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기자가 간다’ 시리즈는 막내 기자의 전유물일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이번 호에는 나에게 그 미션이 떨어졌다. 다행히 체력훈련, 동호회 배구 대회 참가 등 체험기는 피했지만 발걸음은 더 신중해졌다. 이번 목적지는 경기 · 심판위원 워크샵. 8월 18일 열띤 토의가 이루어지던 한국배구연맹(KOVO) 대회의실로 향했다.
오전 10시 30분쯤 KOVO사무실이 위치해 있는 상암동 KGIT센터에 도착했다. 이윽고 사진기자와 함께 11층으로 올라갔다. 신춘삼 신임 경기운영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착했음을 알리는 순간 가까이에서 울리는 목소리. 만남이 즉석에서 이뤄졌다.
안내를 받아 한참 워크샵이 진행되고 있는 대회의실로 들어갔다. 신 위원장이 우리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전한 후 한 켠에 자리한 의자에 앉았다. 이날 회의실에는 신춘삼 위원장 포함 박주점 어창선 이성희 강성형 심순옥 유애자 경기위원과 유명현 이영렬 최영일 김영일 유근강 심판위원이 참석했다. 주동욱 심판위원장은 해외출장으로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웠다. 잠시 끊어졌던 흐름도 금세 열띤 토론 현장으로 바뀌어 갔다.
국제적 트렌드 발맞추려는 노력
2017 경기·심판위원 역량강화를 위한 워크샵은 8월 17일부터 18일 이틀간 열렸다. 첫째 날에는 규정 설명을 비롯해 제4차 산업과 AI시대에서의 대응과 전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째 날에는 비디오 판독에 관한 심도 깊은 의견을 주고받았다.
처음으로 꺼내든 안건은 FIVB 챌린지(비디오 판독)시스템 도입. 챌린지 시스템이란 각 팀 감독 및 코칭스태프가 태블릿 PC를 이용해 전체적인 경기 운영을 하는 것을 말한다. 비디오 판독 역시 태블릿 PC를 이용한다. FIVB는 2015 월드컵 여자배구대회부터 이 시스템을 시행했다. 태블릿 PC외에도 현재 KOVO 비디오판독 시스템과 다른 부분은 인아웃의 경우 테니스 국제경기에서 사용하는 호크아이(Hawk Eye) 시스템처럼 입체 화면으로 보여준다는 것. V-리그는 중계 카메라 방송화면에 의존하고 있다.
대부분 위원들이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그러나 우려는 있었다. 오작동 여부와 비용에 관한 문제가 야기됐다. 그 일례로 지난 2016년 5월 18일에 열렸던 태국과 일본의 리우데자네이루 여자배구 세계예선전이 언급됐다.
세트 스코어 2-2가 되며 5세트에 돌입한 양 팀. 태국이 힘을 내며 12-6으로 크게 앞섰다. 일본이 2점을 만회했지만 15점제인 5세트 특성상 태국의 승리가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이 때 태국 키아티퐁 감독이 레드카드를 받으며 일본이 한 점을 획득했고 분위기를 이어나가며 13-12 역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키아티퐁 감독에게 레드카드가 주어지며 매치포인트를 잡은 일본은 15-13으로 경기를 끝냈다.
