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으로 깡으로 다시 일어서다! OK저축은행 전진선

이정원 / 기사승인 : 2020-05-02 22: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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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드람 2019~2020 V-리그는 코로나19로 3월 2일 일시 중단 이후 3월 23일 조기 종료로 막을 내렸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는 시기에 내려진 결정으로 많은 팬들이 아쉬워했다. 코트 위에서 한창 활약하던 선수들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다. 이번 인터뷰 주인공, OK저축은행 2년차 전진선도 마찬가지였다. 한창 선발로 나서면서 주가를 올리던 그에게 이번 코로나19 확산 사태는 아쉽게 다가왔다.

전진선은 2018~2019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로 OK저축은행에 입단했다. 그러나 대학 시절 부상으로 인해 수술대에 오르면서 데뷔 첫해를 떠나보내야 했다. 이후 비시즌 절치부심해 이번 2019~2020시즌 자주 출전 기회를 받아 주전으로 도약했다. 리그가 중단된 가운데에도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는 전진선을 만나러 지난 3월 경기도 용인시 OK저축은행 배구연습장을 찾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취재, 사진기자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인터뷰에 나섰다.


상승세 중 맞은 리그 중단
“바이러스가 원망스러웠죠”

Q__아쉽게도 시즌이 조기 종료됐습니다. 근황이 궁금한데요.
바이러스 때문에 나가질 못합니다. 계속 숙소에서 생활 중이에요. 많이 심심하네요. 보통 나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운동으로 열심히 스트레스를 풀고 있죠.

Q__중단되기 전 3연승을 달리고 있었어요.
네, 덕분에 팀 분위기는 좋습니다. 그 직전까지 잘 싸우면서 상승세를 탔거든요. 멈추니까 아쉬울 따름이죠.

Q__선수 본인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터라 더 아쉽겠어요.
그게 컸죠. 흔히들 말하는 ‘몸 좋은’ 상태였거든요. 5라운드 막바지 들어서면서 몸이 확실히 올라왔어요. 그런 와중에 무관중으로 경기하고, 아예 중단 사태까지 오게 되니 안타까웠어요. 계속 좋은 페이스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는데, 이렇게 쉬어가게 된 타이밍이 와서요.

Q__중단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나름 좋은 경기력 보여드리고 있었는데 못 뛰게 됐으니까요. 팀 상승세, 그리고 제 상승세가 끊긴다고 생각하니 속상했죠. 바이러스가 원망스럽더라고요.

Q__역시 선수는 코트 위에 올라야 하나 봐요.
경기장에 나설 때가 가장 좋죠. 프로라면 당연한 거 아닐까요. 연습 때는 공격도 생각 이상으로 잘 되고, 서브도 잘 들어가고 그래요. 그런데 프로라면 연습이 아닌 실전에서 잘 해야죠.
경기는 꼭 전쟁 같아요. 상대와 피 튀기면서 싸우는 느낌이 들죠. 그게 좋아요. 여기서 물러서고 패하게 되면 우리가 죽는 거랑 마찬가지라는 마음으로 임해요. 그래서 초반에는 압박을 많이 느꼈어요. 그런 생각 때문에 시즌 초반 제 플레이를 제대로 못 보여줬어요. 지금은 서서히 적응하면서 제 플레이가 나오는 것 같아요.

Q__말씀하신대로 경기력이 좋았는데요.
공격이나 서브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문제는 블로킹이죠. 블로킹은 감각이 받쳐 줘야 잘 되거든요. 3~4라운드 지나면서 진짜 조금씩 감각을 찾아가고 있었는데 흐름이 뚝 끊겼네요.

Q__컨디션도 늦게 올라왔다고요.
부산 서머리그가 지난해 7월 말에 열렸죠? 그 때 몸이 80~90% 정도였어요. 저도 놀랄 정도로 몸이 괜찮아서 이번 시즌 향한 기대가 컸어요. 그런데 그 후에 일이 하나 있었어요.

Q__어떤 일이었나요.
서머리그를 마치고 휴가를 받아 집(경남 의령)에 내려갔을 때였어요. 아침에 친구 차를 타고 운동을 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접촉 사고가 났어요. 다행히 저랑 친구 둘 다 크게 안 다쳤어요. 친구가 조금 다쳤고 저는 겉으로 멀쩡했죠. 곧바로 팀으로 돌아와서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아무 이상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점프가 잘 안 됐어요. 그걸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어요. 이건 여기서 처음 이야기하는 거예요.

