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배구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김호철 감독이 품은 꿈

정고은 / 기사승인 : 2017-05-04 09:14:0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2014~2015시즌을 마치고 현대캐피탈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 야인으로 지내오던 김호철 감독. 그가 한국 남자대표팀 사령탑이 되어 현장으로 돌아왔다. 햇살이 싱그럽게 내리쬐던 4월 22일 오전, 용인 모처 커피숍에서 그를 만나 한국 남자대표팀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170422YW_국대_김호철_감독_인터뷰_29.jpg‘독이 든 성배’를 들다
4월 12일 대한민국배구협회는 “2017년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김호철 감독을 선임했다”라고 밝혔다. 2014~2015시즌 이후 현대캐피탈 감독직에서 내려 온 그가 다시 배구장으로복귀한 것.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다. “배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동안 내 배구인생을 돌이켜보면 휴식기간이 없었다. 쉬고 싶었다. 오래간만에 혼자 사는 법도 배우고(웃음)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보면서 나름대로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배구는 거의 보지 않았단다. 그는 “아마 일반인들보다 더 안 보지 않았을까 싶다. 경기장에도 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포스트 시즌에는 배구장을 찾았다. 현대캐피탈 경기가 있었기 때문. 김호철 감독은 “배구판에서 물러나 있기는 했지만 현대캐피탈과는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었다. 한 두 번은 경기장을 찾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현대캐피탈이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있는데 얼굴은 한 번 비춰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라고 웃어 보였다.



그렇게 나름대로 자신 생활을 이어가던 김호철 감독. 문득 이제는 배구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배구 인생을 어떻게 접어야 할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 그냥 이대로 끝내도 되겠지만 그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배구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차에 대표팀 감독 공모가 있었다. 사실 선택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 남자배구는 최악에 와있다고 본다”라며 입을 뗀 김호철 감독. 이어 “대한민국배구협회를 보면 회장도 공석으로 있고 여러모로 지원이나 재정부분에서 열악하다. 그리고 선수들도 국가대표라는 자리에 대해 예전만큼 명예로움과 열망이 덜하다. 이런 부분들이 참으로 어려운 상황들이다. 잘못하면 독박을 쓸 수 있는 자리기도 하다. 하지만 잘 될 때 밥숟가락 얹는 것보다는 내가 힘을 보태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됐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당시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금메달이라는 성적을 거두었던 김호철 감독.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은 분명 다르다. “벌써 10년도 넘었다. 당시는 선수층이나 환경 등 여러모로 지금보다 나았다. 그리고 프로화가 되면서 바뀐 부분들도 있다. 선수들에게 명예도 중요하지만 돈도 중요한 부분이지 않은가. 시즌 때 잘해야 자기 가치를 평가 받을 수 있는데 대표팀에 들어오면 사실상 쉴 수도, 마음 편히 재활을 할 수도 없다. 몸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선수들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도 그런 부분들을 이해시켜야 하고 선수들도 이해해줘야 한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뛰는 만큼 자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김호철 감독은 프로팀 감독들 처지도 헤아렸다. 선수 차출을 위해 통화를 해보면 오히려 하소연을 듣게 된다고. 자신도 프로 팀 감독을 해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현 상황에 대해서 화도 난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말이다.


“이제 선수들한테 명예를 위해서 국가에 헌신하라고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 훈련이라든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면 선수들이 대표팀에 와서 서로 배우고 노력하고 몸도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다면 선수 본인도 그렇고 구단에서도 차출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텐데 여러모로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만한 것들이 열악하다. 어려운 점이 많다.”



김호철 감독은 인터뷰 내내 시스템 부분에서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감독들이 매번 바뀌는 탓에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 성적에 연연할 수밖에 없다는 것. 지금 2020 도쿄올림픽을 준비할 것이 아니라 도쿄 이후를 생각하는 시스템이 나왔어야 한다고.


“적어도 올림픽이라는 큰 프로그램을 짜려면 3~4년은 필요하다. 길게 보면 8년까지도 봐야 한다. 사실상 도쿄올림픽까지 3년이 남았는데 현재 선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내가 볼 때 도쿄올림픽 준비는 장기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올림픽 예선전도 시드 배정에 있어 중요하지만 그 외 나머지 부분들에서는 장기프로그램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모든 것들이 갖춰져야 한다. 그래야 어느 감독이 와도 그 기반 위에 얹고 얹어서 국가대표팀을 끌고 갈 수 있을 텐데 지금으로서는 그러지 못해 아쉽다.”


