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고 둥글둥글한 얼굴. 동네 오빠같이 친근한 느낌을 준다. 알고 보면 아이 둘이 있는 유부남. 한없이 순해 보여도 코트 위에서는 누구보다 화끈한 왼손잡이 공격수다.
사실 그 뒤에는 배구를 향한 열정과 노력이 숨어 있다. 올 시즌 남자부 최하위, 한국전력을 비추는 ‘외로운 별’ 서재덕이다. 서재덕은 올 시즌을 끝으로 군에 입대한다. <더스파이크>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코트 위에서 투혼을 발휘하고 있는 서재덕을 2월호 커버스토리로 선정했다.
다시 주전 공격수로
16연패. 한국전력은 시즌 시작부터 승리 없이 긴 연패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외인 공백으로 인해 주장 서재덕은 리시브를 받는 윙 포지션에서 아포짓 스파이커로 급히 포지션을 바꿔 경기를 치렀다. 서재덕은 주장으로서, 주축 공격수로서 힘든 시즌을 보내고 있다.
요즘 어떠세요.
(웃으면서) 많이 힘들어요. 그래도 더 힘든 날도 많았어요. 지금이 특별히 힘들다거나 그렇진 않네요. 올 시즌 1승 했을 때도 경기 마치고 나서 참 힘들었는데 요즘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떨어지다 보니까 힘이 들긴 해요.
신인 시절과 지금은 위치가 다르잖아요. 정신적으로 부담은 더 클 것 같아요.
그건 맞아요. 지금은 주장이기도 하고요. 팀을 챙겨야 하니까요. 중간에 포지션도 바꾸면서 플레이도 많이 달라졌고요.
프로 와서 이렇게 많은 공격 해본 적 있는지요.
아뇨 처음이에요. 하하하. 대학 때는 해봤는데요, 이런 경험이 오랜만이어서 한 경기 한 경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공격 기술은 문제가 없는데 체력안배가 잘 안 돼요. 이걸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경험이 없으니까요. 대학 때는 단기 대회 위주였으니까요. 배구 경력이 오래되긴 했지만 이런 경험은 사실상 처음이에요. 그래서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즌이 참 기억에 남겠네요.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해서 기억에 남길 바랐는데…. 사람 일이라는 게 마음처럼 쉬운 게 아니네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봐야죠.
비록 성적은 안 좋지만 팬들이 좋게 봐주시고 있어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저를 비롯해 모든 선수가 그렇게 연습하고, 경기에 임하고 있어요. 그렇게 해서 승리한다면 더욱 좋아하실 텐데 그 부분이 아쉽죠. 마지막 뒷심이 부족한 것 같아요. 선수들도, 팬 분들도 답답해하실 거라 생각해요. 쉽지 않네요.
힘든 상황에도 팀이 뭉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선수들이 끝까지 따라 주는 게 가장 큰 힘이죠. 시즌이 힘들다고 해서 포기해버리면 팬 분들도 실망하실 테니까요. 응원해주시는 팬 분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힘 낼 겁니다.
공교롭게도 재덕 선수가 주장을 맡고 나니 힘든 일이 생기네요.
제가 중요한 일을 맡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웃음). 예전부터 웬만하면 주장 같이 나서는 일을 안 하려고 했어요. 제 앞가림도 잘 못하는데 남까지 챙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이 맡았어요. 이왕 맡았으니 최선을 다해야죠. 대학 때도 주장은 안 했거든요. 주장 경력이 없어서 국가대표 가서 문성민(현대캐피탈), 한선수(대한항공) 형들이 하는 걸 보고 배우려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윙스파이커에서 아포짓으로 시즌 중간에 포지션을 바꿨어요.
해보고 싶어서 도전한 건 아니고요. 공을 쳐 줄 선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제가 자원했어요. 그 때가 대한항공전(11월 8일)이었던 것 같아요. 공격에서 폭발력이 부족한 것 같아 제가 감독님께 ‘받는 것보단 공격을 하겠다’라고 말씀드렸죠. 훈련 한 번 하지 않았지만 감독님께서 결단을 내려주셨어요. 이후 감독님이 아예 아포짓 자리에 고정시켜 주셨죠.
주공격수 역할을 하고 있는 소감이 어떤가요.
