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한양대가 기나긴 침묵을 깨고 왕좌를 되찾았다. 2018 ㈜동양환경배 전국대학배구청양대회(이하 청양대회)에서 5전 전승으로 달성한 우승이었기에 그 기쁨은 배가 되었다. 2010 삼성화재배 전국대학배구추계대회 이후 8년 만에 달성한 우승이었다. 1999년 64연승을 질주하며 대학배구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한양대는 2010년 이후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우승은 커녕 결승조차 쉽게 진출하지 못했다. 그렇게 보낸 8년, 한양대는 청양대회를 시작으로 정상을 향한 도약을 시작했다. 2018 대학리그를 6위로 마감한 한양대는 오는 20일 인하대와 6강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한양대 제2의 전성기를 이끄는 사령탑, 양진웅(54) 감독을 만나 지난 1년 8개월 동안 한양대가 만들어낸 성장드라마를 되돌아봤다.
Q. 지금 한양대에 있는 선수들이 처음 우승한 만큼 운동하는 분위기가 엄청 좋을 것 같아요.
A. 선수들의 자신감이 많이 올라왔죠. 그동안 고생한 게 우승이라는 결실로 돌아왔으니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라는 걸 체감한 것 같아요.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도 다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Q. 감독님이 한양대에 부임하신지 1년 8개월 만에 달성한 우승이에요.
A. 감독 한 명이 바뀌었다고 해서 모든 게 한꺼번에 달라지진 않아요. 그 전에 계셨던 감독님들이 해오던 것들에 제 나름대로의 지도 방식이 더해지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처음 한양대에 오셨을 때는 지금과 많이 달랐겠죠.
A. 그렇죠. 작년 1월에 왔는데 당시 주전 선수들 중 일부가 C제로룰(직전 두 학기 학점 평균이 4.5점 만점에 2.0미만일 경우, 해당 학기 모든 경기 출전 불가)로 인해 1학기 경기를 뛸 수 없는 상황이라 많이 당황스러웠었어요. 그렇다보니 팀을 운영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었고, 결국 1학기에 6연패까지 했었죠. 여름방학 때 주전 선수들이 다시 코트로 돌아오면서 조금씩 팀이 자리를 잡아갔던 것 같아요.
Q. 한 학기라고는 하지만 2학기 일정이 끝나고 그 다음해 여름방학까지 약 9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공백기를 가졌다는 얘기인데, 선수들이 바로 적응하던가요?
A. 늘 연습만 하다가 너무 오랜만에 실전 경기를 뛰니까 많이 어려워하더라고요. 그래도 제천대회, 해남대회에서 경기를 몇 번 하다보니까 감각이 돌아와서 2학기 때부터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Q. 결국 부임 첫 해를 8위로 마무리했다고는 하지만, 그 때부터 조금씩 쌓아왔기 때문에 지금 빛을 볼 수 있던 거겠죠.
A. 처음 한양대에 와서 가장 많이 손을 본 게 기본기였어요. 어느 지도자나 마찬가지겠지만 배구는 서브와 서브리시브, 연결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경기 중에 범실이 제일 많이 일어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 전에 계셨던 감독님들 보다는 기본기를 다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그건 지금도 똑같아요. 배구선수라면 공격은 다들 어느 정도씩은 해요. 포인트만 조금 잡아주면 금방 깨우칠 수 있죠. 그런데 기본기는 달라요. 얼마만큼 노력을 해서 몸에 배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Q. 기본기가 다져진 만큼 올해 한양대를 보면 탄탄해진 느낌이 들어요.
A. 작년에는 선수들이 코트 위에서 잘하다가 순간순간 찾아오는 고비를 넘기지 못해 아쉽게 진 경기들이 많았어요. 올해는 그런 부분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아요. 청양대회 전에 했던 해남대회 때에도 성적은 안 좋았지만 경기 내용은 괜찮았어요. 해남대회 때 아쉬움이 남아서 선수들이 청양대회를 더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해남대회를 치르면서 1학기 때보다 자신감도 붙고 결국 청양대회에서 우승까지 해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Q. 선수들이 대학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했는데, 선수들 자랑 조금씩만 해주세요.