Q__천만다행이었네요.
여기서 있다가 집에 내려가서 바로 다음날 사고가 났어요. 그래서 집에서 쫓겨났죠. 부모님께서 당분간 오지 말라고 하셨어요. 비시즌 열심히 훈련해서 몸이 좋았는데, 출발이 조금은 삐걱거렸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후에 불안함이 생기거나 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액땜했다’라고 느낄 정도였어요. 사고 이후에도 ‘이번 시즌 왠지 잘 될 것 같다’라는 기대감이 들었어요.

Q__이유가 있다면요.
비시즌을 정말 착실하게 잘 보냈거든요. 제가 발목 수술을 지난 2018년 12월에 받고 5월까지 재활을 했어요. 그리고 6, 7월 훈련하고 서머리그까지 치렀죠.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몸이 정말 좋았어요. ‘정말 두 달 만에 올라온 몸인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좋았어요. 공격도 잘 됐고 서브도 감이 좋았어요.

Q__프로에서 보낸 첫 비시즌이었네요.
네, 정말 힘들게 보냈어요. 대학교 때 나름 힘든 팀에서 운동했다고 생각했어요. 홍익대가 러닝도 그렇고 정말 훈련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여기가 더 힘들었어요. 대학교에서 1년 동안 할 수비를 비시즌 2~3개월 만에 다 채웠어요. 보통 미들블로커들은 수비를 잘 안 하잖아요? 우리는 아니었어요. 포지션 관계없이 모든 선수들이 전부 다 수비에 가담했어요. 감독님이나 코치님 모두 제게 ‘넌 특히나 수비를 해야 된다’라고 강조하셨어요. 아무래도 주로 하던 게 아니니까 어렵긴 한데요, 그래도 지금까지 꾸준히 받고 있습니다.

Q__특별히 힘들었던 뭔가가 있었다면요.
음~. 몸이 무거울 때면 코트에 매트를 한 장 더 깔아요. 말랑말랑한 매트를 밟고 점프를 뛰면 훨씬 힘을 많이 쓰게 돼요. 몸이 무거울 때 그렇게 한 번 훈련하고 나면 엄청나게 힘들어요. 그런데 회복하고 나면 더 좋아지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제겐 이번 시즌이 ‘진짜’ 데뷔 시즌이죠”

Q__사실상 이번이 첫 시즌인 셈이잖아요.
그렇죠. 데뷔 시즌은 발목 부상 때문에 제대로 못 나섰으니까요. 스스로도 ‘이번이 첫 시즌이라 생각하고 뛰자’라고 자주 되새겼어요. 그렇다고 해도 주전으로 뛰게 된 건 얼마 안 됐어요. 시즌 초반에는 주로 원포인트 서버로 들어갔죠. 그래도 그 자체가 좋았어요. 점점 코트에 들어가는 횟수가 늘어났고, 그걸 통해 저를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요. ‘시즌은 길다’라고 생각하면서 보이지 않는 노력을 참 많이 했어요.

Q__어떤 노력이었나요.
서버로 들어갈 땐 정말 서브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야간에 서브만 엄청나게 연습하기도 했고요. 이후에 공격을 하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세터 형들 찾아가서 ‘공 좀 올려주세요’라고 해서 열심히 때렸죠. 코치님들 졸라서 블로킹 훈련도 열심히 했습니다.

Q__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섰네요.
(석진욱) 감독님께서 부임하실 당시 하신 말씀이 ‘언제든지 필요하면 요청해라. 다 도와준다’였어요. 그 말씀 믿고 열심히 부탁드렸죠.

Q__이번 시즌 개인적으로는 나름 만족스러울 것 같은데요.
제 ‘첫’ 시즌 치고는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만족까진 아니더라도 돌아보면 흡족해요. 당연히 팀 성적이 점점 떨어진 건 아쉽지만요. 개인적으로 보면 조금은 해낸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Q__올 시즌을 ‘첫 시즌’이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사실 지난 2018~2019시즌을 제 첫 시즌이라고 떠올리고 싶지 않아요. 지금을 제 첫 시즌이라고 생각해야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준비할 때부터 늘 ‘이번이 첫 시즌이다’라고 다짐했어요.

