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입단 당시 팀에는 배번 1번이 남아있었다. 선택은 물론 1번. 이제는 그녀를 상징하는 숫자가 됐다. 아기용병에서 어엿한 팀의 에이스로 우뚝 선 GS칼텍스 NO.1 이소영 이야기다.
아기용병은 팀 에이스가 됐다
지난 해 11월 19일 의미 있는 기록이 나왔다. 여자부에서는 오직 황연주 김연경 김희진만이 맛봤던 영광. 여기에 이소영도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트리플크라운. 외국인 선수 전유물로 여겨진 기록이지만, 그는 후위 공격 3개, 서브 3개, 블로킹 4개를 기록하며 국내 선수 가운데 역대 4번째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시즌 전 다짐했던 목표를 이뤘다. “2016~2017시즌에 들어가기 전 목표를 정하라는 말에 트리플크라운을 이야기했었다. 간절한 마음은 있었지만, 생각뿐이었는데 실제로 이루게 되어 너무 좋았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쉽게 달성할 수 없는 기록인 만큼 뿌듯함도 있다.”
2016 리우 올림픽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던 것은 오히려 약이 됐다. 이소영은 “예선전까지는 함께 했지만 이후 명단에서 제외됐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떨어졌다. 그래서 2016~2017시즌에는 좀 더 보여줘야겠다고 강하게 마음먹었다. 그런 생각 때문에 트리플크라운을 한 것도 있고 앞선 시즌보다 더 잘되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2012~2013시즌 전체 1순위로 프로무대에 뛰어들었던 이소영. 그 해 신인상은 당연히 그의 몫. ‘아기 용병’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외국인선수 베띠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을 때 빈자리를 잘 메우며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후배 강소휘와 출전 시간을 분배해야 했고 2016~2017시즌을 앞두고는 황민경이 보상선수로 합류하며 선의의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이소영은 시즌을 앞두고 “내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죽을 듯이 하고 있다. 힘도 더 기르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시즌은 나름 성장한 모습이었다. 30경기 117세트를 소화하며 376득점을 기록했다. 2012~2013시즌 프로 데뷔 이후 자신의 커리어 하이. 득점 부문 8위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선수로는 이재영(479득점) 박정아(460득점)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득점이다. 공격성공률에서도 37.94%로 6위를 차지했다. 이소영은 다행이었다고 한다. “다들 전에 비해 많이 올라왔다고 말해준다. 그런데 아직 많이 부족하다. 전보다 못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다. ‘다음 시즌에 기대감이 있겠구나’싶다.”
하지만 팀 성적을 생각하면 그저 아쉽다. 매번 아쉽지만 지난 시즌은 유독 더 그랬다. 이소영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성적이 안 나와서 그 부분이 제일 아쉽다”라고 털어놨다.
달라진 팀 분위기, 기대되는 다음 시즌
언니들이 떠나간 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한송이 선배는 신입생 때부터 함께 해왔던 터라 많이 의지했었다. 2013년 합류한 정지윤 선배와는 우승을 함께 맛봤다. 게다가 같은 방을 썼다. “후배가 있지만, 언니가 나가니까 방에 말할 사람도 없고 허전했다. 언니들 자리가 더 느껴졌다.”
나간 사람이 있으면 들어오는 사람도 있는 법. 김유리 문명화 김진희가 새롭게 GS칼텍스 유니폼을 입었다. 무엇보다 김유리-문명화, 두 미들블로커 합류는 팀에 있어 천군만마나 다름없다. 그 동안 중앙이 취약했던 GS칼텍스다. 그나마 한송이, 표승주 등 날개 공격수 자원들을 활용해 가운데를 지켰다.
“미들블로커진이 강화된 것 덕분이라도 ‘우리 팀이 강해질 수 있겠구나, 해 볼만 하겠다’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팀에 빨리 합류해 같이 연습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대표팀 훈련차 팀과 떨어져 있지만 차상현 감독과 전화통화를 하며 팀운영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눈다. 기대가 된다.“ 이소영의 말이다.