당시 키아티퐁 감독은 “12-8에서 선수 교체를 하려고 태블릿 PC 버튼을 계속 눌렀으나 교체가 이뤄지지 않아 부심에게 이에 대한 확인을 요구했는데, 레드카드가 돌아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12-13에서는 일본의 후위 공격이 어택 라인을 밟았다고 판단해 챌린지를 신청했으나 경기 지연 행위가 됐다”라며 “왜 레드카드를 받아야 하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신춘삼 위원장은 “우리도 시대에 맞춰가야 한다. 불편하다고 기피해서는 안 된다”라고 전했다. 유애자 의원 역시 뜻을 함께 했다.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주위를 둘러봐도 대부분이 전자 시스템으로 운용되고 있다. 익숙해져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다른 나라 상황을 들려줬다. 올 한 해 SPOTV에서 터키리그 해설자로 활약했던 그는 “터키의 경우 큰 체육관에는 아예 비디오 판독을 위한 카메라만 16대가 설치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현실적인 문제가 수반된다. 이렇게 하려면 1년에 15억 정도가 소요된다. 그러자 한 쪽에서 “우선 무전기 이어폰부터 써보고 챌린지 시스템 필요성을 구단이나 관계자들에게 어필해서 장비기금을 모은다든지 추후에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더해 “지난해에도 이런 얘기가 오갔다. 그런데 제자리걸음이다. 일보 전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위원장은 “지금 현시점으로는 방송사에서 전 일정을 중계해주고 있어 그 화면을 가지고 판독에 이용할 수 있는 점은 좋은데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재정문제도 이해를 하지만 투자와 지원을 통해 시스템 보완을 해야 한다. 조원태 총재가 취임식에서 V-리그를 국제 트렌드에 맞게 변모시키겠다는 말을 했다. 우리도 거기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본다”라며 “어느 정도 앞선 시즌에 비해 보완은 했다.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KOVO컵 때부터 차츰차츰 시행해 보려고 한다. 비디오 판독 라인 카메라를 보강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자리에 참석한 이들은 자신의 경험과 외국의 사례를 언급하며 서로 의견을 타진했다.
명확한 기준 있어야 신뢰 산다
활발했던 논의가 차츰 수그러질 때쯤 한 위원이 “비디오 판독 상황을 보고 다같이 얘기 나누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모두가 이 의견에 동의하며 2016~2017 경기 영상을 보고 판독상황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첫 사례로 꼽힌 건 우리카드와 삼성화재 경기. 삼성화재가 포히트에 대해 비디오 신청을 했다. 그런데 같은 화면상으로 우리카드 김은섭이 네트 터치를 한 장면이 포착됐다. 그러나 이는 요청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넘어갔다.
그러자 어창선 위원이 “한 화면에 다른 내용도 담길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기준을 세워야 할 필요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여러 말이 오가던 중 “한 화면에 같은 종류의 요청사항이 잡힐 경우 따로 요청이 들어오지 않아도 판독해야 한다”라는 의견으로 좁혀졌다. 예를 들어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 경기를 살펴보면 현대캐피탈이 네트터치로 인해 한 점을 내줬다. 그러자 최태웅 감독이 네트터치에 대해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화면 판독 결과 현대캐피탈이 아닌 삼성화재에서 네트터치를 했다. 이 경우 삼성화재가 아닌 현대캐피탈의 점수가 인정됐다.
그리고 방송 해설자들에 관한 부분도 짚고 갔다. 그들의 이야기로 자칫 오해가 불거질 수도 있는 만큼 가이드라인을 잡아야 한다는 것. 신 위원장도 이 의견에 동조, 리그 개막 전 각 방송사 해설위원과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약 두 시간 여 동안 이뤄진 오전 일정. 이마저도 부족했는지 이들은 오후에도 화면을 하나하나 보며 잘됐던 점과 잘못한 부분을 가렸다.
신춘삼 경기운영위원장은 이번 워크샵에 대해 “우리 경기 운영은 FIVB에서도 참고할 만큼 잘 갖춰져 있다. 다만 아쉬운 건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원년 때 방식 그대로다. 그랑프리만 보더라도 비디오 챌린지 시스템에 영상까지 바로 현장에 내보낸다. 우리도 어느 정도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여러 안들을 논의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디오 판독의 목적은 오심을 잡는 데 있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
‘원 팀, 원 보이스’ 강조한 신춘삼 경기운영위원장
2004년 KOVO 출범 당시 경기감독관으로서 프로 태동기를 함께 해왔던 그가 돌고 돌아 다시 KOVO로 복귀했다. 7월 28일 KOVO는 이사회를 열고 경기운영위원장에 신춘삼 전 한양대 감독을 선임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여 뒤 워크샵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우선 경기운영위워장으로 복귀한 소감이 궁금하다
2004년 KOVO 출범 당시 경기 감독관으로 시작, 행정 업무를 배웠다. 지도자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행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사실 흔치 않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내가 엑셀을 배워서 경기 일정을 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경험만 가지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를 익히고 학습했던 것들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연맹에서 나에게 경기운영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맡긴 건 일을 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영광스럽기도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나름의 노하우와 경험들을 녹여내도록 하겠다.