Q__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아직도 그 때가 기억나시죠.
물론이죠. 사실 기대보단 걱정이 더 컸어요. 부상이 있었으니까요. 좋은 모습들을 기대하셨을 텐데, 가자마자 부상을 알리고 좋은 모습을 못 보여드리면 어쩌나 싶었어요. 걱정이 컸죠.

Q__수술하게 됐던 발목은 어쩌다 다쳤나요.
드래프트 신청서를 낼 때까지만 해도 정말 컨디션이 좋았어요. 대학교 3년 내내 주전으로 뛰었고(전진선은 홍익대에서 3학년까지 뛰고 얼리 드래프티로 프로에 진출했다) 또 드래프트 직전에 AVC컵 대표팀에도 선발돼 다녀왔었거든요. 주변에서도 많이 늘었다고 이야기하고 제 스스로도 몸 상태가 정말 좋아서 기대가 컸어요. 그렇게 드래프트 신청서를 내고 대학리그 경기를 준비하다가 훈련 도중 다쳤어요. 속공 연습을 하다가 팀 세터 발을 밟고 떨어지면서 다쳤죠. 왼쪽 발목부터 정강이까지 멍이 시퍼렇게 들었어요. 발가락 네 개 크기가 전부 똑같아질 정도로 부었죠. 그 부상 이후로 드래프트에 안 나서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결국 그 때 수석코치였던 석 감독님께서 수술을 권유하셔서 수술을 받게 됐어요.

Q__돌이켜보고 싶진 않겠지만 지난 시즌을 떠올려볼까요.
12월 말에 발목 수술을 했고, 1월에 깁스를 풀었어요. 그 이후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재활을 했어요. 오전, 오후 매일매일 말이죠. 배구가 정말 하고 싶어졌던 때였어요. 한창 시즌이 진행 중이었으니까요.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싶었어요. 빨리 회복해서 경기에 나서고 싶은 생각뿐이었죠. 그 때 마침 아픈 미들블로커 형들도 많아서 제가 힘이 되었어야 했거든요.

Q__지난 시즌은 수술 이후 나서지 못했어요.
네, 시즌 끝나고 휴가 때도 계속 재활만 했어요. 수원에 제 방이 있어서 거기에서 생활하면서 재활했어요. 수원에서 재활센터가 있는 강남구청까지 지하철로 다니는 일정이었어요. 오전 9시까지 가야하니 7시에 출발했고요. 거기서 오후 7시까지 재활을 하고 돌아오면 8~9시였죠. 그렇게 늦은 저녁을 챙겨먹고 자는 일정이었어요. 그런 일정을 3주 동안 치렀어요.

Q__말로만 들어도 빡빡한 재활 과정이었네요.
정말 이를 악물고 재활했어요. 독기를 품었죠. 이렇게 안 하면 괜히 나태해질 것 같았거든요. 스스로 채찍질을 하고 싶었어요.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로 합류했는데 보여준 게 없었잖아요. 1라운드 1순위는 ‘가장 기대를 거는 선수’라는 뜻이잖아요. 영광스러운 자리인데 그런 기대에 걸맞은 뭔가를 보여주지 못한 점 때문에 늘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Q__그걸 독기로 이겨낸 건가요.
제가 열등감을 느끼면 오히려 더 물어뜯는 기질이 있어요. 더 악을 품어요. 흔히들 ‘시골 사람들이 악으로 깡으로 하는 게 있다’라고 하잖아요. 딱 그거예요(웃음).


대학 때는 전승 우승, 중학 때는 3관왕도

Q__홍익대 시절 전승 우승 주역이었어요.
그때가 2학년 때였죠. 첫 경기가 직전 시즌 3관왕 했던 인하대였어요. 박종찬 홍익대 감독님께서 매 시즌 말씀하셨던 게 ‘항상 리그 첫 경기가 힘들었다. 첫 경기만 잘 잡으면 괜찮게 풀어갈 수 있다’였어요. 그 때 딱 승리하면서 ‘아, 올 시즌 대박 나겠다!’ 생각했어요.

