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는 수련선수다, 연습생 신화를 꿈꾸는 未生미생

최원영 / 기사승인 : 2017-01-23 1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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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 번 소개하고 싶었다. 인터뷰는커녕 자신의 존재조차 제대로 알리지 못 하고 스쳐 지나가는 이들. ‘연습생 신화’를 꿈꾸는 수련선수, 이번만큼은 그들이 주인공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였다. 마음 속에 걱정과 설렘이 교차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신인선수 드래프트장으로 향했다. 친구들이 하나둘 호명됐으나 나는 아직 아니었다. 꿈인가? 늦게라도 뽑힐 줄 알았는데.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선수였구나. 머리가 멍해졌다. 아, 여기서 내 배구가 끝나는구나. 마치 인생이 멈추는 듯했다. 멋지게 정장을 차려 입은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일 따름이었다. 포기하려는 순간, 그토록 듣고 싶던 이름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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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수련선수


‘수련선수’란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라운드 외에 지명된 선수 또는 지명되지 않은 선수 중 구단이 수련선수로 등록한 선수를 말한다. 올 시즌 남자부는 송지민(세터/경남과학기술대-우리카드) 추도빈(세터/경희대-대한항공) 임동호(리베로/목포대-삼성화재) 이창준(미들블로커, 아포짓 스파이커/목포대-삼성화재) 배인호(윙스파이커/성균관대-OK저축은행) 등 모두 5명이 수련선수로 뽑혔다. 여자부는 한국도로공사가 선명여고 세터 이경민과 리베로 차소정을 선발한 게 전부다.



그 중 OK저축은행 막내가 된 배인호는 수련선수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으로 지명됐다. 그는 “정식 라운드 안에 들지 못 했다는 생각보다는 ‘아, 됐다’라는 안도감뿐이었다. 정말 좋았다”라며 당시 소감을 전했다. “부모님은 내심 기대하셨는지 아쉬워했다. 결국 우시더라. 어쨌든 프로 팀에 뽑혔으니 걱정 말라고 말씀 드렸다”라고 덧붙였다.



만약 프로 진출에 실패했다면? 그는 실업 팀 입단을 준비하려 했다. 이마저도 실패한다면 군입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배구선수가 아닌 다른 길도 고민해봤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배구인데 다른 일을 하려면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준비해둔 것도 없었다”라는 배인호다. 그는 대학 4학년이 된 후 ‘드래프트에서 선발이 안 되면 어떡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운동에 집중이 안돼 잡념은 정리하기로 했다.



182cm로 공격수치고는 단신인 배인호. 그럼에도 성균관대 시절에는 팀에 없어선 안 될 주축선수였다. 그러나 이제는 수련선수다. 하루 아침에 처지가 뒤바뀐 셈. “괴리감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꾸준히 경기를 뛰면 실력이 점점 좋아지고 자신감도 높아진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 없다.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 그냥 열심히 하면 살아남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몇 번 오지 않는 기회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계속 제자리 걸음만 하고 싶진 않았다”라며 힘줘 말했다.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 및 코칭스태프가 배인호에게 강조한 것이 있다. “우리 팀에 들어오면 수련선수든 1라운드에 뽑힌 선수든 다 똑같다. 편견 같은 건 절대 없다. 너도 ‘난 수련선수라 안 되겠지’라고 생각하면 정말 혼난다. 늦게 뽑혔다고 서운해하지 말고 힘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배인호는 “덕분에 가끔은 내가 연습생이라는 걸 잊을 때도 있었다”라며 미소 지었다. 김세진 감독 말대로 평소 생활이나 훈련 면에서 차별은 전혀 없었다.



팀 입단 후 약 한 달 뒤인 11월 22일, 배인호는 마침내 등록선수로 전환됐다. 다음날인 23일에는 KB손해보험전에 원 포인트 서버로 출전해 서브에이스(1개)를 기록했다. 프로 데뷔와 동시에 얻은 천금 같은 득점이었다. 한 달 동안 겪은 마음고생이 잊혀졌다. 배인호는 “정식 계약할 때 제일 벅찼다. 그 전에는 연습생이라 규정상 코트에서 몸을 풀 수 없었다. 동료들은 모두 등록돼 열심히 뛰고 있는데 나만 관중석에 앉아있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이제는 월급날만 기다린다”라고 해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는 훈련에 더욱 열중했다. “준비를 많이 했다. 경기 당일 체육관으로 출발하기 전에 시간이 꽤 남는다. 4시간 정도 휴식이 주어지는데 그때 개인 운동을 열심히 했다. 형들을 조금이라도 따라가기 위해서다.” 배인호는 ‘원 포인트 서버’라는 임무가 보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감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안 되니 형들보다 더 많이 연습해야 한다. 한 세트에 딱 한 번 들어가 팀에 도움을 줘야 한다. 웜업존에서 몸을 정말 많이 푼다. 몸이 조금이라도 굳으면 서브 감각이 떨어지고 점프도 잘 안되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강해야 한다고 느꼈다. 자신감과 정신력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 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더라. 자신감이 없으면 계속 스트레스 받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잠깐, ‘좋은 서브’란 무엇일까? 배인호가 들려준 답은 ‘상대방을 흔드는 서브’다. “리시브 라인을 흔들어 놓거나 득점이 되는 서브가 좋다. 어디로 때리라는 작전이 있다. 상대방 공격 루트 한 곳을 차단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정확성도 좋아야 한다.”



