V-리그는 베키에게 아픔만 남긴 셈이다.
베키는 선수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터키리그(부르사, 튀르크 하바)를 거쳐 독일리그로 건너가 분데스리가 강팀으로 꼽히는 드레스트레느 SC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이탈리아리그에서 뛰며 이탈리아 국적도 얻었다. 베키는 현대건설과 계약 해지 후에는 필리핀리그(F2 로지스틱)와 카자흐스탄리그(알타이 VC)에서도 뛰었다. 올 시즌에는 푸에르토리코리그로 자리를 옮겼다.
글/ 류한준 조이뉴스24 기자
사진/ KOVO, 유용우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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