편한 것도 있지만 다른 부담감이 생겼죠. 아포짓 스파이커는 확실한 결정력이 필요해요. 책임감을 짊어지고 가는 포지션이에요. 제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는데 아직 그 부분이 부족한 것 같아요. 대표팀에서 많이 해보긴 했지만 대표팀하고 리그는 다르니까요. 개인적인 한계를 느끼는 부분도 있어요.
어떤 부분에서 한계를 느끼나요?
솔직히 제가 다른 팀 외국인선수와 대등한 수준으로 해야 하는 셈이잖아요. 그렇게 보면 힘에 부치죠. 그렇지만 저 혼자 배구하는 게 아니니까요. 우리 팀 선수들이 제 부담을 많이 덜어주고 있어요. 우리 선수들이 부족하다고 여기저기서 말하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좋은 선수들이에요. 제가 부족한 부분을 잘 보완해줘요.
리시브도, 공격도 잘 하는 재덕 선수를 보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요.
사실 저도 처음엔 욕 많이 먹었어요. 리시브를 왜 그렇게 못 하냐고요. 그래도 기본적인 것은 어린 시절부터 해왔으니까요.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한 거라 생각해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훈련을 했으니까요. 그게 플러스 요인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창시절이 아닌 프로에 와서 가장 성장했던 것 같아요. 기술적으로도, 그리고 정신적으로도요. 그 덕분에 지금 조금이라도 편하게 배구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외국인선수 역할, 힘들긴 하네요”
한국전력이 올 시즌 힘을 쓰지 못하는 건 외국인선수 부재 이유가 크다. 처음에 선발된 외인 사이먼은 불성실한 훈련 태도로 팀을 떠났고 대체 외인으로 온 아텀은 경기 도중 복부 부상을 입어 결국 계약해지했다.
시즌 시작 전부터 출발이 좋지 않았어요.
저는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때부터 불안했어요(지난 트라이아웃은 2018년 5월에 열렸다). 구슬 추첨 결과 저희가 맨 마지막(추첨 결과 한국전력은 외국인선수 선발 7순위, 가장 마지막이었다)이었잖아요. 그 때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꼬일 줄은 몰랐지만요.
위기가 거듭 생기면서 너무 커졌어요.
제가 생각했던 최악 상황까지 왔어요. 마지막 순위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당시 국가대표팀에 있을 때였어요. 새벽에 문자로 보고 있었는데 7순위가 나왔어요. 그거 보고는 바로 그냥 자버렸죠.
그래도 기대를 받고 온 사이먼이 10월, 전지훈련 후에 떠났어요.
좀 아쉽죠. 근성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금까지 왔던 외국인선수들 모두 기본 훈련 과정을 거친 뒤에 뛰었으니까요. 사이먼이 같이 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저희랑 생각이 다르니까요.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일찍 됐다면 대처가 됐을 텐데, 시즌을 며칠 안 남기고 일이 터져 버려서 조급하게 일처리가 됐어요. 저는 이미 팀 훈련도 윙스파이커로 다 해놨는데 아포짓으로 뛰는 일이 생겨버렸고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자리만 바꾸는 걸로 착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완전 다르죠. 저 하나만 바뀌는 게 아니고 선수단 전원 위치가 바뀌니까요. 몇 년 동안 습관처럼 들여온 것을 바꾸는 거라 쉽지 않아요. 왼쪽으로 뛰던 걸 오른쪽으로 뛰는, 방향만 바꾸면 된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팀원들도 선수가 달라지면 움직임이 달라져야 하니 당연히 힘들죠. 사실상 시즌 전에 준비한 것들이 말짱 도루묵이 된 셈이에요.
그렇지만 성장통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선수들이 많으니까요. 언젠가 우리에게 이런 일이 또 안 올 거란 장담은 할 수 없잖아요. 나중에 가서 예방주사라고 생각하고 훈련하는 거죠. 물론 이런 일이 안 오는 게 가장 베스트지만요.
그런 고초 끝에 값진 1승을 거뒀어요.
그 1승도 참 어려웠죠.
그 때 엄청 기쁜 표정은 아니었던 기억이 나요.
