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국민적인 스포츠로 배구 인기가 높은 일본에도 한국과 같은 이름의 리그가 존재한다. V리그다. 일본 V리그의 팀들도 한국 V-리그의 팀들과 같은 풀의 외국인 선수들을 놓고 영입경쟁을 벌이곤 한다.
특히 일본 V리그는 지난 12월 25일 시즌 개막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로운 로고 디자인을 발표하고 그동안 진행해온 세미프로리그를 갱신하고 2018~2019 시즌부터 완전한 프로리그로 재탄생할 것을 선언하였다.
2018 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다시 한번 한국 남녀배구 앞을 가로선 일본. 숙명의 맞수이자 공생해야하는 관계인 이웃 일본의 V리그에 대해 알아보자.
일본 V리그, 1967년 창설해 1994년 세미프로 출범
V리그란 이름은 일본에서 먼저 쓰기 시작했다. 1967년에 창설되어 매년 겨울철에 인기몰이를 해온 일본 국내실업리그인 니혼리그가 1990년대 초반, 일본남녀 국가대표팀의 국제 성적이 하락하며 배구 인기가 시들해지기 시작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침으로 일본배구협회는 1994년 의욕적으로 계획해온 세미프로형식의 일본 V리그를 출범시킨 것이다. 당시 1부 리그 격인 니혼리그에서 활동하던 남녀 각 8부 팀을 그대로 출전시키되 팀 명칭과 로고를 만들게 하고, 외국인 선수 출전을 확대하여 실시하게끔 한 것이다. 여기에 연고지까지 갖게 했으니 세미프로리그로서 제법 구색이 갖추어진 리그였다.
그 당시까지 일본에서는 드물게만 외국인 선수가 뛰는 경우가 있었다. 여자부에는 1985년 다이에에서 활약하다가 코트에서 경기 중 요절한 플로 하이만(미국)과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까지 NEC에서 뛴 리타 크로켓(미국)이 있었다. 남자부에는 80년대 중후반 토레이에서 같이 활약한, 한국거포 강만수 전 우리카드 감독과 중국의 미들블로커 왕가위 콤비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제한적으로 외국인 선수를 기용하던 일본의 실업팀들은 일본 V리그 출범 첫 해에 파격적인 대우로 외국 선수들을 데려오기 시작한다. 특히 여자 팀들은 쿠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페루 등 해외 톱클래스의 외국인 선수들을 싹쓸이해오고 만다. 당시 일본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버블경제의 붕괴로 오랜 호황이 끝나고 급격한 불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수의 기업들이 과감하게 세계 각국의 특급 배구선수들을 데려오는데 열을 올리며 죽지 않는 엔화 파워를 보여주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만큼 일본국민의 배구사랑은 남달랐다. 남녀배구가 모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64년 도쿄 올림픽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 일본여자배구는 일본이 불참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제외하고는 모두 4강에 올랐고 그 중 두 번 금메달을 획득했다. 일본남자배구는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는 동메달,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하더니,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거머쥔다. 이러한 국가대표팀의 활약에 힘입어 1980년대 말까지 일본에서 배구는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1994년 일본 V리그 출범 당시 일본배구팀들이 데려온 세계 최고의 배구선수들 중에는 대표적으로 90년대 세계여자배구계를 평정한 쿠바여자배구팀의 칼과 방패, 미레야 루이스와 마갈리 카르바할이 있다. 이들은 당시 이례적으로 공산국가인 쿠바정부로부터 해외진출을 허용 받고, 모기업의 엄청난 지원을 받은 일본 다이에 오렌지 어택커스에서 활약했다.
다이에 오렌지 어택커스는 당시 그 외에도 미국의 에이스 카렌 켐너와 폴라 와이쇼프, 쿠바의 레글라 토레스 같은 세계최고의 선수들을 속속들이 영입하였고, 일본 V리그 출범 첫 해에 니혼리그에서는 그동안 한 번도 이루지 못했던 우승의 한을 풀고야 만다. 다이에는 1994년 당시 한국에서도 ‘얼음공주’로 인기몰이를 한 야마우치 미카가 아포짓 스파이커를 맡았던 팀으로, 당시 일본 실업배구계에서 엄청난 텃세로 인해 우수선수 수급에 애로사항을 겪고 있었다. 다이에는 이를 타파하기 위해 외국인 선수 도입을 주도하는 한편 야마우치를 자국내 프로 1호로 연봉 1억 엔에 계약하기도 했다.
또, 당시 일본 V리그에서는 러시아의 미녀삼각편대 아르타모노바 (토요보 올키즈), 소콜로바 (히타치 벨퓨), 고디나 (NEC 레드 로켓츠)가 각자 다른 팀에서 뛰며 서로 경쟁하기도 하는 등 많은 볼거리를 자국 팬들에게 제공했다.