앞으로 어떻게 운영해나갈 것인지
전임자 탓은 하지 않겠다. 나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를 근간으로 삼을 생각이다. 첫 번째로는 매뉴얼대로, 시스템적으로 하겠다. 두 번째는 FIVB케이스북은 있는데 KOVO케이스북은 없다. 영상이 아닌 기록물로 만들어 업데이트 시키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연맹에 상벌을 정확하게 해달라고 했다. 잘하면 잘한 대로 못하면 못한 대로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준다면
프로는 공평해야 한다. 최대한 그 기준이 같아야 한다. 그 동안 경기장에 문제가 생기면 대개 위원장들보고 내려가라고 한다. 관행처럼 그렇게 해왔는데 다른 사람이 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합의 판정 때 감독관이 시그널을 주기도 하는데 그러지 말고 주부심이 책임져야 한다. 구단에서도 심판끼리 해결하게 해야지 왜 감독관이나 위원장이 개입하냐고 이야기가 나온다. 심판들이 해결하게 하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결과 처리를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판들도 신뢰를 받아야 한다. 나 역시도 모범을 보이기 위해 심판 아카데미에 참석해 교육을 받을 것이다. 이론뿐만 아니라 실기 역시도 참석한다.
개인적으로 연맹은 스폰서를 잘 구하고 심판이 잘하고 경기 일정만 잘 짜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스폰서와 경기 일정은 그렇다 하더라도 심판은 아무리 잘해도 안 좋은 부분들만 비춰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심판위원장과 상의해 평소 행동도 품위유지를 할 수 있게끔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예정이다. 그리고 최대한 주관적인 요소는 배제하기 위해 시스템적으로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음 시즌 달라지는 부분들이 있다면
가장 큰 변화는 아마 경기 일정이 될 것 같다. 2017~2018시즌부터 남녀가 분리 운영되는 만큼 지난 시즌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비디오 판독 라인 카메라를 보강할 생각이다.
현행 비디오 판독도 수정안이 논의 중에 있다. 기존 경기당 팀 별 2회에 스페셜 1개였던 횟수가 세트 당 팀별 1회에 더해 듀스 시 1회 추가할 수 있는 방안이 언급됐다. 다만 그렇게 되면 정심, 오심, 판독불가 추가 신청이 없고 스페셜 비디오 판독이 없어진다.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원 팀, 원 보이스’다. 주심 따로 부심 따로 감독관 따로 연맹 따로 되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하나 되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 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경기 중에는 선수들이 우선이다. 선수들이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단과 연맹 모두 협조해야 한다. 나를 믿고 경기운영위원장으로 뽑아준 만큼 나는 감독관들을 믿고 감독관들도 심판들을 믿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새로 경기위원으로 뽑힌 이들은 누구인가
많은 고민 끝에 기존 박주점 어창선 위원에 강성형 이성희 심순옥 유애자 위원을 선임했다. 이성희 위원은 전에도 감독관을 한 경험이 있다. 강성형 감독은 감독직을 내려놓은 지 오래 지나지 않았지만 공부하는 차원에서 함께 하자고 요청했다. 심순옥 위원은 실업배구연맹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는데 능력도 있지만 연맹 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초빙했다. 유애자 위원은 올 한해 SPOTV에서 터키리그 중계를 했다. 선진 트렌드를 잘 알고 있는 만큼 손을 내밀었다. 현재 남자 4명, 여자 2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임기 동안 목표가 있다면
경기운영위원장은 욕을 먹는 자리다. 최대한 욕을 덜 먹도록 노력하겠다(웃음). 나는 일복이 많다. 지도자 생활을 돌이켜봐도 서울시청 홍익대 한양대 KEPCO등 팀이 어려운 시기에 지휘봉을 잡았다. 이번에도 일꾼으로서 선임된 것 같다(웃음).
시대가 바뀌었는데 그에 따라가지 못하면 안 된다. 현상유지는 퇴보라고 생각한다. 임기 동안 국제적 트렌드에 걸맞도록 업그레이드 시키겠다. 그리고 팬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도록 하겠다.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겠다.
글/ 정고은 기자
사진/ 홍기웅 기자
(이 기사는 더스파이크 9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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