OK저축은행은 새 외인 모하메드가 합류하기 전까지 국내선수들로만 경기에 나섰다. 외국인 선수가 맡았던 아포짓 스파이커 자리는 전병선에게 돌아갔다. 전병선은 본래 원 포인트 서버. 덕분에 배인호에게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열심히 해서 차츰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다. 이럴 때도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 ‘병선이 형이 있는데 내가 경기에 들어가려나?’라고 생각하며 나태해져선 안 된다. 그런 마음 한 번이 훈련을 소홀히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끔 조바심도 나지만 ‘내가 저만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최대한 훈련에만 집중하려 한다.” 배인호 말이다.



분위기를 바꿔 팀에 적응은 잘 마쳤는지 물었다. 배인호는 룸메이트 송희채 이름을 꺼냈다. “희채 형을 굉장히 좋아한다. 형 컴퓨터로 게임도 하고 장난도 많이 친다. 형이 나를 괴롭힌다. 내가 매를 버는 상이긴 하다. 형이 ‘불만 있냐?’라고 하면 내가 ‘아뇨, 물도 있어요’라고 한다. 그러면 형이 아예 방문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 씌운다”라며 크게 웃는 배인호다. 영락없는 20대 장난꾸러기였다. 그는 “형들이 다 잘해줘서 감사하다. 우리 팀은 선수층이 젊어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 덕분에 형들과 거리감이 없다. 내가 잘 적응할 수 있게 조언도 많이 해주고 도와줬다”라며 밝은 목소리를 들려줬다.



송희채는 배인호의 목표이기도 하다. 윙스파이커 보조 공격수 자리에서 리시브를 도맡아 하며 공격에도 신경 써야 하는 역할이다. “‘나도 저만큼 했으면’ 하고 바라보게 되는 선수다. 희채 형 뒤를 받치려면 대학 때보다 훨씬 더 수비력을 키워야 한다. 형이 배구를 참 잘하더라. 팀에 잘하는 형들이 많아 여러 가지를 물어보며 보고 배운다.”



어엿한 프로선수가 된 배인호에게도 팬이 생겼다. 그는 “적응이 안 됐다. 대학 때는 선물을 거의 받아보지 못 했다. 여기 와서 힘들 때, 선수 등록이 안 되어 못 뛸 때도 많이 응원해주셨다. 지쳐갈 때쯤 힘이 정말 많이 났다. 팬 분들이 없으면 선수들도 없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라며 진심을 전했다.



배인호에게 ‘최종 목표’라는 흔한 질문을 던졌다. “주전으로 오래오래 뛸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프로선수로 10년 이상 뛰고 싶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버티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준비되어있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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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표를 떼다


수련선수였음에도 주전까지 꿰찬 선수들이 있다. 이들도 과거에는 모두 배인호처럼 힘든 길을 걸었으리라.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 한국전력 세터 강민웅이다. 2007∼2008시즌 삼성화재에 입단한 그는 당시 선배 최태웅(현 현대캐피탈 감독)과 동기 유광우에게 밀려 기회를 얻지 못 했다. 이후 대한항공으로 트레이드 돼 잠깐 꽃피는 듯 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한선수가 군 전역 후 팀에 복귀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다시 트레이드로 새 둥지를 찾았다.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한국전력 주전 세터로 경기에 나섰다. 비록 팀은 정규리그 5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강민웅에게는 의미 있는 시즌이었다. 비시즌 절치부심한 그는 명 세터 출신인 신영철 감독과 함께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그리고 시작된 2016~2017시즌. 세터 강민웅이 이끄는 한국전력은 전반기 좋은 성적을 거두며 현대캐피탈, 대한항공과 3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강민웅 개인도 세트당 평균 11.53개 세트로 해당 부문 1위에 올라있다(12월 18일 기준). 10년 가량을 묵묵히 참고 견뎌온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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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저축은행 미들블로커 김홍정도 마찬가지다. 2009∼2010시즌 삼성화재에 수련선수로 입단한 그는 러시앤캐시 베스피드(현 OK저축은행)가 창단되던 2013년 신생 팀 확대 지명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동시에 주장 완장도 찼다. 2년간 군 복무를 마치고 올 시즌 다시 팀에 합류한 김홍정. 김세진 감독은 망설임 없이 다시 주장을 맡겼다. “팀이 더욱 똘똘 뭉칠 수 있게끔 도와주길 바란다. 같이 우승 한 번 더 하자”라는 말과 함께였다. 김홍정의 바른 인성은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팀원들은 ‘모범이 되는 선수’라며 칭찬한다. 뿐만 아니라 구단 관계자들도 엄지를 치켜세울 정도다. 성실함까지 얹어 고된 프로생활을 지나온 김홍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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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해보험 미들블로커 이수황도 있다. 2012~2013시즌 수련선수로 프로 무대에 발을 디뎠다. 쉽사리 모습을 보이지 못 하던 그는 지난 시즌부터 주전을 꿰찼다. 선수 층이 얇아 취약했던 중앙에 이수황 존재는 천만다행이었다. 올 시즌에는 중심을 잡아주던 하현용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에 이수황이 FA로 이적해온 이선규와 함께 출전 중이다. 비록 전반기 팀 성적은 하위권이지만 이수황 성장은 진행 중이다.