일본 V리그 출범 시 외국인 선수 제도에 따르면 팀 당 2명까지 동시에 외국인 선수가 코트에서 뛸 수 있었고, 영입은 2명 이상도 가능할 만큼 자유로운 편이었다. 여자부에 비하면 남자부는 외국인 선수 영입이 그다지 활성화 되지 않은 편이었고 영입한 선수들의 수준도 여자부만큼 높지 않았다. 당시에도 남자배구의 핫 플레이스는 이탈리아였기 때문이다. 일본 V리그의 팀들은 1990년대 중반 한국에도 손을 뻗쳤는데,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과 장윤희 전 GS 칼텍스 코치가 일본 유수의 팀들로부터 영입제안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금기와 암흑기 교차한 일본 V리그
사진: 새롭게 탄생하는 일본 V리그 출정식 모습
1990년대 중반까지 일본 V리그는 참여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데려와 그 인기를 간신히 유지하긴 하였으나, 많은 이들이 희망했던 바와는 달리 이러한 투자가 일본국가대표팀의 성적으로 이어지지 못하자, 그 인기가 급 하향 곡선을 걷기 시작했다. 니혼리그 시절 구름같이 체육관을 가득 메우던 관중들도 줄기 시작한 것이다.
애초에 이렇게 탑 레벨 외국인 선수들을 많이 데려온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자국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함이었는데 일본배구는 세계무대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돈은 돈대로 쓰고 효과는 보지 못한 격이 된 셈이다.
일본 국가대표 배구팀의 국제경기는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인기 아이템이다. 일본 아이돌 그룹이 자국에서 열리는 국제배구대회에 맞춰 주제곡 싱글을 발표하고 TV에 나와 배구를 직접 하며 대회와 자신들의 노래를 홍보할 정도이다.
일본 역대 TV시청률 기록을 보면 그중에 얼마나 많은 일본배구 국가대표팀의 경기가 순위 상단에 올라와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야후 재팬을 검색해보면, 현재 일본의 역대 TV 시청률 톱10에 배구 경기 중계가 두 개나 올라와 있다. 스포츠 중계 시청률만을 가지고 집계한 것도 아니고 통합 시청률 역대 기록이다.
우선 10위에 일본이 금메달을 획득한 뮌헨 올림픽 남자배구 결승전 (1972년 9월 8일, 시청률 58.7%)이 올라있고, 역대 최고 시청률 2위가 역시 일본이 금메달을 딴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 결승전 (1964년 10월 24일, 시청률 66.8%)이다. 10위권 밖에는 이 외에도 배구 월드컵대회를 비롯한 많은 일본국가대표 배구팀의 국제경기들이 높은 순위들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성적이 더 좋은 여자국가대표팀의 경기가 유독 많이 올라와 있다.
이런 오랜 국민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일본남녀배구는 약속이나 한 듯 90년대 중반부터 부진하기 시작하였고, 막 출범한 일본 V리그도 급기야 90년대 말에 이르자 히타치(여), 이토 요카도(여), 후지 필름(남), NKK(남) 등과 같은 많은 배구 명문 구단들이 모기업의 경영난 등으로 줄줄이 해체하며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신일본제철 블레이져스(남), 다이에 오렌지 어택커스(여)같은 일부 구단은 이때 시민구단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초특급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기 위한 경쟁도 당연히 차츰 줄어들게 된다.
이와는 별개로 일본 V리그 출범 시 아예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지 않고 자국 선수들만을 고집한 팀들도 있었는데, 당시 각각 일본 남녀배구의 최고 명가로 꼽혔던 후지필름 플래네츠와 히타치 벨퓨가 그들이다. 이들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일본배구의 자존심을 지키자는 차원에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지 않고 순수 일본 선수들만으로 팀을 구성하여 제1회 일본 V리그에 출전하였지만 중상위권의 성적을 거두는데 만족해야만 했다.
들쑥날쑥하긴 하였지만, 당시 일본배구는 국제대회에서 하락세가 뚜렷했다. 그러다 급기야 남자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자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결국 일본 V리그도 그 시점을 전후로 외국인 선수를 2명에서 1명으로 줄이고 자국선수들을 육성하는데 다시 초점을 맞추게 된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배구는 쿠리하라 메구미, 오야마 카나, 카토 요이치, 야마모토 타카히로 등 스타성을 갖춘 선수들이 나타나며 조금씩 반등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2003년을 기점으로 여자부에서는 한일전에서 일본이 13년 만에 다시 우위를 보였고, 남자팀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등 분명 암흑기에서 벗어나려는 그들의 각고의 노력이 결실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일본여자배구는 4강에 올라 3-4위전에서 한국을 이기고 28년 만에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다.
하지만 아직도 일본 V리그가 예전 니혼리그 시절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번에 발표한 리그의 개편과 완전한 프로리그로의 선언도 옛 영화와 인기를 회복하기 위한 시도이자 한 방편으로 보인다.