Q__정말 영광의 순간이었겠네요.
중학교 3학년 때 한 번 더 있었어요. 동명중학교 다닐 때 멤버가 좋았거든요. 지금 대한항공에서 리베로 보는 (오)은렬이가 아포짓 스파이커를 했고요, 미들블로커에 저, 그리고 같은 팀 (정)성환이가 있었어요. 세터는 KB손해보험에 있는 (김)지승이였고요. 그 때 3관왕인가 했어요. 춘계연맹전에서 한 세트 잃고 우승하고 종별선수권, CBS배를 무실세트로 우승했죠. 정말 다신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순간이었죠(웃음).

Q__학창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
제가 나온 진주동명고가 정말 명문고였어요. 그래서 수업에도 다 들어가고 했는데요, 들어가서 잠은 거의 안 잤어요. 제가 이렇게 생겼어도 책을 많이 읽었거든요. 그 때 판타지 소설을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해리포터는 제 인생작이에요!

Q__성격은 어땠나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돌아이’였죠. 정말 막무가내였어요. 일화가 하나 떠오르는데요, 어느 날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식당에 있는 식혜를 먹으러 내려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창밖에 반딧불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와!’하고 갔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현장이었죠. 그 학생들이 찔렸는지 막 도망가더라고요. 그런데 급하게 가느라 자전거를 버리고 도망갔어요. 그래서 제가 그 자전거를 타고 뒤쫓아 갔어요. 그 날은 결국 못 잡았는데요, 나중에 자전거를 돌려달라고 왔더라고요.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니 고3이었어요. 전 고1이었는데 말이죠(웃음).

Q__엄청난 에피소드네요.
그 때 생각지 못한 정의심에 불타서 반말로 ‘자전거 받고 싶으면 그 때 애들 다 데려와라’라고 했어요. 다 모였을 땐 ‘학생증 주면 자전거 주겠다. 이 학생증은 선생님 드릴테니 받아가라’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Q__배구 시작은 언제였나요.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177cm였어요. 엄청난 돼지였죠. 어머니가 매번 ‘산’이라고 그랬어요. 공부에도 소질이 없어서 ‘앞으로 뭘 해야 할까’ 싶을 때 마침 지인 분께서 배구를 권유하셨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도 권유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땐 ‘절대 안 해’라고 했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제 스스로를 보니 답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살 빼보자’라는 식으로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4kg씩 빠지더라고요.

Q__재미도 느꼈으니 지금까지 하는 거겠죠.
그렇죠.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죠. 키도 크고 살도 빠지고요. 키는 대학교 때까지 컸어요. 중학교 졸업 때가 189cm이었고 고등학교 졸업 땐 194cm, 지금은 196cm이죠. 포지션은 줄곧 미들블로커만 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제의를 받고 바로 시작했으면 아마 윙스파이커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장신 윙스파이커를 꿈꿀 수 있었는데 아쉽네요(웃음).

Q__부모님은 운동선수 출신이신가요.
아뇨. 두 분 다 아니에요. 아버지 키가 좀 크신 편이에요. 188cm정도 되셔요. 키는 아마 아버지를 닮은 것 같고요, 외모는 어머니를 닮은 것 같아요. 성격은…. 집안에 이런 사람이 없는데 혼자서만 특이한 것 같아요. 두 살 위 누나, 네 살 어린 여동생이 있는데 이 정도 돌아이는 저밖에 없어요.

Q__삼남매 집안이었군요.
서로 연락은 잘 안 해요. 다들 그렇지 않나요? 제가 워낙 일찍부터 숙소 생활을 해서 사실 살갑거나 그렇진 않아요. 둘 다 키가 엄청 커요. 동생이 180cm 조금 안 되고 누나도 170cm정도 되죠. 운동선수를 하진 않고요. 지금 대구에 있는데 조금 걱정이 돼요.


오기, 그리고 훈련… 위기를 이겨낸 힘

Q__돌아보면 2019년은 굴곡이 있던 해였네요.
정말 그러네요. 수술을 하고 재활을 했고, 열심히 비시즌을 보냈고요. 중간에 작은 사고도 있었지만 나름 시즌을 잘 치렀고요. 돌아보면 제 배구인생도 참 스펙타클했어요. 항상 화려했다면 좋았겠지만 화려한 뒤에는 꼭 크게 떨어지는 때가 있더라고요.