A. 일단 주장을 맡고 있는 류성주 같은 경우는 정말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하는 선수에요. 뭐든지 앞장서서 하려고 하고 늘 선수들을 이끌어주죠. 박태환은 작년과 올해를 비교해보면 가장 많이 성장한 선수에요. 지난해 드래프트를 신청했다가 프로팀의 지명을 받지 못했지만 올해는 블로킹 타이밍도 많이 좋아졌고 공을 쫓아가는 능력, 경기를 읽는 눈도 한 층 성장했습니다. 태환이는 작년에 주장이었는데 1학기 때 경기를 뛰지 못하면서 스스로 많이 위축됐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적극적으로 잘해주고 있죠.
4학년들이 맡은 자리에서 제 역할을 잘해주고 있고, 밑에서는 후배들이 받쳐주니까 팀 호흡이 더 잘 맞아가고 있어요. 아직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완성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감독님께서는 2000년 사우디아라비아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프로, 대학, 고교 등 여러 분야에서 코치나 감독으로서 지도자 경험을 하셨는데, 각각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A. 외국 같은 경우는 연령대별로 운동을 가르치는 방식이 달라요. 어린 학생들일수록 배구를 즐거워할 수 있게끔 지도하고 있죠. 우리나라는 그런 면에서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프로 선수들이 하는 훈련 방식대로 배구를 배우니 매번 반복되는 훈련에 싫증을 느끼기도 하고 연습하는 만큼 실력이 늘지 않더라고요. 기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나이에 맞는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마추어일 지라도 성적을 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죠. ‘어떤 방식이 맞다, 틀리다’라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늘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Q. 감독 보다는 코치 생활을 오래 하신 만큼 각각의 역할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것 같아요.
A. 코치는 감독을 보좌하고 감독과 선수를 이어주는 사람이에요. 감독이 내린 지시를 선수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게 코치의 역할이죠. 그런데 감독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직접 생각해서 판단하고,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하죠. 같은 지도자지만 그 역할에는 차이가 많습니다. 코치는 코치대로, 감독은 감독대로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Q. 감독, 코치뿐만 아니라 경기위원, 경기감독관까지 다양한 역할을 하셨더라고요.
A. 일단 코트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2008년부터 3년 동안 경남 진주에 있는 동명고등학교에서 코치 생활을 한 적이 있어요. 현대캐피탈 코치직에서 물러난 뒤로 잠시 쉬고 있을 때 하종화 경기감독관(당시 현대캐피탈 감독)께서 저한테 동명고 코치를 맡아달라고 부탁하셨거든요. 우연한 기회로 고등학교 코치를 맡게 됐는데 생각보다 오래 있었다보니 프로에 쭉 계셨던 분들이 제가 계속 배구를 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경기위원을 통해 다시 프로 세계로 돌아가게 된 겁니다.
Q. 그 뒤로 쭉 프로에 계시다가 대학 팀으로 오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KOVO에서 경기감독관을 하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먼저 연락을 해왔어요. 전 감독이던 신춘삼 감독님께서 정년으로 인해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면서 제게 학교를 맡아달라고 했죠. 솔직히 학교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해본 적 없었어요. 현대캐피탈에서 코치를 하고 있을 때 당시 김호철 감독(현 남자배구국가대표팀 감독)님께서 모교에 한 번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신 적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기회가 닿지 않았거든요. 갑자기 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정말 생각지도 않게 오게 된 겁니다(웃음).
Q. 처음으로 선수들 만났던 날을 아직 기억하시나요.
A.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사실 선수들도 갑자기 감독이 바뀐다는 얘기를 들어서 분위기가 어수선했던 것 같아요.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만나니 더 그랬겠죠. 처음 선수들과 만난 날 선수들에게 앞으로 제가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해 얘기를 했어요. 그 때도 선수가 18명 정도 됐는데 ‘내가 너희들 18명을 일일이 다 맞춰줄 수 없으니 너희들이 나한테 맞춰라. 대신 내가 너희를 가르치면서 절대 나쁜 길로는 가지 않겠다’라고 말했죠.
Q. 부임 당시 한양대가 오랫동안 힘든 시기였던 만큼 슬럼프에 빠지거나 고민이 많은 선수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A. 간혹 한두 명씩 보이더라고요. 그동안 지는 경기가 많았다보니 팀 분위기도 안 좋았고요. 그래서 4학년 선수들 데리고 맥주 한 잔 하면서 진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하고 그랬어요. 굳이 4학년이 아니더라도 줄곧 잘하다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이는 선수가 있으면 따로 불러내서 어떤 점이 힘든지 물어보죠. 다들 그렇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는 정신적으로 힘든 게 더 크잖아요. 선수들도 여자친구나 그 밖의 다른 인간관계에서 찾아오는 고민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때는 인생 선배로서 조언도 해주고 위로도 해줬어요, 지금도 가끔 그런 선수들이 보이면 대화를 통해 선수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평상시에도 선수들한테 해주는 조언이 있나요.