1승에만 매달렸던 게 아니었으니까요. 더 많은 승리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복잡했어요. 개인적으로 성에 차지 않았죠. 경기를 이기자마자 드는 생각이 ‘아, 또 이기고 싶다’였어요. 바로 그 다음 경기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좋긴 했지만 그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나 봐요. 시즌은 한 경기만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잖아요.
복잡한 생각을 했네요.
평소에 생각이 많은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예민하고 잠도 잘 못 자요. 한 번씩 불면증도 오고요. 그런 쓸데없는 잡생각이 제 단점인 것 같아요. 너무 생각이 많아지니까요. 사람들이 저를 볼 때 그냥 단순한 성격일거라 예상하는데 ‘배구’에 있어선 절대 그렇지 않아요. 쉽게 잊을 때는 잊어야 하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스스로에게 엄격하거나 하진 않아요. 잘 덤벙대죠.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랑 차이가 있네요.
배구 외에는 보시는 그대로 단순한 게 많아요. 그런데 배구만큼은 아니죠. 예민해요.
그래서 1승 뒤 인터뷰에서 ‘휴식 때는 배구공을 쳐다보기도 싫다’라고 한건가요.
(서재덕은 1승 뒤 수훈 선수 인터뷰에 들어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배구 생각 안 하기’를 이야기했다.)
맞아요. 경기 끝난 다음 날은 배구공을 보면 토 나올 것 같아요(웃음). 머리도 아프고요. 웬만하면 다른 걸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죠. 맛있는 걸 먹으러 가거나 이것저것 하려고 노력해요. 그렇지 않으면 다음 경기에 임하기가 참 힘들어요. 한 번 정도는 기분 전환이 필요하거든요.
먹는 걸 좋아하나 봐요.
엄청나게 좋아하죠. 딱히 가리는 게 없어요. 우리 팀 (이)승현이랑 자주 나가요. 나가면 안 되는데 몰래 먹으러 나갔다 오고 그래요. 아마 감독님도 아실 거예요. 몰래 나간다고 하는데도 다 알고 계시더라고요. 눈감아주시더라고요. 아, 음주는 절대 안 해요. 원래 술을 잘 못 먹기도 하고요, 안 좋아해요.
평소 자기관리는 어떻게 하는 편인가요.
그렇게 철저하게 하는 편은 아니에요. 먹을 때 확 먹고 살이 쪄 있으면 러닝머신 많이 뛰고 그래요. 배고플 때 먹고 살 찌면 빼고 하죠. 주변 사람들도 다 알아요. 그래서 선수들이 저보고 ‘그냥 안 먹고 안 뛰는 게 낫지 않아?’라고 많이 물어봐요.
군 입대를 앞두고 최고의 별이 되다
이렇게 팀 성적이 나오지 않고 있음에도 서재덕은 2018~2019 도드람 V-리그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올 시즌 팀 위기에도 분투하는 서재덕 모습에 많은 팬들이 박수와 격려의 한 표를 보낸 것이다. 올 시즌 마친 뒤 군에 입대할 예정인 서재덕. 배구와 잠시 이별하게 된 기분은 어떤지 궁금했다.
시즌을 마치면 군 입대가 예정돼 있어요.
아휴…. 맨날 꿈에 나와요. 꿈꾸면 그 꿈밖에 안 꿔요. 아직 머리도 안 밀었는데 훈련소에 있는 꿈을 몇 번 꿨어요. 그런 날은 몸이 정말 피곤해요.
저는 다녀왔는데도 가끔 꿔요.
군대 다녀오신 건 정말 부럽습니다. 존경합니다.
군대에 가게 되면 배구와, 한국전력과 잠시 이별을 해야 해요.
아직까지 크게 와 닿진 않아요. 그렇지만 정말 아쉽고 섭섭할 것 같아요. 공익근무요원으로 가는 거고 집이 수원 근처니까 군 생활이 힘들거나 하진 않겠지만요. 자주 배구 보러 가고 하겠지만 직접 하는 게 아니니 아쉬울 것 같아요. 선수 생활하면서 못 해본 것들을 하면서 지낼 생각이에요. 아직 뭘 할 지는 미정이지만요.
선수들 중에는 2년 정도 보내고 와서 성숙해져 돌아오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오, 저도 좀 성숙해졌으면 좋겠네요. 워낙에 철이 없어서요.