170422YW_국대_김호철_감독_인터뷰_04.jpg


월드리그를 향한 시선
김호철 감독의 지도력은 6월부터 열리는 월드리그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이미 머릿속으로 어떻게 구상할지 하나하나 그려가고 있다. “5월 3일 소집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한 달여다. 그 기간 동안 기량을 끌어올릴 수는 없다. 얼마나 조직적으로 잘 맞출 수 있는지가 주효할 것 같다. 선수들이 시즌을 치르면서 체력이 고갈된 상태라 2주간은 체력위주로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연습보다는 경기 위주로 할 계획이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연습을 통해 조직적인 모습을 갖춰 경기에 나갔을 테지만 주어진 시간이 짧다. 선수들의 기량을 잘 조합해서 가장 이상적인 방향으로 맞춰 볼 생각이다.”



그에게 어떤 배구를 보여주고 싶은지 물었다. 그러자 단호한 대답이 들려왔다. “팀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려면 적어도 1년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상 불가능하다. 배구를 만들려고 하면 선수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들도 힘들어진다. 스피드 배구라든지 어떤 배구를 보여주겠다기보다는 선수들이 재미있고 즐겁게 배구를 할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연습도 너무 어렵고 힘들게 할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잘하는 부분들을 최대한 뽑아낼 계획이다. 그리고 나는 선수들이 서로 맞출 수 있도록 프레임만 짜주려고 한다. 선수들이 각기 다른 팀에서 온 만큼 세터와 공격수간 호흡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데 내가 하나하나 짚어주기보다는 서로가 맞춰갈 수 있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다. 고쳐야 할 부분이 있으면 수정해주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선수들이 편안하게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



김호철 감독이 엔트리를 짜면서 신경을 쓴 부분은 바로 세대교체. 한두 명 베테랑 선수 외에는 젊은 선수들을 많이 선발하려 했다는 것. “팀을 리드하기 위해서는 베테랑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젊은 선수들을 선발하려 했다. 그리고 기량은 있지만 그 동안 대표팀에 승선기회를 잡지 못했던 선수들을 이번에 많이 불렀다. 그들에게 패기와 의욕, 의지를 기대하고 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대학생 선수들을 선발하지 못했다. 못내 아쉬운 눈치였다. “선수들 기량이 많이 올라올 수 있는 때가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1-2학년 때다. 하지만 이번에 대학생 선수들을 한 명도 차출하지 못했다. 만약 선발되면 학교 수업에 지장을 줘 학사 점수를 받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전에는 대표팀을 선발하면 절반 이상이 대학생이었다. 지금은 갈수록 자원이 부족하다.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 꽃을 피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 한다. 대학 때 훈련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현 상황에서는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 등 제약이 따르는 게 실상이다. 스타성 있는 선수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김호철 감독은 이번 2017 월드리그 목표를 2그룹 잔류로 잡았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만만하게 이길 수 있는 나라가 없다고. 그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이라는 단서를 내걸며 4승은 해야 잔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작년 월드리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올해 역시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잔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한국은 6월 2~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1차리그(한국 체코 핀란드 슬로베니아)를 시작으로 6월 9~11일 일본에서 2차리그(한국 일본 슬로베니아 터키), 6월 16~18일 네덜란드에서 3차리그(한국 네덜란드 슬로바키아 체코) 일정으로 월드리그에 참가한다.


170422YW_국대_김호철_감독_인터뷰_25.jpg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디딤돌 되겠다”
한 인터뷰에서 김호철 감독은 “디딤돌이 되고 싶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그 의미가 궁금했다.



“현 상황이 좋지 않다. 지금 우리나라 남자 대표팀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본선무대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은 결국 우리가 다시 만들어 놓아야 한다. 누군가는 그 밑바닥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 바탕 위에 다른 것들을 올려놓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협회 사정이 어려운 만큼 배구연맹과도 연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면 선수들도 자발적으로 대표팀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최소한 선수 차출에 있어서 합류할 수 있는지 없는지 머리싸움 할 일도 없다고 본다. 그런 동기부여가 대표팀 선수들 자부심이나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런 부분들을 만들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는 소신도 밝혔다. “내 생각대로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나조차도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젊은 감독들은 내가 봤을 때 이런 일을 하기 힘들 것이다. 윗사람들에게 얘기하기도 어렵고 여러모로 힘든 부분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야 그 감독들보다는 지켜야 할 것들이 많지 않다. 그리고 배구 덕분에 내 인생이 이만큼 만들어졌고 얻어왔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인 어려움 앞에 하루에도 몇 번씩 ‘사임할까’, ‘그래도 할까’라는 고민을 해왔다고 고백해 온 김호철 감독. 하지만 그는 “어차피 맡은 거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웃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각오를 전했다. “남자배구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나부터 한 발 담그겠다. 그리고 선수들도 같은 마음으로 함께 발을 담가주고 거기에 팬들까지 동조해 같이 해준다면 더 좋은 모습의 대표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장서서 열심히 할 생각이다.”


글/ 정고은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5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주요기사

더보기

HOT PHOTO

최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