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만 한 얼굴에 꽉 들어찬 이목구비. 모델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외모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코트 위로 나서자 또다른 매력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서브와 강력한 스파이크까지. ‘이래서 그렇게 인기가 많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2018춘계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 여고부 경기가 열리는 남해문화센터 체육관에는 그를 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찾아온 팬들이 곳곳에 보였다. 가까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눠보니 밝고 명랑한 여고생이었다. 알면 알수록 매력 넘치는 그녀, 선명여고 윙스파이커 박혜민(18)이다.
남해를 뜨겁게 달궜던 박혜민은 오는 13일 열리는 2018 태백산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태백으로 향한다.
‘나’보다 강한 ‘우리’
선명여고는 2018년 목표로 ‘무실세트 우승’을 내걸었다. 주장 박혜민을 필두로 2018~2019시즌 신인 드래프트 최대어로 평가받는 미들블로커 박은진, 여고부에서 찾아보기 힘든 강서브를 장착한 이예솔, 제2의 김연경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윙스파이커 정호영까지. 대회 전 이미 여러 사람들은 선명여고의 질주를 예상하고 있었다.
시작부터 순조로웠다. 첫 대회인 춘계연맹전에서 전 경기 셧아웃 승리를 거뒀다. 20일 치러진 결승전 2세트에서는 8점의 열세를 뒤집고 세트를 따냈다. 박혜민은 “하나씩 쫓아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했더니 우리 흐름을 찾을 수 있었어요. 중간에 고비도 있었지만 목표를 이룰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다들 자기 역할을 잘해줘서 정말 고마워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박혜민이 주장으로서, 선수로서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경기할 때나 연습할 때 항상 선배로서 솔선수범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랑 후배들이 저를 주장으로 추천해준 것 같아요. 아직 리시브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항상 리시브에 신경 쓰면서 연습하고 있어요”라며 솔직한 답변을 전했다.
무섭지만 재밌었던 세계무대
박혜민은 이미 간결하고 빠른 스윙으로 세계대회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며 배구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2017년 3월 출전한 18세 이하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3위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박혜민은 “상대가 우리보다 키가 크니까 마주보고 섰을 때 살짝 무섭기도 했어요. 처음 호흡을 맞춰 본 선수도 있어서 힘들기도 했고요. 그래도 계속 하다보니까 점점 잘 맞아가는 게 느껴져서 즐기면서 경기할 수 있었어요. 힘들어도 웃고 서로 응원해주다보니 어느새 한 팀이 되어있더라고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박혜민은 이 대회에서 베스트 아웃사이드스파이커상을 수상하며 배 이상의 기쁨을 누렸다. “제가 받은 상이긴 하지만 다 같이 잘해서 받을 수 있었어요. 같이 고생한 팀한테 정말 고마웠어요.”
예쁘게 봐주세요
선명여고는 올해 더 강해졌다. 지난해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던 정호영(189cm, 2학년)이 합류하자 여고부 최강 라인업이 완성됐다. 박혜민은 “많은 분들이 우리 팀을 잘 봐주고 계신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딱히 부담이 되지는 않아요. 오히려 저희를 향한 기대에 부응하려고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라며 당차면서도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여고부의 경우 대개 선수 대부분이 졸업하기 전에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기 때문에 경기장을 찾는 프로구단 감독들이 많다. 박혜민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경기에 감독님들이 오시면 의식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더 열심히 경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리시브든 수비든 안정적으로 해내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이 인터뷰도 프로팀 감독님들이 볼지도 모른다는 말에 자세를 고쳐 앉은 그는 “잘 써주셔야 해요”라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엄마따라 갔다가 잡은 배구공
박혜민과 배구의 만남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배구동호회를 하던 엄마를 따라갔다가 처음 배구를 접하게 됐다. 당시에는 단순하게 공부보다는 운동이 재밌을 것 같아서 냉큼 배구공을 잡았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부족한 점을 메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는 포지션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수비 연습만 하다가 중학교에 진학했다. 학교 사정상 3년간 미들블로커로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미들블로커로 뛰었던 경험 덕분에 블로킹은 잘 잡을 수 있어요. 그런데 중학생 때는 이단연결로 올라온 공을 넘겨본 적이 없어서 고등학교에 온 이후로 윙스파이커라는 포지션에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부족한 걸 보완하려면 연습 말고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계속 연습했어요.”