가족들은 뭐라고 말하던가요?
아내는 장난으로 ‘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가지 마’라고 하는데 누가 가고 싶겠습니까. 다들 ‘그래도 지금 배구를 하고 있으니 가기 전에 후회 없이 하고 다녀오라’라고 많이들 이야기해주셨어요. 그래서 후회 없이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군대 간다는 사실 잘 모르죠.
모르죠. 아직 아이들이 어려요. 이제 네 살, 세 살이 됐으니까요. 한 달 가량 훈련소에 가서 못 보겠지만 출퇴근하니까요. 지금보다는 집에 자주 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참에 아이들하고 많은 시간 보내려고 생각 중이에요.
아이들 정말 보고 싶으실 것 같아요.
늘 보고 싶죠. 그렇지만 여건이 잘 안 되네요.
아이들이 경기장에 자주 오나요?
자주 와요. 그전까지는 경기장에서 저랑 보고 헤어질 때가 되면 자주 울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첫째는 “아빠 잘 가~”라고 태연하게 인사해요. 가끔 집에 있을 때면 “아빠 왜 배구하러 안 가? 빨리 가”라면서 보내려고 해요. 첫째는 아빠가 배구선수인 걸 어느 정도 아는 것 같아요. 아직 둘째는 잘 모르고요. 둘째가 좀 칭얼거리죠. 애교도 많고요.
아이들 자랑 좀 해주세요.
제 눈에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특별히 자랑할 게 있나 싶어요. 제 눈에는 마냥 사랑스럽고 자꾸 보고 싶고 그래요.
결혼을 일찍 하신 편이잖아요.
스물 일곱에 했죠. 어릴 때부터 결혼을 일찍 하고 싶었어요. 최대한 빨리 아이들을 보고픈 마음이었거든요. ‘절 닮은 아이들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많이 생각했었어요. 그런 생각 때문에 결혼을 일찍 결심하게 됐죠.
또 좋은 아내분이 계셨으니 결심이 섰던 거겠죠?
당연하죠. 그건 무조건 써 주세요. 와이프가 정말 ‘완벽’해서 빨리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그 이유가 0순위에요. 제 아내는 정말 모든 부분에서 완벽합니다.
아이들을 보니 정말 본인과 닮았나요.
첫째는 외모나 성격이나 확실히 저를 닮았어요. 제 어릴 때 성격은 안 닮길 바랐는데 그것도 닮았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 정말 내성적이었거든요. 첫째도 밖에만 나오면 낯가림이 심해요. 저도 그래서 부모님께서 운동을 시키셨거든요. 그래서 저도 첫째에게 활동적인 걸 시켜보고 싶은 생각이에요.
아이들이 배구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배구 말고 다른 걸 했으면 해요. 워낙 제가 했던 거라 힘든 걸 알고 있으니까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시키고 싶어요.
둘째는 어떤가요.
어휴 둘째는…. 도대체 누굴 닮았는지 엄청 까불거려요. 일단 저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아, 아니네요, 절 닮았네요. 절 닮았습니다.
아내분하고 나이 차이가 어떻게 되죠.
아내가 두 살 연상이에요. 저는 절대 잡혀 살지 않습니다(단호).
시즌 때마다 가족을 자주 못 보는데 평소 어떤 이야기를 자주 하시나요?
아내가 ‘애 둘 보기 진짜 힘들어’라고 자주 해요. 저는 제가 하소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집에 갈 때마다 하소연을 듣고 와요. 저도 같이 그러면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자주 들어주는 편입니다.
“한국전력은 제일 편한 집, 여기서 은퇴하고 싶어요”
배구천재, 만능 멀티플레이어 서재덕. 겉으로 보기에는 이제 배구에 통달했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여전히 “배구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 그래서 재밌다”라고 말했다.
1승 뒤 인터뷰에서 ‘배구는 할수록 배울 게 많아 재밌다’라고 했지요.
하면 할수록 새로운 것이 배구예요. 하나를 하면 새로운 무언가가 나오고, 거기에서 재미를 느끼죠. 그게 제가 지금까지 배구라는 끈을 놓치지 않고 해오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새로운 걸 배우고, 실력이 느는 게 참 즐겁거든요. 그래서 군대에 가는 2년이 아쉬울 따름이에요.