Q__또 언제 그런 경험이 있었나요.
고교 때도 손목 수술을 한 적이 있어요. 고3 때 멤버가 좋아서 다들 ‘너희가 전관왕 하겠다’라고 기대를 하셨어요. 한 해 들어가기 전 동계 훈련에서도 대학팀과 경기를 해서 쉽게 지지 않았고요. 그런데 손목 수술을 하게 됐어요. 세터였던 지승이도 무릎 수술을 하고, 주전 리베로를 하던 친구가 갑작스레 세터로 들어오게 되면서 힘든 해를 보냈죠. 또 제 수술이 잘못 돼 쉬는 기간이 더 길어지기도 했고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컸던 해였죠.

Q__그 때 본인을 일으켰던 힘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손목수술을 하고 나서 대학에 오고 정말 힘들었어요. 손을 못 쓰니 공을 아예 못 만졌거든요. 공 때리는 오른손이었거든요. 어느 정도 회복하고 공을 만졌는데 통증이 정말 심한 거예요. 간만에 만지니 블로킹할 때 통증이 심했어요. 그 때 코치님께서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라고 하시면서 집중적으로 블로킹하는 훈련을 해주셨어요. 통증을 참아가면서 블로킹을 하느라 손에 온통 멍이 들었어요. 집에 돌아가는 버스에서 그 멍을 보면서 혼자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울면서도 ‘이렇게까지 했는데 다시 해보자, 잘할 수 있을 거다’라고 믿음을 가졌던 게 생각나요. 그 때도 오기 아닌 오기를 부린 것 같아요. 아마 그런 마음가짐이 저를 일으켜 세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Q__오기와 훈련이 비결이었네요.
운동선수라면 어쩌면 당연한 거죠.

Q__앞으로 다가올 시련들은 이제 아무 것도 아니겠어요.
당연히 시련이 오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렇진 않겠죠? 이제 자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쉽게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Q__분명 아쉬움도 남는 시즌이었어요.
공격이나 서브는 만족스러웠지만 블로킹은 아쉬웠어요. 미들블로커라면 블로킹이 가장 중요한데 그걸 제대로 못 해냈어요. 이번 시즌 가장 아쉬웠던 점이죠. 블로킹은 감각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감각이 부족했어요. 그 부분은 다음 시즌 전에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부분입니다.

Q__그래도 시즌을 보내면서 만족스러웠던 부분이 있다면 뭐였나요.
작은 목표가 하나 있어요. 이전에 <더스파이크>랑 인터뷰 할 때 말했던 건데요, 두 자릿수 득점이에요. 두 자릿수 득점을 해서 팀이 이기고,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는 게 목표였는데 목표를 이뤘어요. 지난 2월 26일 KB손해보험하고 경기에서 13득점을 하고 방송인터뷰를 했거든요(웃음). 이젠 더 큰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할 때네요.

Q__어떤 목표일까요.
아직 자세하게 생각한 적은 없는데요. 아, 13득점을 하고난 다음 날이었어요. 아침밥을 먹는데 (이)민규 형이 저한테 오더니 ‘20득점 하면 인정해줄게’라고 했어요. 다음 목표는 20득점입니다. 대학교 때는 23점까지 해봤거든요. 음…. 못할 거 없죠.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__슬슬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한 마디 하고 싶다면요.
고향에 있는 친구들에게 할게요. 제가 배구하는 모습을 보면 친구들이 정말 좋아해요. 막 캡처해서 보내주고 그러거든요. 가끔 못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저한테 ‘배구 좀 더 해야 겠네~’하면서 놀려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해주는 응원이 힘이 돼요. 친구들아~ 시즌 끝내고 내려가면 술 한 잔 하자.

Q__부모님께도 한 마디 부탁드려요. 섭섭해 하시겠어요.
네, 엄마. 시즌 끝나고 집에 내려가도 돼? 하하하. 마지막으로 팬들께도 한 마디 드리고 싶어요. 이번 코로나 사태로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무관중으로 경기를 하기도 했고 아예 시즌이 종료됐어요. 무관중으로 뛸 때는 정말 허전했어요. 제 플레이를 보고 팬들이 좋아해주시고, 함성을 질러주는 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부디 얼른 이 사태가 마무리되어 팬들께서 다시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더 많이 오셔서 응원해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전진선 프로필
생년월일 1996. 9. 11
소속 OK저축은행
신장 196cm/89kg
출신교 진주동명중-진주동명고-홍익대
포지션 미들블로커
프로입단 2018~2019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글/ 이광준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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