여자부 선수들 중에는 이러한 사례를 찾아보기가 무척 어렵다. 흥국생명 리베로 한지현 외에는 이렇다 할 선수가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대표 세터였던 SBS스포츠 이도희 해설위원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도희 위원은 ‘선수 정체’를 이유로 꼽았다. “여자부는 비교적 선수들이 정체돼 있다. 베테랑 선수들이 많이 남아있어 신인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이 적다. 더군다나 빈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려면 수련선수로는 부족하다. 1라운드에 뽑힌 선수여도 힘들 정도다. 남자부는 파워 넘치고 실력 좋은 젊은 선수들이 치고 올라오면 금세 세대교체가 되는 편이다. 팀 에이스가 바뀐다. 하지만 여자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라는 설명이다.



물론 베테랑 선수들이 무조건 비켜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위원은 “조금이라도 더 노련한 사람이 필요한 건 맞다. 그 선수가 들어가면 팀 전체 경기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린 선수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 여자 선수들은 경기 중 리듬이나 분위기를 많이 탄다. 와르르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이때 경험 많은 선수가 다독여주고, 잡아준다면 다시 치고 올라갈 수 있다. 상대적으로 배구를 오래 했으니 기술적인 부분도 더 좋을 것이다. 체력적으로 떨어지는 건 맞다. 선배들이 때를 맞춰 자리를 물려주고, 후배들이 실력을 키워 이를 잘 메워줘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수련선수뿐 아니라 꿈을 키워가는 어린 선수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 위원은 “얼마나 성실하게 연습하느냐에 따라 위치가 달라진다.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고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어놓아야 한다. 수련선수는 정원 외로 선발하는 선수다. 해당 포지션이 부족하기 때문에 뽑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독이 원하는 몫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점을 뚜렷이 보여 주어야 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수련선수라고 핑계대면 안 된다. 1라운드로 온 선수보다 더 노력해서 이겨야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여기는 프로 아닌가? 실력으로 말해야 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실력이 안 되니 정식 라운드에 선택 받지 못 한 것이다. 그 시련들을 얼마나 견디느냐가 중요하다. 잘하는 사람보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 수련선수로 왔다고 성공 못하리란 법도 없다. 독한 마음으로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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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선수, 그 후


사실 ‘연습생 신화’는 말 그대로 기적에 가깝다. 하위권에 뽑힌 선수들을 포함해 남는 이보다 떠나는 이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제2 인생을 살고 있는 선수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우선 실업 팀으로 향해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연봉이 보장돼 있고 입지가 비교적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실업 팀 입단에 실패하면 배구 동호회를 찾기도 한다. 유니폼을 벗고 지도자 길로 들어선 선수들도 있다. 일반 체육교사가 되거나 초·중·고 등 아마추어 배구부 코치 직을 맡은 경우도 더러 눈에 띈다. 한 선수는 “잠깐이라도 프로 팀에 몸 담았던 경력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라고 전했다. 책을 펼쳐 공부하는 선수들도 있다. 자격증 등 미래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다. 남자 선수는 군에 입대해 병역을 먼저 해결하기도 한다.



배구와 관련 없는 새 삶을 꿈꾸는 선수들도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 무대를 밟은 여자 선수들은 대학을 알아보기도 한다. 배구부가 있는 대학(우석대, 목포과학대, 단국대 등)에 진학해 운동을 지속하기도 하고, 학업에만 열중하며 다른 길을 모색해본다. 이렇듯 선수들은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글/ 최원영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 배구 전문 매거진 <더스파이크>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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