여기에 분위기도 밝아졌다. “시즌 때도 느꼈지만 분위기가 확실히 밝아지기는 했다. 연습할 때보면 하나를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쫓아가는 모습들이 보인다. 많이 달라졌다.”
이소영은 GS칼텍스 자랑을 늘어놓았다. “정말 화기애애하다. 서로 장난도 많이 치고 친하다. 요즘 들어서는 더욱 하나가 된 듯 한 느낌이다.”
다가오는 시즌 차상현 감독이 그리고 있는 배구는 스피드 배구. 이소영 역할이 중요해졌다. 차 감독은 “스피드 배구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리시브가 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소영 역시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비 시즌 동안 감독께서 리시브를 보완하라고 주문했다.” 여기에 직선 공격도 강화해야 한다. 그는 “직선 공격을 좀 더 보완하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했다. 리시브는 괜찮은데 직선공격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노력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국가대표 승선이 의미하는 것
지난 올림픽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된 지 어느덧 일 년여가 흘렀다. 지금은 다시 가슴 한 켠에 태극기를 달았다. 그의 각오도 뜨겁다. “발탁된 만큼 좋은 모습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기 오면 많은 것을 배워간다. 특히 (김)연경언니를 보며 많이 배운다. 하지만 배우는 데에서 그치면 안 된다. 경기도 뛸 수 있도록 하겠다.”
앞서 국제대회를 경험하며 느낀 점이 많았다. 이소영은 “국내선수들과 경기를 하는 것과 외국선수들과 하는 것은 다르다. 확실히 국제대회를 한 번 다녀오면 ‘내가 많이 부족하구나’라는 것과 ‘이렇게 하면 되구나’라는 걸 느낀다. 나갈 때마다 배워온다”라고 말했다.
대표팀에서도 그의 역할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소영은 “리시브 받는데 중점을 두면서 공격도 하고 있다. 나한테는 볼을 받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전했다.
남자국가대표팀 김호철 감독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 선수들한테 명예를 위해서 국가에 헌신하라고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소영에게 국가대표는 어떤 의미일까? 그러자 “동기부여도 되고 성장의 발판도 된다. 한 번 갔다 오면 생각하는 것부터 달라진다. ‘이렇게 하면 팀에 도움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더 성장하게 하는 곳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라운드 MVP다!
V-리그에서 뛴 지 다섯 번째 시즌도 지나갔다. 정지윤이 은퇴하고 한송이 시은미가 트레이드로 팀을 이적하면서 94년생인 그가 이제 팀 내 4번째 중고참이 됐다. 이소영의 책임감도 달라졌다. “그 동안 경기를 뛰면 연차는 쌓이는데 코트에서는 막내였다. 아직도 막내라는 생각에 게임 할 때 막내 티를 벗지 못한 부분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막내가 아니라 중간 입장에서 운동을 해야 할 것 같다. 책임감이 커졌다.”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 하지만 오히려 부담감이 있다고 생각하면 더 커지니까 하던 대로 하겠단다.
다만 움츠러드는 새가슴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외국인 선수와 함께 팀 내 공격을 책임져야 하는 그이기에 중요한 순간 볼이 올라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소영은 “위기상황에서는 심장이 쪼그라든다”라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래서 범실이 많다고. 본인도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다고 멋쩍게 웃어 보였다. 이어 “언니들이 믿고 주는 건데 내가 해결하지 못하면 언니들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것들 때문이라도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5시즌 동안 기쁨도 좌절도 모두 경험했던 이소영. 그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자신 뒤에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 “엄마를 생각하면 잘해야 한다(웃음). 그 부분이 가장 크다. 호강시켜드리고 싶다.”
그래서 다음 시즌이 중요해졌다. 2017~2018시즌 종료 후 FA가 된다. 이소영은 자신만의 목표를 정했다. 지난 시즌이 트리플크라운 달성이었다면 이번에는 무엇일까? “언젠가부터 시즌이 끝나면 다음 목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팀 우승을 제외하면 이번에는 라운드 MVP를 받아보고 싶다. 아직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팀 성적도 좋고 나도 잘해서 이번에는 라운드 MVP에 도전해보려 한다.”
글/ 정고은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7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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