‘배구천재’라는 수식어는 어떻게 생각해요?
솔직히 아직 부담스러워요. 제가 지금까지 보고 배웠던 여러 선배님들께 그런 말을 하는 거면 인정하겠는데 저는 멀었어요. 여전히 보고 배우는 입장인걸요.
그럼 본인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저는 ‘배구에 미친놈’이요. 그 말이 듣고 싶어요.
이번 기사 제목을 ‘한국전력의 혼’이라고 생각했는데, 동의하시나요?
음…. 아직은 못 해요. 그렇게 되려고 노력해야죠. 사실 프로에 오던 그 순간부터 저는 원 클럽 맨(One club man)으로 남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팀과 재계약도 했고요. 지금 ‘한국전력의 혼’이라는 표현은 조금 부담스럽네요. 나중에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게 지금부터 노력해야죠.
본인에게 한국전력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일 편한 집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보다 여기가 편해요. 그만큼 여기에 오래 몸담았어요. 제 모든 청춘, 열정을 바친 팀이기 때문에 여기서 꼭 은퇴하고 싶어요. 정말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만큼 제가 열심히 해야겠죠.
방금 하신 말과 등번호 1번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처음에 번호를 고를 때 제가 장병철 수석코치님을 참 존경해서 18번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감독님(그 당시에는 코치)께서 ‘너는 무조건 1번 해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1번 달고 열심히 뛰었죠. 군대 다녀와서도 1번이 남아있으면 1번 다시 달고 싶어요.
1번은 팀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상징과 같은 등번호잖아요.
네, 지금은 그래서 1번이 좋아요. 첫 번째라는 점이 말이죠.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팀에서도 저를 생각해준 것이니까요. 제겐 큰 영광이죠.
먼 훗날 지도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아직은 없어요. 좀 더 많이 코트에 올라 뛰고 싶을 뿐이에요. 일단 군대를 다녀와 봐야 알겠네요.
마지막으로 군대에 가기 전 목표가 있다면 하나만 말해주세요.
얼마 안 남았네요.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최대한 많이 이기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고 가야 제 마음이 홀가분할 것 같습니다. 힘내겠습니다. 아자!
자투리 STORY
누가 주장을 가장 잘 도와주나요?
말 안 듣는 선수 고르는 게 빠르겠네요. 공재학 선수가 가장 말을 안 들어요. 제 위로 형님들(최석기, 최홍석 등)도 그렇고요. 정말 ‘뒤지게’ 안 듣습니다(웃음). 운동할 때는 잘 따라주는데 배구 외로는 그냥 제가 ‘yes’하면 다들 ‘no’라고 해요. (특별한 에피소드 없냐는 질문에) 에피소드요? 매일이 에피소드라서 딱히 기억이 안 나네요. 긴장했나. 하하하.
전광인 선수가 둘의 관계를 부르면 오는 ‘콜택시’라고 표현했어요.
광인이와 저는 서로 딱한 사정을 잘 알고 있죠. 광인이도 그 쪽에서 육체노동을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부르면 무조건 가야죠. 제 생각에 저희 사이는 서로 돕는 ‘상부상조’라고 생각해요. 이제 광인이도 결혼했으니 둘 다 유부남이잖아요. 서로 도움 줘야죠. 광인아,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와이프한테는 ‘절.대.복.종’ 해야 돼. 이기려고 들면 안 된다(웃음).
포스트 서재덕?
제가 떠나면 신인 이태호 선수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 같아요.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 친구가 제게 이것저것 정말 많이 물어보는데요, 그럴 때마다 제가 ‘내 밥그릇 뺏을 생각 하지 마’라고 해요. 장래성도 뛰어나고 신체조건도 좋아요. 태호야, 우리 팀에 온 걸 정말 환영하고 무럭무럭 성장해주길 바랄게. 얼른 커서 한국전력의 새 기둥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한국전력 훈련은 힘들다?
이렇게 성적이 안 나오는 때에는 어느 팀이나 훈련이 힘들 거예요.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다른 거라 생각해요. 상황이 힘들다 보니 시간도 잘 안 가고 하는 거죠. 밖에서 보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훈련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하던 거라서 그게 무리라거나 힘든 거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아요.
글/ 이광준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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