■ 2017~2018 일본 V리그 결과
일본 V리그와 한국 V-리그의 피할 수 없는 경쟁
지난 시즌, 일본 V리그 1부 리그(V프리미어리그)의 참가팀 수는 남녀 각 8개 팀이었다. 여자부는 외국인 선수 없이 시즌을 치룬 NEC를 제외한 7개 팀이, 남자부는 8개 팀 전부가 외국인 선수를 한 명씩 보유한 채 시즌을 마쳤다.
사진: 일본에서 활약 중인 前삼성화재 가빈 슈미트
이들 선수 중에는 한국 V-리그를 거쳐 간, 우리에게 낯익은 선수들도 보인다. 여자부에는 2011~2012시즌 현대건설에서 뛰었던 브란키차 미하일로비치(세르비아, 현 JT 마블러스), 남자부에는 삼성화재에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 V-리그 3연패를 주도한 가빈 슈미트 (캐나다, 현 토레이 아로즈), 2010년에서 2012년까지 LIG 손해보험 (현 KB손해보험)에서 활약한 밀란 페피치 (보스니아, 현 FC동경), 그리고 2013년에서 2015년 역시 LIG 손해보험에 뛴 토마스 에드가 (호주, 현 JT 썬더스)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세계적으로 어느 리그에 가도 주전으로 뛸 수 있을 만한 준척급 이상의 선수들이다. 특히 브란키차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거머쥔 세르비아 국가대표팀의 핵심 멤버이자 현재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비형 윙스파이커이다.
이들 외에도 남자부 월드리그를 통해 한국 팬들에게 얼굴을 알린 프랑스의 윙스파이커 안토닌 루지에(31)가 최근 일본 V리그의 토레이 아로즈와 계약을 했고, 폴란드의 에이스 미칼 큐비악(남)도 이번 2017~2018시즌 일본 V리그에서 우승을 함께 한 파나소닉 팬더스와 한 시즌을 더 같이 하기로 확정했다. 여자부에서는 미국국가대표 주전 미들블로커인 폴루케 아킨라데우(30, 히사미츠 스프링스)의 재계약이 유력하다.
이렇듯 전통적으로 일본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의 수준은 무시할 수 없다. 자금력에 있어서 아무래도 일본이 한국시장보다 앞서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한국에서 쓸만한(?) 외국인 선수를 잘 뽑아 검증(?)을 시키면 일본에서 데려가는 패턴이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일본 V리그가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일본 V리그가 앞으로 시도하게 될 것 중에 하나로 알려진 아시아 쿼터제의 도입이다. 즉, 아시아권 국가들의 선수들은 외국인 선수로 카운트하지 않고 별도로 기용하게끔 해주겠다는 것인데, 여자배구의 태국이나 베트남, 대만 선수들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제도가 아닐까 싶다. 이들의 성장세는 무섭다. 물론 넘쳐나는 장신의 우수한 중국선수들도 그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중국 자국 리그의 성장세를 볼 때 얼마나 많은 중국선수들을 일본에서 데려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진: 2017년에 이어 2018년에도 성공적으로 마친 한국-태국 슈퍼매치
한국 V-리그는 한국-태국 여자부 슈퍼매치를 2년 연속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다방면으로 흥행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다른 리그, 다른 국가의 선수들과 교류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행보다.
일본 V리그도 외국인 친화적인 방법으로 국제경쟁력을 키우려고 노력해왔다. 예를 들어 외국인 감독 영입의 이슈가 있다. 이미 80년대에 니혼리그 여자부 다이에 팀은 당시 파격적으로 미국 출신 셀린져 감독을 기용하여 수년간 팀을 맡겼고, 90년대 일본 V리그 출범 시 여자부 이토 요카도 팀도 한국 출신 박만복 감독을 페루에서 데려와 감독직을 맡겼다. 현재 남자부 토요다 트레페르자 팀과 JT 썬더스 팀은 외국인 감독체제하에 움직이고 있다.
“젠니뽄(全日本)”이라고 불리우는 일본의 국가대표팀도 이미 작년부터 남자부와 여자부 모두, 저명한 외국인 코치를 각각 프랑스와 터키에서 데려온 상태이다. 이들은 왕년의 슈퍼스타 출신, 나카가이치 유이치 감독 (전 신일본제철 블레이져스 소속)과 나카다 쿠미 감독 (전 히타치 소속)과 함께 일본대표팀을 이끌기로 되어 있다.
한국 V-리그의 몇몇 남자팀도 현재 외국인 코치와 분석관 등을 고용하고 있다. 최신 선진 기술을 도입하여 리그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나아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서 한국 V-리그의 국제경쟁력을 증강시키는 선순환을 창조하려면 우수한 외국인 선수의 영입도 중요하지만, 지도자 차원에서 배구선진국들과의 활발한 교류도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글/ 조명선 더스파이크 칼럼니스트
사진/ FIVB, 토레이 구단, 일본 V리그 공식 홈페이지 제공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5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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