A. 아직 학생이라고는 하지만 곧 사회로 나가게 될 선수들이잖아요. 그래서 앞으로 선수들이 겪게 될 사회가 경쟁사회라는 걸 늘 강조하고 있어요. 비록 같은 학교 친구고 동료일지라도 늘 경쟁해야 하는 상대라는 걸 인식시켜주죠. 팀에 잘하는 선수가 있어서 좋은 성적을 낸다고 한들 자신이 뛰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거니까요. 프로에 가면 경쟁은 더 심해져요. 그래서 제가 프로팀에 있으면서 봐왔던 것들을 선수들에게 얘기해주면서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준비해놓으라고 말하죠.
Q. 감독님 말씀을 들으니 냉정하고 엄격한 선생님의 모습 같아요.
A. 훈련할 때만큼은 강하게 합니다. 선수들한테는 운동화를 신고 코트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바깥에서의 생활은 다 지우라고 말합니다. 대신 훈련이 끝나면 아무 소리 안 해요. 어딜 가든 누구를 만나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죠. 대신 한 가지 조건을 걸어놨어요.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저한테나 주장에게 꼭 말을 해놓고 가라고요. 혹시 급하게 그 선수를 찾을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연락만 잘 되면 괜찮아요. 그런데 아직 어린 학생들이라 그런지 안 지켜질 때도 있습니다. 저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으니 이해가 돼요. 선수들이 어떤 마음인지 잘 알죠.
Q. 선수들에게 감독님은 어떤 스승인가요.
A. 청양대회 끝나고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선수들에게 못된 감독 만나서 고생한다고 얘기했어요. 저는 경기에서 지는 날에 선수들한테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아요. 코치와 함께 무엇 때문에 졌는지 분석하고 그 다음 훈련 때 고치려고 하죠. 가뜩이나 경기에 져서 힘들고 기분도 안 좋을 텐데 거기서 무슨 얘기를 한다고 한들 도움이 될 게 없다고 생각해요. 대신 경기에서 이긴 날에 그 경기에서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지적합니다. 그래야 받아들이는 선수들도 더 낫지 않겠어요?
운동할 때는 엄격하게 하더라도 평상시에는 농담도 하고 대화도 하면서 지내고 싶은데 아무래도 세대 차이 때문인지 제가 농담한답시고 던진 얘기에도 선수들 반응이 썩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코드가 안 맞는 것 같아요(웃음). 늘 선수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고 잘 어울리는 감독이 되고 싶은데 선수들은 제가 감독이라는 위치에 있다 보니까 어려워하는 게 사실이에요.
Q. 매년 선수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게 학교 감독의 숙명이잖아요. 학교를 졸업하는 선수들에게 어떤 스승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A. 선수들이 졸업하면서 ‘우리 감독님한테 이거 하나만큼은 배우고 나갈 수 있었다’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Q. 지금의 한양대를 비롯해 앞으로 감독님이 만들어갈 한양대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A. 배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물론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돋보일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 사람이 돋보이기 위해서는 무조건 그 사람을 뒷받침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게 배구에요. 잘 받아주고 잘 올려주는 사람이 없으면 절대 빛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늘 선후배, 동료들과 관계를 잘 지키라고 말합니다.
기술적으로는 기본기가 된다면 별 문제 없어요. 제 나름대로 스피드 배구를 하려고 하는데 외국에서 하는 것과 한국이 하는 스피드 배구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스피드 배구의 첫 번째 조건은 서브리시브에요. 그 다음은 세터의 빠른 연결이죠. 사실 그런 부분에서 아직 우리 세터들은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빠른 스피드보다는 공격수들이 잘 때릴 수 있는 공을 올리라고 주문하고 있죠. 너무 스피드만 추구하다 보면 팀이 무너지게 되니까요. 세터의 능력에 따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Q. 이제 곧 리그가 시작될 텐데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A. 코트 안에 들어가면 1학년이든 4학년이든 똑같아요. 저는 4학년이라고 해이해지는 모습 보이는 걸 제일 싫어합니다. 늘 선수들에게 경기 끝나고 후회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경기 끝나고 ‘이것만 했으면 이겼을 텐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럴 바에 경기를 하는 동안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는 경기를 하라고 하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한양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글/ 이현지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9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