연습한 만큼 결과로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되기가 쉽지 않다. 박혜민도 마찬가지였다. “잘 안되니까 연습하는 건데 몇 번이고 계속 해도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럴 때 정말 힘들어요.”
눈앞을 가로막은 고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는 힘, 바로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가족이다. “부모님께서 자주 찾아와주세요. 엄마는 제가 지쳐있을 때면 좋은 말씀 해주시고 항상 응원해주세요. 가족들이 응원해주니까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꿈은 크게, 목표는 높이
고등학교 3학년. 그는 앞으로 약 6개월 뒤에 열릴 2018~2019 신인 드래프트 참가를 준비하고 있다. 그에 앞서 선명여고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든 경기에서 아쉬움 없는 기억을 남기는 게 그의 목표라고 한다. “마지막인 만큼 마음껏 제 기량을 다 보여주고 싶어요. 저를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저를 지켜보고 계실 프로팀 감독님들께, 그리고 제 자신에게.”
V-리그에 입성하게 된다면 가장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세터 한 명을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다영(현대건설) 언니요. 언니가 올려주는 공을 때려보고 싶어요. 같은 학교이긴 하지만 나이 차이가 있어서 호흡을 맞춰본 적은 없어요. 코트 위에서 언니가 세트하는 모습을 보면 멋있더라고요. 기회가 된다면 언니랑 꼭 한 번 같이 뛰어보고 싶어요.”
다음은 어떤 선수의 서브를 받아보고 싶은지 물었다. “서브요? 잘 모르겠어요. 다들 엄청 강하실 것 같아요. 어떤 분이 되든 막상 앞에 서면 무서울 것 같아요(웃음).”
도로공사 유서연은 박혜민의 롤모델
박혜민은 롤모델을 묻는 질문에 조금은 의외 인물을 꼽았다. 배구선수라면 닮고 싶은 김연경도, 같은 포지션의 베테랑 선수들도 아니었다. 프로 2년차 한국도로공사 유서연이 그가 닮고 싶은 선수였다.
알고보니 박혜민과 유서연은 선명여고 선후배 사이다. 박혜민이 선명여고에 입학했을 당시 유서연은 3학년에 재학했다. 유서연을 롤모델로 삼은 이유를 묻자 “서연 언니는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어요. 그리고 뭐든 열심히 하세요.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언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대답했다.
기본기 탄탄하고 블로킹 감각 좋은 윙스파이커
김양수 선명여고 감독은 박혜민을 평가해달라고 하자 먼저 탄탄한 기본기를 거론하며 프로에서도 통할 선수라고 칭찬했다.
“맡은 자리에서 수비를 비롯해서 자기 역할을 잘해주고 있습니다. 프로팀에는 외인 선수가 공격을 주로 담당하다 보니 국내 공격수에게 수비와 서브리시브 능력을 많이 요구하고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혜민이는 프로무대로 가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김 감독은 또 윙스파이커인 박혜민이 블로킹 감각도 뛰어나다고 장점을 추켜세웠다. 김 감독은 “혜민이가 미들블로커보다 키는 작지만 블로킹 타이밍이 좋아서 블로킹을 잘 잡아냅니다”라며 “상대 움직임을 먼저 읽어내고 블로킹을 뜨는 능력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주장으로서 갖고 있는 책임감을 보면 마음이 든든하다고 했다. “혜민이는 평소에도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팀의 살림꾼 역할을 맡고 있어요. 주장으로서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알고 주변 친구들과 동생들을 잘 챙겨주고 있어요.”
물론 김 감독의 평가에는 제자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어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그래도 수비력 좋은 윙스파이커를 찾는 프로팀이라면 올해 신인드래프트에서 박혜민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글/ 이현지 기자
사진/ 홍기웅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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